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전이 필요하다 외치며 떠났던 직장인의 휴가를 떠올린다. 매년 어김없이 찾아오는 얼리버드 세일 때마다 항공사 홈페이지를 광 클릭했다. 때로는 팀원 전체가 서로 다른 목적지를 향해 잠시 일을 내려놓기도 했다. 휴가는 모두에게 절절했다. 개인보다는 집단이 우선시해 직급 순서대로 가야 한다고 줄을 세우는 회사가 아직도 많다고 하지만 다행히도 나의 마지막 팀은 서로의 휴가에 관대했다. 팀원을 제어하지 못하는 팀장이라 생각하는 이도 있었지만 덕분에 휴가만큼은 먼저 예약한 이가 우선이었다. 나는 후배들에게 휴가는 권리이니 허락받지 말고 스스로 판단하고 예약한 후 통보하라고 항상 조언한다. 그 정도 눈치껏 날짜 잡을 줄 모르는 사람은 묻는다고 마음을 바꿀 리도 없었거니와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을 텐데 굳히 불편한 마음 만들고 싶지 않았다. 배려를 받은 사람이 베풀 줄 안다고 서로의 자리를 당연히 메꿔주는 문화가 널리 퍼지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회사를 그만 두니 모든 날들이 휴가이다. 그래서일까. 그동안 내가 다녀온 직장인의 휴가와 지금의 휴식=휴가는 완전히 다르다. 실직자가 되면 당장 짐 싸고 긴 여행을 떠날 것 같았지만 일 년 동안 제공되는 지원금 받는 교육이며 생활비가 되어줄 실업급여는 해외여행을 허하지 않았고 딱히 이미 쉬고 있는 상황을 벗어나 절실하게 얻고 싶은 것도 없다. 그동안 나는 휴가 가기 위해 회사를 다녔던 걸까. 아니면 회사를 다니는 게 휴가 없이 버틸 수 없었던 걸까.
직장인 시절의 나는 노는 것에는 지지 말아야겠다는 불타는 의지를 가지고 남들보다 길게 멀리 다녀왔다. 그래서 나의 휴가가 남들의 입방아 오르내리는 일이 많았다. 대리 시절, 평균적인 신혼여행보다 길었던 유럽여행에 대해서 부러움 반, 질책 반의 관심을 받았다. 내가 없어도 돌아가지 않는 회사는 문제가 있는 것이라는 나의 의견에 너 없이 돌아가는 회사라면 네 존재는 쓸모없는 것이라는 반대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곤 했다. 나름대로는 나 없이도 돌아갈 정도로 완벽하게 일처리를 해 놓고 떠났다지만 어디 일이 그렇게 흘러가던가. 누군가가 메꿔준 것이다. 그 뒤에는 편의를 봐주신 윗분의 신념과 안된다고 대놓고 말하지 못하는 착한(소심한) 선배들이 있었다. 물론 나는 말해도 들어먹을 정도로 약한 심성의 소유자가 아니었다. 그런다고 싸우면서까지 멀리 떠날 막돼먹은 후배도 아니었다. 먼저 힘들게 말을 꺼내서 몇 달 정도 양해를 구하였고 그 여행의 배경에는 일 년 정도 밖으로 나돌며 맡았던 힘든 프로젝트가 있었다. 울며 겨자먹기로 선수를 뺏긴 선배들은 뒷자리에서 요즘 애들(나! 나나나나)에 대한 부러움과 과거의 그렇지 못했던 억울함과 후회를 풀어냈으니라.
처음부터 휴가에 대해 뚝심이 있었던 건 아니다. 회사에서 길러준 뻔뻔함, 당당함이다. 신입사원이었던 내게 당연하게 연휴에 나와줄 수 있냐는 질문을 연휴 전날 퇴근 직전 던지는 선배가 있었다. 선배가 해왔던 프로젝트였고 나는 관여하지 않았던 일이었으니 뒤치다꺼리를 위한 대기조였다. 내가 나와봤자 모두의 업무량이 줄어드는 게 아니었다. 대기조로 보내는 하루도 아까웠지만 약속을 기다리는 지인들도 아른거렸다. 거절과 함께 선배와는 선이 그어져 버렸고 기왕 그어진 선이니 아쉽기는 했으나 당당하기로 했다. 그렇게 선배가 먼저 그었다 믿는 선이 선배 입장에선 내가 그은 것임을 나중에야 깨달았다. 그때의 미안함은 다음번 여행 계획이 없는 연휴에는 기꺼이 먼저 손을 들게 했다. 지금에야 법적인 정당한 금액을 받지만 그 시절 택시비조차 되지 않는 수당을 받으며 보낸 하루는 쓸데없는 시간 때우기와 윗선에 보여주기 식이 대부분이었다. 내 금쪽같은 시간은 그 가치만큼의 현금으로 되돌아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나의 배려가 당연한 막내의 의무로 바뀌기 시작했다. 뒤늦게 차라리 정확하게 선을 긋는 게 더 가치 있게 대우받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간이 지나 선배보다 후배가 많아지고 스스로의 일의 업무량을 조절하게 되면서 휴가를 통보할 수 있게 되었다.
이날 휴가 가겠습니다.라고.
휴가를 통보하게 되면서 내가 데리고 있는 후배들에게 휴가나 퇴근으로 스트레스 주지 말아야겠다 결심했다. 물론 내 입장에선 다른 이에 비해 최선을 다한 배려였으나 요구가 지나치거나 본인의 뒤치다꺼리가 내게 오는 것을 알면서도 뒤돌아 설 때면 마음 한편이 서운해지기도 한다. 돈 많이 받는 내가 더 늦게 퇴근하고 더 많이 일해야 하지만 울컥 밀려오는 옛 기억에는 항상 마지막에 나갔던 사원 시절의 내가 있었다. 그러게 왜 그랬을까 후회했다. 선배들이 그래서 속상했겠구나를 깨달았던 순간이기도 했다. 함께 일하며 배우는 것마저도 선배들이 생각하는 시선일 뿐 정해진 근무 외의 시간들은 후배들의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 선배에게 꼰대 정신을 무의식 중에 배우는 것보다 혼자서 깨우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 모두가 휴가 안 가고 일에만 매달린다고 회사가 성장한다는 건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얘기이다. 물론 이렇게 얘기하는 임원치고 팀원들 휴가에 관대한 사람은 없다. 위로 갈수록 쿨 내 진동하게 말만 하고 실제론 꼰대스러움이 마구마구이다. 휴가를 자주 가는 팀원을 가진 임원들은 일을 제대로 못 시킨다는 시선에 마주하게 되고 급기야는 일 없다는 소문이 돈다. 보여주기 행정이 나라에만 있는 건 아니다. 일을 부풀리는 것도 능력이다.
휴가는 내게 회사를 다니는 이유 중 하나이자 원동력이었고 '스스로에게 아낌없이 주는 상'이다. 모두가 그랬던 것 같다. 경제적 여유가 된다면 매일 여행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다. 한껏 쌓아 올린 스트레스를 휴가 때면 빵 ~ 터트리고 다시 돌아와서 흐물 해진 마음을 가다듬다 보면 또다시 휴가를 계획하고 있었다. 소모적인 휴가를 마치면 에너지가 충전되기보다 방전된다. 탈탈 털린 지갑을 메꾸느라 저당 잡히는 월급은 통장을 스쳐만 간다.
'남은 날은 전부 휴가'라는 제목의 일본 소설이 있다. 은퇴를 앞둔 성공한 몇몇을 제외하고 감히 내뱉지 못할 말인데 내게 지금 주어진 희망퇴직 후 일 년은 전부 휴가이다. 어쩌다 이 길에 접어들었는지 생각해보면 우연이라고 밖에는 답이 없다. 거창한 계획도 큰 꿈도 없이 그저 일 년만 놀아보자는 각오가 이제 세 달을 접어 선다. 직장인의 휴가는 충전과 방전을 거듭하다 충전 백 퍼센트의 역량을 잃어버리는 배터리 같다. 그에 반면 끝이 보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의 휴가는 멍 때리는 시간이 대부분이다. 내일로 다가오는 출근의 압박이 없어 급히 에너지를 소모해서 노는 일도 없다. 진정한 휴가란 이런 것인가. 방전이 없는 배터리는 적당한 때 완충이 가능하다. 언제든 가능한 충전이 아쉽지가 않아서 전투하듯 휴가 계획을 짜는 일도 없다. 다만 너무 느긋한 나머지 이렇게 허우적거리다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이 될까 걱정이 된다. 휴가 때 회사 일 걱정하는 것처럼 내일을 걱정하는 바보가 되지 않으련다.
남은 날은 모두 휴가. 되뇔수록 기분 좋아지는 말이다.
빈둥대기 좋은 날이다. 멍 때리기 좋은 날이다. 바로 오늘이다.
NanA 작가님의 더 많은 글 '보러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