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싱가포르로 가는 첫 해외여행을 이틀 남겨둔 저에게는 한 가지 고민이 있었습니다. 그건 바로 엄마 선물. 다른 가족들은 먹을거리(전부 남자)로 충분했지만, 엄마에게는 면세점 찬스를 드리고 싶었거든요. 혼자 끙끙 앓던 저는, 방학 때마다 페이스북을 해외여행 사진으로 도배하던 친구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심드렁한 표정으로 담배를 피우던 그놈은 생각에 잠깁니다. 3초 정도 지났을까..? 살짝 튀어나온 입에서 나온 단어는 샤넬 립스틱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명품을 선호합니다. 정확히는, 명품 브랜드의 로고를 좋아하죠. 이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명품을 외부에 나타내어, 내가 이런 사람이야 라는 것을 보여주려는 자아실현의 욕구 때문인데요.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이상적 자아의 결과로 봅니다. 비싼 가격의 브랜드를 통해 상류계층에 속해있음을 나타내려는 무의식이 반영된 것이죠. 때문에 명품 브랜드들이 현대사회를 새로운 계급사회로 만들려고 한다는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이처럼 럭셔리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브랜드들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존재합니다. 그중에서 오늘은 이니셜이 심볼이 된 패션 브랜드들에 대해 얘기하고자 합니다.
샤넬 Channel
유난히, 패션 브랜드들은 창립자의 이름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로고를 이름(이니셜)으로 표기하기도 하죠. 샤넬의 상징인 더블 C는 가브리엘 샤넬의 별명이었던 코코(Coco)에서 가져왔습니다. 사실 그녀는 코코 샤넬이라는 애칭을 매우 싫어했습니다. 변두리 술집에서 노래를 불러서 생계를 유지할 때, 지어진 별명이거든요.
C가 서로를 겹치는 문양은 샤넬이 어린 시절 지내던 수녀원 창문에 비친 달빛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합니다. 이후, 1955년 출시된 퀄팅 핸드백(2.55)의 잠금장치로 사용되면서, 샤넬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완벽주의자였던 그녀는 C자를 원형에 가깝게 바꾸었고, 각각의 C가 서로를 맞물리게 고안했습니다. 지금은 이것을 마드무아젤 락이라고 부릅니다. 사실 2.55 백이 처음 출시되었을 때는, 우리가 떠올리는 그 문양이 아니었습니다. 로고와 동일한 문양이 잠금장치로 사용된 것은 80년대부터였다고 하네요.
이브 생 로랑 Yves Saint Laurent
화려함보다는 독창적인 디자인이 특징인 이브 생 로랑. 틴트, 립스틱 등 코스메틱뿐만 아니라 패션에서도 유명하죠. 우리나라에서는 입생 로랑이라고 부르지만 정확하게는 이브 생 로랑이 맞습니다. 1963년 우크라이나 출신의 그래픽 디자이너 아돌프 무롱 카상드르가 고안했습니다. 60년대 만들어졌다고 믿어지지 않는 로고는, 당시에는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60년대 미술계(광고계 포함)에서는 섞이지 않은 2개 이상의 단어를 조합하면 안 된다는 원칙이 있었습니다. 즉, 단어를 저렇게 겹친다는 것 자체가 기존의 틀을 깨는 사례였던 거죠.
이브 생 로랑이 샤넬과 같은 급은 아닌데..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만, 오늘의 주제는 이니셜이 로고가 된 브랜드입니다. 그러한 점에 있어서 이브 생 로랑은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루이비통 LOUIS VUITTON
가방 장인 루이 비통 말레 티에(Louis Vuitton Malletier)가 1854년에 만든 루이비통은 샤넬, 구찌 등과 함께 가장 인기가 많은 브랜드입니다. 특히, 루이비통의 상징이 되는 패턴 모노그램 컨버스로 유명합니다. 사실, 패턴이 탄생한 것은 짝퉁과의 전쟁 때문이라고 해요. 여행이 부의 상징으로 치러지던 100년 전, 루이비통은 최초로 사각형 형태의 여행가방 그레이 트리아농 캔버스(Grey Trianon Canvas trunk)를 제작하면서 빠르게 입소문을 탑니다.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도 루이비통의 고객이었죠)
그러자, 여러 곳에서 루이비통을 베낀 모조품을 만듭니다. 그 사실에 대해 창업주의 아들이었던 조르주 뷔통은, 진짜임을 나타내기 위해 1896년에 다미에 캔버스라는 패턴을 만듭니다. 그럼에도 모조품은 더욱 넘쳐납니다. 결국 같은 해, 오늘날의 상징이 된 모노그램 컨버스를 만듭니다. 창립자인 아버지의 이름 LV와 함께 당시 유행하던 미술 양식인 '아르누보'에서 영향을 받아 꽃과 별을 넣게 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어지게 되죠.
이외에도, 이니셜을 사용한 브랜드는 굉장히 많습니다. 뮌헨을 뜻하는 M을 사용한 MCM, 그믐달 형태의 C를 사용한 까르띠에, 가문의 성인 F를 이니셜로 쓰는 펜디 등도 존재합니다. 이렇듯, 브랜드의 로고에는 각각의 정체성이 담겨있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브랜드라는 것은 알면 알수록 오묘한 세계임이 맞는 것 같습니다. 참, 싱가포르를 갔다온 이후, 1년 동안 어머니의 입술은 루즈코코색 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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