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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0 am : 8시 55분 쯤 되면 한국인 직원들은 거의 모두 출근 완료! 가끔 늦잠을 자서 1분 , 2분 늦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근면성실하기 때문에 일찍 와서 노트북도 켜고, 커피나 마일로(초콜릿 음료 - 핫초코라고 생각하면 된다.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에서 아주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대중적인 초코 음료)를 마신다. 

그러나 싱가포르 직원들은 매우 자유롭다. 아, 늦게 (!) 온다는 말이다. 30분씩 느지막히 와버리거나 하진 않지만 - 5분, 10분 지각은 별 일 아니다. 젊은 여직원들이 대다수인 회사지만 화장하고 온 사람은 모두 한국인이고 싱가포르인들은, 단 한 명을 제외하고 다 민낯에 편하게 출근한다. 유럽 출신 직원, 중국인 직원은 늘 일찍 오는 데, 특히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바로 출근을 하는 유러피안의 경우 늘 아침 7:30분이면 와 있는다. 단 한번도 내가 먼저 도착해본 적이 없다. 굳이 한 명 한 명 높은 직급 자리에 일부러 찾아가서 인사성 밝은 척 하면서 인사하지 않는다.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니 밝고 맑게 인사를 하는 사람을 좋아하긴 하지만, 그것이 관습이나 관례처럼 통하는 곳은 아니다.

 

10:00 am : 거의 집중 근무 시간. 배고픈 사람들이나 뭔가 정리할 게 있을 때만 자리를 뜨고, 모두 앉아서 업무를 처리하는데 여념이 없다. 쓸데없는 회의나 뜬금없는 커피 타임 같은 것은 없다. 밖에 나가서 뭔가 군것질을 하거나 사 마시고 싶다면 개인적으로 혼자 다녀오는 경우가 많다. 워낙 개인주의이기도 하고, 일할 때 한눈 파는 스타일이 거의 없다. 타닥타닥 타자 치는 소리와 가끔 들리는 중국어/영어/한국어/기타 등등 제 3국의 언어가 사무실 공기를 잠시 소란하게 만들고 이내 사라진다. 전화벨이 울리면 가장 어린 인턴 사원이 받는다. 대부분 영업을 제안하는 마케팅 솔루션 회사 - 회사 제품을 소개하고자 하는 서플라이어 - 구매 팀 및 수출입 팀을 찾는 급한 전화 등등이 대다수이다. 걸려온 영업 전화를 거절하는 것도 이토록 힘들 줄이야!

 

11am : 잠시 창밖을 쳐다볼 여유도 없이 어느새 11시. 열한시 반을 넘어가면 슬슬 점심을 먹으러 빠지는 팀들이 생기기 시작한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재무/회계, 마케팅, 세일즈, 구매, 물류 등등 파트별 인원들은 서로 상의한 뒤 점심을 어디서 먹을지, 언제쯤 먹으러 내려갈지를 상의한다. 물론 개인적인 용무가 있거나 점심을 그 시간에 먹기 싫다거나, 다른 이유가 있다면 언제든 빠질 수 있다. 다른 팀의 사람과 개인적으로 점심 식사를 함께 할 수도 있고, 정말 다 싫다면 그냥 혼자 먹어도 된다. 언제부터 언제까지라고 점심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자유롭다.

 

12pm :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맘때쯤 되면 점심식사를 해결하러 나간다. 저렴한 가격과 불쾌한 더위를 자랑하지만 동시에 맛도 괜찮은 곳이 상당한 호커센터부터, 푸드코트, 쇼핑몰 내의 가게들, 일반 카페나 음식점 등등 다양한 선택지가 기다리고 있어 항상 점심시간이 되면 고민하기 일쑤다. 또한 마음만 먹으면 시원하게 갈아내린 과일쥬스나 음료 등도 몇 분만에 손에 쥘 수 있다. 회사에는 이슬람교를 믿거나 힌두교를 믿는 사람이 현재는 없지만, 언제든지 열린 마음으로 선택의 다양성을 받아주는 편이다. 워낙 다양성이 존중되는 사회이기 때문에 누군가가 베지터리언이라거나,  돼지고기 / 소고기 등을 먹지 못한다거나 해도 토를 달며 면박을 주는 일 따위는 없다. 오히려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점심 식사 방안을 위해 머리를 맞대는 편. 채식주의자도, 무슬림도, 힌두교 신자도, 불교 신자도 모두가 같이 맛있는 한끼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선택지는 그래서 주로 샐러드로 귀결된다.

 

2pm : 점심시간이 두시간인 회사도 있고, 한시간 반인 회사도 있지만 상당수의 회사가 그래도 두 시가 되면 다시 업무의 집중도를 높이는 구조이다. 가장 잠이 올 시간대. 하지만 졸리다고 낮잠을 몰래 자버리거나 인터넷 쇼핑몰 등을 뒤지고, 몰래 다른 일을 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이는 효율성을 중시하고 야근을 원치 않는 싱가포리언들의 특성 상 시간 낭비라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물론 보스가 보거나, 다른 동료가 딴짓을 하는 경우를 목격하거나 하여 나중에 있을 퍼포먼스 리뷰 때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애초에 업무에 집중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애초에 업무에 몰입하여 끝내고 시간 관리를 제대로 할 줄 아는 사람들이 싱가포리언이다. 눈치를 보아가며 화장을 고치거나 몰래 담배를 피우러 간 척 하면서 휴식하는 사람들은 아직 한번도 보지 못했다.

 

4pm : 다시 집중 업무 시간. 외근을 하고 돌아오는 사람도 있고, 반차를 쓰고 개인적인 업무를 처리하고 돌아오는 동료도 있다. 미친듯이 전화 통화로 업체에게 컴플레인을 하거나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도 있고, 진지하게 컴퓨터를 들여보는 사람 등 각양각색 사무실의 풍경을 완성시킨다. 바깥이라면 더울 때이지만, 실내 생활을 하는 특성상 너무 강한 냉방 탓에 긴 가디건 / 담요  등을 준비하지 않은 사람들은 추위에 손과 발이 시리다고 아우성을 친다. 

 

6pm : 카드 목걸이 등을 목에 무심하게 건 채, 삼삼오오 영어/중국어/프랑스어/독일어/말레이-인도네시아어/일본어 등으로 소통하며 개미떼처럼 퇴근하는 인파는 인상적이다. 누가 봐도 반듯해보이는 원피스나 정장 차림의 비즈니스 맨과 비즈니스 우먼들이 줄지어 있다. 싱가포르는 사시사철 더운 나라기 때문에 어깨가 다 드러나는 민소매 블라우스나 심지어 가슴골까지 노출하는 상의 등을 입어도 회사 내에서 눈치를 준다거나 하는 일은 많지 않다. 비즈니스 복식을 중시하는 회사의 경우 한국처럼 보수적이라고 들었으나, 워낙 덥고 또 기업 문화도 가지각색인만큼 옷도 자유롭고 개성있게 입는 케이스가 종종 보인다. 모두 기쁜 마음으로 퇴근을 한다. 운동을 따로 하거나, 다른 언어를 배운다거나 새로운 취미에 뛰어든다거나 하는 등 퇴근 후의 삶에도 열과 성을 다하는 싱가포리언들 및 익스팻들. 현지 직원들과 삼삼오오 수다를 떨며 같은 방향으로 퇴근하기도 하고, 마음 맞는 동료들과의 맥주 한잔을 즐기기 위해 해피아워인 펍을 찾느라 여념이 없기도 하다. 혹은 동료의 집에 놀러가서 요리해먹는 재미도 찾을 경우도 있고! 퇴근 후의 삶은 자유롭기 때문에, 눈치보지않고 본인의 2막을 설정하기에 제격이다.

 

비슷한 듯 다르고, 다른 듯 비슷한 싱가포르에서의 근무 일과. 

싱가포르에서 사무직으로 (?) 취업하기 전- 이 곳을 새로운 터전으로 삼은 타인의 일상이 매우 궁금했었다. 인터넷 상에는 순 광고들만이 넘쳐났고. 후기는 궁금해 죽겠고. 해외취업에 성공해서 잘 지내는 사람들의 후기는 귀하고. 그래서 얼마 되지 않는 정보를 찾기 위해 미친 듯이 검색하기 일쑤였고, 그러다 까무룩 잠들기도 했었다. 나에겐 이젠 너무나 당연한 풍경이 되었지만. 그래서 인생은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그토록 원하던 것을 손에 쥐자 이젠 다른 것을 갖고 싶어 안달이 난 꼴이라니. 원래 다 그런 것이겠지. 꽃길만 걷고 싶어 비행기에 몸을 싣고 산넘고 물을 건너 도착한 곳에서 불꽃길을 걷고 있는 중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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