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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편에서 계속됩니다.)

세일즈팀 이야기.





세일즈 A 팀


A팀의 경우 현재 1명의 팀장3명의 주니어로 구성이 되어있다. 팀장의 경우 중국계 싱가포리안으로 여기에 온지 일 년 남짓 된 아저씨이다. 보면 몸이 너무 말라서 저러다 쓰러지는 것 아니야 라는 느낌이강하게 드는 분인데 열심히 건강식도 챙겨 드신다. 


나랑 같은 한자성을 쓰는 이 매니저 아저씨는 처음 만나서 자신을 소개할 때 자기가 전에 Apple에서도 일해봤고 작은 기업에서도 일해봤다고 말해서 오 그런가보다 했는데 우리는 점심시간이 지나자 그 말에 의구심이 들었고, 3주일이 지나자 그를 욕하기 시작했으며 일주일이 지나자 무시하기 시작했다. 직책은 한팀의 매니저인데 전체적으로 진행하는 흐름을 읽지도 못하고 일에 대해 책임감있게 처리할지도 몰랐다.


저번에 이야기했듯 세일즈팀은 중간관리자로써 생산관리자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프로덕션 라인의 사람들에게 이것 해달라고, 저것 해달라고 말을 해야 하는데 몇 번의 거절이 있었는지 도체 말을 하지 않고 눈치보다가 생산라인의 매니저 책상 위에 슬쩍 놓고 가지를 않나, 자신이 어떤 일을 해야 하는 것은 아는데 그것을 할줄 몰라서 한참 뒤늦게 들어온 사람들에게 부탁하질 않나 하는 모습들이 역력했다. 그렇다고 일을 열심히 안하는 것은 아니고, 일거리를 집에 들고가서 새벽에 메일을 보내기도 하고 하는걸 보면… 참 여러가지 생각이 든다고는 했지만 결국 보다 못한 동기형은 이 매니저와 함께 일하는 것을 거부할 정도.



사실 이 매니저급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동기형을 가르치는 사람이 괜찮았다면 이렇게 힘들어하진 않았을지도 모른다. 한국인 3명을 제외하고 우리보다 몇 달 먼저 들어온 말레이-말레이시안이 있긴 했는데 해야 하는 일은 너무 많아서 동기형을 방치했다. 따라서 아무도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어서 이사람 저사람 돌아다니며 이것 저것 일을 배웠는데(일을 배우고자 하는 열정은 정말 최고였다) 요놈이 자기가 해야되는 일들을 한 번을 가르쳐준적 없으면서 동기 형을 자신의 부사수로 여기는 듯이 부려먹기 시작했다.


처음엔 들어온지 얼마 안됐으면서 여러 커스터머를 맡아서 열심히 일하고 바쁘게 움직이는 요 말레이시안을 칭찬했었던 형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정말 자기가 필요한 일만 하고 자신의 일을 자꾸 짬처리 시키려고만 하지 어느 하나를 도와주려는 모습이 없는 것과 문제가 생겼을 때 자신이 잘못한 것이 아니라고 책임을 져야하는 순간에 책임을 지지 않는 모습 등을 보고 정이 완전히 떨어져서  결국 들어온지 1달만에 동기형을 잘 아껴주고 일도 잘하는 세일즈 B팀의 매니저와 보스에게 말해서 B팀의 일을 담당하게된다 (말을 정말 싸가지없게 하는 것은 덤이다. )


결국 동기형은 이 매니저와 말레이시안과 말도 안하고 일을 한다. . 책상은 같이 앉았는데 일은 따로 하는웃긴 상황. 뭐 끊임없이 돌아다니는 포지션이라 자리는 그렇게 크게 상관 없었지만 입사 초반 앞뒤로 앉아서 힘든점을 나누는 것은 힘든 타지 생활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덕분에 나는 세일즈팀도 아닌데 이렇게 자세하게 알 수 있었고.



세일즈 A팀의 다른 1명은 한국인인데 20몇년 살면서 몇 번 만나보지 못했던 착한 친구였다.였다. (착한건지바보같은건지 헷갈릴 때도 있지만) 우리가 들어오고 약 한 달 반 뒤에 들어왔었는데 세일즈 A팀에 소속되어 같이 일을 했다. 아까 이야기했던 매니저와 말레이시안의 보조 역할을 열심히 수행했는데 이미 언급했듯이 일을 도저히 못하는 매니저와 지가 하는 일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하고 귀찮은 일은 이 친구에게 떠맡기려고 하면서 동시에 자기가 한 일이 문제가 생기면 책임감은 없는 말레이시안 밑에서 일을 하려고 하니 그 착했던 아이가 버티기 참 힘들어했다.


중문과 출신으로 어학연수와 인턴으로 다져진 완벽한 중국어와 이미 싱가폴에서 세일즈로 1년반정도 일했던 어떻게 보면 나름 검증된 친구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스트레스 받는다고 하소연하는 것을 보면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B팀으로 옮긴 동기 형이 그걸 보고 안쓰러워서 옆에서 최대한 도와주기도 많이 했고 또 B팀의 일을 함께 하려고 노력했으나 이미 인원배분이 이렇게 이루어져 쉽지는 않았고 여전히 울면서일을 하고 있다. (한 달 뒤 그만둔다.. 또르르)



이런 힘든 상황가운데에도 웃음을 주는 사람도 있었는데 그만둔 중국계 싱가포리안 아저씨였다. 세상에 온갖 욕이란 욕은 다 우리에게 알려주었는데 마치 욕쟁이 할머니가 욕을 하면 그게 듣기 좋은 것 처럼 (나는 큰이모가 욕을 할 때 너무 듣기 좋다 ㅋㅋ) 재밌는 분이었다. 나이는 거의 60이 다된 분이었는데아내 말고 애인도 여러 명 있다고, 한국 제주도에도 애인이 있다고 자랑하며 우리에게 사진을 보여주기도 했다.


패션감각도 뛰어나서 항상 금목걸이를 목에 걸고 다녔고 옷도 센스있게 입었다. 나는 잘 본적이 없지만 창고에선 종종 노래부르며 춤도 췄다고 해서 스트레스 받는 이 곳에서 활력소라고 형이 자주 이야기했다. 욕도 알려주고 같이 춤도 추고 맨날 웃긴 얘기만 하는 (그런데 일은 더럽게 못하고 같이 일하는 친구에게 성희롱적인 발언도 자주 해서 스트레스 받았던건 함정)


마지막으로 엊그제 새로 들어온 95년생 인턴. 중문과 전공에 중국에서 1년 교환학생 후 인턴쉽으로 이곳에 왔는데 하필 타이밍이 동기 형이 그만둘 때 오게되서 세일즈팀으로 오게 되었다. (많고 많은 부서중 하필 세일즈라니 ㅠㅠ) 덕택에 형을 졸졸 따라다니며 열심히 배우고 있는데 이 멤버 가운데 살아남을수 있을지… 좀 걱정이 많이 되긴 하는데 업무상으론 내가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이 없으니 안타깝다 (세상은 원래 정글이야. 살아남으렴 !)



세일즈 B팀 책상



세일즈 B팀


세일즈 B팀은 말레이-싱가포리안 매니저 한 명, 차이니즈 - 말레이시안 한 명, 그리고 중국 베이징에서 온 중국인이 한 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 동기 형이 추가)


매니저 말레이 - 싱가포리안은 여기서 이미 일한지 10년이 넘었다고 했다. 초반에 한국인들이 많이 없을때 나와 동기형을 곧 잘 챙겨주었다. 오래 일을 하셔서 그런지 전체적으로 돌아가는 시스템에 대해서도잘 알고 있었고, 일도 잘하셨다. 저번에 언급한 유일한 가족이 아닌 다른 보스와 함께 거의 이 회사를 먹여살린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 그런데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매니저가 한 번은 우리가 점심시간에 밥을 일찍 먹고 휴게실에서 쉬고있을 때 들어와서 이야기를 하는데 그 내용이 좀 슬펐다.


‘전에 다른 회사를 다니다가 본인의 사업을 하기도 하다가 잘 안되서 다시 취업을 결정했다. 그런데 이제 나이는 많이 찼고, 자신은 부양해야하는 가족이 있었다. 그래서 어디도 받아주지 않아 이곳으로 왔다. 너희 둘도 여기서 시작은 했지만 빠르면 2년, 늦어도 3년 안에 다른 곳으로 갈텐데 그때도 지금과 같이 무엇이든지 배우려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채 일하면 좋겠다.’


말을 해줄 때 슬픈 표정이 몇 달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 것을 보면 꽤나 강하게 내 마음에 남았나보다. 




차이니즈-말레이시안나이가 거의 60에 가깝다. 문제는 일을 너무 못한다는 것과 냄새가 너무 심하게 난다는 것.


초반에 나에 대한 기대가 적을 때 지금 일을 하면서 회계팀 보조 업무를 진행했다. 그래봐야 오더 확인하고 인보이스 확인하고 업로드하는 수준의 단순한 일이었는데 가끔 이 말레이시안이 나에게 와서 이야기를 하는데 그 때마다 냄새가 너무 심하게 나서 힘들었다. 초반엔 내가 가운데 앉아있었는데 지나갈 때 마다 조금씩 냄새가 나고 나에게 말을 걸 때는 너무 심한 냄새가 나서 (남자들 운동 끝나고 자기 땀냄새 맡을 때 그 느낌) 티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게 꽤나 힘들었다.


일을 못하는 부분도 느낄 수 있었다. 가령 인보이스를 올려야하는데 아직 진행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나중에 '자신이 말해줄 때 까지 올리지 마' 해놓고,  무책임하게 방치. 초반에 한달 정도 까지는 언제 되냐고 내가 먼저 묻곤 했는데, 한 달 이후에는 나도 그냥 방치 진행이 어떻게 되었는지 취소되었는지 일언반구없이 끝나 결국 나중에 동기형한테 물어보고 알게되었다. 뿐만 아니라 일 한지 몇 년이 되었는데도 시스템을 진행하는데 필요한 과정들을 자꾸 까먹고 안해서 같이 일하는 매니저와 동기 형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 걸 보면 안타깝기도 하다.


마지막으로는 중국에서 온 친구 일찍 결혼해 벌써 아이가 10살이라고 자랑스럽게 얘기하는 이 친구는 나이는 나보다 몇 살 많은데 동생 같은 느낌이 든다. 영어를 숫자 읽기정도밖에 하지 못해서 늘 자신감이없는 것 처럼 보이지만 그래도 자신이 맡은 일을 참 성실히 한다. 재밌는 것은 함께 일하는 매니저는 말레이계열이고 이 친구는 중국인이라 서로 각자 나라말로 이야기하는데 서로 일 한지 몇 년 째라 의사소통이 된다. 대충 아 하면 어 하면서 알아듣는 상황.


처음에 나는 이 상황을 보고 너무 웃겨서 동영상을 찍으려고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러워 졌다. 


월급이 너무 작아서 항상 야근을 하고 토요일에도 풀타임으로 출근을 하는데 그렇게 매일매일을 치열하게 살아야 1000불 안팎, 우리 돈으로 80여만원을 받는다. 이 돈으로 살기엔 힘들지만 자신이 영어를 못해서 갈 곳이 없다고. 여기서 머물러야 한다고 말하는데 슬픈 표정. 그래도 아이를 보면서 웃는다고 아들은 영어 잘한다고 환하게 웃으며 이야기하는걸 보면 (다른 의미로)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구나 라는 생각.



이상 세일즈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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