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스타트업, 자영업. 뭐라고 부르든 사업을 시작하는 사람들은 한 번쯤 디자인과 디자이너에 대해 고민한다. 스타트업에는 항상 사람이 부족하고, 사람은 구하기 힘들다. 하지만 충분히 인력을 충원할 수 있는 경우에도 고민은 끝나지 않는다. 대부분은 2가지 질문에 직면할 것이다.
1. 지금 디자인이 필요한가?
2. 언제, 어떤 디자이너를 구하지?
이 2가지 질문에 도움을 주거나 해결해주려고 하는 인터넷의 수많은 정보를 보기에 앞서 디자인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디자인 작업을 하면서 가장 난처한 때는 성공한 회사나 제품의 디자인을 모방하길 원하거나 그보다 훨씬 더 높은 질의 작업 결과물을 바라는 경우보다 '나는 디자인을 몰라서...', '그건 디자이너님이 더 잘 아시니...' 라는 반응이었다.
어떤 사람들에게 디자인은 하기 싫은 작업이거나 피하고 싶은 작업이었다. 대부분은 최고의 결과를 원했다. 하지만 최고의 기준은 결코 말해주지 않았다. 차리리 상사나 사장님이 좋아하는 경우를 만들어내는 것이 더 편한 때가 많았다. 하지만 그 상사나 사장님도 결국 실무자와 똑같은 어려움을 안고 있었다. 그나마 도움이 되는 말이 시장에서 잘 팔리거나 사람들이 좋아하면 된다는 요구사항이었다.
스타트업은 상식적인 회사와 다르다. 10명 이하의 사람들이 모든 일을 처리한다. 모든 자원이 부족하고 구성원이 사업의 실패의 책임을 나눠져야 한다. 그런 상황에서 적합한 디자인을 시간 내에 만드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특히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프로그래머와 디자이너의 긴밀한 협조가 필수적이기 때문에 민감한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많다.
디자인은 제품이고 제품은 그걸 만든 사람들을 투영한다. 빠른 디자인, 멋진 디자인보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성품이나 생각을 담아내는 디자인이 스타트업에게 가장 좋은 디자인이다. 재미있는 사람이 만든 제품은 재미있고, 사려깊은 사람이 만든 제품은 어른스럽고, 엉뚱한 사람이 만든 제품은 기발하다. 스타트업 제품에 필요한 것은 개성이고, 디자인에 더 몰두할 수록 제품은 더 분명한 개성을 갖게 된다. 그리고 사람들은 개성있는 것을 사랑한다.
UX와 브랜드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많은 말을 한다. 사용자를 바라보고, 사용자의 요구에 귀를 기울여라고 하지만 사용자가 무얼 보고 있는가에 대해서 말을 하는 사람은 적다. 사람들은 개성있고, 다른 제품을 원하고, 제품이 가진 특성을 통해 자기 자신을 표현하고 싶어 한다. 우리 제품의 개성을 모른다면, 그걸 개선할 수도 없고 더 가치있는 경험을 창출해낼 수도 없다.
이제 앞의 두 가지 질문, 디자인이 필요한 시점과 어떤 디자이너를 구할지에 대해 대답할 차례다.
가장 먼저 할 일은 제품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생각하는 일이다. 만들고 싶었던 제품을 만들어 냈다면, 그 제품은 이제 성장이 필요하고 디자인이 필요한 시점이다. 디자인은 고객의 기억에 제품의 개성을 남기고 호감을 가지게 한다. 이건 단순히 비주얼이 좋거나 보기에 좋아서가 아니다. 고객은 제품설명서를 보고 제품을 구매하지 않는다. 고객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제품을 산다. 사람들이 그 제품에 매력을 느끼고 좋아하고 즐기길 바란다면, 디자인이 필요한 시점이다.
제품의 개성과 어울리는 디자이너를 구해야 한다. 제품이 사람들 사이의 따뜻함을 추구한다면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 좋다. 제품이 편안하고 즐겁다면, 편안하고 즐거운 사람이 좋다. 대부분은 분야별로 적합한 디자이너를 구하려고 하는데, 이런 경우는 구인도 힘들고, 좋은 디자인이 나오기도 힘들다. 비주얼 디자인의 경우는 수많은 레퍼런스와 Kit와 가이드라인이 있다. 스타트업을 위한 대부분의 툴들은 배우기 쉽고, 높은 생산성을 갖도록 제작된다. 스타트업의 디자인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회사와 구성원에 따라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툴과 분야로 한정하면 안된다. 디자인은 놀라울 정도로 유연한 직종이다.
디자이너가 당신의 팀에서 당신의 회사에서 해낼 일은 없는 것을 만들어내는 것도 아니고, 물건을 잘 팔리게하는 것도 아니다. 없는 비전을 만들거나 세계를 뒤흔들 혁신을 만들어야 할 필요도 없다. 디자이너는 풍부하게 만든다. 디자이너는 다른 구성원들에게 우리가 만들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상기시키고 무엇보다 이제 막 태어난 제품을 확장시키고 더 자라게 할 것이다.
팁을 하나 더 말하자면, UX에 대한 이해가 있고 경력이 있는 디자이너라면, 아마 작은 부분부터 바꿔가려고 할 것이다. 밤새워가며 기존의 팀원들이 만들어낸 것들에게 대한 존중과 이해를 위해 아이콘 한 개, 제품 소개 페이지의 문구,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여백과 실수들을 바로잡아갈 것이다. 성장은 어제를 기반으로 한다. 정말 좋은 디자이너는 천천히 제품을 바꿔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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