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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래전부터 TV를 보지 않는다. 게임을 하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드라마를 보면 끝까지 봐야 하고 게임을 하면 최종 보스를 깨고 엔딩을 봐야 한다. 엔딩 없는 게임이라면 만렙을 찍어야만 한다. 또 다른 이유는 불안감 때문이고 언젠가는 마음 편히 즐길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일 것이다.

그랬던 내가 예외적으로 간혹 챙겨보는 프로그램이 있다. 물론 다시 보기를 이용하지만 M.net <쇼미 더 머니>이다. 나는 힙합 마니아도 아니고 즐겨 듣는 장르도 아니다. 프로그램에는 수많은 지원자들이 나온다. 그 떨림과 설렘 그리고 욕망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대기업, 공기업 등 급여생활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입사의 최종관문인 면접을 봐야 한다. 네임밸류, 연봉, 복지, 비전 등이 높거나 좋으면 경쟁률도 올라갈뿐더러 면접 과정도 치열해진다. 이건 취업 불변의 법칙이다.

지난 10년간 4번의 이직을 하며 남들에 비해 면접을 보는 횟수가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금융권, 공기업, 대기업, 대학교 등 최종 입사를 위해 면접 때 진검승부를 해야 했다. 토론면접, PT면접, 압박면접 등 기량과 가치를 반드시 증명해야 했다. 면접관으로 하여금 '왜 다른 지원자가 아닌 당신을 뽑아야 하는지'에 대하여 반드시 답을 건네야 했다.

가까운 관점으로 보면 면접은 잔인하다. 떨어지면 거기서 끝이다. 거절에서 오는 그 충격은 개인차가 있지만(갈 곳이 정해져 있는 경우는 다르지만) 상실감과 허탈함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상담을 진행했던 한 취준생은 최종면접 탈락의 고통은 호감 있는 이성에게 데이트 신청을 거절당한 것보다 수십 배는 괴롭다는 표현을 했다. <쇼미 더 머니>를 보는 이유가 취업과정과 묘하게 비슷한 점이 많아서인지도 모르겠다.

면접은 잔인하다
떨어지면 거기서 끝이다





직장생활은 그런 취업과정보다 더 잔혹하고 고통이 따른다. 그래서인지 필기시험, 여러 번의 면접, 평판조회 등 타이트한 관문들이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 10년간 직장생활을 하며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바로 지금이다. 영화 《조커》에서는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요,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명대사가 나온다. 과거에 아무리 힘들었던들 그건 이미 지나간 것이다. 그 고통은 희미해졌으며 사실 그 기억도 100% 적확하지 않을 수 있다. 인간의 기억력은 생각만큼 좋지 않다. 직장생활에서 좋았던 추억 중 남는 건 있지만 그런 건 현재에서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런 점이 직장생활 중 가장 힘든 것도 행복한 것도 바로 지금이라고 생각하는 이유이다.

2020년 10월은 1-2주 차는 허리 디스크라는 육체적 고통과 싸웠다면 지난 한 주간은 크레이지 한 이슈로 인해 외부에서 오는 정신적 폭력을 견뎌야만 했다. 수십 통의 연락을 받으며 지루한 진실공방을 해야 했다. 마치 내가 속한 지점이 망하길 바라는 건지,
이때다 싶어 본인의 의를 드러내고 싶어 하는 건지,
쓴웃음을 짓게 만드는 인간들이 보였지만 이제는 그런 현상들은 무덤덤했다.

사실 여부를 떠나 소명 아닌 소명을 하는 건,
같은 말은 반복적으로 상대방을 바꿔가며 하는 건,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일이었다. 조직의 리더 직책을 수행하며 지키고자 하는 철칙 중 하나는 일을 함에 있어 개인적인 감정을 최대한 배제하는 것이었다. 사람이다 보니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꾸준히 퇴근하며 잊어버리고 비우는 연습을 반복하다 보니 제법 숙련이 되는 것 같았다.

최근 생긴 지점의 이슈도 마찬가지였다. 개인적인 감정이 아닌 철저하게 비즈니스적으로 접근하고 생각을 했다. 그럼에도 어느 순간 이성보다 감정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진짜 속마음을 남에게 비추는 걸 꺼려함에도 잘 숨기지 못했다. 그게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조직의 리더라면 분명한 실책이었다. 오늘 한 분의 연락을 받고 부끄러움과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다음 주인 10월 마지막 주는 <쇼미 더 머니> 지원자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내가 리더로 있는 지점의 역량을 보여주어야 한다. 지금 겪는 일련의 이슈들은 아무런 문제도 아니며 이걸 극복하고 당당히 베스트가 될 것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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