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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취업] 한국과 다른, 외국의 면접 후기 - 온라인 마케터 직무를 향한 좌충우돌 싱가포르 구직 일기



싱가포르에 무작정 짐을 싸서 온 지 3주가 조금 되지 않았다. 언제 만날지 모르는 외국인 남자 친구도 뒤로 하고,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과도 작별인사를 나누고, 회사도 때려치우고 정말 당돌하게 도착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열몇 번의 낮과 밤이 찾아오고 떠난 셈이다. 아, 남국이란. 시간의 흐름이 쏜살같다. 계절의 변화도, 기후의 변덕도 전혀 없기에 더더욱. 따스한 남쪽 나라에서는 시간이 빨리 지나간다.

 

우연히 한국인을 구하는 싱가포르 로컬 기업의 서류와 1차 면접을 통과했다. 2차 면접도 무사히 마쳤고, 금요일 아침에 연봉협상을 할 생각을 하고 오라고 연락이 왔다. 포지션은 사업개발 - 세일즈 서포트. 한국 마켓을 담당하고 로컬 기업들과의 커뮤니케이션도 중요한 직무이다. 그런데 바로 어젯밤 우연히 그들이 한국을 커버할 온라인 마케터를 구한다는 게 아닌가. 세상에. 

 

사실 나는 스타트업 및 벤처기업에서 마케팅을 담당했었고, 그 경력은 2년이 조금 안 된다. 주니어로 손색이 없는 경력이고, 영어와 한국어가 가능하면서 어느 정도-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선에서- 마케팅 경험도 있는 사람은 나라는 생각이 끊이질 않았다. 당장 그다음 날 아침에, 약속된 포지션이었던 '사업개발'이라는 롤에 관련하여 계약서에 사인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분명히 사장과 보스가 이제 와서 직무를 바꾸겠다고 당돌하게 제안하면 매우 언짢아할 것이 불 보듯 훤했다. 그러나 말이라도 해보지 않으면 , 지레 겁먹고 포기해버리면 내내 미련을 떨칠 수 없을 것 같았다. 내 마음이 그랬다. 나는 마케팅 일을 너무 하고 싶었다. 거의 목을 매는 상황이라고 해도 다름이 없을 정도로. 만약 마케팅 일을 시켜주지 않는다면 내 나름의 괘씸죄 판결을 내리고, '채용 거부'라는 형을 선고하리라는 마음까지 먹었다.

 

그래,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준다고, 말이라도 해보자.


결국 그날 밤, 나는 내가 원하는 직무에 대한 간절함을 이기지 못했다. 집에 돌아와 면접을 준비하기 전 5시간 동안 싱가포르를 걸어 다닌 나머지 너무 피곤해서 발목까지 붓고 꼴이 말이 아니었지만. 그래. 내가 졌다. 내가 하고 싶은 건 해야 하는 성격이니까. 나는 노트북을 켰다. 마케팅 직무로 바꿔달라는 읍소 (커버레터)와 논리 정연한 징징댐 (레쥬메)를 작성하느라 5시간 밖에 잠을 못 잤다. 결국 나는 한 지원자가 두 장의 커버레터와 두 장의 레쥬메를 가지고 두 개의 포지션에 지원하는 기현상을 굳이 만들어냈다.

 

     새 아침이 밝았다. 일어나자마자 불안함과 걱정, 불길한 예감에 두통까지 오려고 했다. 물 한잔 마실 시간도 없이 바로 출발을 했다. 트렌디하지만 격식 있어 보이는 원피스를 갖춰 입고, 힐을 신고, 지저분한 머리를 하나로 싹 넘겨서 묶고, 옅게나마 화장을 하고. 그런데 집을 나서자마자 비가 와장창 쏟아졌다. 천둥에, 번개에, 쏟아지듯 내리꽂는 빗방울에, 도로는 엉망이 되었고 떨리고 설렜던 내 마음도 침잠하기 시작했다.

 도저히 걸어갈 수 없는 날씨였다. 이력서와 커버레터가 젖을까 봐 너무 걱정이 되었다. 심지어 내 원피스와 신발은 거센 빗물에 젖어서 제대로 거지꼴이었다. 더운 날씨에 화장도 무너지기 시작했고, 공들인 머리도 점차 부스스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당황한 나는 택시를 탈 수밖에 없었다. 하, 이곳의 날씨란.

 

울며 겨자먹기로 큰돈을 택시비로 지출하고 나는 바로 회사로 올라갔다. 디렉터는 누구일까, 궁금한 마음에 조마조마하기도 했고 그냥 집에 갈까, 하는 무책임한 마음이 걱정이라는 먹구름을 타고 뭉게뭉게 솟기도 했다. 떨림, 설렘, 긴장, 불안, 아주 옅은 자기 확신과 희망.

 

1시간 같던 1분이 지나고 40대 정도로 돼 보이는 대머리 남성분과 내 사수가 될 싱가 포리언 애덤이 들어왔다. 예전에 봤던 분 같은데, 누구지?라고 기억을 되짚어보던 찰나였다. 애덤이 말했다.

'우리 디렉터 000이야. 인사해.'

나는 크고 두툼한 그의 손을 잡고 악수를 나눴다. 악력보다 더 인상 깊었던 것은 그의 눈빛이었다. 작지만 굳센 심지를 갖춘 빛나는 눈이었다. 그런 눈을 본 게 언제였더라. 그는 아주 잠시 나를 쳐다봤지만, 100번은 넘게 나를 스캔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윽고 면접이 시작되었다. 드디어.

사장님의 어마어마한 질문 폭탄. 역시 압박면접은 늘 대처하기 힘들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싱가포르에서도 면접은 장난이 아니다. 

 

Q - 싱가포르에 왜 왔니?
A - 내 싱가 포리언 친구가 하지레인에(싱가포르로 치면 홍대, 상수동, 연남동 같은 느낌의 아기자기한 거리이다.) 논알코올 바를 오픈했거든, 그래서 도와주려고 왔어. 사실 직장을 구해서 여기서 눌러앉고 싶은 생각에 온 것도 있지. 겸사겸사랄까. 

Q - 싱가포르 좋니? 언제 도착했어?
A - 응, 좋아. 깨끗하고, 사람들도 착하고, 재미있어. 2,3주 전.

Q - 근데....... 너 왜 직무를 바꿨어? 보니까 너 마케팅 쪽을 더 하고 싶어 하는 것 같네, 맞아?
A - 응. 솔직히 말하면, 여기서 일하는 거 자체가 내겐 큰 기쁨이 되겠지만. 내 개인적인 경험과 프로페셔널한 경험에 비춰봤을 땐 나는 사업 개발- 세일즈 서포트 쪽보다는 온라인 마케팅에서 더 강점을 발휘할 사람이야. 2년 가까이 되는 경력도 있고. 여기! 내 레쥬메 봐봐.

Q - 그래? 흠...... 근데 있잖아, 너 경력은 인턴이나 이런 걸 빼면 겨우 1년 이야.
A -...??? 

Q - 근데 보니까 이직을 되게 많이 했네, 어린데 말이야. 1년 넘게 다닌 직장이 없잖아. 맞지?
A - 아 그건 말이야~
 (합리적이고 납득 가능한 이유를 댔다. 회사 내부의 사정, 스타트업 운영 시의 내부 이슈 등을 상세히 설명했다.)

Q - 아 , 그래. 이해가 된다. 그럼 이 질문. 내가 널 뽑았는데 네가 다른 곳으로 확 떠나버리면 어떡하지? 날 설득시켜봐. 네가 또 다른 곳으로 이직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줘봐.
A -  (약간 당황함) 응~ 상당히 이유 있는 질문이네. 이해해. 궁금하겠지. 첫 번째는, 레쥬메를 보면 알겠지만 정말 나 또한 한 곳에 정착해서 경력을 개발해야 할 때야. 난 더 이상 내 레쥬메를 더럽게 만들고 싶지 않고, 좋은 곳이라고 판단이 들면 떠나지 않을 거야. 그게 내 현실적인 이유. 두 번째,
 너희가 날 비자 서포트를 해줄 텐데 내가 어떻게 쉽게 떠날 수 있겠어? 정말 솔직히 말해주자면 비자 이슈도 있고 해서 난 한번 입사하면 웬만하면 다른 곳으로 빨리 이직하지 않을 계획이야.

Q - 그래? 그럼 내가 또 궁금한 게 있는데. 우리 회사에 대해 알고 있는 게 있어?
A - 응 , 너희 회사는 이러이러한 에너지, 해양, 엔진 회사야. 맞지?

Q - 음, 그래. 뭐 그 비슷한 거지.  근데 있잖아, 우리 회사는 B2B 마케팅 전문가를 뽑아. 보니까 넌 B2C 위주로 했던 것 같은데 그런 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적응 가능해? 다르잖아, 분야가.
A - (한층 당황) 내가 저번에 있었던 회사도 B2B 70% , B2C 30% 정도였어. 그래. 너희가 취급하는 서비스와 프로덕트는 상당히 고관여제품이잖아. 비싸고. 그래서 내가 가진 B2C 마케팅, 온라인 마케팅 관련 백그라운드 지식과 경력이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어. 하지만 B2C 마케팅, 브랜딩 및 포지셔닝 등을 미리 잘 해두면 나중에 세일즈 팀 및 전체적인 이익 향상에 큰 도움이 될 거라고 난 굳게 믿어 의심치 않아. 

Q - 그래서, 넌 우리 회사의 제품과 서비스에 온라인 마케팅 , SNS가 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는 거야 지금?
A -  응. 물론 가시적인 성과는 처음에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나는 실제로 효과를 봤고, 저번 회사에서 증명했어.

Q - 네가 추진할 마케팅 성과에 대해 측정은 어떻게 할 건데?
A - 구글 애널리틱스가 있잖아. (설명함.)

Q - 그렇구나. 마지막 질문은.... 너 그냥 여기 있기 위한 WORKING PASS, VISA를 위해서 우리 회사에 그냥 지원한 거 아니니? 조금 일하다가, 갑자기  싱가포르가 싫어졌어~ 모든 게 다 비싸~ 집에 갈래~ 하고 가버리면 우린 어쩌니?
A - (제일 당황함ㅋㅋㅋㅋㅋ)  그렇구나. 그렇게 생각하는 거 충분히 이해해. 근데 난 지금까지 싱가포르에 너무 만족하고 지내고 있어. 나는 이 곳이 좋아. 한국에 돌아갈 생각은 없어. 잘 맞아, 싱가포르랑 나는.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지원 전에 나는 너희 회사에 대해 잘 몰랐어. 그런데 구글링 해보고 인터넷에서 찾아보다 보니 너희 회사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에 매력을 느꼈어. 그리고 일단  처음에 면접 봤을 때 만났던 여기 사람들도 너무 좋았고, 내가 알지 못하는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고 배우고 개척해나간다는 게 굉장히 큰 동기가 되어 지원하게 된 거야. 비자를 위해서 지원한 건 아니고.

Q - (알겠다는 눈치) 그래, 그래 알겠어. 네가 생각했을 때, 좋은 마케터의 자질은 뭐라고 생각해?
A - (싱글리시라 이해하지 못함) 미안, 뭐라고?

Q - 좋은 마케터, 좋은 마케팅의 정의가 뭐냐고. 
A - 아!  나는 좋은 마케팅이랑 세일즈 팀을 편하게 해주는 거라고 생각해. 영업 활동을 할 때 조금이라도 편하게 만들어 놓는 것. 미리 초석을 다진다는 개념이야. 마케팅이 잘 먹히고 있다면, 이미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인터랙트 하고 있다면, 현재 클라이언트와 미래의 클라이언트가 어떤 브랜드에 대해 인지를 하고 있다면 세일즈 팀은 더욱 쉽게 영업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겠지. 나는 좋은 마케팅은 그런 거라고 생각해.  또한 좋은 마케터로서의 자질은, (Goal Driven,), 열정적이고, 목표가 뚜렷하고 결과를 통해 다시 새로운 전략을 짜내는 것을 잘 하며, 사람들 대하는 것에 어려움이 없는 그런 것들이라고 생각하고.

Q- 아하.... 그렇구나. 난 이제 질문 없다. 우리, 다시 한번 리뷰해보고 연락 줄게. 연봉협상 이런 건 나중에.
A - (??) 끝난 줄 알았는데, 알겠어.... 다음 주에 보자.

 

결국 이렇게 허무하면서도 사람 진을 다 빼는 30분간의 영어 면접은 끝이 났다. 내 레쥬메 2부와 커버레터 2부를 챙겨가며 다음에 연락 주겠다고, 다음 주에 보자고 마무리를 짓고 사장님은 유유히 돌아갔다. 

 

내가 만약 오늘 가만히 연봉 협상에 사인이나 하고, 수습 기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얌전히 세일즈 및 사업개발 파트의  신입으로 들어갔다면 어땠을까? 난 아마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내가 원하는 직무를 두드려라도 보고 싶었다. 내게 급여를 주는 사람에게 좋지 않은 인상을 준다 할지라도. 그들이 내게 일자리를 제안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나는 내가 원하는 일을, 사랑하는 직무를, 열정이 충만한 상태에서 해낼 수 있다는 자기 PR이라도 한번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후회는 없다. 사업개발과 세일즈도 물론 흥미로운 부분이다. 사업을 할 때 가장 중요한 파트기도 하고. 그러나 나는 마음을 굳혔다.

 

마케팅 일을 하지 못 할 거라면 안정적이라 할지라도 그 회사를 가지 않기로. 그들이 만들어 놓은, 잘 닦아놓은 그들의 법을 따르지 않고 거절하기로. 어렵고 어렵게, 인생의 많은 가치를 내려놓고 눈물로 떠나온 싱가포르이니까. 여기서만큼은 내가 원하는 일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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