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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도 몰랐다. 싱가포르에서 일을 하게 될 줄은. 여기 이 순간, 내가 이 곳에, 이런 일을 하면서 이런 사람들과 부대끼고. 미래를 논하고 더 나은 내일을 꿈꾸며 잠들리라는 걸. 

 

 내 또래 다른 이들보다는 빠르게 미래를 준비했다고 생각했었다. 교환학생도 남들이 가지 않는 곳을 일부러 택해서 다녀왔다. 외국인들이 몰려드는 모임에 있으면 굳이 갔고, 카우치 서핑을 하면서 여행객들과 놀아(?)주며 대화를 끊임 없이 했다. 토익이나 토익스피킹은 학원 한달, 두달 다니고 나름대로 원하는 점수를 얻었다. 영어로 하는 대학 수업이 예전에는 재미없고 싫었지만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한번 다녀온 뒤로는 미친 듯이 교수님과 친목질(?)을 하며 최고점을 받아내기 시작했다. '해외에서 근무했었다', '해외에서 일한다'는 사람은 어떻게든 찾아내서 연락을 했다. 댓글을 달고, 쪽지를 보내고, 이메일을 보내고, 그 분들이 귀찮아하실지 몰라 전화는 안 했다. 그것 빼고는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은 다했다. 구질구질하게 팁을 주세요 라는 것보다, 그 사람이 들었을 때 흥미로워할 질문, 핵심만 명료하게 잡아내는 질문, 질문 받는 사람이나 질문 하는 사람이나 피차 시간 낭비하지 않을 - 최소한의 예의가 깃든 절박한 질문만 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취업 시장의 동향을 알아보고 웹진을 구독했고, 월드잡에서 멘토도 신청했고 해외취업프로그램도 합격하여 강의도 듣고 모의 면접도 봤다. 인종과 국적을 보고 사귄 것은 아니지만 남자친구도 미국인이니, 남자친구의 도움을 받아 이력서도 몇 번이고 수정하고 자기소개서도 미친 듯이 다듬었다. (지금까지 이력서는 거짓말 안 보태고 100번 가까이 수정했던 것 같다. ) 

 

 그런데도 내게는 너무나 큰 아쉬움이 남는다. 지워지지 않을 아쉬움. 

 

내가 대학생이었을 때, 해외취업이 목표였을 때 알았다면 좋았을 것들. 그 때는 죽도록 연애하고 쓸모 없는 아르바이트 하고 치킨 먹고 막걸리 마시느라 제대로 준비를 못 했다. 딱 그 때, 꼭 그 시절에만 할 수 있는 일들. 내가 사랑하는 대학 후배나 동생에게 개인적으로 추천하고 싶은 것들은 이러하다. 

 

1.     학교 프로그램을 제발 이용하자. 규모가 큰 학교일수록 다른 나라의 대학과 자매결연 등지가 잘 되어있다. 생각보다 경쟁률이 낮으니, 허수인 경쟁률에 주눅들지 말고 면접 전형이나 서류 전형을 잘 통과해서 새로운 세상으로 나가자. 학교 프로그램이 좋은 이유는, 일단 돈이 덜 들며, 그래도 학교가 제공해주는 나름대로의 안전 프로그램이 있는 경우가 많고, 경우에 따라 학점 인정도 가능하다는 최고의 조건을 갖췄기 때문이다. 일반 에이전시나 어학연수 전문 단체 등을 이용하면 돈은 돈대로 나가고 불리한 조건에 타지에서 경험을 쌓을 수 밖에 없다. 학교의 울타리 안에 있다는 것은 내게는 불행이자 행운이었는데, 지금 졸업한 뒤 떠올려보면 학생 신분일 때가 사실 편했다. ‘너희 때가 제일 좋은 거야~’ 라는 식의 꼰대처럼 말하는 것은 아니고. 무조건 학생 신분인 게 좋다기보다는, 편리하다는 것이다. 

 

2.     지금도 재학 중인 친한 동생들은 뒤늦게 하고 싶은 일들이 생겼으나 과하게 낮은 학점 때문에 학교 프로그램을 번번히 떨어졌다. 그렇다면 내가 추천하고 싶은 것은 무조건 여행이다. 그것도 긴 여행. 짧아도 괜찮다면 홀로 가는 여행. 여행을 많이 다녀보고, 최대한 어릴 때, 마음과 몸과 정신이 말랑말랑할 때 온갖 곳을 밟아보고 누비다 보면 흐릿하게나마 뭔가 켜켜이 쌓인다. 또한 추후 타국에서 취업을 하고자 할 때, 정말 큰 도움이 된다! 만약 태어나서 단 한번도 가보지 못한 나라에서 취업 제의가 들어온 상황과, 여행으로 몇 주 정도 지내면서 그 나라의 음식과 언어와 문화와 생활상에 익숙해졌던 곳에서 취업 제의를 받은 상황을 비교해본다면? 한 번 발 도장을 찍었던 곳에 마음은 절로 기울게 마련이다. 해외 취업을 생각하면 사실 ‘어느 나라에서 커리어를 이어가느냐’ 도 굉장히 중요하다. 따라서 미리 공부해본다, 예습해본다는 심정으로 가난한 여행자 신분으로라도 여러 나라를 다니자. 난 대학교 졸업 전에 17개 나라를 (거지처럼) 배낭 여행했었는데, 현재 내가 일하고 있는 싱가포르는 재미있게도 딱 1박 2일만 여행했었던 곳이었다. 단 40시간의 기억이 내게는 좋게 남아서, 싱가포르로 와서 취업을 하겠다는 결심을 세우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3.     뭐라도 좋다. 인턴이어도 괜찮으니 취업을 해보자. 학생들이 생각하는 회사 생활과 이미 한번 직장 문화, 조직 생활을 겪어본 사람들이 예상하는 회사생활은 다르다. 모든 나라가 다 그렇겠지만 회사는 ‘일만’ 잘한다고 되는 곳이 아니다. 한국보다는 덜하지만 사실 인간 관계도 두루두루 좋아야 스트레스를 덜 받고, ‘일 머리’가 있어야 본인이 스스로 업무를 할 때 속도도 나고 효율성도 높아진다. 솔직히 말해볼까? 우리는 어딜 가도…… ‘한국어가 모국어가 아닌 나라’에서 일을 해야 하는 외국인 노동자 신세이다. 그런데 이 때 일 머리도 없고 언어도 모국어가 아니니까 어눌하고 인간관계에서도 트러블이 잦다면? 본인도 우울하고 골치 아프지만 회사도 골치 아파진다. 당신 때문에. 싱가포르는 의외로 인턴 경력도 진지하게 받아들여주는 경향이 짙으니, 정 안되면 인턴 경험이라도 해보고 외국 취업을 생각해보자. 그래야 면접 때 본인의 경험과 직전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며 본인의 강점과 잠재력을 어필할 수 있다. 회사를 다니면서 더 수월하게 적응할 수 있음도 당연하고. 

 

4.     좋은 네트워크를 쌓기. 예전에도 말했던 이슈지만, 억지로 내가 필요해서 사람을 이용하기 위한 네트워크는 쌓지 말자. 단, 진정성을 가지고 배우려는 자세로, 이 사람에게 필요한 어떤 것이라도 내가 어쩌면 제공해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예의를 가지고 인맥을 조심스레 만들어보면 좋다. 내 경우는 동문회, 과 선배, 친구의 친구, 친구의 언니 등 가까운 사람들 위주로 컨택을 했다. 항상 조심하는 것은, 내가 그들을 이용하기 위해 접근한다는 인상을 절대 주지 않는 것. 나는 절대 감사 인사를 잊지 않았고, 대화의 끄트머리에 혹시라도 내가 줄 수 있는 도움이 있는지 물었다. 그렇게 해서 알게 된 사람들과는 지금도 간간이 연락한다. 여러 팁과 현실적인 문제들, 해외 생활의 장단점을 알려주며 내게 시간을 쏟은 고마운 사람들에게 밥이나 커피를 사는 것도 잊지 않았다. (대부분 나보다 연장자여서 나의 호의를 고마워하지만 동시에 부담스러워하시는 분들도 있었다.) '인맥'할 때의 ‘맥’은 살아 숨쉬어 흐르는 것이다. 원하는 정보를 얻고 땡, 끝내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예의와 존중을 갖춰 인연이 살아 숨쉴 수 있도록 길을 트면 완벽할 것이다. 심지어 대학생인데! 학생이 그렇게 어여쁘게 행동하면 사실 누가 싫을까 싶다.

 

5.     언어는 당신을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 이건 싱가포르 생활을 하루하루 하면서 뼈저리게 느끼는 교훈이다. 고등학생 때 일본어 시험에서 100점을 맞아서 전교 1등(그 과목만)을 한 적 있었다. 재미있고 더 배워보고 싶었던 것도 잠시, 수능 준비에 바빠 언어를 배우는 기쁨을 멀리하게 되었고 이내 흥미도 사그라들었다. 그러나 싱가포르에서 언어 한 가지를 더 한다는 것은 엄청난 무기이고, 싱가포르 사람들은 중국어와 영어 모두 구사 가능한 이중언어사용자라는 것을 알게 되자 걷잡을 수 없이 후회하게 되었다. 특히 싱가포르에서는 일본어와 영어, 한국어를 하게 되면 좋은 기회가 끝도 없이 펼쳐진다. 영어와 일본어를 잘하는 일본인이 없기 때문이다. 구인 공고에도 ‘00언어 구사 가능자’를 구한다고 콕 집어서 올리는 경우가 상당하다. 만약 내가 태국어가 가능하다면, 태국인들과 경쟁하면서 동시에 한국어도 구사 가능하다는 장점을 뽐낼 수 있게 된다. 같은 스킬과 같은 경력, 나이라면 당연히 더 많은 언어를 할 줄 아는 사람에게 눈길이 가게 된다. 쓰지도 않을 토익 스피킹과 토익 공부를 한 시간에, 일본어 공부를 할걸………. 하는 정말 안타까운 심정은 가시지를 않는다. 대학생 때는 타 언어 강의를 수강하거나 청강할 수 있으니, 시험 공부한다고 생각하며 진절머리 내지 말고 오히려 해외 취업이라는 치열한 전쟁터에서 장차 대량학살 무기가 될 것이라 여기자. 그리고 여러 언어를 할수록 당신이 고를 수 있는 나라의 폭도 그만큼 넓어진다. 러시아어를 할 수 있다면 비단 러시아만 취업의 기회가 생기는 것이 아니고, 중앙아시아와 동유럽 쪽도 노려볼 수 있는 셈이다. 

 

6.     돈 모아두기. 큰 돈을 모으라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작은 돈 여러 번 모아서 해외로 배낭 여행을 가길 바라는 쪽이다. 하지만 추후 해외 취업에 들 돈(에이전시 이용, 처음 몇 달의 정착비용, 비자 및 비행기 티켓 값, 비상금 등)을 고려하여 운명의 그날이 오기 전까지 조금씩 쌈짓돈을 모아두는 것이 적절하다. 나는 돈 몇 백 만원이 없어서 해외로 취업하기까지 먼 길을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그 놈의 돈이 뭐라고, 하며 많은 사람들이 혀를 차지만 그 놈의 돈이 없으면 세상 만사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조심스러운 말이지만, 최소한 300-500만원 정도가 있으면 어느 나라든지 가서 첫 스타트를 끊을 수는 있을 듯 하다. 런던, 파리, 캘리포니아, 뉴욕, 싱가포르, 홍콩 등등. 미국 인턴십도 그 정도 돈을 요구하기도 하고. 나는 싱가포르에 와서 태국, 미국, 멕시코 여행을 제외하고 두 달 동안 대략 200만원 정도를 썼다. 물론 구직하는 사이에 태국, 미국, 멕시코 여행을 다녀오자……. 나의 통장은 벼락을 맞았다. 아무것도 남지 않고 재만 남았다는 말이다. 

 

 지나간 일을 붙잡고 후회하는 성격은 아니다. 하지만 간혹 내가 5살만 더 어렸어도, 이러 저러한 걸 준비하면 취업할 때 더 편했을텐데, 하며 조금 낙심하는 요소들이 있다. 그래서 오늘은 내가 가진 무색무취의 후회 몇 가지들을 넋두리처럼 적었다. 가진 게 없고 배운 것도 없으니 뭣도 모르고 최선을 다했던 나날들. 지푸라기도 잡고 싶어 온갖 나뭇잎들은 다 잡아 끌어봤던, 길을 잃어 울고 불고 했던 스물 몇 살의 어린 내가 생각이 나서. 

 

 해외에서 일하고자 하는 꿈을 가진 물고기들이 있다면 꼭 이 글을 읽었으면 한다. 몇 번 꼼지락거리며 헤엄치다 보면, 곧 당장 바다로 나가야 할 시기가 닥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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