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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 대학교를 다니던 시절 나를 친동생처럼 살뜰하게 챙겨주던 분이 있었다. 10여 년이 지났는데 링크드인을 통해서 문자를 보내왔다. 반가운 마음에 혹시 한국에 오실 일정이 생겨서 연락을 준 걸까 하는 기대와 함께 메시지를 읽었다.

"너에게 소개해주고 싶은 사람이 있어."

참으로 설레는 문장이다. 물론 이성친구가 아닌 커리어적으로 혹은 인간적으로 서로 도움 혹은 자극이 될 수 있는 분을 소개해주고 싶으셨던 것 같다. 최근 창업진흥원, 모비인사이드, 아웃스탠딩 등 여러 매체에 스타트업에 대한 글을 기고하는 것을 알고 내게 도움을 주고 싶으셨던 것 같다. 덕분에 그 분과 짧은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었고 곧 직접 얼굴을 보고 대화하기로 하였다. 찾아갈 만반의 준비를 하고 곧 찾아갈 테니 가능한 시간을 말해달라고 했다. 통상 이러면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어색한 조우를 미루거나 회피하는데 이 분은 달랐다.

"내일 점심 가능하세요?"

예사롭지 않은 대답이었다. 실행력 120%를 삶의 모토로 삼는 내게 큰 자극이었다. 벌써 이 분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다음 날, 약속한 장소로 갔다. 내가 아는 것이라곤 그분의 링크드인 상 프로필 사진이 다였다. 식당 내 조용한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기다렸다. 약속된 시간이 되었을 때 메시지가 왔다.

"저 안쪽에 둥근 테이블에 자리 잡았습니다 ^^ 도착 후 식당 안으로 들어오시면 검은 상의에 어두운 색상의 체크무늬 재킷을 입고 있는 저를 발견하실 수 있습니다 :)"

서로 얼굴을 모르니 엇갈렸던 것이다. 그분이 계신 테이블을 찾았고 서로 신분을 밝혔다. 처음 뵙는데 너무나도 환하게 웃으면서 인사를 해주셔서 깜짝 놀랐다. 대화를 시작하며 사실 조금은 깐깐하고 건조한 도시 여성을 예상했는데 상당히 밝고 쾌활한 성품을 지니셔서 다시 한번 사람은 직접 겪어봐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그분이 자신의 커리어에 대해서 얘기해주시는데 이건 나만 듣기에는 흥미롭고 아까운 것 같아 아래와 같이 급제안을 했다.

"잠깐 얘기를 나눴는데 그동안 쌓으신 커리어가 흥미롭네요. 이걸 콘텐츠화해보는 건 어때요? 제목은 '다짜고짜 인터뷰'입니다. 물론 시리즈의 1호 인터뷰 대상이시고요."

그분에겐 거절하기 힘든 제안이었을 것이다. 편하게 거절하기에도 아직은 너무 어색한 사이였기에. 그렇게 일문일답이 시작되었다.


사진=카이스트


Q. 카이스트를 졸업하셨네요. 초면에 죄송한데 정말 공부가 제일 쉬웠나요?

A. 다양한 사람들에게 다양한 재능이 있는데, 저는 시험을 잘 보는 재능이 있었던 것 같아요. 미국에서 살다가 15세에 귀국했는데, 한국어도 잘 못하고 성적도 전교 꼴등 수준이어서 받아주는 학원이 없었어요. 급한 마음에 과외도 고민했지만 그마저도 적응이 쉽지 않았어요. 결국, 국민학교(현재 초등학교) 교과서를 모두 구해서 독학을 시작했어요. 중학생이 국민학교 교과서를 손에 쥐고 끙끙대는 게 상상이 어렵겠지만 당시 전 다른 방도가 없었어요.

그렇게 국민학교 교과서들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중학생 교과서를 들었을 때쯤 조금씩 수업을 따라갈 수 있었어요. 하지만 거기서 만족하지 않고 남들보다 더 집중하고 노력했어요. 돌아보면 제가 같은 학년의 친구들처럼 한국어가 더 편했다면 그렇게 노력을 했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요. 익숙하지 않았던 한국어 덕분에 학업에 더 집중하고 더 노력했던 것은 아닐까요. 결국 그렇게 치열하게 노력하던 어느 날 선생님이 성적표를 나눠주시는데 갑자기 한 말씀하시더군요.

“우리 반에 전교 1등이 나왔다. 박은수 일어나.”

당사자인 저도 놀랐지만 주위의 친구들이 더 동요하는 것이 느껴졌어요. 1년 전 아니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한국어가 서툴렀던 애가 어느새 전교 1등이라니. 집에서 국민학교 교과서를 밤새 붙들고 씨름한 것을 몰랐으니 당연했어요. 아마 그때부터 죽기 살기로 노력하면 결과는 결코 배신하지 않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그 후 시험에 대한 두려움이나 부담감이 없어졌어요.


Q. 혹시 어린 시절 꿈이 뭐였어요?

A. 한국인 최초로 노벨상을 받고 싶었어요. 어렸을 때 에이즈가 국제적으로 큰 이슈였고 병에 대한 무지에서 오는 공포가 큰 시절이었는데, 5학년 때 우연히 에이즈 환자가 쓴 에세이를 보고 몇 시간을 엉엉 울었어요. 그때 내가 꼭 치료제를 개발해야겠다 다짐했죠.

“에이즈를 치료한다면 노벨상 수상도 가능할꺼야”

아버지의 말에 정말 알아보니 한국인의 노벨상 수상은 정말 전 국민이 간절하게 바라는 범국가적 과제나 다름없었어요.

‘그래, 내가 에이즈 치료법을 찾는다면 생명도 살리고 국민적 염원인 노벨상 수상도 실현할 수 있을 거야!’
이때가 바로 저의 꿈이 노벨상 수상을 하는 생명공학자로 뚜렷해지고 선명해진 순간이었죠.


Q. 학창시절 때 박은수님은 어떤 분이었나요?

A. 원래 혼자 책 보는 것을 가장 좋아하는 조용한 성격이었는데, 90년대의 미국은 아시아인에 대한 선입견-공부만 잘한다-이 너무 강했고, 어린 마음에도 그런 부분을 깨뜨리고 싶었던 것 같아요. 음악과 운동을 열심히 하고, 의도적으로 활달하고 적극적인 태도로 매사에 임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사진=카이스트


Q. 카이스트 학사 졸업 후 서울대에서 석사를 취득하였는데 교수를 꿈꾸셨던 건 아니었나요?

A. 사실 진로에 대한 고민이 많았어요. 원하던 생명공학 전공으로 공부하게 되었고, 이론은 재미있었지만 연구 실험이 필수적으로 많았고, 연구소 인턴하면서 동물 실험하는 과정이 매우 힘들었어요.

‘과연 내가 평생 업으로 이 길을 즐겁고 열심히 해 낼 자신이 있을까?’

이러한 관점에서 진로에 대한 고민을 조금 더 심도 있게 하고 싶어서 평소 관심 있던 국제경제/정치 전공으로 서울대 국제대학원에 진학을 했어요. 그리고 교수라는 직업은 누군가에게 가르침을 제공하거나 연구를 하는데 저는 제 커리어로 고려해 본 적은 없어요. 네이버 공개채용에 지원하게 되었고 그 결과 12년이 넘는 커리어를 네이버에서 쌓게 되었다.


Q. 2008년 7월 돌연 네이버에 입사를 했다. 그 이유는 무엇이며 당시 네이버는 어느 정도였나요?

A. 대학원 재학 당시 컨설팅펌 인턴 인터뷰를 네이버 본사에서 진행했는데, 그때 우연히 학부 선배님과 마주치게 되었어요. 네이버 특유의 분위기(당시에는 다소 파격적이었던 자유로운 복장, 사내 카페에서 자유롭게 토론 중인 직원들, 레고 테이블 등 휴식 공간 등)에 호기심이 생긴 상태에서 선배님께 회사에 대한 설명과 하고 계신 업무 등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집으로 돌아온 후 네이버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게 되었어요. 회사의 수익모델도 탄탄했고, 세계적으로 탑티어라고 생각했던 기술력, 무엇보다 가장 매력적이었던 것은 매우 뛰어난 인재들이 많았고 이들에게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자세를 장려하는 문화였어요. 저 또한 그곳에서 많이 배우고 성장할 수 있을 것 같아 신입공채에 지원하여 입사하게 되었어요.


Q. LINE과는 도대체 무슨 인연인가요? 지금 전화기에도 카톡 대신 LINE만 설치되어 있나요?

A. 네이버가 2천억 원 이상 투자하며 일본에 진출하였어요. 하지만 결과적으로 괄목할만한 성과를 내지 못하자 철수를 준비하였죠. 그런데 바로 그때 LINE이 대다수의 예상을 뒤엎고 일본 시장에서 꽤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어요. 회사에서 LINE업무를 조금 더 적극적으로 해볼 심산으로 내부 지원자를 찾았는데 평소 글로벌 서비스에 꼭 도전해보고 싶었던 저는 고생길이 뻔하지만 지원하였어요. 라인에 합류하여 일본 외 다른 국가로의 LINE 시장진출 업무를 담당하였어요. 그렇게 LINE과의 긴 인연이 시작되었죠. 그리고 현재 제 전화기에는 LINE과 카톡 모두 설치되어 있어요. ^^


사진=LINE


Q. Naver 4년 7개월과 LINE 7년 8개월 장장 12년이 넘는 세월을 뒤로하고 네이버를 나왔는데 당시 심정은 어땠나요?

A. 네이버는 제게 친정과도 같은 곳이에요. 개발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제가 검색 관련한 사업을 기획하고 긍정적 성과를 이끌어내자 계속 신규 프로젝트를 맡으며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준 직장이죠. 물론 제 젊은 시절을 오로지 업무에 몰두하며 보낸 점은 다소 아쉽지만 그만큼 성과에 대한 보상도 확실하고 제 스스로도 성장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기에 후회는 없어요. 하지만 모든 제품과 서비스에는 프로덕트 라이프사이클(제품 수명 주기)이 있듯이 네이버에서의 제 커리어 라이프사이클도 종료 시점을 향하고 있음을 13년 차가 되었을 때 엄습해왔죠.


Q. Tenuto라는 스타트업을 공동창업하였다. 무엇이 창업으로 이끌었나요?

A. 회사생활만 13년 가까이하면서 저도 언젠가 창업을 한다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종종 했어요. 그리고 우연찮은 기회에 LINE에서 같이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분들과 창업에 대해 얘기를 하다가 자연스럽게 사업 아이디어에 대한 논의로 확장되었고 거듭된 대화 끝에 결국 실행에 옮기게 되었어요. 사실 다들 무척 뛰어난 개발자들이었기에 무엇을 하더라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있었어요. 그리고 그러한 맨파워로 인해 초기투자도 비교적 수월하게 유치할 수 있었고요.


Q. 8개월이란 짧은 기간 근무하였고 현재 해당 기업은 검색 불가한데 혹시 폐업한 건가요?

A. 당시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손님이 줄어 폐업하는 자영업자들이 많았어요. 그중 타로카드처럼 대면 서비스가 필수인 자영업자들의 타격이 컸죠. 그래서 그런 분들이 화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손님은 온라인 결제로 서비스에 대한 보상을 지불한다면 수요와 공급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사업을 시작하니 생각했단 소비자들의 불편이 소비자들의 기존의 익숙한 삶의 패턴을 변경할 만큼 크지 않았어요. 한 가지 간과했던 것은 사회적 거리두기에도 불구하고 잘되는 집에는 손님들이 줄을 선다는 것이에요. 반대로 안 되는 집은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에 반응이 뜨뜻미지근하였죠. 결과적으로 Product Market Fit(제품-시장 궁합)을 찾지 못했던 것 같아요. 이후 Pivot을 논의하였지만 동료들이 구상한 신규사업과 저의 가치관이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아 돈은 잃더라도 사람은 잃고 싶지 않은 마음에 퇴사를 결정하였죠. 당시 공동창업자들은 최근 메타버스로 다시 한번 pivot하여 후속 투자도 잘 받고 새로운 서비스를 준비하는데 열중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Q. 다시 창업할 마음은 없는 건가요?

A. 현재로서는 Lunit이 암정복이라는 미션을 달성하는데 전력으로 기여하고 싶은 마음이 커요. Lunit이 정말 예상보다 빠르게 미션을 달성한다면 모를까 아직 Lunit에서도 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아요.


Q. 뜬금없이 Lunit이라는 스타트업계에서 큰 기대를 받고 있는 기업에 합류하였어요. 혹시 스카우트당한 건가요?

A. 단순히 스카우트를 당했다고 보기보다는 Lunit의 경영진과 오랜 기간 논의를 거쳐 내린 결정이라고 보시는 게 맞는 것 같아요. 기업의 경영진이 학창 시절부터 오랜 기간 알고 지냈던 지인들이었지만 합류에 대한 고민은 컸어요. 헬스케어 산업에 대한 경험과 지식은 전무하여 제가 과연 얼마나 기업의 성장에 기여할 수 있을지 뚜렷하게 그려지지 않았던 것 같아요. 하지만 경영진과 오랜 기간 소통하며 그들에 대한 믿음과 신뢰로 합류를 결정하게 되었어요. 물론 기업의 비전인 암정복 역시 더 건강하고 나은 세상을 이륙하기 위해 이바지하고 싶은 어릴 적 소망과도 일치하였기에 합류를 결심하는데 큰 자극제가 되었어요.


사진=브런치 'innovationlab'


Q. Lunit은 어떤 기업인가요? 적응하기 어렵거나 불편한 점은 없었나요?

A. Lunit은 세계 최고의 인공지능 기술을 지향함과 동시에 기술이 ‘올바른 목적’에 사용되어 더 많은 생명을 살리는데 기여하는 것을 기업의 설립목적으로 하고 있어요. 사실 네이버와 라인은 몇십 개의 B2C 프로젝트들을 동시에 진행하고 유저 반응 및 경쟁사 상황에 빠르게 대응하는 것이 서비스 성공에 필수적이기 때문에, 매우 짧은 주기로 퍼포먼스 지표 중심의 평가를 엄격하게 진행하고, 주어진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바로 해산하는 경우도 빈번하죠. 그렇게 서비스 릴리즈 주기가 짧고, 단기간 집중하여 업무를 하는 기업에서 오랫동안 근무하다가 Lunit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이곳은 FDA와 같은 외부기관 승인이 필요한 사업이다 보니 정말 긴 호흡을 갖고 업무를 진행한다는 것을 알았어요. 지금의 방식이 틀렸다고 할 순 없지만 기술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는 속도감 있는 사업 역시 필수불가결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동료들과 조금 더 효율적으로 근무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 계속해서 고민하고 논의하며 개선해 나가고 있어요.


Q. 참으로 커리어가 변화무쌍한데 가장 좋았던 한 순간을 뽑는다면?

A. LINE 가입자 1억 돌파했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이때 네이버 그린팩토리 건물에 ‘LINE 1억!’ 축하 메시지가 한 벽면을 가득 채웠어요.


사진=Line


이 광경을 보면서 감격스럽기도 하고 그동안 고생했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며 저와 동료들 모두 얼싸안고 엉엉 울었어요.

‘불가능할 것 같던 목표였는데, 그래도 정말 우리가 해냈구나!’


사진=박은수


Q. 앞으로의 계획은?

A. 올해 3월부터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에서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되었어요. 그동안 제가 습득한 많은 dots(작은 점들)을 잘 connect(연결)하여 많은 분들의 건강과 행복한 삶에 도움이 되는 좋은 서비스를 만들고 싶습니다. 의료 분야가 대표적인 규제산업이고, 건강과 생명에 직결될 수 있기 때문에 기존에 담당했던 그 어떤 서비스보다 책임감과 부담감이 크지만 그만큼 사명감을 갖고 어려운 도전을 할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소식으로 다시 찾아뵐 수 있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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