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경영전략 설명회에는 우수인재 채용도 핵심 목표에 들어가는데, 이 기회에 채용전략 한 번 크게 리뉴얼하고 제대로 해보는 게 어때?”
채용업무를 담당한 지 만 2년이 되어가던 때, 부서장 회의에서 돌아온 팀장님은 퇴근 30분을 앞둔 내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재미있겠지? 잘 준비해봐. 다음 주 화요일에는 자료 만들어서 상무님 드려야 하니까 서두르고.”
씩, 하고 웃는 저 얼굴을 대체 어쩌면 좋을까. 이게 목요일 저녁 다섯 시 반에 할 소리인 건지. 아, 저 삐져나온 코털을 한 움큼 잡아서 뜯어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하지만 의외로 이 일은 신선했다. 정해진 매뉴얼대로만 진행하던 채용 업무였는데, 다른 회사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취준생을 벗어난 몇 년 동안, 채용시장은 몇 번의 변태를 거쳐 상상도 하지 못한 단계로 탈바꿈해 있었다. 기껏해야 PT면접, 토론면접이 다였던 나의 취준 시절과는 다르게, 취업 관련 뉴스 속에는 “호프 면접”, “실무실습 면접”, “블라인드 면접”과 같은 생소한 단어들이 난무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기껏해야 취업 커뮤니티, 취업포털 사이트에 채용 공고를 올리고 유관학과가 있는 학교에 채용공고 홍보 요청 공문을 보내는 게 고작이었던 우리 회사에 비해, 다른 회사들은 유튜브를 통해 채용 홍보 동영상을 올리고, 블로그를 운영하고,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이용해 지원자의 질문에 답을 하고, 사옥 오픈데이를 만들어 취업지원자들이 회사를 방문해 업무 환경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등, 정말 다양한 채용 활동을 진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활동들은 예산, 시간, 인력 모두 부족한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종류의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쉬운 것부터 시작하자는 마음으로 경쟁사 열 곳의 자기소개서를 뜯어보았다. 내가 입사한 이후로 단 한 번도 변하지 않은 자기소개서 문항이 늘 마음에 걸렸는데, 이걸 갈아치울 절호의 기회가 아닌가. 다른 회사들은 자기소개서에 어떤 질문을 만들어 넣었을까. 뭔가 참신한 게 있지 않을까? 웹사이트를 기웃거리며 자료를 긁어 모아 엑셀에 붙여 넣었다. 그리고 질문들을 하나하나 뜯어보며 깨달은 사실 한 가지. 호프 면접을 하는 회사도, 블라인드 면접을 하는 회사도, 그리고 너무 고루해서 곰팡이 냄새가 날 것만 같은 우리 회사도, 모두 자기소개서 문항이 별 다를 바 없다는 것!
문장만 서로 다를 뿐,
회사들은 동일한 것들을 물어보고 있다.
‘아닌데? 다 다르던데?’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평가자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회사들은 표현이 조금 다른 자기소개서 문항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결국 회사가 궁금해하며 묻는 것들은 동일한 것이라는 말이다. 어찌 보면 당연하다 싶다. 필연적으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회사 입장에서 잠시 생각해보자. 회사가 신입사원을 뽑을 때, 회사는 그 사원이 입사 직후부터 엘론 머스크의 뺨을 올려붙일 만큼 역량을 발휘하며 회사를 이끌어가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일반적인 경우, 회사는 직무에 따라 신입사원의 교육기간을 최소 1년에서 길게는 3년까지 바라본다. 실무에 투입하더라도 마음 저 깊은 곳에는 ‘교육 중’ 팻말과 노란색 어깨 견장이 달려있는 것이다. 신입이 한 사람의 직원으로서 제 몫을 하기까지 회사는 교육을 위해 월급을 투자한다. 왜? 그 직원이 미래의 회사를 짊어지고 갈 인재가 될 것이라 믿기 때문에. 당장의 수익을 위해서라면, 신입보다 경력을 채용하는 것이 더 낫다.
회사는 자선단체가 아닌 이익을 추구하는 단체다. 그렇기에 회사는 어떻게든 손해 보는 일을 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신입사원 한 명이 정년까지 갈 경우, 그 사람에게 들어가는 인건비가 약 23억이라고 한다(출처 : Insight, 사람인). 채용은 회사가 들이는 가장 큰 투자비용인 것이다.
채용은 회사가 들이는 가장 큰 투자비용이다.
그렇다면 회사는, 이런 신입의 자리에 어떤 사람을 앉히고 싶을까? 자기 팀의 사람을 뽑는 팀장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기왕이면 성격이 원만해서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릴 수 있는 친화력 있는 사람이 좋겠지? 투덜이 스머프를 부하직원으로 데리고 있고 싶을 상관은 없을 테니까. 그리고 일이 힘들다고 입사 한 달 만에 문자 한 통만 남긴 채 연기처럼 사라져 버리지 않아야겠지? 그러려면 기본적으로 우리 회사와 해당 직무에 깊은 관심이 있어야 할 테고, 회사에 호감이 있다면 금상첨화겠지. 회사와 직무에 관심이 있다면 우리 회사, 업무 관련 경험과 지식이 조금이라도 있을 테고, 앞으로의 계획도 세워놨겠지?’
평가자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섣불리 사람을 뽑았다가 조기퇴사를 한다던지, 아니면 회사와 일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한다면 덩달아 주변에 있는 팀원들까지 신경이 곤두서고 피곤해진다는 것을 경험해봤기 때문이다. 회사 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단 한 사람이 팀의 분위기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잘 알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회사들은 하나같이 위와 같은 부분에 대해 지원자가 준비되어 있기를 바란다.
결국 회사가 관심을 갖는 부분은 대동소이하다.
회사가 주목해서 보는 내용을 정리하면 상당히 단순한 다섯 가지로 정리된다.
1. 인성
2. 직무목표
3. 회사에 대한 로열티
4. 직무역량
5. 직종에 대한 관심
결국 회사가 관심을 갖는 부분은 대동소이하다. 질문을 어떻게 던졌건, 결국 회사가 궁금해하는 것은 위 내용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지원자는 평가자가 위와 관련된 내용에 대해서 더 이상 걱정하지 않도록 만들 필요가 있다. 리스크가 사라지면 투자자는 투자하지 않을 이유가 없으니까. 신입 채용이 회사가 23억을 투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명심하자.
예를 들어보자. 대표적인 개방형 질문으로 '자유롭게 자신에 대해 소개해주세요.'가 있다. 지원자는 이걸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할 것이다. 과거에는 정말 판에 박힌 방식이 있었다.
“저는 엄격한 아버지와 자애로운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1남 1녀 중 장남으로…”
아, 눈물이 앞을 가린다. 고서적을 판매하는 중고 책방에 들어갔을 때 보는 빛바랜 가죽 표지를 보는 느낌이다.
'자유롭게 자신을 소개해주세요', 라는 질문은 정말로 자유롭게 아무거나 쓰라는 말이 아니다. 내용을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 지원자의 인성을 부각할 수도, 지원자의 회사에 대한 관심도를 표현할 수도, 아니면 직무에 대한 열정과 준비사항을 어필할 수도 있다. 만약 이 질문이 '당사에 지원하게 된 동기 및 지원직무를 선택한 이유를 설명하세요.'라는 질문과 함께 있다면? 당신은 여기서 당신의 인성에 대해 어필할 필요가 있다. 회사에 대한 로열티와 직무와 관련된 준비사항은 이미 두 번째 질문에서 설명할 기회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회사가 제시한 자기소개서 문항들을 꼼꼼히 따져보자.
상대가 듣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그 안에 반드시 숨어있다.
회사가 제시한 자기소개서 문항들을 꼼꼼히 따져보자. 상대가 듣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그 안에 반드시 숨어있다. 질문 자체에서 그 단서를 찾을 수도, 다른 질문과의 차이에서 단서를 찾을 수도 있다. 바로 그 단서가 질문의 요점이다. 상대가 듣고 싶은 이야기를 들려줘야 한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친구와 나누는 수다에서 풀어야 한다.
지피지기이면 백전불태(知彼知己百戰不殆)라 했다. 나의 적인 자기소개서의 정체가 드러났다. 평가자는 이런 부분들을 알고 싶어 한다. 그렇다면 이 내용들을 어떻게 써야 할까? 나는 이 내용에 대해 잘 쓸 준비가 되어있을까? 이제 알아야 할 것이 하나 더 남았다. 다름 아닌 “나 자신”이다. 아무리 상대를 잘 파악한들, 지원자가 스스로의 상태를 모르면 대책을 세울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나 스스로에 대해 면밀히 알 필요가 있다. 어떻게? “분석”을 통해서!
나 자신에 대해서 알아보자.
나 자신에 대해서 알아보자. 나의 꿈과 목표를 소수 분해, 아니, 분자 단위까지 탈. 탈. 탈. 털어보자. 나는 왜 이 직무를 하고 싶은가? 나는 왜 이 직업이 갖고 싶은가? 이 직업을 가졌을 때, 이 회사에 들어갔을 때 나를 충족시키는 것이 무엇인가? 돈? 명예? 권력? 아니면 정말 이유 없이 마냥 좋아서? 그리고 나는 이걸 얻기 위해 포기할 수 있는 게 무엇인가? 아무리 이 일이 좋아도 포기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인가?
친화력과 활동력이 엄청나게 좋은 한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몇 천 만원의 엄청난 학비를 쏟아부으며 M&A 전문가가 되기 위한 MBA 코스를 밟았다. 그 친구에게 언젠가 물었던 적이 있었다. M&A 전문가가 대체 왜 하고 싶은 건지. 친구의 답변은 간단명료했다.
“연봉이 엄청 높거든. 30대에 억대 연봉도 받을 수 있어.”
놀랍게도 이 친구는 현재 한 외국계 중견회사의 영업인이 되었다. 금융사가 아닌 일반 회사에, 그것도 영업으로 취업했다는 소식에 놀란 내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잘만 하면 영업도 인센티브 껴서 억대가 넘더라. 매일 컴퓨터 앞에 앉아서 하는 일보다 발로 뛰면서 사람 만나는 게 나한테는 더 잘 맞아.”
학위가 아깝지 않냐는 질문에 친구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뭐 어때,라고 웃어넘긴다. 속 편한 놈 같으니.
이 친구는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을 뽑아냈다. M&A 전문가가 되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던 것이, 사실은 일찍부터 큰돈을 벌고 싶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충분한 돈을 벌 수 있다면, 그는 영업 직무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의 성격에는 영업 업무가 잘 맞았다. 만약 그 친구가 M&A 전문가가 되어 금융사에 취업했다면, 그는 연봉과 맞바꿔 좀이 쑤시는 사무실 구석자리에서 끙끙대는 자신의 현실을 감수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목표 속에서 진짜 원하는 '무엇'을 찾아냈고, 이로 인해 그의 선택지는 M&A 전문가뿐만 아니라 인센티브가 보장된 영업 직무로도 확장된 것이다.
예가 하나 더 있다. 학생 때부터 홍보기획과 영상제작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던 후배가 하나 있었다. 그는 넘치는 활동력으로 대학을 졸업했을 때 이미 다양한 인턴경험과 여러 공모전 수상경력을 보유했고, 취미로 친구들과 제작한 영상이 유튜브에서 제법 주목을 받기도 했다. 활동 경험과 목표가 뚜렷하고 실무적인 능력도 잘 갖추었기에, 그는 졸업과 함께 유명 광고기획사에 취업했다. 그리고 2년이 지나지 않아 술 한 잔 사달라는 그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
"저 그만두기로 했어요."
소주 한 잔 털어 넣고 툭 튀어나온 그의 말. 깜박이는 켜고 들어오지, 쫌.
"원하던 일 아니었어? 원하던 분야에서 최고 수준의 회사에 들어간 건데, 갑자기 왜? 상사가 괴롭혀?"
고개를 젓고, 입가에 씁쓸한 미소를 머금고 그가 말했다.
"제가 원하던 일인데, 제가 원하던 일이 아니네요."
사정은 이랬다. 그는 자신이 좋다고 생각하는 기획보다 고객의 입맛에 맞는 기획을 해야 하는 현실에 지쳐갔다. 대부분 의사결정권을 가진 고객의 고위직급 임원들의 취향은 그가 보기에 너무 구식이었고 재미가 없었지만, 결국 고객이 만족하는 것이 중요한 을의 입장에서 자신의 기획은 빛을 발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시키는 것' 혹은 '답정너 스타일'의 업무에 지쳐, 이제는 일이 재미가 없어질 정도라고. 업계 최고 수준 연봉도 더 이상 그의 발을 잡아두지 못했다.
그렇게 회사를 그만둔 후배는 몇 달의 리프레쉬 해외여행을 다녀온 후, 작은 스타트업의 홍보담당으로 입사했다.
"아이디어가 막 샘솟는데, 그걸 실제로 써먹을 수 있어요. 그렇게 내 기획이 결과물이 돼서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걸 보면 온 몸이 짜릿해져요. 형, 이거 완전 마약이에요."
전 회사 연봉의 반도 되지 않는 수준의 급여를 받는 후배는, 이 이상 행복할 수 없다며 이렇게 말했다.
"돈 못 벌까 봐요. 마음먹으면 언제든지 더 벌 수 있다고 믿어요. 중요한 건 내 실력을 쌓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면서 진짜 알맹이를 만들어나가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게 없으면 이 업계에서 오래 못 버티지 않겠어요? 창의력이 생명인데! 이게 오히려 더 옳게 가는 길이고, 아니, 다른걸 다 떠나서, 지금 너무 재밌어요!"
이 후배에게는 당장의 급여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현재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자부심, 그리고 일에 대한 주인의식을 느낄 수 있는 업무 권한이 더 중요했다. 그런 그에게 '갑'을 모시는 거대 대행사는 맞는 자리가 아니었다. 오히려 작은 규모의 '내 일'을 할 수 있는 스타트업이 훨씬 좋은 선택지였다.
당신의 답을 생각해보자.
정말 꿈에 그리던 이상형의 이성이 당신 앞에 나타났다고 상상해보자. 당신은 전에 없는 열정을 쏟아부어 그 사람과 사귀게 되었다. 하지만 좋았던 것도 잠시, 상상했던 것과는 다른 상대의 개성이 하나둘씩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런 현실에 부딪히면, 당신은 선택을 해야 한다. 나의 욕심을 버리고 이 사람과 맞추며 나아갈 것이냐, 아니면 또 다른 당신의 이상형을 찾아 새로운 길을 떠날 것이냐. 커리어를 쌓는 것도, 회사를 선택하는 것도 이런 연애와 별반 다르지 않다.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과 하고 싶지 않은 것, 나를 만족시키는 것과 참을 수 없는 것을 분명하게 알고 있어야 제대로 된 선택을 할 수 있다.
당신의 답을 생각해보자. 당신이 목표로 하는 직업의 어떤 부분이 끌리는가? 당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의 행복이 무엇인가? 정말 ‘그 직업 자체’가 당신이 원하는 것인가? 아니면 그 직업의 ‘어떤 요소’를 갖고 싶은 것인가?
답이 나왔는가?
축하한다.
당신은 이제 자소서를 쓰기 위한 첫걸음을 떼었다.
Kyle Lee 작가님 글 더 보러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