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취업의 부푼 꿈울 꾸고 계신가요?
그렇다면 출국 전, 나라와의 케미는 고려해 보셨나요?
저는 싱가포르에 있으면서 나라와의 케미를 매우 중요시하게 된 사람 중 한 명입니다.
저 같은 경우엔 그 나라에 적어도 3-6개월을 로컬스럽게 살아보면 어느 정도 답이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저에게 싱가포르는 어떠냐고요?
케미를 운운하기에 앞서 저는 싱가포르에서 첫 직장을 갖게 되면서 진짜 '성인'이 되고 있다는 것을 느껴왔습니다.
진짜 성인이라 하면 개인마다 내리는 정의는 다르겠지만, 적어도 경제적으로 완전히 독립하고 모든 살림살이는 내가 책임지고 살아가는 것부터가 본격 성인이 아닐까요. 그리고 그 시작을 가족 없는, 친구 없는 타국에서 한다면 더욱이 쉽지 않은 여정입니다.
특히 싱가포르에서 진짜 성인이 되려면 꽤 많은 장애물을 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도 그 장애물을 성공적으로 극복한 부분도 있지만 그러지 못한 부분도 분명 있습니다.
오늘도 순전히 제 경험에 근거한 싱가포르에서 일하는 것을 말리고 싶은 이유에 대해 고민해봤습니다.
1. 인종차별이 아직도 존재합니다.
무서운 얘기입니다.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여전히 많은 나라에서 인종 차별이 자행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많은 나라를 여행하면서 그나마 조금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졌던 인종차별 중 하나는 멕시코에서 어떤 한 상인이 "야! 중국인이랑 일본인이랑 한국인 중에 눈이 젤 찢어진 나라 애들은 어디 애들이야?"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입니다. 검지로 두 눈을 찢는 시늉까지 하던 그 상인은 누구보다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그런 질문을 했습니다. 당시에는 저 사람이 못 배운 사람이라서 저런 말을 하는구나 하고 넘겼는데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저 말이 잊히지 않습니다. 저에게 꽤나 충격적인 말이었단 뜻이지요.
제가 싱가포르에서 관찰한 인종차별은 조금 다른 맥락입니다. 항상 사람을 다루는 HR 업계 특성상, 우리는 클라이언트 그리고 동료와 항상 사람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클라이언트가 어떤 후보자를 찾는다고 하면, 그 사람의 자질에 대한 질문보다도 선진행되는 질문은 degree holder? diploma holder? Open to any race?
여기서 Open to any race라는 질문을 제가 고객에게 하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렸습니다. 저는 이 질문을 고객에게 하게 되리라 생각지도 못했으니까요. 하지만 먼저 Indian은 안돼, Malaysian도 안돼, 우리는 대부분 직원들이 중국인이라서 Chinese만 돼.라고 말해주는 많은 고객들 덕분에(?!) 언젠가부터는 제가 인종이 상관없니?라는 질문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 모두 인종만 다를 뿐이지 국적은 다 싱가포르인데 말입니다.
저는 이렇게 클라이언트의 인종 니즈(?)를 파악한 후, 컨설턴트들에게 업무 분담을 하러 갑니다.
oo아 이번에 우리 새로운 고객이 있는데, 이 고객은 Chinese만 된데 이유는 중국어를 말할 수 있어야 하고 회사 내에서 중국문화가 지배적이라서 그렇데. 그러면 컨설턴트들이 물어봅니다. 걔네 예산은 얼마래? 그러면 저는 대충 Budget Range를 얘기합니다.
그러면 대부분 컨설턴트들은 "음 Chinese 들은 기본 이 정도는 받아야 해. 지금 마켓 상황이 그래. 걔네 몸값이 젤 비싸."
저는 왜 Chinese의 몸값이 싱가포르에서 젤 비싼지 이해가 안 되었습니다. 그 이유에 대한 답변을 뚜렷이 하는 컨설턴트들도 못 봤습니다. 단지 그들이 싱가포르에서 수적으로 가장 지배적이라서 일까요? 오히려 희귀해야 몸값이 비싸야 하는 거 아닌가요? 아직도 저는 수수께끼입니다.
또한 저의 관찰에 따르면 싱가포르에 살고 있는 Chinese들은 Indian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일단 잘 안 씻고 비위생적이며 게으르다는 인식이 있습니다.
저의 상사가 한 번은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영업팀에 구인 공고를 내면 죄다 자격 없는 Indian '같은'애들만 지원하더라고.
그때 저는 문득 'Indian 같은' 애들이 무슨 뜻인지 궁금했습니다. 맥락상 그리 좋은 뜻으로 쓰인 것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그분 머릿속에 Indian에 대한 어떤 선입견이 있었겠지요.
여기서 한 가지 재미있는 얘기는, 싱가포르 국적을 가진 즉 싱가포르에 태어난 중국계인들은 자기들이 중국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싱가포리안이라고 생각합니다. Singaporean Chinese와 그냥 Chinese를 철저히 구분합니다. 그 이유도 웃깁니다. 그들은 Chinese처럼 더럽고 무례하지 않고 깨끗하고 시민의식이 높은 Singaporean Chinese라고 스스로를 정의합니다. 처음에 저를 비롯한 몇몇 외국인 동료들이 "아니 외국인들 눈에는 다 똑같은 Chinese인데 그리고 실제 너네 혈통도 그렇잖아 말도 표준 중국어로 다 통하고 근데 그걸 왜 그렇게 구분해?"라고 하니, 자기들은 일반 Chinese와 같다고 인식되는 게 싫다고 했습니다. Singaporean Chinese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합니다.
솔직히 저는 아시아 나라 중 다문화 강국인 싱가포르에서 이러한 현실을 마주하며 실망스럽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외에도 요즘 싱가포르 정부의 정당들 사이에서도 인종별로 당을 나누는 등, 중국계 당원이 다른 인종은 선거에 나올 수 없다는 등의 망언을 하면서 싱가포르 내에서도 '인종 차별'은 떠오르는 이슈입니다.
2. 심한 경쟁
경쟁이 심할 거라는 생각은 어느 정도 하고 싱가포르에 왔습니다.
그럼에도 한국에서 내 성별과 나이 등 바꿀 수 없는 것들로 차별받기보다 내 능력으로 인정받고 싶다는 생각이 커서 오게 되었습니다.
저는 팀원이 유일하게 상사 한 명이라서 뜻하지 않게 그분과 항상 경쟁해왔습니다.
때로는 경쟁이 자극되어 열심히 하기도 하고 스트레스로 다가올 때는 정신적으로 힘들기도 했습니다.
특히 상사와 공동 파일을 공유해서 부서장 앞에서 업무보고를 할 때면 서로 부서장 앞에서 자기 PR 하기 바빴습니다. 확실히 한국 회사와는 다르게 자기 성과를 자기가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몰라주는 분위기라 더 열정적으로 말했습니다. 어쩌면 저도 그 경쟁을 즐기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여기서 포인트는 바로 '상사와의 경쟁'이라는 겁니다. 직급으로는 저보다 상사고 경력도 저보다 10년이나 더 많으신 분이시지만 하는 일은 저와 같습니다. 다만 그분은 저를 manage 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는 것뿐이고요. 그래도 상사와 경쟁한다는 것은 저에게 때로는 짜릿한 경험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애초에 상사와 경쟁관계에 두는 회사의 구조 자체가 저는 한국에서는 감히 상상도 못 하였을 일이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경쟁을 제어하는 회사 내에 시스템도 없는 것을 보고, '피 터지게 경쟁해서 성과 내'라는 뜻으로 밖에 들리지 않았습니다.
또한 직원들의 모든 성과는 회사 전체 공개 시스템에서 볼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부동의 1-3위 에이스들은 이미 말하지 않아도 회사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 반대로 꼴등 1-3등도 본인을 포함해 회사 모든 직원들이 알고 있습니다.
마치 학창 시절 학원에서 선생님이 시험 치고 나면 1등부터 꼴등까지 리스트업 해서 교실 뒤에 붙여놓았던 것과 같습니다.
잔인하지만 헤드헌팅 업계 특성상 경쟁을 유도해서 직원들을 자극할 수밖에 없다는 것도 한편으로는 이해가 갑니다.
3. 가차 없는 해고
이곳은 공채라는 개념이 없기 때문에, 비슷한 시기에 들어온 동료들을 흔히 입사동기라고 합니다. 다른 점은 한국에서 입사동기라 하면 대게 나이 때도 비슷하지만 이곳은 들어온 시기로만 입사동기를 묶기 때문에 주니어급, 매니저급 그리고 디렉터급이 모두 입사동기일 수 있습니다. 회사차원에서도 최근 3개월 동안 입사한 직원들은 한 번에 모아 신입 교육을 하구요. 저의 입사동기들은 약 15명 정도였습니다. 아무래도 비슷한 시기에 들어와 더 정이간 동료들이지만 저는 입사한 지 3달이 안되어서 7명의 동료가 해고당하는 것을 보아야 했습니다. 사실 회사에서 Fire를 직접적으로 하진 않고 매니저와 대화를 통해 스스로 나가게끔 유도한다고 보는 게 더 맞겠네요.
일단 수습기간이 3개월인데, 이 3개월이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잘하는지 못하는지 검증이 안되었으니 월급 덜 주는 시기라고 본다면, 이곳에서는 월급은 똑같이 주지만 정말 이 아이가 잘 버티고 성과를 낼 수 있는지 태도와 적응력을 봅니다. 물론 보험혜택은 받을 수 없고요.
그렇게 결국 해고 아닌 해고를 당한 동료들의 공통점은 업무 태도가 태만하거나 같은 팀원들과 적응을 잘 못하거나 업무 성과가 현저하게 낮은 점이었습니다.
업무 성과는 자기 타깃을 조금 못 맞춰도 태도가 좋으면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경우도 많이 봤습니다. 즉, 태도나 적응력이 절대적으로 더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신입사원 중 반 정도가 잘린다니요. 섬뜩한 이야기처럼 들릴진 모르겠습니다. 다행 중 다행은 직원을 좀 더 지켜보고 싶을 때 수습기간을 3개월에서 5,6개월로 연장해 주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확실히 한국보다는 해고에 가차 없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이직이 활발한 나라라서 그런지 곧 잘 이직하는 친구들도 꽤 보았습니다.
4. 한국인의 특성을 살리기 힘든 곳
이전에도 말했다시피 한국인으로서 이곳에서 직업 구하기가 결코 쉽지는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한국인'이라는 특성을 살려 조금 쉽게 취업할 수 있는 방법을 고려하시는 분들도 많이 보았습니다. 저도 싱가포르에 거주하면서 구직 활동하시는 한국분들의 연락을 꽤 많이 받고, 몇 분 상담도 했지만 특정 기술 없이, 경력 없이 도전하시는 분들에게는 '한국어 네이티브'라는 강점을 살리는 방법밖에는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면 가능한 직업들이 주로 'Customer Service', 'Beauty Sales', 'Business Development' 직군입니다. 즉 한국인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고객상담업(Agoda, Booking.com 등) 싱가포르 내에 한국 뷰티 브랜드 매장 관리직(싱가포르 베이스 한국기업) 그리고 한국 시장을 개척하고자 하는 사업개발(IT 세일즈 등 주로 서비스 영업)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쪽 분야에 관심이 없는 흔히 영업과 고객관리 같은 일이 힘드신 분들은 결국 싱가포르 현지인들과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만약 위에 언급한 직종들에 흥미가 없다면, 내가 싱가포르 현지인들과 비교해서 어필할 수 있는 강점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고 오시기를 강력 추천드립니다.
앞전의 싱가포르에서 일하기 좋은 이유를 설명하면서 좀 더 균형 잡힌 의견을 전달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제가 추구하는 글 자체가 아무래도 사실에 기반한 정보성 글보다는, 경험에 근거한 살아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 점 참고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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