Χ

추천 검색어

최근 검색어

 

금요일 퇴근 무렵, K에게서 문자가 왔다.     

 

“팀장님, 학교를 통해 중소기업 면접 추천을 받았습니다. 자리는 ‘자재관리’라네요. 그쪽 회사 담당자와 통화를 해봤더니 구매업무와 관련성은 많지 않지만 전혀 없다고도 볼 수 없다고 합니다. 팀장님도 아시다시피 저는 구매관리를 하고 싶거든요. 지원을 해야 될지 말아야 될지 잘 모르겠습니다.”    

 

내가 K를 알게 된 것은 1년 전, 어느 협회에서 주관했던 대학생 구매 포럼에서다. 구매 분야 취업에 관심 있는 대학생들을 위한 자리로 나는 경험 많은 현직자로 참가했었다. 당시에도 느꼈었지만 구매 직무에 대한 정보가 시중에는 많지 않다. 취업을 준비하는 대학생들 입장에서는 답답할 수밖에 없다. 반면에 인사나 기획 또는 마케팅이나 재무 등에 관한 취업 자료는 상대적으로 넘쳐난다.    

 

K가 고민하는 구매관리와 자재관리는 큰 틀에서 전혀 다른 업무가 아니다. 일반적으로 구매라고 하면 협력업체와 협상하고 신규업체를 발굴하는 등 데스크(desk) 업무 위주로 생각하기 쉽다. 실제로도 그런 부분이 적지는 않다. 반면에 자재관리는 창고에 쌓여있는 품목들을 확인하고 보관하고 불출하는 중요도가 낮은 필드(field) 업무로 판단한다. K도 자재관리보다는 구매업무를 하고 싶다는 애기다. 하지만 구매와 자재를 무슨 무 자르듯이 잘라 완전히 별개의 것으로 구분할 수 없다.    

 

내가 다니는 회사의 경우를 보자. 자동차 부품과 방위산업 부품을 생산하는 중견 제조업 체다. 구매부문에 구매팀과 자재팀이 함께 속해 있다. 구매담당자는 본인이 구매한 자재가 제대로 입고되었는지를 자재 담당자를 통해 확인받는다. 자재 담당자는 특정 품목의 안전재고를 확인해서 구매담당자로 하여금 구매 시기를 결정짓게 한다. 이처럼 두 가지 기능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만 구매 본래의 기능이 살아난다.     

 

신입사원 입장에서는 실물 자재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회사의 자재 시스템을 경험하기에는 자재팀이 최적이다. 현장에서 자재가 어떻게 사용되는지를 알아야 제대로 된 구매도 가능하다. 그래서 대부분의 회사가 신입의 경우, 자재관리부터 맡긴다. 물론 각자의 능력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정기간이 지나면 대부분이 구매업무를 꿰차게 된다.     

 

잠자리에 들기 전 K에게 답장을 보냈다.    

 

“큰 틀에서 보면 자재관리도 구매업무입니다. 제 생각에는 지원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입사하셔서 자재관리 업무를 잘 해내시면 업무영역이 구매까지 넓어질 수도 있잖아요. 그리고 회사 입장에서도 처음부터 신입사원에게 난이도 있는 업무를 맡기기에는 부담이 있을 수도 있고요. 아무리 작은 회사라도 돈을 쓰는 것에 대해서는 민감할 수 있습니다. 또한 자재업무를 하다 보면 회사의 물류흐름을 현장에서 배울 수 있는 이점도 있어요. 다만 너무 오래 자재 쪽에 있는 것은 비추입니다.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2개월 정도. 아무튼 최대한 열심히 하셔서 구매로 옮기시길 바랍니다.”

 

 

구매팀 사무실에서 팀장과 담당자 사이에 제일 많이 주고받는 대화가 있다.    

 

“김대리, 자네 돈 주고 산다면 이런 가격으로 비싸게 살 수 있겠어?”

“아니 팀장님, 그 가격대가 지금 시중에서 최적가로 거래되는 가격입니다.”

“아니, 그것을 어떻게 증명해. 이 금액은 업체에서 그냥 제시한 가격이잖아. 도대체 이거 작년보다 얼마나 오른 거야? 다른 업체도 좀 찾아봤어”

“팀장님, 기억하시잖아요. 작년에 신규업체 컨택(contact)을 시도하다가 품질문제로 얼마나 골머리를 앓았습니까?”

“그거야, 뭐. 위에서 하도 원가절감, 원가 절감해서 구매가 절감 차원에서 진행했던 거지. 우리가 시간 남아서 그랬던 것은 아니잖아.”

“맞습니다. 하지만 그때 품질문제로 다가오는 납기는 다 까먹고 결국은 신규업체 두 손, 두 발 다 들었죠. 어쩔 수 없이 기존 업체 찾아가 구르고 달래서 겨우 납기 맞추었잖습니까. 그때 업체 사장님, 날 밤 새 가며 저희 회사 도와주셨어요.”

“그래서, 업체가 달라는 대로 다 인상해줘야 한다는 애기야 뭐냐?”

“그건 아니고요. 업체가 제시한 가격을 검토해서 적정하다고 판단이 돼서 내린 결론입니다. 뒤에 데이터는 원가분석 자료고요. 동종업체 가격대를 비교한 결과치도 첨부했습니다. 그냥 최저가로 입찰하면 또 작년과 같은 사고가 날지 모릅니다.”    

 

위 대화에서 보듯이 회사의 이익을 위해서 구매 직무가 챙겨야 할 숙명적인 미션(Mission)이 3가지가 있다. 가격과 납기 그리고 품질이다.    

 

우선 가격(Cost)을 보자. 기업에서는 누구나 회사 돈을 아껴 써야 한다. 더구나 구매담당자 아닌가? 담당자는 구매할 품목을 최대한 싸게 구입해야 한다. 한데 이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세상에 어느 누가 물건을 싸게 팔려고 하겠는가? 그래서 구매의 전문성이 필요하다. 하지만 구매를 모르는 사람들은 쉽게 말한다. 돈 주고 물건 사는 일이 뭐가 어렵냐고? 물론 돈 주고 물건 사는 일은 어렵지 않을 수도 있다. 문제는 돈을 아끼면서 제대로 된 물건을 사는 것, 그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구매가 어려울까 아니면 영업이 어려울까? 한쪽은 돈을 쓰는 쪽이고, 다른 한쪽은 돈을 버는 쪽이다. 회사의 문화와 사업의 특성에 따라 일률적으로 얘기할 수 없다. 확실한 것은 양쪽 다 회사의 이익에 미치는 파급력이 크다는 사실이다. 아무튼 구매가 절감은 구매 직무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미션이다. 갈수록 그 중요성은 커지면 커졌지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미션 달성은, 회사 이익에 도움을 주고 팀 실적에도 보탬이 되며 구매담당자 고과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물론 ‘가격’만 절대시 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있을 수도 있다. 이제 갓 입사한 신입사원들에게 종종 받는 질문이다. 값만 싸다 뿐이지 ‘품질’이 엉망인 경우는 어쩔 것인가? 맞다. 하지만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이론과 현실이 다를 때가 많다. 교과서상의 이론과 현업의 실무 사이에 좁혀지지 않는 간극이 있다.     

 

기업은 기본적으로 눈에 보이는 수치나 지표를 선호한다. 그것도 아주 단기간에 효과가 나타나는. 그런 기준에 가장 최적화되어 있는 것이 바로 ‘가격’이다. 그래도 그런 질문을 한다는 것, 그 자체는 자기 업무에 문제의식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분이 좋다. 신입은 그런 패기와 열정이 있어야 한다. 덧붙여 자기 돈을 쓸 때는 심사숙고하는 사람이, 회사 돈을 쓸 때는 아무 고민 없이 사용하는 경우를 주변에서 가끔 씩 볼 수 있다. 이런 유형은 구매 직무에 바람직하지 않다.      

 

 

둘째 납기(Delivery)이다. 구매 요청자가 원하는 시기에 자재가 입고되지 않으면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모든 경우가 그렇지만 특히 생산에 투입될 원자재가 납기 내에 들어오지 않으면 제조라인이 멈추는 대형 참사가 일어난다. 최근의 일본 수출규제로 인해 반도체 핵심자재의 공급 차질이 대표적이다(물론 몇 개월간의 재고물량 확보로 대형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제조업에서 생산라인이 멈춘다는 것은 국가부도(?)와 맞먹는다. 주요 설비는 가동이 중단되고 작업자는 할 일이 없어 놀 게 된다. 고객과 약속한 계약일자에 납품도 어렵게 된다. 매출액에 빨간 불이 들어오고 하루하루 손실액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누구의 책임인가?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이때의 모든 원성과 원망은 고스란히 구매담당자의 몫이 된다.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는 신비한 현상(?)을 이때 경험할 수도 있다. 반대로 납기 내에 자재가 정상적으로 들어오면? 그건 당연한 것이다. 누가 관심을 갖거나 칭찬해 주지 않는다. 그래서 흔히들 말하는 이 바닥에 격언이 있다. ‘구매는 잘해야 본전이다.’    

 

또한 납기 내 입고수량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약속된 수량만 들어와야 한다. 적게 들어오면 남은 수량이 입고될 때까지 구매담당자는 온갖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이른바 긴급 상황이다. 담당자 입장에서는 원래 일보다 업무량이 몇 배가 늘어난다. 구매 이슈가 발생하면 경영진이 관심을 갖게 되고, 따라서 담당자가 수시로 확인하고 체크하고 보고해야 되기 때문이다. 단기간에 문제 해결이 되지 않으면 상황이 정상화될 때까지, 구매가 모든 부서의 관심의 대상이 되는 기회도 얻게 된다. 반면에 입고수량이 많게 들어오면 어떻게 되는가? 잉여 수량 즉 남는 수량에 대한 보관 문제가 발생한다. 즉 재고관리 문제이다. 이때 적정재고를 유지하는 업무도 쉬운 게 아니다. 회사에 따라서는 자재팀이 이러한 재고관리를 전담하는 경우도 있다.      

 

끝으로 품질(Quality)이다. 최소의 가격으로 정해진 납기에 약속된 수량의 자재가 들어오더라도 품질에 문제가 생기면 말짱 도루묵이다. 물론 직접적으로 품질부서가 대응을 하겠지만 구매팀도 마냥 한가로울 수만은 없다. 반품 교체 등 후속 조치를 신속하게 처리해야 한다. 원인이 무엇이든지 간에 결국은 자재수급 불안정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양품 교체가 적기에 이루어지지 않으면 생산라인의 중단으로 이어진다. 실질적으로 납기 내 입고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원성과 원망을 품질부서와 나눠서 갖게 된다는 점이다.    

 

이처럼 가격(C), 납기(D), 품질(Q)이 구매 직무의 3요소이다. 이는 결국 공급업체(Supplier)와 연결되는 문제다. 구매담당자가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공급업체를 선정했다면, 공급업체는 당연히 적정 품질을 충족시킬 수 없었을 것이고 이는 원천적으로 양품 공급을 불가능하게 했을 것이다. 또한 공급업체의 제작 일정을 구매담당자가 제대로만 관리했다면 납기 지연 등은 사전에 대응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처럼 구매담당자와 공급업체 사이의 이슈를 문제 발생의 시작으로 보는 것이 현대적 구매 직무의 개념이다. 따라서 오늘날 구매관리의 주요 포인트도 공급업체 관리에 맞춰지고 있다. 참고로 공급업체를 협력업체, 납품업체, 하청업체, 거래업체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다 같은 의미다.    

 






카멜 작가님의 글 더 보러가기

 



더보기

카멜님의 시리즈


최근 콘텐츠


더보기

기업 탐색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