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죽공예를 몇 개월 배운 적이 있다.
처음에는 가죽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과정이 신기해서 마냥 재미있었는데 이게이게 시간이 지나 과정이 익숙해지자 귀찮은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아, 본드칠 너무 싫다. 이거 봐 손에 막 묻잖아.'
'기리메(단면 마감재) 바르는 거 너무 귀찮아.'
'이거 미싱으로 박으면 1분도 안 걸릴 텐데 지금 몇 시간째 손바느질이냐.'
'이 시간과 이 돈을 들여서 이걸 만드느니 차라리 사는 게 낫겠어. 사는 게 훨씬 경제적이야.'
귀찮은 과정들을 뿅 건너뛰고 짠하고 바로 완성작이 나오면 좋으련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가 않았다. 그렇게 점점 흥미를 잃어가던 나는 가죽공예 배우는 걸 그만두었다.
얼마 전 친구와 가죽공예에 대해 얘기하다가 내가 느낀 불만들(귀찮은 과정)을 이야기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무슨 바보 같은 소리야? 그게 진짜 재미있는 건데."
그의 말은 이랬다. 돈을 주고 사면 간편하지만 직접 만드는 이유는 결과물뿐 아니라 과정을 즐기려고 하는 거라고. 귀찮을 수도 있는 과정들에 집중하며 잡생각 없이 온전히 몰입하는 시간. 답답할 정도로 천천히 느리게 진행되지만 결국은 끝이 나는 그 희열. 결과물을 빨리, 경제적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과정 자체가 재미고 목적이라는 얘기를 듣고 나는 무언가로 머리를 맞은 것 같았다. 이렇게 가까운데서 현자를 만날 줄이야.
그랬다. 나는 과정을 즐기지 못했다. 나도 몰입하는 시간 참 좋아하는데. 내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걸 참 좋아하는데. 왜 그런 것을 하나도 즐기지 못했을까? 솔직히 나는 과정보다는 결과에만 관심이 있었다. 얼마나 빨리, 편하게, 싸게 원하는 결과물을 만드느냐 같은 경제적 관점으로 그걸 했으니 당연히 과정이 재미있을 리가. 아아, 이건 단순히 가죽공예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인생도 그렇게 살지 않았던가.
나는 항상 다른 이들의 결과물을 부러워했다.
'이렇게나 멋진 그림을 그리다니.'
'어떻게 이런 완벽한 소설을 쓸 수가 있지?'
'저 사람이 가진 명성이 부러워.'
나도 저렇게 돼야지. 나도 저 정도는 할 수 있어. 그렇게 동경하는 사람들을 흉내 내 여러 시도를 해보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당연했다. 그들이 몇 년, 길게는 몇십 년이 걸려 만들어낸 결과를 바로 얻으려 했으니 잘 될 리가 없다. 마음은 항상 조급하고, 빨리 결과가 나오지 않으니 '난 재능이 없나 봐'같은 생각으로 쉽게 포기하기 일쑤였다.
무언가를 하면서 결과를 전혀 기대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결과에만 관심이 있었고, 과정은 그 결과를 얻기 위해 견뎌야 하는 힘든 시간 정도로 생각했다. 과정이 그 자체로도 충분히 재미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말이다. 그러니 쉽게 지칠 수밖에. 재미없는 걸 계속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내가 부러워했던 사람들은 과정 자체를 즐기는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나는 항상 과정은 뿅 건너뛰고 결과를 짠하고 얻고 싶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과정 없인 결과도 없다. 그리고 결과만을 바라보고 달려가면 과정이 괴롭고 힘들다. 꼭 좋은 결과가 온다는 보장도 없고.
똑같은 일을 해도 어떤 사람은 힘들다고 생각하고 어떤 사람은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취향이나 성격의 차이일 수도 있지만 그 사람이 그 일을 바라보는 관점 때문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우리는 이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그런데 이 '열심히'라는 말은 싫은 걸 참고한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즐겁지가 않다. 그래서 열심히 살면 힘들다. 그건 견디는 삶이니까. 같은 일도 이왕이면 '열심히'보단 '재밌게'가 낫지 않을까. 생각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삶이 달라질 거라고 말하면 너무 설득력이 떨어지려나?
흔하고 오글거려서 별로 좋아하지 않는 말이 있는데 결국 내가 이렇게 쓰게 될 줄은 몰랐다.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
이 명언은 다 좋은데 이게 문제다. 꼭 누굴 이기고 싶어서 즐기는 건 아니다. 그냥 재미있게 살고 싶은 거다. 누굴 이기는 게 목적이 되는 순간 절대로 즐길 수 없을걸? 아무튼.
나는 인생이 재밌다. 앞으로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생각한 대로 살게 된다고 하지 않던가.
휴,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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