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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폴에 6월에 왔으니, 1년의 반을 이곳에서 보냈다. 작년 이맘 때쯤 나는 무얼했나~ 사진첩을 뒤져보니 유럽 여행 중으로, 체코에서 놀고 있었다. 그때는 몰랐지, 1년 뒤의 내가 이러고 있을 줄이야. 이곳에서 6개월이라는 시간을 보내며 참으로 깨달은 게 많다. 지금 이 순간을 오랫동안 기억하기 위해, 싱가폴 취업을 고려하고 있는 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 위해 지금까지 느낀 것들을 몇자 적어보고자 한다.

 

 


 

 

얻은 것

강한 멘탈

두가 부푼 희망을 품고 한국을 떠나 해외 취업에 도전할 것이다. 물론 나도 그랬다. 이 낯선 땅에서 꼭 성공하리라! 실제로 부딪힌 현실은 정말 녹록치 않다. 부족한 영어 실력과 애매한 경력으로는 면접에서 물 먹고,  일을 시작하고 나서도 익숙하지 않은 언어와 처음하는 업무로 인해 실수 연발이고. 게다가 팀원들도 그닥 호의적이지 않고. 정말 멘탈이 강해질 수 밖에 없는 환경이다. 모든 것이 낯설고 힘들지만 시간이 흐르면 웬만한 자극에도 흔들리지 않게 된다. 어느 순간부터 "될대로 되라지"하는 마음이었다. 강해진 멘탈 덕분인지 어떤 상황이 닥쳐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싱가폴에서 산 6개월 시간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간이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지만 나는 안다. 앞으로 살면서 이것보다 더욱 무시무시하게 힘든 일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살아온 날보다 살아 갈 날이 더 많은 지금 이 시점에서 좋은 일만 생기게 해달라고 바라는 것보다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버텨낼 수 있는 굳건한 정신력을 기르는 것이 더욱 현명한 길인 것 같다.

 

경제 관념

해외에 나와 경제적, 정신적 자립을 하면서 진정 어른이 되고 있음을 느낀다. 취업을 하고 첫 월급을 받기 전까지는 한국에서 가져온 돈을 거의 다써서 정말 가난하게 살았다. 뭐 지금도 풍족하게 사는 것은 아니지만 그때는 세제살 돈이 아까워서 (그래 봤자 2, 3불 밖에 안하는데) 회사에 있는 세제를 공병에 담아가서 그걸로 설거지를 하곤 했다. 필요없는 건 절대 안 사고, 점심 먹으러 호커센터 가서도 딱 밥만 시키고 음료는 절대 안 마시고, 음식하려고 산 재료가 남았을 경우 버리기 아까워서 냉장고에 있는 재료 다 때려 부어 카레를 만들기도 했다. 돈 쓰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스타일인지라 경제적으로 타이트하게 사는 게 정말 힘들었다. 한국에서는 정 돈이 부족하면 부모님한테 손을 벌릴 때도 있었는데 여기와서는 그럴 수 없었다. 이렇게 고생하며 경험한 덕분에 경제 관념이 생긴 것 같다.

 

진로에 대한 방향성

올해 얻은 가장 큰 성과다. 멀쩡히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올 한해 정말 많은 방황을 했다. 서비스 기획이 하고 싶어서 스타트업 운영기획팀에 들어가서 일을 해보기도 하고, 한국을 훌쩍 떠나 해외 취업에 도전해보기도 했다. 싱가폴에서 페이스북 운영 업무를 하 '디지털 마케팅' 분야로 확실한 진로를 잡았고, 이 회사는 디지털 마케팅이랑은 거리가 먼 회사라 관련 경력을 쌓기 어렵다는 판단을 하여 퇴사를 결정했다. 사실 경력을 쌓는데는 내 나라만한 데가 없다. 내 언어로 배울 뿐만 아니라 한국 회사 특유의 과중한 업무 때문에 빨리 성장 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이다. 물론 관련 경력이 부족해서 얼마나 빨리 취업을 할지 미지수이긴 하지만 말이다.

 


 

잃은 것

건강

여기서 취업만 하면 모든 게 잘 풀릴 거라고 생각했지만, 절대 아니었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업무에 적응하고, 회사 문화에 적응하고, 사람에 적응하는 게 취업을 하는 것보다 훨배 어려웠다. 정해져 있는 출근 시간보다 1시간에서 1시간 반 정도 일찍 출근하고, 매일 같이 야근하면서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다. 보스는 나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 높았고 단 시간 안에 아무리 노력해도 보스의 기대를 채우기 힘들었다. 열심히 한 만큼 성과가 나지 않아 나도 참 답답했다. 원래도 위장이 안 좋은 편이었는데, 여기저기서 스트레스를 받다보니 뭘 먹어도 얹히는 느낌이 들었고, 살면서 이렇게까지 얼굴에 여드름이 많이 났던 건 처음이었다.

 

사실 아무리 힘들어도 내가 이 회사에서 일을 하는 게 비전이 있다고 생각했다면 어떻게든 버텼을거다. 하지만 이렇게 건강을 잃을만큼 이 일을 좋아하지도 않았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할 수도 없었다. 이런 나를 보며 끈기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인생에 있어서 내가 선택한 모든 일을 끈기를 가지고 끝까지 해내는 것만이 옳은 건지 묻고 싶다.

 

해외에 사는 것에 대한 로망

해외에서 일하고, 해외에서 사는 사람을 보며 마냥 부러워 했던 적이 있었다. 싱가폴에 오기 전까지는 그랬다. 반년동안 이래저래 일하면서 살아보니 해외에서 사는 것이 결코 아름답다고 말할 수 없다. 새롭고 즐거운 일도 많지만 그만큼 힘들고 외로운 일들도 많다. 돈이 없어서 새가 날아다니는 호커센터에서 3-4불짜리 밥을 먹고, 6-7명의 플랫 메이트와 함께 살고 있기 때문에 아침에 일찍 일어나지 않으면 그들이 씻고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별거 아닌 것 같은데 화장실을 여러 명과 같이 쓰는 게 꽤 스트레스다. 회사에서는 남들이 하는만큼만 하려고 해도 남들보다 2배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기 때문에 평일에는 퇴근하고 딱히 여가 시간도 없었다. 커리어를 쌓고 자기계발을 하기에는 정말 좋은 환경인 것 같다. 그런데 왜 이렇게 공허함이 큰지 모르겠다. 물론 해외에 사는 것에 대한 로망이 없다고 해서 영원히 한국에서 살려고 결심한 것은 아니다. 언제든 내가 원할 때 떠날 수 있도록 업무 경력이며, 언어며 다시 한번 열심히 준비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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