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업일치'
성인남녀 10명 중 9명 이상이 언젠가 이루고 싶은 ‘꿈의 직업’이 있다고 답했다. 이들은 가장 희망하는 꿈의 직업으로 ‘성공한 창업자’를 꼽았다.
이런 직업을 꿈꾸는 이유 중에는 취미와 작업을 하나로 통일하는 일명 '덕업(덕질+직업) 일치'라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
돌아보면 나 또한 덕업일치에 어느 정도 성공한 듯하다. 커리어의 시작은 외국계 식품회사에서 원장관리를 담당하던 회계부서 사원이었는데 지금은 스타트업에서 마케팅을 담당하며 이렇게 취미로 관심 있는 기업들에 대한 글을 쓰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문득 궁금해졌다. 나의 덕업일치가 순도 60%라면 순도 100%의 덕업일치를 이룬 사람이 있을까?
'무진장 신발 사진이 많은 곳'
무신사의 창업자 조만호 대표는 적어도 120% 순도 덕업일치인 듯하다. '무진장 신발 사진이 많은 곳’의 준말인 무신사는 2001년 스니커즈 덕후였던 조만호 대표가 고등학교 3학년 재학 시절인 2001년 개설한 프리첼 커뮤니티의 이름이다. 국내외 유명 스포츠 브랜드 한정판 운동화 사진을 공유하던 비공개 커뮤니티다. 그렇게 무신사에 오른 상품은 곧바로 베스트셀링 아이템이 됐다.
당시 무신사의 파급력은 배정남, 반윤희 등 무신사에서 패션피플로 지정한 인물이 일약 스타덤에 오를 지경이었다. 대학시절인 2003년 조만호 대표는 무신사 커뮤니티를 길거래 패션, 스타일링 정보를 전하는 미디어 '무신사닷컴'으로 발전시켰다. 2005년에는 패션 트렌드를 소개하는 '무신사 매거진'을 선보이며 차근차근 깊이를 더해갔다.
기존 웹사이트에 커머스 기능을 도입해 온라인 편집숍 '무신사스토어'를 2009년 론칭했다. 여기에서 처음 소개한 ‘커버낫’, ‘디스이즈네버댓’ 등 신생 브랜드가 젊은 층 사이에서 유행하며 입소문을 탔다. 이후 국내 스트리트패션의 대표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무신사만의 트렌드를 읽는 감각과 스토리텔링 덕분이라는 평가다. 무신사의 진화는 현재진행형이다.
'무진장 입점하고 싶은 곳'
패션업계에서 무신사의 영향력은 막강해졌다. “백화점보다 들어가기 어려운 곳”이란 말이 통용될 정도다. 무신사의 현재 회원수는 600만 명으로 2005년부터 시작한 네이버 카페 '디젤매니아'의 회원 수가 100만 명인 것을 감안하면 무신사의 회원수는 압도적이다. 무신사에 입점한 브랜드는 3,500여 개이고 월 최대 방문자수만 7,800만 명이 넘는다. 신규 가입자는 월평균 7만 명 선으로 꾸준히 유입되고 있다. 10·20대 회원은 385만 명으로 전체 비중의 70%를 차지한다.
국내 10·20대 인구가 약 1,190만 명(2017년 기준)인 것을 감안하면 약 3명 중 1명은 무신사 회원인 셈이다. 이렇게 무신사는 10·20대가 새 패션 트렌드를 접하고 또래와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패션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하였다.
‘반스’ ‘앤더슨벨’ ‘커버낫’ 등 무신사를 통해 유명해진 브랜드만 수십 개가 넘는다. 상위 20여 개 브랜드 평균 연 매출은 90억 원대에 달한다. 아디다스·뉴발란스·반스 등 글로벌브랜드들 또한 무신사를 필수채널로 애용하고 있다. 특히 휠라의 경우, 2017년부터 2조 원 이상의 매출액을 올리며 '리브랜딩'에 성공한 케이스이다.
'무쏘의 뿔처럼 거침없이 달리는 곳'
자체제작브랜드(PB) '무신사 스탠다드'를 통해 베이직한 아이템을 소개하며 매출액 170억 원을 올렸다.
'무신사 스탠다드'는 합리적 소비를 표방한다. 기존의 무신사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와 굳은 신뢰 덕분에 자체제작브랜드가 기존의 무신사의 소비자들에게 조금 더 쉽고 빠르게 어필할 수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온라인 리테일러 '아마존' 또한 5개의 자체제작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 스트리트웨어 'Find', 란제리웨어 'Iris & Lilly', 특별한 행사 및 상황에 따라 구분하여 입는 'Truth & Fable', 유행을 타지 않는 평상복 'Meraki' 그리고 애슬레저 브랜드 'Aurique'가 있다. 그동안 '아마존'에서 구매하는 사람들의 구매패턴을 분석해 자체 브랜드로도 충분히 경쟁할 수 있는 카테고리를 선별 후 구매자들의 선호하는 스타일과 가격대를 반영해서 기획했다. 무신사가 첫 자체제작브랜드를 굳이 '무신사 스탠다드'로 이름 지으면서까지 특정 구매 수요를 겨냥한 것은 추후 자체제작브랜드의 카테고리를 아마존처럼 넓혀나가겠다는 계획이 깔려있기 때문일 것이다.
'무신사 테라스'는 패션뿐만 아니라 문화, 음악, 디자인, 전시 등 무신사만의 색이 다분히 묻어난 콘텐츠를 소개하는 오프라인 공간이다. 단순히 기존의 트렌드를 엿볼 수 있는 곳을 넘어 이 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기성 브랜드들이 시도한 적 없는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며 유일무이한 무신사의 브랜딩의 전초기지로 기획한 듯하다. 판매를 주목적으로 두지 않는 '애플스토어'와 비슷하다. 예로, '애플스토어'에서는 고객들이 애플 제품을 체험하고 즐겁고 긍정적인 기억을 심어주려고 노력한다. 이것은 단순히 친절을 베푸는 것을 넘어 고객의 경험을 한 차원 높여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것으로 마케터들은 'Customer Experience'라고 한다. 오프라인에서 브랜드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을 때 고객들은 그 브랜드에 대한 가치를 인지하게 되고 애정을 갖게 되기에 아무리 강조를 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다.
'무신사넥스트제너레이션'은 신진 디자이너에게 자신의 디자인 철학을 알릴 수 있는 기회이고 소비자들은 신선한 날것의 패션센스를 접할 수 있는 곳이다. 무신사 내 패션업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들이 비공개적으로 진행할 수 있음에도 이렇게 공개적으로 진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재능있는 아이돌 연습생들이 '프로듀스 101'을 통해 대중의 주목을 받고 스타로서 한발 더 내디딘 것을 보면 무신사의 이런 시도는 쉽게 이해가 간다. ‘프로듀스 101’ 시리즈에서 팬들은 지켜보고 응원하는 존재에서 나아가 아이돌을 기획하고 데뷔까지 시킬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존재다. 이는 변화한 팬덤 문화가 반영된 모습이다. 대중문화 평론가 김헌식 씨는 “시청자가 직접 실시간으로 참여하는 과정이 성취감을 느끼게 하면서 인기 요인이 됐다”고 설명했다. '무신사넥스트제너레이션' 또한 선발과정을 통해 대중의 관심과 애정을 얻고 그들의 팬덤 문화를 장려하고자 한다.
그리고 여기서 더 나아가 신진 패션 브랜드를 위한 공유 오피스 '무신사 스튜디오'(MUSINSA STUDIO)를 운영하며 입점 브랜드들의 비용 절감과 입점 브랜드 간 네트워킹 환경을 제공 중이다. 지하에는 제품 촬영 및 모델 촬영을 할 수 있는 스튜디오가 있고, 택배를 보낼 수 있는 부스와 의류 창고가 마련되어 있다. 입점 브랜드는 무신사 스튜디오 상주 패턴사와 함께 생산을 진행도 가능하다. 무엇보다 동대문 시장과 가까워 신진 디자이너들의 입장에서 고민하고 그들을 배려한 흔적이 짙다. '무신사 스튜디오'는 현재 입주율 80%를 넘겼다. 무신사의 최종 목표는 신진 디자이너 인큐베이팅이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기대되는 곳'
'무진장 신발 사진이 많은 곳’이 이렇게 성장할거라고 누가 상상했을까? 돌이켜보면 무신사는 좁고 작게 시작했기 때문에 패션에 관심 많은 특정층을 효과적으로 공략할 수 있었고, 이제는 글로벌 시장까지 넘볼 수 있게 되었다. 최근 무신사는 세계 최대 벤처캐피털(VC)인 세쿼이아캐피털에서 2,000억 원의 투자를 유치하였다. 테슬라가 2000년 중반에 미국 에너지국으로부터 5억 달러에 가까운 보조금을 확보한 것만큼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기폭제가 될 것이다. 그 일환으로 우선 전국 세 곳에 분산돼있는 물류센터를 하나로 통합해 2020년 중 직접 해외배송에 나설 계획이다. 대부분의 회사들은 유통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하지만, 다년간 무신사스토어를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무신사는 유통을 상당히 진지하게 생각한다. 현지 파트너를 통해 수출하는 것보다 무신사가 직접 배송을 하는 것이 초기에 비용이 더 발생하지만, 직접 배송을 통해 고객경험을 통제할 수 있고 무신사의 브랜드를 강화해주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필수불가결한 전략이다.
'다 여기서 사. 무신사'라는 무신사의 광고카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아니었다. 무신사의 조만호 대표는 “2020년엔 거래액 1조 원을 달성해 아시아 최대 패션 플랫폼 회사로 도약하겠다”라고 밝혔다. 이제까지 무신사의 행보를 보면 무신사는 선발주자이지만 누구보다 빠르게 움직였다. 지금의 기세를 유지한다면 향후 몇 년간 후발주자 패션브랜드와의 격차가 더 커질 것이다. 사람들이 갈망하는 브랜드라는 것 자체가 무신사가 결코 쉽게 모방될 수 없다는 분명한 증거이다. 무신사는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기대되는 곳'이 틀림없다.
참고자료:
https://economictimes.indiatimes.com/industry/services/advertising/vertical-integration-is-crucial-agam-berry-quantified-commerce/articleshow/63899717.cms
http://www.donga.com/news/article/all/20190423/95176365/1
https://www.insight.co.kr/news/219839
https://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8218160&memberNo=8358036
https://news.joins.com/article/23498371
http://www.donga.com/news/article/all/20191112/983311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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