며칠 한국 날씨가 바람이 많아서 훨씬 춥게 느껴졌었다. 하지만 러시아는 러시아다. 밤이 되면 떨어지는 기온과 바람이 확실이 다르다. 1월 7일이 옥소 도스(그리스 정교)의 크리스마스와 같아 마치 축제가 끝난 뒤와 같이 평온하다. 1/19일은 전통적으로 추운 날씨 때문에 얼음을 깨고 들어가서 냉수마찰을 하는 축제가 있다고 한다. 고객사 직원 중에도 매년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는데, 나보고 도전해보지 않겠냐며 웃는다. 먼저 하라고 퉁을 주고 서로 한참 웃었다. 감기 걸린 사람보고해보라며 실실 웃는 녀석이나 너 먼저 해보라는 나나 친밀해지면 사람의 관계란 인종, 문화를 넘어선다.
러시아 1/7일 종교적인 축제기간의 붉은 광장. 사진과 구름이 해티포터의 장면같아서 고객한테 사진을 얻게 됬다.
러시아 시장은 특별하다. 장비들이 환경적인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품질의 완성도가 더 많이 강조된다. 예전에 자동차 기업들이 한 겨울 시베리아를 횡단하는 시위를 하듯 요구되는 기능의 지역적 특성이 존재한다. 동시에 자연과학 등 기초과학분야, 리눅스 계열의 뛰어난 연구인력들이 많다. 우리가 농담으로 한국기업 하고 미팅하면 엔지니어가 나오지만, 러시아에서 미팅하면 박사님들이 나온다고 한다. 실제로 그런 경우가 많고, 질문을 듣다 보면 이 분이 제품에 관심이 있는 것인지, 기술 자체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하려는 것인지 경계를 구분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영업인력이 기술지식의 깊이나 한계나 있을 수밖에 없다. 이런 부분을 잘 조율하고 서로 배려할 수 있게 상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여기서 나는 대국들의 특성 중 하나라 얼마나 기초, 기본에 중점을 두는지를 많이 배웠다. 처음에는 알아듣지 못하는 기술적 용어와 설명, 때론 수식들이 나온다. 이때에 그 핵심의 개념을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우리의 엔지니어와 개발자들도 그 의도와 의미를 잘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전화기를 통해서 말보다 동작, 운영 등을 간단하게 video clip으로 만들어 대응하는 것이 가장 편리하다. 백문이 불여일견이기 때문이다.
러시아도 중국의 바람으로 다양한 문제가 생긴다. 산업재 시장에서 consumer product의 방식으로 박리다매 전략을 구사하는 중국의 시도는 많은 시장 속에 관습과 관례로 존재하는 시장의 규칙을 파괴하고 있다. 일부는 성공하고 일부는 그렇지 않을 것이지만 시장 참여자에게 상당한 충격과 타격을 준 것은 분명하다. 특히 많은 시장 참여자들이 중국 제품을 통한 수익과 그들의 전략적 방식 사이에서 고민한다. 왜냐하면 중국은 품안에 들어온 자식을 감싸고, 경쟁자를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경쟁자를 확실하게 제거하려는 전략을 구사하는 공격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시장의 반응에서 부작용도 양산한다. 두 번째는 품안에 들어온 파트너를 우리가 인식하는 높은 수준의 파트너십보다는 그가 유효 할 때까지만 활용하는 제한적이고 낮은 파트너십을 구사하고 있다. 중국 업체들에게는 상당히 유효한 전략이지만, 중국 업체들의 경쟁력에 문제가 생길 때 파트너라고 생각하던 거래선들도 똑같이 등을 돌린다. 그래서 많은 업체들이 중국의 사업 진행방식에 대한 문제점을 제기한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문제는 한국기업들의 경쟁력 자체이다. 나는 히딩크는 아니지만 "I'm still hungry"라는 그 말을 되새길 때라고 생각한다. 전인권의 걱정 말아요에 나오는 가사처럼 많은 한국기업들이 참신함을 잃어버렸다. 기존의 틀에서 아주 조금 변형해서 유지하려는 얄팍한 수가 산업기술, 산업세대의 변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 그 책임은 각 산업의 주체에게 있다. 그리고 각 산업을 리딩하는 그룹, 조직의 리더들이 방만했다는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내가 속한 조직도 이런 동일한 한국기업의 문제점이란 연장선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나는 현재의 나를 부인함으로 새로운 발전 가능성을 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항상 옳다고 생각하는 순간 정체되고 항상 만족되었다는 나태함이 차오르는 순가 도퇴된다.
이번엔 알고 있던 일패의 확인 과정이 속상하고 자존심도 상하고, 오기도 생기기도 했다. 예측도 되고, 몰랐던 것도 아니지만, 조직 속에서 일한다는 것은 나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협동이란 측면에서는 일정 부분 실패한 부분이 존재한다. 하지만 또 새롭게 추진하는 부분에서 기대 이상의 반응과 성과도 존재한다. 문제라면 나 스스로의 마음이 이를 잘 갈무리하지 못하는 것이다.
러시아 사무실에는 항상 술이 있다. 그중에서 술을 갖고 갈 수 있는 식당이라고 한 병을 고르게 해줬다. 다음날 비행기를 타서 독주를 피하고 장미빛 이태리 와인을 함께.
두바이로 넘어가기 전에 해외 출장을 다녀온 업체 사장이 가기 전에 얼굴을 보자고 해서 다시 고객 사무실에 들렀다. 공식적인 미팅보다는 요약해서 미팅 내용과 상황을 이야기했다. 식사를 하면서 자신이 어려서부터 시작한 사진 찍는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 날씨 이야기, 금융 등 다양한 소재의 이야기를 하게 됐다. 그러다 가장 어려운 질문인 나의 전략과 내가 속한 기업의 전략에 대해서 묻는다. 전략이란 목표에 대한 수단이다. 수단을 진행하는 프로세스와 다르다. 보는 관점이 다르지만 나의 말로 그가 이해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위에서 말한 환경 속에서 내가 처한 여건을 고려하면 솔직담백 하게 이야기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저렇게 물어보는 오랜 친구처럼 닦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처한 공동의 시장환경 문제와 각자 처한 역할에서의 의미를 이야기하는 좋은 시간이 됐다. 출장에서 돌아와서 밥을 사주고 팁을 줘야 하는데 공항에서 바로 오다 보니 현찰을 조금 달란다. 팁을 일정 주고 나머지를 돌려주는데 마치 오랜만에 아빠한테 용돈 받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니 20년을 가까이 봐왔는데 밝게 웃어준다. 사실 이 정도 연배의 러시아 아저씨들은 대부분 포커페이스다.
지하철을 타러 길을 나서며
차도 놓고 와서 함께 추운 겨울바람을 맞으면 지하철까지 같이 걸었다. 이번 출장을 기록하며 나를 기억해주고, 기다려주고,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을 이야기했는데 참으로 그런 듯하다. 몇 분 안 되는 내가 배꼽인사를 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를 보내고 호텔로 돌아오며 이런 차가운 바람이 야생의 느낌을 갖게 한다. 영업은 스스로 참신함을 갖지 않으면 죽은 조직이다. 다양한 조직과 기업에서 영업은 이런 예가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특수군, 정규군, 민방위, 예비군, 민간인의 가능성이 존재한다. 선택이 강요되기도 하고 선택하기도 한다. 하지만 영업은 나는 늑대와 같은 야생의 느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직에 속해있기에 늑대의 특성처럼 협동도 할 줄도 알아야 한다. 특히 영업활동이 궁극적으로 사람과 사람의 다양한 커뮤니케이션에 영향을 많이 받게 된다. 이때 멋진 늑대의 근성이 없다면 시장에 나가서 생존율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면 생존을 위해서 격이 떨어지는 하이에나와 같은 생존의 길을 찾던가, 동물원 우리의 전시용 늑대 외형만 갖게 될 수도 있다. 내가 신년 잠시 정신줄을 놓고 나태 해진 것이라는 반성을 하게 된다. 어차피 과거는 돌아오지 않고, 조금 어지러이 걸어왔다면 이를 부인해서도 안된다. 이런 상태를 부정하고 다시 똑바로 걸어가야 길이 생기고, 그 길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이번 출장은 춥고, 정신적으로도 복잡하지만 또 배우며 참신해지는 길이라 생각하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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