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문법, 샷의 연결
우리가 말을 할 때, 문법을 잘 모르더라도 의사소통은 가능하다. 하지만 우리의 주장을 설득력 있게 전달하고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려면 문법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그래야 의미 있는 대화가 될 것이다. 영상에서도 마찬가지로 영상 문법이 있다. 샷들의 연결 속에 숨어있는 영상의 문법에 대해서 알고 나면 여태껏 무심코 보았던 영상들이 새롭게 다가올 것이다. 감독의 숨겨진 의도를 읽어낼 수도 있다. 또한 다음 스토리는 어떤 식으로 되겠구나. 하는 예측도 가능해질 것이다. 이런 것들은 영상에도 문법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들이다. 여러 가지 영상 문법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좀 더 깊이 있는 샷의 연결과 흐름을 만들어보자. 또한 우리가 만든 영상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고민해보자.
사람의 의식세계는 굉장히 복잡하다. 하지만 영상을 통해서 의식하는 것은 오히려 단순하다고도 할 수 있다. 영상을 통해서 보이는 정보들만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상 문법은 이 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영상 문법에 대해서 잘 이해하고 공부하기 위해서는 일단 많이 보아야 한다. 평상시에 자신이 좋아했던 영화를 골라서 자세하게 다시 보자. 이제는 다른 것들이 보일 것이다. 샷들이 쪼개져서 보일 것이고, 샷들의 변화와 흐름이 보일 것이다. 샷이 바뀔 때마다 어떤 일들이 전개되는지, 카메라의 움직임은 어떤 지, 배우들의 동선은 어떻게 되는지, 그런 소소한 것들이 영화를 구성하고 스토리를 만들어 간다. 그 전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는 것을 느낄 것이다.
이제 여러분은 더 이상 단순한 시청자가 아닌 제작자의 눈을 가지게 되었다. 물론 영화를 보는 재미가 반감될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스토리에 빠져서 보는 것이 아니라 영화의 제작자의 눈으로 보게 되기 때문이다. 아니면 더욱 재미있을 수도 있다. 그 전에는 무심코 지나쳤던
장면들을 스스로 이해할 수 있게 되니 말이다. 가장 즐거운 것은 감독의 숨겨진 의도를 파악하면서 그것을 발견할 때의 기쁨이다. 여러분들도 새로운 시선으로 그런 기쁨을 발견해 보시길 바란다. 여러분의 눈을 통해 앞으로 펼쳐질 영상의 세계에서 멋진 작품들이 탄생하길 기대해본다.
-컷(cut)의 연결
우리는 영상 문법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영상 문법의 가장 기초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컷이다. 컷은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샷과 샷을 붙이는 것이다. 앞부분에 이어서 나올 다음 샷에 대한 연결이 그 흐름을 만들게 되고 스토리를 이어가게 된다. 하지만 어떤 샷이 서로 연결되는가에 따라서 우리가 만드는 영상은 천차만별의 스토리를 갖게 된다. 실질적으로 컷 연결은 영상을 이루는 모든 편집의 기본이 된다. 다만 앞, 뒤 컷의 길이와 호흡, 행동의 연결성, 인물의 시선이나 움직임의 방향에 따라서 컷의 느낌이 달라지고 뜻이 달라진다. 편집자에 따라서 영상의 차이가 많이 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주관적인 편집자의 느낌이 함께하기 때문이다. 좀 더 자세한 이야기는 후반의 편집 부분에서 이어가도록 하자.
영화의 초창기에는 이렇게 편집을 했다. cut editing
-페이드 인 아웃 (Fade In/Out)
영상 문법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도 이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다. 보통 영화가 시작될 때 검은 화면에서 서서히 밝아지는 장면을 기억해 보자. 바로 이 부분이 페이드 인이다. 페이드 인은 그 길이에 따라서 느낌이 달라지지만 보통은 기대, 기다림, 은근함, 떨림 같은 느낌이 들게 만든다. 영화관에 앉아서 영화가 페이드 인 되며 배경음악이 시작되면 그 영화에 대한 기대치가 올라가면서 흥분되지 않는가? 여러분은 그렇게 감독의 의도에 따라 천천히 영화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재미있게 영화를 보았다. 영화의 마지막 엔딩 장면에서 서서히 어둠의 블랙 화면으로 영화가 마무리된다. 이 부분이 페이드 아웃이다. 페이드 아웃은 끝, 마무리, 엔딩의 느낌이 강하게 든다. 아주 간단하지만 영상 문법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방법이다.
-디졸브(Dissolve)
디졸브는 영상의 흐름을 부드럽게 해주는 경향이 있다. 시간의 흐름을 나타내거나 장소의 이동을 보여 준다던가 할 때도 자연스럽게 쓸 수 있다. 인물의 심리상태나 몽환적인 느낌을 표현할 경우도 있다. 촬영을 할 때, 디졸브를 생각하는 샷이 있다면 앞 뒤로 좀 더 여유 있는 길이로 촬영해야 한다. 디졸브의 시간에 따라 다르겠지만 충분한 길이의 샷이 있어야 여유 있는 디졸브가 가능하다. 하지만 너무 빈번한 디졸브는 피하는 것이 좋다. 너무 자주 쓰이면 느낌이 반감되며 뜻이 흐려진다. 감독이 의도하는 경우에만 적절하게 표현한다면 생각보다 더욱 큰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한 화면 전환
샷과 샷을 연결하는 데는 와이프나 트랜지션을 활용할 수도 있다. 때에 따라서는 재미를 더하기도 하고 호기심을 자극할 수도 있다. 특히 코미디나 시트콤, 드라마에서 많이 쓰이는 것을 볼 수 있다. 편집했다는 느낌이 확실히 느껴지는 샷 연결이다. 화면 전환의 모양, 방향, 색깔에 따라서 다채롭게 가능하다. 적절히 사용할 경우에 전달하려는 의미를 더욱 잘 표현할 수 있지만 과도한 사용은 금물이다. 영상 자체가 너무 가벼워 보이고 유치해질 수가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트랜지션과 와이프의 효과는 편집하는 과정에서 좀 더 자세하게 이야기해보자.
-줌 인과 달리 인
줌 인이나 달리 인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집중하라는 의미이다. 인물이 무언가에 대해서 열심히 설명하는 장면을 상상해보자. 화면은 천천히 줌 인이 되고 있다. 나도 모르게 그 사람이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서 집중하게 된다. 화면의 포커스가 인물에게 집중되기 때문이다.
달리 인도 마찬가지다. 카메라가 점점 가까이 인물에게 다가감에 따라서 우리도 그 인물과 물리적으로 가까워짐을 느낀다. 그 사람에게 다가간다는 것은 집중한다는 의미다. 반대로 줌 아웃이나 달리 아웃이 된다면 그 인물에게서 벗어나고 싶다는 뜻이 될 것이다. 앞에서 아무리 열심히 이야기를 해도 카메라는 점점 멀어져 간다면 시청자도 집중하기 힘들다. 영상 문법에서 줌과 달리는 가장 기본적이고 직접적으로 시청자를 의도하는 방법이다.
-서스펜스와 스릴, 긴장감
여름이 되면 극장가는 공포물과 스릴러의 영화들이 자주 등장한다. 왜 그럴까? 왜 해마다 여름이 되면 이런 영화들이 더욱 많이 나오는 걸까? 우리는 공포나 스릴을 느낄 때 오싹한 기분을 경험하게 된다. 그런 뒷덜미가 싸한 느낌이 서늘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여름에 이런 영화들을 선호하는 게 아닐까? 하지만 의도된 이런 영화들의 문법을 조금 알고 본다면 남들이 놀랄 때도 덤덤해질 수 있다. 이제 뭔가 사건이 터질 때가 되었다는 것을 미리 알 수도 있다.
영상에서 의도된 암시들이 있기 때문이다. 물리적으로 서스펜스와 긴장감을 유지시키기 위해서는 점점 편집 컷이 빨라진다. 아무리 긴장되고 위태로운 상황이더라도 롱테이크로 찍은 마스터 샷을 보게 되면 그 느낌은 너무나 다르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같은 스토리를 표현하더라도 샷을 어떻게 연결하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인 것이 편집의 묘미다.
함께 상상해보자. 늦은 밤 침대에서 평온하게 잠든 여인이 화면에 보인다. 그때 누군가의 시점 샷으로 집 밖의 현관 주위를 살피는 화면이 연결된다. 다시 잠든 여인의 평온한 얼굴이 클로즈업된다. 문고리만 보이는 화면에 검은손이 프레임 인 된다. 다시 잠든 여인의 풀 샷이다.
다시 시점 샷으로 살짝 열린 문틈 사이로 방안을 바라본다. 여인은 살짝 미소까지 지으며 자는 모습이다. 이런 장면들이 교차되어서 점점 빠르게 보이면서 서스펜스와 스릴을 자아낸다.
게다가 음향효과가 한몫을 단단히 하게 되면 관객들은 감독이 의도하는 데로 빠져든다.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알 수 없는 환경에 놓인 여자에게 감정 이입이 된다는 것이다. 일단 감정 이입이 되는 데 성공하게 되면 우리는 알지만 여자는 모르는 정보들에 대해서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그녀에게 위급함을 전하고 싶어 진다. 하지만 그 위급함을 알려줄 수는 없는 현실에서 관객들은 안타까운 마음이 생긴다. 이런 사람들의 심리를 알게 되면 원하는 영상의 연출을 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원하는 데로 관객을 끌고 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또한 잠자고 있는 여인과 침입자의 대립된 두 사람의 관계성을 교차하면서 보여주기 때문에 더더욱 효과는 극대화된다. 이렇게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이 이어지고 갑자기 어떤 사건이 일어나게 되면 충격은 배가된다. 이런 심리와 감정을 밀고 당기는 것도 우리가 알고 나면 좀 더 영상제작에 활용할 수 있다.
-감독의 의도
스토리 자체가 재미있고 흥미로우면 영화도 재미있어야 정상일까? 늘 그렇지는 않다. 소설로는 아주 흥미롭게 읽었던 기억이 있는데 막상 영화로 보게 되면 재미가 반감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경험할 수 있다. 사람들의 기대심리를 채워주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 때문이다. 그리고 영상으로 표현한 것이 나의 상상에 미치지 않는다면 실망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영상을 만드는 입장에서 좀 더 고민을 해야 한다. 호기심을 유발하고 영상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런 고민들이 들어간 영상은 티가 난다. 감독의 생각들이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다. 여러분의 생각이 들어간 영상을 만들어야 한다. 당신의 철학이 함께하는 영상은 더 이상 단순한 콘텐츠가 아닌 여러분의 작품이 될 것이다.
예를 들어 금연에 대한 확고한 마음이 있는 분이라면, 제작되는 영상의 스토리를 불문하고
중간에 금연에 대한 이야기가 함께 들어갈 수도 있다. 실제로 그런 영화가 있다. 심지어 할리우드의 유명한 배우가 나오는 영화들도 그렇다. (영화 ‘데블스 에드버킷’의 주연인 키아누 리브스는 담배로 폐암을 앓게 된다. 담배에 대한 클로즈업이 자주 나온다. 영화의 마지막에는 주인공이 담배를 끊은 것을 보여준다.)
우리의 생각을 영상 속에 함께 표현한다는 것을 주저하지 말자.
그런 영상이 살아있는 영상이다.
-메타포 (metaphor)
은유적인 방법으로 영상을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직접적인 스토리의 전개가 아닌 전혀 다른 형태의 샷을 연결함으로써 앞부분의 숨겨진 의미를 파악하게 한다. 어떻게 보면 메타포가 영상제작의 묘미가 아닐까? 생각이 된다. 대놓고 드러내는 것보다 묘하게 숨겨진 의미들이 더욱 깊이 다가오는 법이다. 이것을 잘 이용한다면 좀 더 깊은 차원의 영상을 제작할 수 있다.
보통 눈을 사로잡는 할리우드 영화보다는 유럽식의 예술영화에서 더 많은 예를 찾아볼 수 있다.
간단하게 예를 든다면, 두 남녀가 서로 바라보고 있는 샷 다음에 탐스러운 빨간 장미꽃이 활짝 피는 샷을 연결했다. 어떤 상상이 되는가? 앞의 두 남녀는 심지어 어떤 사이인지 아무 정보도 없지만 뒤에 오는 장미로 인해서 우리도 모르게 두 사람의 관계성에 대해서 상상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느끼기에 연인이 될 두 남녀를 암시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런 은유로 숨겨진 의미를 살포시 가미하는 것이 바로 메타포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함축된 의미들을 미리 생각하면서 영상을 제작한다면 여러분의 영상은 더 이상 1차원적인
영상이 아니다. 그 안에 숨겨진 의미가 담겨있는 주관적인 시점을 가진 영상이 될 것이다.
메타포에 대한 것을 강조하는 이유는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이 부분에 대한 고민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단순하게 보여주는 목적의 영상에서 벗어나 함께 생각할 수 있는 영상으로 한 차원 높은 단계를 지향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모든 장면에서 활용할 수는 없겠지만 적재적소에 여러분의 고차원적인 의미를 내포하는 메타포를 이용하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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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는 콘티뿐만이 아니라 영상 제작, 촬영의 일부분까지도 이해가 가능하다.
또한 영상의 흐름과 샷의 연결성도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어떻게 하면 시청자들의 관심과 집중을 유도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고민해 보았다.
콘티를 어떻게 만들지에 대해서 막막했던 마음이 풀렸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림 4> 콘티의 예시
실제 콘티를 보면서 참고하고 나만의 콘티를 만들어보자.
물론 그림 실력이 좋으면 유용하겠지만 좀 엉망이라도 괜찮다. 사람의 앞, 뒤만 구분 지을 정도면 우리의 생각을 표현하기에는 충분하다. 충분히 콘티 작업을 하면서 머릿속으로 촬영을 진행하는 것이다. 콘티 작업은 지겨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이미지 메이킹을 하는 시간으로 매우 중요한 시간이다. 콘티 작업을 직접 하면서 머릿속에 생생하게 영상을 그리게 되면, 실제로 촬영을 할 때 아주 큰 힘이 된다는 사실을 꼭 명심하기 바란다. 샷의 흐름을 어떻게 이어가면 좋을지, 이 장면에서 인물의 심리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어떤 샷이 좋을지, 카메라의 움직임은 어떻게 하는 것이 효과적일지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단순히 촬영만 하는 것이 아닌 종합 예술을 위한 작업을 선행하는 것이다. 촬영과는 다르게 콘티는 얼마든지 다시 그리고 바꾸고 내 마음대로 수정할 수가 있다. 다양한 방법으로 접근해보고 나만의 독특한 영상문법을 만들어보자.
이 시간을 충분히 즐기자. 우리의 상상력을 더욱 발휘하여 다양한 샷들을 만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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