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조 6천억 원의 시장
몇 달 전 독일계 기업 딜리버리히어로(DH)이 배달의 민족 운영사인 우아한 형제들을 4조 7500억 원에 인수했다. 당시 5조 원에 가까운 금액에 팔린 것에 대해 어떤 분들은 글로벌로 가기 위한 일환이다라고 평가하기도 하고 배달의 민족이 게르만 민족이 되었다면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그런데 국내 규모로만 우아한 형제들의 인수금액인 5조 원에 가까운 시장이 또 있다. 바로 건강기능식품이다. 2019년 국내 건강기능식품 시장 규모는 전년 대비 3.5% 성장한 4조 6천억 원이었다.
무려 소비자 100명 중 78명이 1년에 한 번 이상 건강기능식품을 구매했다. 그리고 지난해 가장 많이 팔린 5개 기능성 원료는 홍삼, 비타민, 프로바이오틱스, 오메가-3, 루테인 순이었다. 상위 5개 원료가 3조 원 이상의 사장을 형성하며 전체의 2/3에 가까운 비중을 차지했다. 이 중 홍삼은 나홀로 1조 5천 원 이상의 시장을 독차지했다. 이전에 외국계 식품회사에서 근무 시 외국인 상무가 건강기능식품 브랜드 론칭을 내게 제안하며 했던 말이 생각난다.
"홍삼의 효력은 한국 이외 외국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거나 검증되지 않았어. 우리가 세계적으로 검증된 원료로 구성된 제품을 출시한다면 건강기능식품 시장을 충분히 공략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너 생각은 어때?"
그의 자신감 넘치는 언변에 설득되어 건강기능식품 시장에 발을 들이며 홍삼이라는 거대한 벽을 마주하였다. 외국에서 홍삼의 효능을 인정받고 말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이미 수많은 소비자들의 머릿속에 '피로 해소 = 홍삼'이 뚜렷하게 각인되어 있었다. 오랫동안 소비자들이 이용하며 그 효능을 체험한 사례가 주위에 많아 굳이 홍삼이 효능에 대해 설명할 필요도 없을 정도였다.
요즘 건강기능식품의 시장이 흥미로운 점은 이제까지 홍삼을 중심으로 성장해온 국내 건강기능식품 시장이 장, 혈관, 눈 등 부위별 기능성이 주목받으며 건강기능식품 내 원료가 다양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중 최근 행보가 유독 눈에 띄는 건강기능식품 제조기업이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바로 천호엔케어이다.
"남자한테 참 좋은데,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네."
기업명이 어디에선가 들어본 듯 낯설지 않다. 사실 전신이 천호식품으로 항간에 숱한 이슈를 만들었던 기업이다. 2010년 당시 천호엔케어(당시 천호식품)의 창업주인 김영식 전 회장이 자사 제품의 광고에 직접 출연하며 했던 말인데 당시 크게 회자되었다.
이를 패러디한 콘텐츠가 물밀듯이 생성되었고 회사 매출은 2010년 500억 원에서 2014년 800억 원까지 올랐다. 아무래도 건강기능식품 표시 · 광고심의를 위반하지 않고 제품을 홍보하려다가 마땅한 방도가 없자 푸념하듯 말한 것이 소위 '대박'을 친 사례이다. 아마 몇몇 소비자들이 천편일률적인 기존의 건강기능식품 광고에 조금은 지겹다고 느꼈을 수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어떤 식품이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말하려면 그 효능에 대한 과학적인 입증(임상시험 등)이 필요하다. 입증되지 않은 효과를 광고를 통해 홍보할 경우 이는 불법이다. 실제로 천호식품은 2002년 `정력에 좋다`는 표현을 썼다가 시정명령을 받은 적이 있다.
최근 사례로는 유명 먹방 유튜버 '밴쯔'의 과장광고 벌금형이 있다. 밴쯔는 건강기능식품이 다이어트에 특효가 있는 것처럼 과장 광고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는 재판 과정에서 “사용자들이 작성한 후기를 토대로 광고했을 뿐이다”라며 무죄를 주장했지만, 법원은 오인‧혼동을 일으키는 광고라고 판단했다. 건강기능식품은 일반식품과 달리 생각대로 말하다가 법대로 처벌받을 수 있다. 건강기능식품은 식약처에서 인정한 `인체에 유용한 기능성을 가진 원료나 성분을 사용하여 정제, 캡슐, 액상 등 여러 가지 제형으로 제조한 식품`을 말한다. 식약처가 건강기능식품으로 인정한 원료성분은 정확히 정해져 있습니다. 28개 영양소(비타민 등 널리 인정받는 영양소), 68개 기능성원료(홍삼 등 기능성을 광범위하게 인정받은 원료), 218개 개별인정원료(자일리톨, 헛개나무 추출물 등 제품별로 인정받은 원료) 등 약 300개 원료만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다. 저자가 전 직장에서 건강기능식품 브랜드를 운영할 때도 소형 디지털 광고배너에 들어가는 문구조차 건강기능식품협회의 심의를 받고 진행을 했다. 이렇게 심한 규제 속에서도 신박한 표현으로 많은 주목을 받았으니 당시 천호엔케어의 광고는 정말 기발함 그 자체였다.
천호식품의 새 이름, '천호엔케어'
모든 것이 장밋빛이던 순간 김 전 회장은 회사와 본인 스스로에게 돌이킬 수 없는 우를 범했다. 2016년 11월 최순실 국정논단 사건과 관련해 촛불집회 참가자를 폭도에 비유하는 듯한 글을 올려 큰 비난을 받은 것이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공급업체로부터 물엿과 색소가 섞인 원료를 납품받아 만든 홍삼 농축액을 판매하다 적발된 이른바 '홍삼 파동'까지 터지며 회사는 위기를 맞았다. 결국 김 전 회장이 회장직에서 물러나고 그의 아들 김지안 전 대표이사가 사임하며 오너 일가가 경영에서 일체 물러났다. 현재는 아워홈 대표이사 출신의 이승우 대표가 전문경영인으로 회사를 운영 중이다.
2018년 3월 회사명을 기존 '천호식품'에서 '천호엔케어'로 변경하며 기존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벗어내려고 많은 노력 중이다. 하지만 이를 완전히 씻어내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앞으로 천호엔케어가 신제품을 발표하고 성장할수록 경쟁업체들과 매체들은 당시 사건을 언급하며 견제하는 시도를 멈추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건강기능식품 산업의 성장이 가파르지만 업체 간 워낙 경쟁이 심하다 보니 네거티브 또한 종종 발생을 한다.
이어진 악재에도 천호엔케어는 새로운 리더십 아래 다각적인 사업을 통해 성장하고 있다. 천호엔케어는 원래 5060세대가 주요 타깃이었던 건강즙 이외 젊은 층을 겨냥한 제품을 내놓기 시작했다. 석류즙 '하루활력'에 이어 간편 건강 드링크 '웰스' 4종을 출시하며 음료 브랜드도 론칭했다. '하루활력'의 경우, 누적 판매량이 론칭 1년 만에 1000만 팩을 돌파했다.
이외 각종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불면의 밤을 보내는 젊은 층이 늘어나고 있는 현실에 착안하여 숙면, 숙취 해소 등의 니즈를 해결할 수 있는 '굿나잇 환'을 선보였다. 천호엔케어는 다양한 고객층의 다양한 니즈에 맞춘 제품들을 꾸준히 론칭하며 이전의 명성을 되찾는 것은 물론 한층 더 젊은 브랜드로 탈바꿈하고 있다.
유독 눈에 띄었던 신제품은 2019년 초 선보인 어린이 키 성장 건강기능식품인 '아이키쑤욱' 이었다. 요즘 '키는 또 하나의 스펙'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현대인들에게 키의 중요성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상대적으로 키가 작은 아이를 둔 부모는 아이의 키성장이 고민일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아이키쑤욱'은 이런 부모들의 심정을 제대로 반영한 제품이었다.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유선으로 상담 시 제품 판매를 최우선 목표로 설정하고 몰아붙이는 텔레마케팅이 아닌 정말 카운슬러처럼 시간을 들여 상담을 해줬던 부분이다. 또한 구매를 당장 하지 않더라도 소비자가 부담 없이 체험해볼 수 있는 체험용 제품을 무상으로 보내준다.
2019년 '스카이캐슬'로 주목받은 배우 김병철을 모델로 발탁하며 제작한 광고 영상이 유튜브에서 100만 뷰를 돌파했을 정도로 광고모델의 선택도 적절했다. 영상에서 김병철은 차파국을 연상시키는 메시지인 '큰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제품의 효능만을 강조는 광고가 대부분인 건강기능식품 업계에서 이례적으로 제품의 특징과 함께 유쾌한 콘셉트를 곁들여 ‘어린이 키성장’이라는 주제가 소비자들에게 잘 전달되었다. 성장기 자녀들의 키성장과 건강 관리에 고민이 많을 부모들을 위해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제작된 것 같다.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국내 최초로 어린이 키성장 기능성을 인정받은 개별 인정형 원료인 황기 추출물 등 복합물(HT042)을 함유하고 있어 키성장 관련한 효능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소비자의 니즈와 관심사는 다 다르다
다양한 신제품으로 천호엔케어의 Share of Shelf(매대 점유율)은 점점 커지고 있다. 유사한 제품이 아닌 다른 원재료 사용에 따른 중복되지 않는 기능성을 통해 Carnivalization(자기잠식)은 최소화하고 있다. 이제 제품들을 각각 어떻게 브랜딩을 할 것이며 천호엔케어라는 기업브랜딩은 어떻게 진행할 것이냐가 중요할 듯하다. 현재 운영하는 소셜미디어 계정으로 보아 각각 브랜드에 최적화된 브랜딩보다는 기업브랜드를 통해서 소비자 커뮤니케이션을 진행하는 듯하다. 예를 들어, '아이키쑤욱'의 고유 brand identity에 걸맞은 동일한 톤앤매너로 고유 계정을 통해 소비자 커뮤니케이션을 진행하기보다는 기업브랜드의 통합채널로 소비자와 소통하고 있다. 추후 어느 정도 규모가 커지면 각각의 브랜드를 소비하는 소비자에 맞추어 분류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그 이유는 각 제품의 최종 소비자가 다를 수 있는데 같은 계정으로 동일한 콘텐츠로 소통하다보면 특정 소비자의 니즈에 맞지 않는 메세지가 올 경우 브랜드와 소비자 사이의 유대감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예를 들어, 특정 소비자가 미혼이고 주로 소비하는 제품이 '하루활력'과 같은 피로회복에 도움을 주는 제품인데 '아이키쑤욱' 관련한 메세지를 반복해서 접한다고 생각해보자. 아마 한두번은 그냥 넘어가지만 점차 언팔로우 혹은 구독 해지하고 싶은 유혹을 떨치기 어려워질 것이다.
다음은 기업브랜드 천호엔케어의 소셜미디어 운영현황이다.
페이스북부터 유튜브까지 다양한 채널에서 계정을 운영 중이다. 예상하기에 2018년 초 리브랜딩과 함께 상당히 의욕적으로 다채널을 운영하겠다는 의지를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한정된 리소스와 콘텐츠로 다채널을 운영하기에는 힘에 겨웠고 결국 지금은 페이스북페이지와 카카오톡 채널만 운영하는 것 같다. 페이스북은 이벤트 포스팅에만 일시적으로 호응을 하는 것으로 보였고 카카오톡 채널의 경우, 전체적으로 소비자들의 반응이 미온적이었다. 예로, 외부 구매사이트 링크의 클릭 횟수가 게시 후 일주일간 16회였다. 내부 운영진이나 대행사가 테스트로 클릭한 것을 제외하면 실질적으로 링크 클릭을 통한 유입은 10회 이하일 가능성이 크다. 사실 owned media(기업의 홈페이지, 블로그, 모바일 어플리케이션, 기업 소유의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 등 소셜미디어 채널, 매장의 광고나 브로셔 같은 오프라인 채널 등) 운영이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소모한다. 꾸준하게 콘텐츠를 만들어 내야 하고 소비자들의 반응(좋아요, 공유)를 끌어낼 수 있을 정도로 해당 콘텐츠가 신선하거나 유익해야 하는데 생각처럼 쉽지 않다. 그리고 초기 반응이 저조하면 담당자의 의욕이 꺾이기 쉽다. 생계가 달린 유튜버들은 소재가 바닥나기 시작하면 패널 섭외를 통해서라도 새로운 콘텐츠를 꾸역꾸역 만들어 낸다. 페이스북 및 카카오톡채널에서 소비될 소재가 부족하다면 소재를 소비자들에게서 찾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네슬레의 거버 브랜드의 경우, 인스타그램 계정에 육아정보와 함께 거버를 먹고 자라는 아이들의 사진도 같이 올린다. 물론, 부모의 사전동의를 받고 콘텐츠화 후 포스팅한다. 콘텐츠 소재도 확보하고 소비자의 참여도 이끌어내는 단순하면서도 효과적인 전략이다.
5조 원 국내시장을 넘어 200조 원의 글로벌시장으로
2019년 천호엔케어는 미국 LA에 이어 하와이에서도 판매를 시작했다. 우선 해외시장 진출의 성공여부를 떠나 시도를 하는 것 자체가 대단하다. 그 이유는 나라마다 건강기능식품의 기준이 달라 같은 상품으로 출시하더라도 제품의 표기부터 성분까지 변경되는 경우가 부지기수이기 때문이다. 예로, 이전에 근무하던 외국계 식품회사에서 해외 타 법인을 통해 수입한 오가닉 식품이 국내 오가닉의 기준에 부합하지 못해 오가닉 인증표시를 스티커로 덮고 오가닉 식품이라고 소개하지 못한 적이 있다. 미국은 한국처럼 '건강기능식품'으로 규정되어있지 않고 '보조식품'으로 분류되는데 대부분 비타민과 미네랄을 원재료로 한 정제이다. 그렇기에 익숙하지 않은 흑마늘 및 녹용홍삼으로 시장에 어필한다면 다소 시간이 걸릴 것이다. 오히려 건강을 챙기는 현지인들 사이에서 이미 트렌딩하는 식품을 주원료로 하는 것이 훨씬 손에 쥐어주기 수월할 것이다. 예로, '아쉬와간다(Ashwagandha)'라고 하는 인도 인삼의 경우 스트레스 해소를 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최근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소젖이나 염소젖 또는 양젖을 발효시켜 만드는 알코올 발효 유제품인 '케피르'는 항울제로 관심을 끌고 있다.
해외시장은 국내시장과 전혀 다른만큼 현지화하는데 크게 비용이 들지 않고 현지인들이 섭취하는데 거부감이 적은 식품군과 유형으로 다가설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장기적으로 기업과 브랜드의 인지도를 올라가면 나중에는 트렌드를 빠르게 따라가는 것이 아닌 트렌드를 선도할 수 있는 위치에 설 것이다. 매년 권위 있고 신뢰할 수 있는 기업이 해당 분야의 트렌드를 정기적으로 발표한다. 천호엔케어 또한 '올해 세계인이 주목해야 할 건강기능식품'을 매년 선정하게 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본다.
참고자료: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902141549060999
http://www.ekn.kr/news/article_print.html?no=476838
http://www.market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7557
http://www.donga.com/news/article/all/20180311/89050822/1
http://www.lawissue.co.kr/view.php?ud=201912240855585089204ead0791_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