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는 그리 잘하지 못했던 D에게
직장생활 하느라 힘들지? 하면 할수록 어려워지는 게 직장생활이 아닐까 해.
주위를 둘러보면 여우 같이 대충 시간 때우면서 일하고, 그저 한 달 월급 받아가는 것에 만족하며 회사를 다니는 친구들이 많은 것 같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뭐든지 열심히 하고, 또한 잘 하고자 애쓰는 너를 보면 한편으론 기특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론 짠한 마음이 들기도 하는구나.
입사 3년 차가 된 너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 조금 늦었다는 생각도 들긴 하지만 이제 신입 딱지도 떼고, 업무와 상사를 대하는 요령도 생기면서 직장생활이 익숙해진 너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내가 지금 하는 이야기는 10년 정도 직장생활을 하면서 함께 일하는 상사와 동료를 보고 느낀 것들이야. 어떻게 보면 지극히 개인적이고, 모든 것에 일반화하기에는 어려울 거야. 어쩌면 듣기에 조금 불편한 내용이 있을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네가 좀 더 효율적으로 직장생활을 하고, 일과 생활을 모두 즐기며 살 수 있길 바라며 내가 느낀 것들을 담담하게 전하고자 해.
아, 그리고 너를 두고 '공부는 그리 잘하지 못했던'이라고 표현해서 미안하다. 사실 나도 공부를 그리 잘하지 못했던 입장에서 그런 표현을 쓰고 싶진 않았어. 그리고, 공부를 굳이 일과 연결시켜야 하나 싶기도 했지. 그런데, 일을 하다 보니 공부와 일은 동떨어진 것이 아니더라.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공부를 잘하는(했던) 친구들이 일도 잘 하더라고. 이 또한 모든 것에 일반화하고 싶진 않아. 내가 공부를 그리 잘하지 못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공부를 잘하는(했던) 친구들에게 더 눈길이 가고, 그들이 일하는 습관을 연관 지어서 봤는지도 모르겠다. 굳이 공부를 일에 연관지은 것 또한, 공부를 대하는 태도가 일을 대하는 태도와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기억해줘.
그리고, 요즘엔 공부를 잘하는 사람만 성공하는 시대가 아니야. 다양한 재능, 기술을 활용해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내는 사람들이 더 많고, 나는 그들이 부러워. 어쩌면 내가 앞으로 할 이야기인 '공부 잘하는 사람이 일도 잘 한다'는 사실은 너와 나 같은 '사무직 직장인'에게만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 거야. 혹시나 해서 다시 한번 말하지만, 공부를 그리 잘 못하는 사람이 일도 못한다는 것은 절대 아니야.
아무튼 서론이 길었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볼게.
예전에는 공부 잘하는 애 하면 두꺼운 안경에 후줄근한 옷차림을 하고, 책상 앞을 떠나지 않는 모습을 떠올렸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더라. 공부 잘하는 애들이 자신만의 색깔을 찾아 외모도 잘 꾸미고, 자기 관리도 잘 하고, 대인관계도 원만하더라고. 그런 친구들은 직장생활에서도 눈에 띄더라.
공부 잘하는 기준을 어떻게 정하냐고? 공부를 잘하는 기준을 졸업한 대학이나 시험 성적으로 판가름할 수는 없지만, 영향을 받는 건 사실이야. 물론 아닌 경우도 많아. 불편할 수 있겠지만, 나는 주로 졸업한 대학교로 공부를 잘하는지, 그렇지 않는지의 기준으로 삼았던 것 같아. 졸업한 대학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야.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대학이 학창 시절의 노력과 성실함에 대한 결과라고 생각하거든. 누구나 똑같은 학창생활의 시기를 겪는데 다른 결과가 나온다는 사실에서 눈여겨보며 배울만한 거리가 있다고 생각해. 요즘엔 개인의 노력과 성실함이 진학하는 대학을 결정하는 요소 중 매우 적은 부분을 차지하는 시대라는 사실이 씁쓸하긴 하구나.
직장생활을 하면서 공부 잘하는 친구들이 일하며 보이는 특성을 몇 가지 추려봤어. 세어보니 다섯 가지 정도 되네.
먼저, 그들은 집중력이 좋아.
지금 해야 하는 것만 하기 위한
냉정한 통제
예전에는 늦게까지 남아서 야근해야 열심히 일하는 직원, 성실한 직원으로 인정받았지만, 요즘엔 결코 그렇지 않아. 오히려 업무 능력이 떨어지는 직원으로 여기지기도 해. 똑같이 주어진 근무시간에 어떤 사람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깔끔하게 마무리하고 정시 퇴근하는데, 어떤 사람은 매일 야근을 면치 못하지. 물론 개인마다 주어진 업무의 종류와 양에 따라 다르겠지만, 소위 말하는 일 잘하는 직원은 같은 시간, 같은 조건 하에서 다른 사람들과는 '차별화된' 성과를 내더라고. 동일한 조건에서 성과를 판가름하는 가장 큰 요소는 바로 '집중력'이라고 생각해. 공부도 마찬가지라는 것은 너도 동의할 거라 생각한다.
공부를 하는 학생이든, 직장에서 일을 하는 직장인이든 집중력을 결정짓는 행동은 지금 해야 하는 것’만’ 하는 것이야. 지금 해야 하는 공부가 교과서 50페이지를 읽어야 하는 것이라면 그것을 읽는 것 외에 다른 것은 절대 하지 않는 것이며, 지금 해야 하는 일이 보고서 작성이라면 보고서 작성하는 것 외에 다른 것은 절대 하지 않는 것이지. 주위 환경, 불쑥불쑥 떠오르는 생각들을 냉정하게 통제하는 태도가 필요해.
업무 집중력을 높이는 방법에 대해서는 내가 예전에 쓴 글을 참고해봐도 좋을 것 같아서 아래에 링크 걸어둔다.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주어진 24시간, 그리고 근무시간을 얼마나 꽉 채워서 활용하느냐에 따라 해낼 수 있는 업무의 양, 도출하는 업무의 질, 직장 내 인간관계, 그리고 직장을 벗어나 업무 외 시간에 즐기는 개인의 삶에 차이가 생길 거야.
다음으로 그들은 본질을 읽어낼 줄 알아.
찬밥과 더운밥
똥인지 된장인지
뭘 해야 하고, 뭘 하지 말아야 할지.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지 분별할 줄 알지. 생각보다 찬밥 더운밥을 구분하지 못하는 어른들이 많아. 두 눈으로 같은 것을 보지만, 모두 똑같이 '읽어내지' 못한다는 것이 문제야.
학창 시절 시험을 잘 보기 위한 방법으로 '출제자의 의도'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을 많이 들어봤을 거야. 방대한 시험 범위 내에서 시험에 나올만한 내용을 분별하여 집중적으로 공부를 하면 같은 시간 공부를 해도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었지. 공부 잘하는 애들은 '무엇을 공부해야 할지 알고' 공부를 했어. 나름 열심히 밤새워가며 공부를 했는데 내가 공부한 부분에서는 시험문제가 하나도 나오지 않아서 시험을 망치게 되었던 기억이 떠오르네.
일도 마찬가지야. 예를 들어, 타사로부터 제안 요청을 받았어. RFP라고 하는 제안요청서를 여러 개의 제안사가 보게 되지. 똑같은 RFP를 보지만, 그것을 읽어내는 능력은 모두 달라. 결국, 발주처가 프로젝트를 통해서 이루고자 하는 것을 분명히 읽어내고, 그에 따른 방향과 전략을 도출해서 차별화된 실행방안을 제안하는 제안사가 프로젝트를 수주받을 수 있게 되지. 회사 내에서도 마찬가지야. 상사로부터 업무지시를 받았다면 회사가 원하는, 혹은 상사가 원하는 것을 분별해서 그에 맞는 기획안이나 보고서를 작성할 수 있어야 해.
해야 할 일, 중요한 일을 파악하지 못하고, 하지 않아도(심지어 하지 말아야 할)될 일, 중요하지 않은 일에 시간과 에너지를 허비하는 일은 없으면 좋겠어.
일이 주어진다면 무작정 시작하지 말고, 출제자의 의도가 무엇인지, 이 일을 왜 해야 하는지, 이 일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는지에 대해 먼저 고민하고 시작하자. 아마, 센스도 필요하고, 많은 경험도 필요할 거야.
공부도 잘 하고, 일도 잘하는 친구들은 실패의 경험을 활용해.
내 인생의 오답노트
학창 시절 공부를 잘하던 친구들만 가지고 있던 노트가 있어. 바로 '오답노트'야. 그 친구들은 시험을 보고 나면, 시험을 본 내용을 반드시 복기해. 틀린 문제는 물론이고, 찍어서 맞춘 문제, 좀 더 확실히 알고 넘어가야 할 문제 등을 오답노트에 적어놓고 다시 공부하곤 했지.
모든 일을 처음부터 다 잘하고, 모든 일에 좋은 성과를 내는 사람은 없어.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잠들기 전 이불킥을 할 만한 상황들도 수없이 생길 것이고, 어쩌면 성공의 경험보다 실패의 경험을 더 많이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일 잘하는 사람들은 직장생활에서도 오답노트를 써. 누구든 한 번의 실수를 할 수는 있지만, 두 번 이상 같은 실수를 하는 사람은 결코 일을 잘하는 사람이 될 수 없어.
실패의 경험은 반드시 자기만의 방법으로 메모해두고, 실패의 경험을 성공의 밑거름으로 만들 수 있길 바라.
더불어, 실수한 내용뿐 아니라, 하나의 프로젝트가 끝날 때마다 프로젝트를 복기하며 일을 하며 얻은 나만의 노하우, 꿀팁도 함께 메모해 둔다면 자기만의 비밀 병기로 활용할 수 있을 거야.
그들은 정확하게 표현할 줄 알아
한국어가 세상에서 가장 어려웠어요
표현하는 것이 뭐가 어려운 일이야?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자신이 원하는 것, 상대방에게 전하고자 하는 것을 글로, 또는 말로 조리 있게 표현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야.
반나절을 회의했는데 회의가 끝나고 나면 무슨 내용으로 회의를 했지?라는 생각이 들어.
열심히 목에 핏대를 세우며 이야기하는데 핵심이 무엇인지 파악이 되지가 않아.
보고서를 작성했는데 10번을 읽어도 도무지 무슨 내용인지 이해가 되지 않아.
상사가 하는 자주 하는 말, "이렇게 이렇게 하면 돼. 무슨 말인지 알겠지?" 대체 이렇게는 뭘 말하는 거지?
직장생활을 하면 자주 겪게 되는 상황들이야. 외국어로 의사소통을 하는 것도 아닌데 표현하기도 힘들고, 알아듣기도 힘든 건 왜일까.
일 잘하는 사람들은 말하는 것도 깔끔하고, 보고서도 깔끔하게 써. 여기서 깔끔하다는 것은 비주얼이 깔끔하다는 것이 아니라, 한눈에, 한 귀에(?) 핵심을 파악할 수 있다는 거야.
한국어도 공부가 필요해. 특히 글쓰기, 말하기 훈련은 꾸준히 할 필요가 있어. 내가 머릿속으로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막상 글로, 말로 표현하려고 하면 잘 안 되는 경우가 많아. 그것은 제대로 알고 있다고 할 수 없는 상황이야. 학창시절 공부를 잘 하던 한 친구는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을 옆 친구에게 알려주며, 본인이 공부한 것들을 제대로 알고 있는지 시험해보기도 했다고 해.
먼저, 글쓰기는 일기나 블로그 등을 활용해서 일단 글을 쓰는 습관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단, 글을 쓸 때는 어휘도 찾아보면서 완전한 문장을 써보고자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면 좋겠다. 내가 쓴 글을 읽어보며 어색한 부분들을 수정하는 훈련도 필요하고.
그리고, 말하기 연습도 꾸준히 해야 해. 직장생활을 하며 PT나 발표할 기회가 생긴다면 빼지 말고, 부딪혀 보자.
다행인 사실은 하면 할수록 느는 것이 글쓰기와 말하기 실력인 것 같아.
덧붙여서, 한국어 공부뿐 아니라, 외국어 공부도 하면 좋을 것 같아. 나는 직장생활을 할수록 영어가 발목을 잡아서 뒷목을 잡게 되는 일들이 많이 생긴다. 영어 공부를 꾸준히 하지 않은 것이 후회가 되는구나. 외국어를 하게 된다면 활용할 수 있는 자료, 업무의 기회, 만날 수 있는 사람의 범위가 훨씬 넓어진다는 것을 기억하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끝까지 열심히 해.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낸다
평범한 진리는 모든 것에 통하는 법이지.
공부 잘하는 애들은 목표 분량을 정해두고, 목표 분량을 채우기 위해 졸음과 싸워가며 책상 앞을 쉽게 떠나지 않아.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으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문제를 잡고 늘어져. 쉽게 답안지를 펼쳐보지 않지.
일도 마찬가지야. 일에 성과를 내기 위해 될 때까지 최선을 다하는 자세는 일 잘하는 사람들만 가지고 있는 모습 중 하나야. 그들은 일에 게으른 법이 드물어.
이쯤이면 되겠지.
에라 모르겠다.
일하면서 위와 같은 말을 자주 하고 있진 않은지 돌아보자.
판단을 재빨리 중지하고, 결론을 손쉽게 도출하는 것, 너무나 손쉽게 '이 정도면 충분하다'라고 생각하는 것.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게으름'이다.
게으름은 '새로운 관점의 포기'를 의미한다.
- 최장순 <기획자의 습관> 중
말이 길어졌네. 혹시 나를 꼰대로 생각하며 이 글을 읽은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사실 이 말들은 너에게 하고 싶은 말들이지만, 나 자신에게도 하는 이야기란다.
설사, 공부를 그리 잘 하지 못했다고, 일을 그리 잘 하지 못한다고 너무 의기소침해하지 말자.
비즈니스 심리학의 대가 샤모로-프레무직 런던대 교수는 낮은 자신감은 능력(competency)을 키우는 데 핵심 역할을 하며 오히려 높은 자신감은 방해가 된다고 강조했어.
관련 내용은 아래의 링크 기사를 참조해봐.
일 잘하는 사람들을 가까이하며 그들의 일하는 모습, 습관, 노하우를 보고 배우자. 사람마다 스타일이 다르기 때문에 무조건 따라 할 필요는 없지만, 분명 그들에게서 배울 수 있는 것들이 있을 거야.
하면 할수록 어려운 직장생활이지만, 작은 것에서부터 성취감을 느끼며 성장하는 D가 되기를 응원할게.
우리 함께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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