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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싱가포르에서 한국으로 촬영을 갔다.

싱가포르에서 한국으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꽤 멀다. 비행만 꼬박 7시간 30분 정도가 걸리니 한국에서 태평양 반쯤 건너서 하와이까지 가는 거리에 비례하지 않을까 (물론 나만의 추측이다).

 

자칭 '상계동 토박이'지만 중학교 때부터 시작한 유학생활 때문에 한국에 있는 시간은 매년 여름방학뿐이었다.

매년마다 한국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은 한정돼 있다 보니 맨날 익숙한 곳에서 한 번에 몰아서 친구들을 만났고 아는 장소만 전전했다. 이번에 촬영을 갔던 부산은 고등학교 때 가족이랑 딱 한번 가본만큼 사투리도, 지리도 익숙하지 않았다. 오는 길에는 KTX를 잘못 예약해서 기차를 놓치고 다시 예매까지 해야 했다.

 

 

사회인으로 첫 발을 내디딘 한국은 공간적인 낯섦을 벗어나 학생 때와는 너무 다른 모습이었다.

 


 

한 재단에 촬영을 갔다.

 

오피스가 위치한 중구에 도착해보니 나와 카메라맨을 홍보팀 담당자가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

큰 키와 강한 화장이 인상적이신 40대 여성분이었는데 카리스마가 압도적이었다. 옆에는 신참으로 보이는 나보다 한 두 살 많아 보이는 언니가 있었다.

 

"피디님~ 반갑습니다~~"

 

아직 ~씨라고 들어도 어색한데 ~님 소리를 들으니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한국에서는 인터뷰이들이 나보다 한참 나이가 많으신 경우가 많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어색한 상황이 자주 연출되었다.

 

먼저 악수를 하려고 손을 내밀었더니 가만히 내 손을 쳐다보시다가 어색하게 악수를 하고 손을 바로 빼시는 경우가 많았는데 들어보니 어린 사람이 먼저 악수를 신청하는 것은 실례라고 한다. 이처럼 한국인의 탈을 쓰고 기본 예의범절부터 모르는 게 많아서 불필요한 오해를 받을까 봐 항상 전전긍긍했다.

 

아무튼. 존칭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난 예전부터 특정 직종에만 ~님이 붙는다는 사실이 불편했다. 우리는 판사~님, 검사~님, 기자~님 하지만 환경미화원~님, 판매원~님 하지는 않는다. 혹자는 더 노력한 만큼 사회에서 받는 존중의 표시라고 할 수 있겠지만 우리는 (표면적으로나마) 소위 평등한 세상에 살고 있다. 그리고 사회 고위층이 유년시절에 더 노~오력을 했다는 비례 방정식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선배에게 존칭에서 오는 불편함을 토로했더니 그냥 감사하게 여기고 공손하게 모든 사람을 대하라고 말씀해주셨다. "이것 때문에 불편하다고 너 피디 그만둘 거 아니잖아. 함부로 널 대하는 것보다 낫지."

 

나의 불편함은 단지 '님'이라는 호칭보다 직업 때문에 오는 과도한 관심이나 존중의 표시 등에서 오는 것 같다.

 

 


 

이사장을 만나러 올라가는 길이었다.

 

"너 그 풀어헤친 머리 좀 묶을래?"

 

홍보 담당자가 내 또래로 보이는 신참 언니에게 소리 질렀다. 무안한 표정으로 언니는 어깨 밑으로 넘실거리는 머리를 머쓱하게 뒤로 넘겼다. 눈이 마주쳤는데 나는 못 본척했다.

 

"피디님~ 뭐 마시실래요?" "아, 네 저 차 한잔만 주세요"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언니는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자 문을 닫으려고 일어섰다. 순간 언니의 하이힐이 딸각딸각 땅바닥에 부딪혔고 인터뷰는 소리 때문에 잠시 중단되었다.

 

"야! 너는 왜 일어서고 그러니, 생각이 있는 거니? 하이힐 소리 안 들려?"

 

언니는 다시 멋쩍은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나는 싸해진 분위기가 걱정되었지만 60대로 보이는 이사장 할머니는 곧 인자한 표정으로 내게 시선을 돌렸다. "피디님~ 이것도 드셔 보세요."

 

인터뷰가 끝나고 나는 열명 남짓한 직원들 앞에서 "착하고 얼굴도 예쁘고 (;;;) 영어와 중국어도 능통한 우리나라의 별"로서 기념 촬영까지 했다. 참고로 나는 중국어를 거의 못한다. 쥐구멍으로 도망가고 싶었다. 싱가포르에서, 홍콩에서 촬영하면서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상황이었다.

 


 

나만의 철학이 있다.

 

나는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사람보다 차라리 모두에게 '싸가지'없는 사람이 낫다고 생각한다.

뭐 모두에게 친절하면 더욱 좋지만...

 

요즘 한국에서 일하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는데 이번 촬영을 계기로 그런 마음을 접었다.

언니가 정말 실수를 해서 지적을 받은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정말 실수 그 자체로 면박을 받은 걸까? 언니의 어린 나이와 막내라는 위치, 그리고 그런 약점을 너무나 쉽게 이용하는 한국 조직사회의 한 면모를  본 것은 아닐까?

 

23살, 곧 24살인 내가 한국에서 일하면 충분히 맞닥뜨릴 수 있는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피디님은 도대체 어떻게 피디가 되신 거예요? 어려 보이는데"

 

서너 번 주절주절 설명하다가 나중에는 그냥 짧게 말했다. "시험 보고 인터뷰했어요."

 


 

나이와 직업에 상관없이 모두 다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

방법은 아직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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