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는 것은 가장 강한 종이나 가장 똑똑한 종들이 아니라,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하는 종들이다.
- 찰스 다윈 -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다란 말이 있다.
앞서 언급한 찰스 다윈의 말과 상통하는 이야기. 결국, 살아남은 자는 강한 것인데 그 강인함은 '변화'의 파도를 어떻게든 넘어왔단 이야기가 된다.
요즘 우리네 삶은 정말 빠르고, 그 속도 안에는 무수한 변화의 포인트들이 존재한다.
호모 사피언스가 출현한 게 약 4만 년 전인데, 산업혁명 이후 지난 250여 년 간의 발전이 인류의 삶을 급박하게 바꾼 것이다. 이러한 트렌드를 볼 때, 앞으로 20~30년 동안의 과학기술 발전과 그 파급효과는 250년에 준하는 변화를 가져온다는 게 학계의 의견이다.
그러니, 우리는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야 하는 세상에 있는 것이다.
변화를 위한 경쟁력
'관점 바꾸기'
고대 그리스어로 '땅 위의 사자'란 이름을 가진 동물이 있다.
바로 카멜레온이다. 카멜레온은 시시때때로 변화하는 몸의 색깔로 널리 알려져 있다. 주변에 맞추어 색을 바꾸기도 하고, 때론 감정을 표현하거나 의사소통을 위해서도 색을 바꾼다. 그리고 이러한 특징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안겨 준다. '카멜레온처럼 변하는...'이란 수식어는 이젠 일상이 되었다.
그런데 우리는 카멜레온처럼 몸의 색깔을 바꿀 수 없다.
또는 신체 일부를 단기간에 진화론적으로 변화시킬 수 없다. 결국, 우리가 변화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관점'을 바꾸는 것이다. 그리고 이 방법은 우리가 알게 모르게 자연스럽게 택해온 생존의 방식이다.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휴대폰이란 게 없었다.
그런데 이젠 남녀노소 그것을 다 사용한다. 나이 지긋하신 분들도, 점점 더 기계 사용에 익숙해지고 이모티콘까지 사용하게 된다. 눈도 침침한데 그분들이 그토록 휴대폰 사용법을 배우려 하는 이유는 뭘까? 살아남기 위해서다. 지금의 세상에선, 휴대폰과 메시지가 없이 살 수 없기 때문에. 그렇다면 그분들이 휴대폰 사용법을 익히기 전에 먼저 해야 하는 일은? 바로 관점의 변화다.
'나는 그런 거 필요 없어, 복잡하고 어려워서 사용하지도 못해'란 생각은 버리고, 이게 꼭 필요한 거구나...라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받아들이는 순간을 우리는 '관점의 변화'라 할 수 있다.
심리학에선 사람들은 각자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의 창'이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의 이름을 '프레임'이라고 하는데, 프레임에 따라 세상은 달라 보인다. 낮잠을 자고 있는 친구에게 붉은색 셀로판지를 씌우고는, '불이야'라고 외쳐 깨우면 어떻게 될까. 실제로 그 친구는 일어나 눈 앞에 펼쳐진 빨간 세상을 보며 정말로 불이난 줄 알고 혼비백산한다. 실제 불이 나지 않아도, 눈 앞에 펼쳐진 세상은 이미 불로 활활 타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나의 프레임에 무엇이 덧대지느냐에 따라 세상은 이렇게 보일 수도, 저렇게 보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관점을 달리하는 연습
사람은 누구에게나 신념이 있다.
맞다고 생각하는 것, 내 마음을 지키기 위한 기준. 하지만 그것이 변하지 말아야 한다는 걸 의미하진 않는다. 오히려 변화하지 않는 신념은 위험하다. 그것은 독선과 고집, 아집으로 변질될 수 있다. 세상이 바뀌었는데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고집불통으로 남아있길 원하는 사람은 없다. 세상의 변화에 맞추어, 나의 관점을 점검하고 신념을 융통성 있게 만들어가는 것이 바로 이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경쟁력이다.
하여, 관점을 달리하는 연습을 우리는 게을리해선 안된다.
첫째, 자아성찰의 시간을 갖는다.
수시로 변화하는 세상에서 한 가지 바뀌면 안 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변화하는 세상을 받아들이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라는 진리다.
"우리가 만든 세상은 우리 생각의 과정이다. 우리의 생각을 바꾸지 않고는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 알버트 아인슈타인 -
아인슈타인의 말처럼, 세상을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건 우리 자신이며, 결국 바뀌어야 하는 것은 우리 생각이다. 그러니 우리는 자아성찰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나는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내 프레임은 무엇인지. 혹시라도 내 프레임 앞에 그 어떤 색안경이 덧대어져 있지는 않는지.
가만히 앉아 내 마음의 창문을 인식하고, 그것을 한 번 열어보자.
둘째, 다른 사람의 입장을 헤아린다.
사람이 더불어 사는 것을 우리는 '사회생활'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여러 가지 갈등이 생겨나곤 하는데, 그것은 결국 각자가 가진 프레임의 충돌이라고 보면 된다. 즉, 내 맘이 너와 같지 않고, 너의 마음이 나 같지 않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할 때, 그저 기분만 나빠하기보다는 무언가 배움의 요소를 찾아내는 게 정신 건강에 더 좋다. 즉, 그 어떤 갈등이 일어났다는 뜻은 내 프레임을 점검할 수 있는 기회이며, 그것이 맞고 틀리고를 떠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겠다는 출발선에 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입장을 헤아리고 상대방의 프레임도 이해해보려 노력하는 것은, 결국 내가 관점을 달리하는 연습을 할 수 있는데 큰 도움을 준다.
셋째, 변화하는 세상을 공부한다.
어린 학생들의 선행학습이 문제가 되는 시대이긴 하나 그것이 없어지지 않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미래에 대한 불안에 기인하며, 변화에 대한 충격을 줄이고자 하는 몸부림이다. 분명 잘못된 방향이라 할 수 있지만, 뭐라 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다. 사람이라면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그러한 불안을 가지고, 미리 대처하려는 본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 또한 변화하는 세상을 공부해야 한다. 가만히 앉아 변화의 큰 소용돌이가 왔을 때 충격을 받기보단, 어떻게 변화해야 할지에 대해 미리 공부하는 것도 필요하다.
내가 모르는 분야를 공부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며, 매일을 기록해보는 것. 그 과정에서 우리는 변화하는 세상을 볼 수 있고, 관점을 바꿀 수 있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관점을 달리하는 연습은 수시로 해야 한다.
지금 세상은 수시로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와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나 '나'다. 내가 빠진 변화는 의미가 없다. 세상을 바라보는 내가 피폐하면 세상도 피폐할 뿐이다. 변화의 바람이 거세어 세상살이가 녹록지 않더라도, 변화에 앞서 가장 먼저 챙겨야 하는 것은 나다. 관점을 달리하는 연습은 중요하지만, '관점'이란 단어 그 자체에 '나'가 포함되어 있음을 절대 잊어선 안된다.
내가 있어야 세상도 있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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