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날은 항상 아름답다. 치열했던 입사를 기억해본다. 힘들고 지쳤던 기다림은 희미해졌고 장황했던 나의 포부가 생생하다. 어리고 용감했던 나는 감히 회사와 함께 나이를 먹겠다고 말했다. 내 인생의 길에 회사가 함께 하기를 소망했다. 9년이 지났고 희망퇴직을 했다.
내 입으로 말했던 그 꿈, 꿈이 사라졌다.
그 당시에 넘쳤던 희망과 기쁨, 회사에 대한 기대와 나의 앞날에 대한 욕심이 엉켜 모든 것이 다 잘될 거라 긍정적인 모습이 점점 사라지기까지 삼 년이 걸렸다. 대학에서 배우지 못한 것들을 가르쳐주는 선배님들에게 감사했고 제때 들어오던 월급이 신기했고 매일 하는 야근은 힘들었지만 보람찼다. 변화는 내 안에서 시작되었다.
배움이 거의 끝나가서 스스로의 노하우가 쌓였지만 언제나 상사의 오래된 방식을 따라야 하는 것의 불합리함을 못 견디기 시작했다. 월급의 금액이 내 노동의 가치에 비해 턱없이 적다고 느껴졌다. 야근을 해야 하는 이유가 일이 많아서가 아닌 조직 내의 습관과 눈치보기 때문인 경우가 많아지고 피로도가 축척되기 시작했다. 막내라는 이유로 혼자 남아 누군가의 마무리를 해야 하는 일이 계속되었고 텅 빈 사무실을 벗어나고 싶었지만 감히 펑크를 내기 힘들었던 시절을 3년 보내고 그동안 매년 후배들이 들어왔다.
후배들의 밝은 표정에서 내 꿈을 보았다.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내딛은 맑은 표정들, 아직은 내게도 그런 표정이 기억이 남았음을 애써 끄집어내는 동기가 되어주었고 하루하루 더 잘 해야 하는 이유를 만들었다. 나름 노력했다.
회사와 함께 꿈을 꾸는 것이 현실에서 불가능함을 인정하는데 시간이 걸렸다. 회사를 통해 내 성장이 가능할 거라 믿고 능력과 시간을 쏟아부었지만 그건 혼자만의 착각이었음을, 착각이 아닌 현실로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나'의 인생이 아닌 회사의 '대리, 실장'으로 살아야 함을 알게 된다.
회사가 개인의 꿈을 이뤄주는 곳이 아니야. 너만을 위해 존재하는 곳이 아니라고. 괴로우면 떠나고 그렇지 않으면 열심히 해서 너의 힘을 키워서 언젠가 네가 바꿀 수 있잖아.
선배들의 여러 조언들과 동기들과의 한탄이 몇 년 동안 똑같은 테두리 안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쯤, 월급쟁이로서 회사를 바라보자 모든 작업에서 '나'의 의도를 담기 위해 설득하던 일이 적어졌다. 때론 열심히 하며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는 동료들을 보고 자극받기도 했지만 더 이상 회사와 함께 가는 꿈을 꾸지 않는 않기에 '나의 일'이라고 '내 작품'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회사의 일이고 회사의 이득이다. 나의 월급의 값어치 이상을 하고 싶지 않아졌다. 그만뒀어야 했다. 바로 그때.(그럼 희망퇴직으로 받은 총알의 반이 안 되는 금액만을 받았을 것이다.)
이미 나는 상실의 시간을 살고 있었다. 그 시간이 좀 더 짧았다면 나는 어땠을까.
아직도 회사를 탓하기보다 적응하지 못한 내 잘못이라고 말하는 주변인들이 있다. 친구라면 내게 그렇게 말하지 못했을 테니, 그저 자신의 기준으로 세상을 재단하는 이들이라고 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다. 진짜 신념인지 위선인지 고개가 갸우뚱거려진다. 특별히 내가 불이익을 받지 않으면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도 아무 말하지 않는 회사의 분위기는 사람들을 수동적이고 이기적으로 만든다. 길들여지는 것을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잘못된 방향으로 길들여지는 것을 알면서도 스스로 길들여지기 원하는 건 나쁘다.
그렇게 다들 살아. 특별하게 살고 싶으면 네 회사를 차려야지. 적당히 맞춰가면서 하면 될 것을 왜 그렇게 삐딱하게 생각하냐. 네가 그렇게 얘기한다고 바뀔 것도 아니고 분위기만 이상해지잖아.
너는 너무 회사에 대해 부정적인 것 같아. 윗사람들은 그들 나름대로 열심히 하고 있고 너보다 훨씬 어려운 시간을 보내 거기까지 간 거야. 나는 믿어. 인간적으로 너라면 할 수 있겠냐. 그들도 힘들 거야.
직장을 나오기 전에 이미 나는 회사와 함께 꿈을 꾸지 않아서 나의 인생에 집중할 수 있었다. 때로는 모든 일이 끝나서 더 이상 할 일이 없음에도 모두가 남아 있는 이상한 야근을 거부하였고 회식보다는 퇴근을 선택했다. 사생활을 철저히 선을 그었다. 결혼 초대를 하지 않고 공지사항으로 대신했다. 경조사에 봉투를 내더라도 받기는 거부했다. 그런 나의 정확한 사회생활을 부러움과 질타를 동시에 받았다. 후배들은 나 대신 회식에 끌려갔고 내가 퇴근하며 먼저 퇴근을 시키지 않으면 야근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후배들의 분위기가 변하였다. 세대가 바뀌었다.
더이상 신입사원의 얼굴에서 나와 같은 꿈을 꾼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처음엔 대기업이라서 선택했다는 말이 지당한데도 서운했다. '열정'을 외치는 동기에게 우리와 똑같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꼰대라는 말을 했지만 그 변화가 처음에는 내게도 적잖게 당황스러웠다. 현실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어린 친구들에게 훨씬 빨리 다가왔고 멈춰서 이도 저도 못하고 있는 나보다 정확하게 상황을 인지하고 있었다.
하루에 8시간, 깨어있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직장, 유치하지만 나에겐 '회사=꿈'이었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마저도 없이 현실에 쫓겨 대기업을 선택한 후배들은 얼마나 건조한 시간을 보내는 것일까. 반전은 예전에 내가 선배들을 붙잡고 하소연을 하듯 그들의 하소연을 듣다 보면 이미 나보다 더 확고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견디기에 익숙해진 나보다 더 힘들어할 뿐, 언제쯤 회사를 나가서 자신의 길을 찾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있다. 그중에 몇 명은 월급에 익숙해져, 거친 세상으로 다시 나가면 겪어야 할 힘겨움을 두려워해서 선배들의 전철을 밟기도 한다. 무엇이 좋은 선택인지는 각자의 기준으로 다 다르다. 다만 모두가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행복했으면 좋겠다.
어느 선택을 하든 상관없이 모두에게 해당되는 질문을 해야겠다.
지금 이 사회에서 직장이 꿈이 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일까?
일단 나의 지난 9년은 대기업에서 꿈을 펼친다는 것은 사회의 기득권이 되기 위해 맹렬히 돌진하며 '나'를 희생해야 함을 알려주었다. 나의 경험이 우리나라의 모든 대기업과 일치하지 않겠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포털에 나타나는 '퇴근하고 싶어요'와 '회사가 힘들어요'등의 글들을 보면 많이 다르지 않겠다는 짐작을 하게 된다. 왜 회사가 개인의 꿈을 함께 꾸며 다 같이 성장할 수 없는 걸까. 내 능력이 부족해 그걸 이뤄주는 회사를 아직 못 찾은 거라면 다음 나의 행보는 더 좋은 회사를 찾아가는 것이 될 것이다. 아무리 찾아도 눈에 들어오지 않으면 혼자서 일할 수 있는 프리랜서가 돼야 할 것이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그 변화가 보통 사람들을 더 힘들게 만들었다. 모두가 가고 싶어 하는 복지와 연봉이 빵빵한 대기업은 모순적인 구조에서 개인의 역량을 죽여버리고, 열정과 개성을 원하고 실현시키는 기회를 주는 소규모의 기업들은 노동착취의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는 모순적인 상황을 알면서도 개인은 현실을 바꾸지 못한다. 말도 안 되는 상상이긴 하지만 가끔 내가 그렇게 무능하다 여기는 전 직장의 대표가 갑자기 투사로 변신해 엄마뻘인 모기업의 대표에게 대드는 꿈을 꾼다. 그럴리는 절대 없겠지만 일반직보다 철저하게 대표가 대표적인 사례로 아무것도 챙기지 못한 채 버림받고, 이에 분노한 직원들이 다 함께 힘을 모아 다시 대표를 추대해서 모기업이 못 건드리는 좋은 회사가 되는 것을 상상해 본다. 개인의 힘이 변화를 이끌어내려면 절대적인 권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권력자는 항상 나와는 다르게 생각한다. 나와 같은 개인의 외침으로는 변하지 않는 세상, 게다가 누군가 함께 외치지 않으면 아무도 듣지 않기에 혼자서는 외면당하기 일쑤인 세상. 내가 결심하고 앞장선다 한들 나와 함께 소리칠 수 있는 사람들이 옛 회사에는 몇 명이나 있었을까. 생존권을 가진 절대자를 향해 개인이 외쳐야 하는 사회 자체가 모순인 것인데 그마저도 외면당하고 소외된다. 외친 개인은 가장 먼저 사라지지만 나중에 가장 힘들게 버려지는 건 외면했던 또다른 개인들이다.
희망퇴직을 결정하고 일주일 정도 인사를 돌렸는데 전화로 나의 '갑' 이였던 모기업의 실무담당자가 내게 해 준 말이 기억난다.
저는 아직 괜찮아요. 작년에 회사 들어와서 , 그래도 몇 년은 버틸 테니 그동안 열심히 해야죠. 아무쪼록 김실장 님, 앞날에 좋은 일들만 가득하시길 빕니다. 어떻게라도 다음에 뵐 수 있으면 봬요.
'갑'인 더 큰 대기업도, '을'인 더 작은 소규모 기업들도 각자 다른 이유이지만 나와 같은 상실의 시간을 언젠가는 보낼 것이다. 어디에나 꾀부리지 않고 주는 대로 묵묵히 일하는 보통 사람들이 있다. 순식간에 변할 수는 없겠지만 나의 다음 선택지가 될 곳도, 그리고 내가 나온 예전 그곳도 조금씩 변하기를 빈다. 소원을 비는데 돈 드는 것도 아니니 열심히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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