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을 아직 해보지 않으신 대학생, 취준생 분들
그리고 회사생활을 시작하신지 그렇게 오래되지 않은 신입들이 공통적으로 생각하는 점이 있을겁니다.
'왜 직장인들은 좋게 말하면 보수적, 나쁘게 말하면 무사안일, 복지부동의 자세로 살까?'
'왜 우리나라에서는 애플, 구글, 자포스, 와비파커, 스페이스X 같은 기업이 없을까?'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못 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하는 것이고 그렇게 만드는 것은 회사입니다.
왜 그런 것인지를 지금부터 하나씩 말씀드리겠습니다.
1. 내가 낸 아이디어로 대박이나도 보상은 없다.
회사를 위해서 직원이 정말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냈다고 가정해봅시다.
단순히 아이디어를 낸 것은 물론 그것이 실무에서 돌아가게끔 만들기까지 했고, 회사는 이로 인해 신사업을 성공적으로 런칭하여 상당한 이익까지 거뒀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리고 20여년이 흘렀다면, 이제 이 직원은 어떻게 되어 있을까요?
회사 임원?
아니면 직무발명 등을 인정받아 상당한 재산을 일구고 명예롭게 퇴직?
우리나라에서 그런 일은 일어나기 어렵습니다.
2014년 MBC가 방영한 '전봇대 가장 - 희망퇴직이야기'를 봐도 그렇습니다.
우리나라 초고속인터넷 ADSL 도입 초창기에 혁혁한 공을 세운 분이 임원이 되거나 상당한 보상을 받기는 커녕, 특별한 이유도 듣지 못한채 잘못 설치된 전봇대를 촬영하고 다니는 것이 현실입니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자타공인 초일류기업이자 국내의 대표적 글로벌기업인 삼성은 그렇지 않습니다.
서울대, 카이스트를 거쳐 삼성전자 연구원으로 입사한 권오현 전)삼성전자 회장은 연봉이 243억에 달했고, 얼마전 기사에 따르면 국내 최초 위성DMB폰 등을 개발한 공로를 인정받은 김희덕 연구위원은 2018년 한 해 보수가 43억이었다고 하여 화제가 된 바 있습니다.
그런데 화제가 되었다는 것은 반대로 그만큼 드물기 때문에 뉴스가치가 있다는 얘기이기도 합니다.
만약 대다수의 기업이 - 그 절대금액은 삼성전자만 못할지라도 - 회사에 공헌한 아이디어를 낸 사람에게 확실히 보상을 해준다면, MBC의 다큐멘터리는 제작될 일이 없었을 것입니다.
하물며 저를 포함한 절대다수의 직장인들에게 실제 사업으로 연결되어 대박까지 나는 아이디어를 내는 것은 잠깐 생각해봐도 녹록치 않은 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회사를 먹여살릴만한 아이디어를 내도 평가받기 어려운데 중박이나 업무개선 정도에 그치는 아이디어를 냈다고 회사가 보상을 해줄까요?
2. 아이디어를 내면 낼수록 일은 많아지고 적만 늘어난다.
사실 인간은 보상만을 바라고 움직이는 동물은 아닙니다.
그런 사람도 있지만, 정말로 회사를 사랑해서, 사명감에, 순수한 마음으로 보상이 없거나 적더라도 기꺼이 아이디어를 낼 사람들은 어느 회사에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아이디어를 내는 것을 주저하게 만드는 진짜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아이디어를 내면 낼수록 내 일만 많아지고, 회사 내 적만 늘어난다.'는 점입니다.
대기업이건 중소기업이건, 공기업이건 사기업이건 할 것 없이 회사는 직원들에게 일을 줍니다.
임금피크제에 들어가 있거나 퇴출을 위해서 고의로 나를 고사시키고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무조건 내게 맡겨진 일정한 업무가 있습니다.
이 일은 기본적으로 나의 일이고 내가 없으면 우리 부서의 누군가가 대신해야 하는 일이 됩니다.
그런데 너무나 많은 회사에서 아이디어를 낸 사람에게, "그럼 그 일은 아이디어를 낸 A씨가 해보지?"이런 식으로 처리를 합니다.
이건 아주 멍청한 짓입니다.
아이디어를 내는 것은 간단하지만, 그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것은 하나의 "새로운 일"입니다.
아이디어 낸 사람의 기본업무를 배제하거나 줄여주지도 않으면서, '네가 아이디어를 냈으니 네가 해라'란 식으로 처리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렇다고 아이디어가 잘 되었을 때 보상 - 하다못해 승진이라던가 - 이 확실하게 약속된 것도 아닌 상황에서, 자기 스스로 보상도 없는 일거리를 늘릴 멍청한 직원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더 심각한 문제는 내부의 적을 만든다는데 있습니다.
어떤 아이디어이건 회사 내부에 관계되는 부서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업무개선 아이디어이건, 정말 참신한 자기파괴적 수준의 아이디어이건 그 아이디어에 따라 회사 내 특정부서나 특정업무 담당자는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어 혁신적인 마케팅, 홍보 아이디어를 제시한다면 그동안 홍보실은 저런거 하나 생각하지 못하고 뭐했냐는 질책을 받게 되니 홍보실은 아이디어 낸 사람의 적이 될 것입니다.
오프라인 영업점이 필요없어지는 수준의 비대면 프로그램 도입 아이디어를 낸다면, 오프라인 영업점 관리부서, 오프라인 근무자들에게는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일이니 역시 적이 됩니다.
회사가 보상은 둘째 치더라도 아이디어를 낸 사람을 배려하고 보호해줘야 하는데 그런 것조차 없는 상황에서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아이디어를 낼 이유가 없습니다.
3.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본질적으로 왜 일이 벌어질까요?
그 답은 간단합니다.
"직원들의 아이디어가 필요없기 때문"입니다.
조금 전 언급한 삼성전자를 떠올려보겠습니다.
삼성전자는 세계 최고의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기업이고 그 최고의 자리를 지키려고 하는 기업입니다.
그런 기업에서 "기존에 해오던 대로만 하면 되"라는 사고방식이 통할까요?
반면에 우리나라의 아주 많은 기업들은 본질적으로 아이디어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게임의 룰이 사실상 정해져있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의미의 경쟁을 하지 않습니다.
전세계를 상대로 무한경쟁을 하기보다 여러가지가 완충작용을 할 수 있는 시장에서 싸우는 것을 선호합니다.
예를 들어 외국에서 혁신적인 제품이나 서비스가 나오더라도, 해당 제품이나 서비스와 경쟁할 것을 만들어내기보다 최대한 국내에 도입되는 것을 늦추는 쪽을 선택하는 것처럼 말이죠.
만약 KT가 아이폰을 들여온다는 선택을 하지 않았거나 그 도입시기가 2~3년 더 늦어졌다면....
과연 지금의 갤럭시 스마트폰의 영광이 있을 수 있었을까요?
우리는 아직도 실수로 핸드폰의 인터넷 버튼을 누르게 될까 전전긍긍하며, 매월 무료문자 한도를 신경쓰며 살고 있지 않았을까요?
중소기업은 대기업의 하청, 하청의 재하청에 속박되어 시킨대로만 하면 되기에 혁신을 할 이유가 없고, 혁신을 해야 할 이유가 없으니 직원들의 아이디어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대기업은 나름 아이디어를 내려고 하는 듯 보이나 과연 그 본질이 중소기업과 다른지 의문이고,
공공기관이나 공무원에 이르러서는 "철밥통"이라고 불리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더 논할 것이 없습니다.
4. 마치며
저는 개인 차원에서는 아이디어를 끊임없이 연마하고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자신의 피와 땀이 담긴 아이디어를 무의미하게 사용하지는 말아야 한다고도 생각합니다.
내 아이디어는 분명히 나를 더 높은 곳으로 데려다 줄 것입니다.
다만 때와 장소를 가리자는 것이죠.
그리고 기업들은 제발 "인재가 없다.", "직원들이 수동적이다."와 같은 소리를 좀 안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수동적이 되게끔 모든 인사제도나 회사 내 업무관행을 만들어놓고 그런 소리를 하셔도 황당할 따름입니다.
오늘은 어떠셨는지 여러분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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