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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상업적인 그림을 그리는 나와는 다르게 순수 회화 작업을 하는 친한 동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는 몇 년간 미술 강의와 자신의 작업을 병행해왔는데 항상 작업시간의 부족을 안타까워했다. 그렇다고 강의를 그만둘 수도 없는 것이 그림 작업만으로 당장 돈이 생기는 게 아니니까 그로서도 괴로운 노릇이었다. 그림은 그리고 싶고 돈은 벌어야겠고. 그래서 정규적인 직장 대신 시간 활용이 좀 더 유연한 파트타임 강의를 택한 그였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런 그를 보다 못한 어머니가 조용히 그를 불러 말씀을 하셨는데 그 내용인 즉 공부머리가 남아 있을 때 공무원 시험이라도 준비해 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것이었다. 어머니 눈에 얼마나 그 삶이 불안해 보였을까.

그림을 그릴 때면 문득 너무 행복해져서 붓을 내려놓고 가만히 눈을 감는다는 그였다. 그런 그를 알기에 내 마음은 무겁게 가라앉았다. 아들의 미래를 걱정하는 어머님의 마음이야 어찌 모르겠냐만 그림 그리는 걸 업으로 삼고 싶은 사람에게 공무원이라니요, 어머니.

 

오죽 답답했으면 나한테 전화했을까. 그러나 나라고 뾰족한 답이 있을 리가.

내 앞가림도 힘든 주제에 어머니 말씀대로 하렴, 혹은 그래도 네 꿈을 좇으렴하고 말할 수 있겠나. 내가 말할 수 있는 거라곤 적어도 남 탓할 선택은 하지 마라는 것이었다.

어머니 말대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고 바로 합격이 되는 게 아니다. 몇 년을 공시생 생활을 하다 결국 포기하게 될 수도 있단 얘기다. 그럼 누굴 탓할 텐가. 만약 아주아주 운이 좋게 붙었다고 치자. 화가가 되기를 바랐던 그가 공무원으로 살면서 얼마나 어머니를 원망하겠나. 그때 계속 그림을 그렸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끝없이 후회하면서 말이다.

자기 마음을 따르면 적어도 남을 탓할 일은 없다. 성공해도 실패해도 다 내 책임, 그러면 인생이 덜 억울하다. 내 인생이니까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게 아닐까. 어차피 남에게 책임지라고 따져봤자 소용없는 짓이다. 지나간 시간은 다신 돌아오지 않는다.

그는 결정을 내린 듯했다. 내 말을 따른 건 아니고 이미 마음속에 답이 있었던 모양이다. 단지 자신의 결정에 확신을 얻고 싶었을 뿐.

 

꿈이 있다는 건 누군가를 짝사랑하는 것과 같다.

그 사람과 연인이 될 가능성을 따져본 후 좋아하는 게 아니다. 그냥 좋아하게 되는 거다. 좋아하는 마음을 막을 수가 없어서 짝사랑을 하는 거다. 그렇게 우리는 꿈을 꾼다.

짝사랑은 기쁨이자 커다란 고통이다.   

짝사랑이 길어질수록 그 고통은 더욱 커진다. 꿈을 좇아 몇 년씩 달려도 별다른 성과가 없을 때. 생계마저 힘들어 다른 아르바이트를 해야만 할 때. 나이는 이미 젊지 않고 미래는 어두워 끝이 보이지 않을 때. 그럴 때 마음속엔 폭풍이 몰아친다.

내 선택이 잘못된 건 아닐까. 부모님 말을 들을 걸 그랬나. 혹시 재능이 없는 건 아닐까. 끝까지 버티면 되긴 되는 걸까. 수많은 의심과 불안을 견디며 그렇게 꿈을 좇는다. 그리고 그 고통은 오롯이 개인의 몫이다. 누가 대신해 줄 수가 없는 고통인 것이다.

 

 

영원한 짝사랑은 없다.

 

 

누군가는 짝사랑하던 사람과 연인이 되어 짝사랑을 끝내고, 누군가는 짝사랑을 가슴에 묻은 채 포기한다.

간혹 고통의 시간을 이겨내고 꿈을 이룬 사람이 TV 같은데 나와서 절대 포기하지 마라, 끝까지 버티면 꿈을 이룰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불편하다. 그건 그 사람이 결국 꿈을 이루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다. 꿈을 이룬 사람들보다 이루지 못한 사람들이 훨씬 많다. 끝까지 안 버텨서가 아니다. 끝까지 버티다가 너무 고통스러워 죽는 사람도 있고 죽을 것 같아 꿈을 포기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게 맞다. 꿈은 목숨보다 귀하진 않다.

꿈을 이루지 못했다고, 짝사랑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다른 사랑에 빠지게 되니까. 그 사랑은 더 뜨거운 사랑일 수도, 좀 더 현실적인 사랑일 수도, 안정감을 주는 사랑일 수도 있다. 이루지 못한 짝사랑을 생각하면 가슴 한편이 아파오는 건 어쩔 수 없다. 뭐 사랑이 다 그런 거다.

 

꿈을 꼭 이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너무 힘들면 중간에 포기해도 된다. 그리고 꿈이 생겼다고 꼭 꿈을 좇아야 한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이 어떤 고통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그 고통을 감당할 수 있는 것도, 감당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꿈을 좇는 사람들이 있다. 그걸 못 이룰지도 모르는데. 그 엄청난 불안과 고통을 알고도 그 길을 가는 사람들을 보면 내 온 마음을 다해 응원하고 싶어 진다. 무모해 보이지만 그들은 정말 멋지다.   

영화 '삶의 가장자리'의 마지막 대사를 응원의 메시지로 보낸다.

 

시도해 볼 생각이 있으면, 모든 걸 시도해보라.
그러지 않으려면 생각조차 하지 마라.
시도는 애인, 아내, 친척, 일자리를 잃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시도는 2~3일씩 굶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공원의 벤치에서 추위에 떨 수도 있고, 감옥에도 갈 수 있다는 말이다.
조롱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이며, 고립될 수 있다는 말이다.
고립은 선물이다.

시도가 낳은 모든 것들은 당신을 시험한다.
당신이 그것을 얼마나 원하는지를.
거부를 당한다 해도 그 일을 할 것인지를.
그 이후에는 당신이 상상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보다 그것이 더 좋아질 것이다.
 
시도해 볼 생각이 있으면, 모든 걸 시도해보라.
어디에도 그런 느낌은 없다.
신과 마주하는 외로움이 있을 것이다.
밤은 불타오를 것이며 인생은 완전한 웃음으로 꽃 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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