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UX 디자이너가 반드시 가져야 할 능력 또는 스킬
위의 글을 읽고 나는 지난 9개월 동안 UX/UI 디자이너로 일하며 왜 이 기사에 공감하는가 ~ 한번 저의 이야기를 써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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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에서 인사이트 얻는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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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어렸을 때 이야기이다. 나는 거울 증후군을 6살때 까지 겪었었다. 좌우 대칭을 반대로 기입하는 증상인데 뇌가 자라며 아동기때 잠시 나타나 사라지기도 하고 성인까지 유지되기도 한다.나는 성인이 된 지금 이 증후군은 사라졌다. 하지만 아빠의 적절한 조언과 훈련이 없었다면 계속 이 증후군으로 고생했을 것이다. 나는 줄곤 나의 이름을 거울에 비췬 모습으로 썼다. 좌뇌와 우뇌, 그리고 시신경의 연결고리가 성장함에 따라 나타나는 증상이었다. 김지숙을 나는 김지숙으로 쓰지 못하고 거울의 비쳐진 모습으로 기입했다. 유치원때 이것 때문에 선생님이 나를 지적했던 기억이 남아있다. 집에서도 아빠와 이름쓰기 연습을 자주 했던 기억이 난다. 아빠에게 ‘아빠 나는 이렇게 쓸 수 밖에도 없지만 난 이렇게 쓰고도 김지숙으로 읽히는데 그게 이상한거야?’라고 물어보았다. 아빠는 6살인 나에게 ‘그게 이상하진 않지만 보통 사람들은 너가 쓰는 것과 반대 방향으로 글을 쓰도록 약속했기 때문에 너가 이렇게 쓰면 너의 이름을 읽을 수가 없어.’라고 이야기 해주었다. 나는 아빠의 말에 설득 당했다. 그러고나선 사람들이 내 이름을 잘 알 수 있도록 올바로 쓰기 위해 노력했다. 마음으로는 100% 이해가지 않았지만 노력했다. 똑바로 쓰기 위해… 그때부터 나는 세상을 관찰하는 시각이 남들과 조금 달랐던 것 같다. 남들이라고 해봐야 내 주변 사람들이지만..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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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관찰의 시작은 ‘왜?’였다. 처음에 그 모든 질문은 나로부터 시작되었다. 우리집에는 큰 전신 거울이 있었는데 그 앞에서 나는 왜 이렇게 움직일까? 내가 이렇게 코가 생긴건 사람들이 어떻게 인식 할까? 나는 팔이 이정도 길이 이구나, 나는 다리를 이렇게 움직이구나 이렇게 한참을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았다. 마치 돌고래의 지능이 7세정도 되어 돌고래가 거울을 보고 자아를 인식하는 능력이 있다고 하듯이 말이다. 내가 나의 얼굴을 거울에 비춰보고 춤도 춰보고 그렇게 하루에 몇시간을 거울 앞에서 보냈었다. 그때 날 지나가며 보던 친언니는 신기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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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나는 다른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으로 발전하였다. 다른 사람들이 습관적으로 하는 행동들에 ‘왜'라는 질문이 따랐다. 다리는 떠는 것, 남들 몰래 코를 파는 것, 종이를 자주 넘기는 것 등 나의 관찰은 놀이와 같았다. 고등학교때 3년 내내 같은 반이었던 아이들이 20명 정도 되었다.(그 당시 여자반의 이과 학생들은 30명정도 한개의 반으로 구성되었는데 이공계로 선택한 친구들이 한반에 20명이되었다.) 3년동안 같은 교실 위치, 층만 달라졌기 때문에 우리는 비슷한 자리에 앉아 어떤 과목은 3년 내내 같은 선생님에게 배우게 되었다. (사립학교였기 때문에 선생님들이 자주 바뀌지 않았다.) 3년동안 친구들을 관찰하는 것은 나의 특별한 취미 였다. 친구들을 관찰하는 나를 보며 ‘감자가 또 너 쳐다보고 있다.’라고 이야기 할 정도였다. 나는 그 현상을 오롯이 파악 할 때 까지 계속해서 집요하게 탐구했다. 사람 뿐 아니라 잎사귀가 자라는 것, 꽃이 피어 오르는 것, 낙엽이 색이 바뀌어 떨어지는 것, 옆집 아주머니가 옷차림에 따라 얼굴 표정이 달라지는 것 등 나에게는 관찰이 제일 재밌는 취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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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대학생이 되어 나와 비슷한 철학에 관심이 많았던 사람들을 만나게되었다. 나는 단순히 관찰을 좋아하는 것이라고 여겼는데 대학선배가 나에게 내가 가진 점은 직관력이 좋은 것이라고 이야기해주었다. 이것을 알게된 계기는 엄청 단순했다. ‘선배 저 사람이 왼쪽으로 가려고 하잖아요. 이쪽으로 오세요~’이렇게 말을 걸었는데 선배가 ‘너는 저 사람이 어떻게 왼쪽으로 갈려고 했는지 어떻게 눈치챘어?’라고 질문했고 내가 이러 이러한 단서 때문이다. 라고 대답했더니 그것은 직관력이 뛰어난 사람들의 특징이라고 이야기 해주었다. 나는 어렸을 때 이런 관찰에 대한 집요함 때문에 눈에 충혈을 안고 살았는데 자주 방문하는 안과 의사 선생님은 혹시 폐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엑스레이를 찍어보자고 하였지만 별이상이 없었다. 그 친절한 의사 선생님은 나에게 눈을 너무 많이 쓰지 말라고 충고 했었다. 사랑이 담긴 그 충고는 무색하게도 나는 성인이 되기까지 내 눈을 혹사 시켰다. 지금이야 조절하기 위해 시각정보를 퇴근 이후는 차단하려고 노력한다. 혹은 자연의 색을 담기 위해 최대한 노력한다. 그 선배와의 대화 이후 나는 대학교 2학년때 의류학과로 전과를 하게되고 나의 관찰력은 드디어 쓸모있는 축으로 끼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어림짐작으로 맞춰 제작해야하는 옷부터 브랜딩 발표에 이르기 까지 고등학생때 까지 맛보지 못한 경험들을 하게되었다. 나의 관찰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수업들이 많아 재밌었다. 그렇게 첫학기에 학년 수석을 거머쥐게 되었고 난생 처음의 장학금도 받아보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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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졸업하고 나는 패션디자이너가 되었다. 인턴과 파트타임 아르바이트와 계약직에 거쳐 7개의 회사를 3년동안 다니게 되었다. 정직원 제의도 마다하고 계약직, 아르바이트를 떠돌았던 이유는 나는 더 큰 관찰력 혹은 통찰력이라고 말 할 만한 것을 갖고 싶었다. 디자인 산업에 대한 전체 패러다임을, 업종을 불구하고 기획되고 만들어지고 판매된 다음 기획에 반영되는 그 모든 흐름이 내 머리에 이해되기 전까지 남들이 뭐라하면 가끔 서럽긴 했지만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인턴에서 계약직 까지 마다 하지 않고 일했었다. 통찰력에 대한 열망으로 박봉을 받아 가면서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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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 저러한 관찰력에 의한 통찰력은 현재 UX/UI 디자이너 자리고 나를 이끌었다. 입시교육 앞에서 나의 관찰력에 대한 열망은 인정받지 못했지만 현재 UX/UI 디자이너로 일하며 나의 관찰력은 꽤 쓸모있게 느껴진다.
2.공감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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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이라… 이것에는 어떤 느낌이 중요하다. 상대방의 마음과 같은 마음으로 느끼는게 공감능력(같을 공, 느낄 감)이다. 이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상대의 마음을 아는 능력보다 자기 자신의 마음을 아는 능력이 더 요구된다. 완전한 찐다가 되어보기도하고 엄청난 부끄러움에 사로잡혀봐야 상대가 느낄 찐다의 느낌과 그 부끄러움이 이해가 간다. 이 많은 마음을 느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한가지를 반드시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경험에서 느끼는 실패이다. 사람이 공감을 느끼며 위로를 느낀다는 생각을 과연 언제 할까? 성공했을 때? 원하는 것을 이루었을 때 일까? 전혀, 아니다. 사람은 생물학적으로 본능적으로 살아남기위해 무언가를 하게된다. 성공한 사람에게 공감하는 이유는 정말 작은 수치로는 진정으로 기뻐하는 마음을 느끼기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강자의 강점 옆에 서있어야 좀 더 쉽게 생존 할 수 있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럼 후자는 진심이 아닐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우리는 성공보단 실패를 통해 공감능력을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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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많은 실패를 겪은 사람이다. 패션디자이너로 옷을 만들어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원대한 꿈을 꾸었다가 돌연 그림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에서 그래픽디자이너로 현재는 앱을 디자인하는 UX/UI디자이너가 되었다. 누군가는 운영하던 쇼핑몰의 실패를 안타까워하고 어떤 이들은 동화책 일러스트레이터로 좀 더 입지를 다질 수 있었을 텐데 라고 하며 현재 나의 디자인 작업을 보며 아쉬워한다. 나는 사실 디자인 이라는 거대한 테두리 안에서 내가 하고 싶었던 것들을 최선을 다해 했을 뿐이지만 동화책 작가의 꿈을 중간에 접기도하고 쇼핑몰 폐업신고를 하며 실패를 경험했다. 아빠의 지혜로운 말은 나의 공감능력을 키우는 원동력이 되었다. ‘한번 성공한 사람은 일부를 알지만 세번 실패한 사람은 전부를 할 수 있다.’ 나는 그림을 그리다가 포기하게 된 사람, 프리랜서일을 하다가 회사에 입사한 사람, 쇼핑몰 폐업을 하게 된 사람, 혼자 외롭게 여행을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공감 할 수 있다. 이것은 남들이 이야기하는 성공에 의해서가 아니라 남들이 평가하는 실패의 경험을 통해서이다. 내 스스로는 실패라고 평가하지 않는다. 지금의 나를 만든 중요한 밑바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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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많은 실패는 공감하는 능력을 낳았다. 나는 그 실패를 겪을 때 마다 뼈를 깍는 인고의 시간을 겪어야 했다. 아무도 나의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고 세상에 혼자가 된 기분이었다. 기도를 하면 눈물만 흐르고 때론 통장잔고를 보며 한숨짓다가 공짜로 할 수 있는 취미로 자전거 타기, 무료 박물관 다니기 등으로 나를 위로하기 위해 노력했었다. 지금의 나는 상당히 단단해졌다. 아빠가 이야기 한대로 실패는 많은 것을 배우게 했다. 그래서 나는 실패를 겪는 사람들을 공감 할 수 있다. 내가 현재 일하는 UX/UI 디자인으로 예를 들어보면 유저들은 동물이 아니라 사람이다. 앱을 켜고 어떤 버튼을 누른다고 상상해보면 어떤 느낌 일까? 어떤 버튼에 먼저 손이 갈까? 어떤 버튼을 누르고 실패를 경험 할까? 이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은 결국 공감 능력이 요구된다. 유저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도 아닌 나와 같은 사람이다.
3.문제이해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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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 이 문제 이해 능력은 위에서 이야기 한 관찰력과 공감능력의 종합이라고 볼 수 있다. 문제를 잘 이해 한다는 것은 사실 좋기만 한것은 아니다. 고통이 따른다. 보이기 때문에 바꾸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보인다고 이야기 해서 다른 사람들의 공감을 못얻으면 그것도 거절로 기억된다. 보이는 것 까지 공감이 되고 바꾸자고 이야기 했을 때 공감을 못얻으면 그것도 거절로 기억된다. 심리학에서 외상 후 장애를 만드는 가장 큰 인간의 감정이 거절감이라고 하였다. 문제 이해 능력이 있어도 공감을 얻어내도 그것을 해결해야하는 것이라고 설득하는 능력을 계속 발전시켜나가야한다. 이 과정을 오래 걸린다. 사람의 성격마다 다르고 상황마다 다르다. 사실 문제를 이해하는 능력은 관찰과 공감능력이 충분히 발달되면 직시 할 만한 통찰력을 갖게된다. 하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은 조금 다르다. 그것은 죽기 직전까지 발전시키고 연마해야하는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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