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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입시미술학원 강사였다.
대학을 다닐 때였는데 학비를 벌기 위해 시작한 일이 대학 졸업 때까지 이어졌다. 당시 나는 굉장히 고집스럽게 '내 인생에 대출은 없다'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당연히 학자금 대출은 받지 않았고 집에선 대학 등록금을 내 줄 형편이 못 되었기에, 돈을 벌어야만 했다.(많은 대학생들이 등록금 때문에 고통받는 걸 알기에 엄살을 부리고 싶진 않다.)


다행히 미술학원 강사 일은 수입이 나쁘지 않았다.
덕분에 나는 대학 4년 동안 대출 없이 내 힘으로 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스스로에게 박수라도 쳐주고 싶지만 모든 일엔 좋은 점이 있으면 나쁜 점도 있는 법. 강사 일을 하면서 나는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했다. 내가 맡은 학원 학생들을 책임져야 한다는 책임감에 늘 학교보다는 학원 일이 먼저였고 과제할 시간이 부족해 전공수업은 최소화하고 교양들로만 학점을 채웠다. 학원 일을 핑계로 결석도 많이 했다.
휴학을 한 번하고 군대를 다녀온 후 3학년쯤 되었을 땐 이미 과에서 나를 아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다들 나를 다른 과에서 복수전공을 신청해 수업을 듣는 사람 정도로 여겼을 정도니 말 다했다. 대학교 인맥이 사회생활에 필요한 재산이라던데 나는 그런 건 모으지 못했다. 전공수업도 졸업에 필요한 학점만 들었으니 디자인과를 나왔어도 디자인을 잘 모른다. 학교를 다니기 위해 일을 하는데 정작 일하느라 학교생활을 잘 못하게 되는. 이런 아이러니한 상황이 몇 년간 이어지다 보니 나는 그 일이 참으로 싫어졌더랬다.  


미술학원 강사 일이 싫었던 이유는 또 있었다.
학생들을 계속 다그쳐야 하는 일이 나에겐 너무 스트레스였다. 입시도 경쟁이다 보니 아이들에게 끊임없이 노력할 것을 요구해야 하는 나 자신이 싫었다.
"너 이따위로 그리면 대학 못가."
"네가 잠자는 시간에도 누군가는 그림을 그려."
"이 정도면 저기 아래 지방대쯤은 갈 수 있겠네. 부모님이 참 좋아하시겠다."
같은 말들을 서슴없이 던져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곤 했다.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내 주제에. 그리고 대학이 뭐라고. 마치 대학이 인생의 최종 도착지인 양 위너와 루저를 들먹여가며 아이들을 협박하고, 아이들을 4시간 만에 완성도가 빵빵한 그림을 그리는 '기계'로 만들어 내는 것이 내 임무였다. 나는 그런 인간이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미술학원을 그만뒀다. 미술학원에 남아 계속 그 일을 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다른 일을 하고 싶었다. 더 재미있고 의미 있고 가슴 뛰는 일 말이다.
학교를 그 지경으로 다녔으니 취업준비나 미래에 대한 대비가 되어 있을 리가 없었다. 20대의 대부분을 대학 졸업장을 사는데 써버린 셈이었는데 생각해보니 처음부터 배움을 원했던 게 아니라 대학 졸업장을 원했던 것 같다. 한심하게도 나는 그런 인간이었다.
그래도 기분만은 좋았다. 더 이상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내 미래는 밝아 보였다. 그동안 고생했으니 천천히 쉬면서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찾아보자고 생각했다. 짧은 인생이니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해야지. 당장 돈벌이를 위해 쉽게 아무 일자리나 찾고 싶진 않아. 진짜 하고 싶은 일에 열정을 쏟고 부딪치고 깨지고 성장하며 살고 싶어. 그런 일을 찾아야 한다고 다짐했다. 독립하기 전이라 숙식은 문제없었고 미술학원 다니며 모아놓은 돈을 어찌어찌 아끼면 일 년은 거뜬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고통의 시작이 되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일 년 정도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 기간은 점점 길어져 삼 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나는 그 시간을 내 인생의 '공백기'라고 부른다. 연예인도 아닌데 공백기라니. 그것도 삼 년씩이나. 나는 삼 년 동안 돈 한 푼 벌지 않고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은 뭘까를 고민했다. 그래서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찾았냐고?
결론부터 얘기하면 찾지 못했다.



삼 년의 공백기 동안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찾진 못했지만 몇 가지 깨달은 것은 있다.
'진짜 하고 싶은 일'은 '사랑'과 참 많이 닮았다는 것이다. '이제부터 진짜 사랑을 찾을 거야'라며 찾아 나선다고 진짜 사랑이 찾아지는 게 아니듯 진짜 하고 싶은 일도 찾는다고 찾아지는 게 아니었다. 그것은 '찾는'게 아니라 '찾아오는'것이다. 일을 하거나 공부를 하거나 취미생활을 하거나 아니면 여행을 하거나. 생활하고 활동하는 중에 '아, 이런 일을 하고 싶다.'자연스럽게 혹은 운명처럼 찾아오는 것이지 나처럼 아무것도 안 하고 머릿속으로만 찾는다고 찾아지는 게 아니었다. 나는 그랬다.  


그렇다고 삼 년 동안 아무것도 안 한 건 아니었다. 소설가를 꿈꾸며 소설도 몇 편 썼고, 그림책에 매력을 느껴 혼자 그림책도 만들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인지는 의구심이 들었다.
'겨우 이 정도로 진짜 하고 싶은 일이란 얘기를 할 수 있을까? 좀 더 강렬한 느낌이어야 하지 않을까?'
이런 기분. 겨우 이 정도 감정에 내 모든 것을 다 걸어야 하는 건가? 이거 아니면 죽어도 안 돼! 이런 느낌은 아닌데... 눈에 띄게 재능이 있는 것 같지도 않고... 어쩌지?
이것도 사랑과 닮았다. 어떤 사람은 첫눈에 사랑에 빠지고 미칠 듯 강렬한 사랑을 앓는다. 또 어떤 사람은 첫눈에 사랑에 빠지는 일이 없고 천천히 사람이 좋아져 사랑을 한다. 그리고 그 사랑도 잔잔하다. 나는 후자의 사람이었다. 나는 강렬하고 분명한 '아, 이런 일이 너무 하고 싶다.'이런 느낌을 기다렸는데 그런 것들은 내게 오지 않았다. 그 이유는 내가 그런 스타일의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나는 첫눈에 사랑에 빠져본 적이 없다. 사랑 때문에 심하게 마음 앓이를 한 적도 없다. 그런 인간이 강렬한 계시 같은 것을 기다렸으니 바보 같은 짓을 한 셈이다. 내가 나를 몰라도 너무 몰랐다. 어쩌면 내 인생이 끝날 때까지 그런 강렬히 하고 싶은 사랑(일)은 만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타협이 필요한 인간이었다. 강렬하게 하고 싶은 일은 없지만, 하고 싶지 않은 일은 있는 사람.
'너무 괴롭지만 않으면 뭐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그게 내가 삼 년의 긴 터널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이 간단한 답을 얻으려고 참 오래도 걸렸다. 미련하게도.


고민도 걱정도 너무 많이 하다 보면 지긋지긋해진다.
삼 년 동안 고민하고 고민하고 고민했다. 내 미래에 대해.
삼 년 동안 걱정하고 걱정하고 걱정했다. 내 미래에 대해.
아무리 고민하고 걱정해도 답은 없었다. 나도 열정을 쏟고 싶은데. 더 늦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을 찾아야 하는데. 뛰어난 재능도 없고 나이만 먹고 이것저것 관심은 많지만 특별히 하고 싶은 것은 없는 나. 이대로 나는 아무것도 못되고 끝나는 걸까?
내 미래는 너무 어두웠고 나 자신이 아무 쓸모없는 존재처럼 느껴졌다. 서울역 노숙자들을 볼 때마다 미래의 내 모습이 아닐까 불안에 떨었다. 급기야 나 하나쯤 없어져도 세상은 아무 문제없이 잘 돌아가겠지?라는 위험한 생각도 했다.
그 짓을 삼 년을 했다. 그리고 어느 날 지겨워졌다.
고민하는 게 지겨웠고 걱정하는 게 지겨웠다. 지긋지긋해서 더 이상은 고민할 수도 걱정할 수도 없었다. 마치 인간에겐 평생 할 고민과 걱정의 양이 정해져 있는 것처럼. 나는 삼 년 동안 그것들을 다 써버린 셈이었고, 걱정과 불안에 떨던 나는 어느새 걱정 없는 인간이 되어 있었다.
'에라, 모르겠다. 될 대로 돼라!'


그 무렵 연락이 뜸하던 아는 형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회사 한 번 다녀볼 생각 없어? 편집 디자인 회사인데, 일은 배워가며 하면 되고. 많이 힘들지 않을 거야."
"콜!"
오랫동안 돈벌이를 안 했더니 내 자존감은 많이 낮아져 있었다. 좋은 말로 하면 겸손해진 거고.(웃음)
누가 일을 준다고 하면 '아이구 저 같은 놈에게 일을 주신다굽쇼? 최선을 다하겠습니다요. 굽신굽신'하고 달려갈 준비가 되어있었달까. 그런 마음이 공백기를 끝내는데 도움이 되었다.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찾기 전까진 아무 일이나 하지 않으려 했는데 그랬다면 난 지금쯤 굶어 죽지 않았을까. 겸손해져서 다행이다.
회사를 다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출판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저, 인터넷에 올리신 그림책 보고 연락드리는데요..."
그렇게 나는 그림 일도 시작하게 되었다. 내가 노력해서 된 것들은 아니다. 고맙게도 그냥 운이 그렇게 흘러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회사원이 되려고, 혹은 그림 작가가 되려고 마구 노력한 것은 아니니까. 일단은 내가 할 수 있는 밥벌이부터 하자고 생각하자 일어난 일들이었다. 아무튼.
나의 공백기는 끝났다. 그리고 회사원과 그림작가, 투잡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 두 가지 일은 나에게 모두 좋은 일이었다. 처음엔 진짜 하고 싶었던 일이 아니었지만 많이 괴롭지 않았고 재미도 있었고 더 잘하고 싶은 욕망도 생겼다. 물론 돈이 빠질 수 없다. 그렇게 번 돈으로 독립도 하고 맛있는 것도 사 먹고 옷도 사 입고 지금의 이 실험(?)도 하고 있는 것이니까. 고맙다.
지금은 회사를 그만두었다. 두 가지 일을 하면서 이도 저도 아닌 것보단 한 가지 일에 집중하자는 생각에서였다. 그리고 밥벌이로써의 일도 좋지만 조금 더 재미있는 일을 해보고 싶어 졌기 때문이다. 몇 년간 밥벌이를 하다 보니 처음의 겸손함은 사라지고 불만이 쌓였다. 다시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욕심이 생겼다고 할까. 이젠 미련하게 강렬한 느낌을 바라지 않는다. 내가 하던 일을 좀 더 재미있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 어쩌면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는 것일 수도. 어쨌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일찍 찾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부럽다. 어쩜 저렇게 분명하게 하고 싶은 일이 있을까. 반면 나처럼 좋아하는 건 많지만 강렬하게 뭐가 하고 싶은지 모르겠는 사람들도 있다.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뭔지 모르겠다고? 괜찮다. 억지로 찾지 마라. 언젠간 찾아올 것이다. 어쩌면 안 찾아올 수도, 혹은 너무 미세한 느낌이라 확신이 없을 수도 있다. 그래도 괜찮다. 대단하진 않아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해 나가다 보면 어디로 가야 할지 보일 것이다. 이런 일은 싫다라던지, 이런 쪽으로 더 해보고 싶다라던지. 그럴 때마다 선택을 하며 나아가면 된다.


이왕이면 뜨거운 사랑이 좋겠다.
하지만 꼭 뜨겁지 않아도, 강렬하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 각자 스타일대로 사랑(일)을 하면 되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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