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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햇살이 이리 따스할 줄이야. 

 

추운 입김이 공기 속에 어지럽게 흩어진다. 맑고 차가운 공기가 가슴으로 훅 치고 들어와도 햇살을 보는 것만으로도 따스해진다. 지금 시간은 오후 4시 30분, 퇴근을 기다리며 오매불망 시계를 쳐다보고 남은 일과를 마무리해야 한다. 그 자리는 여전히 누군가가 채우고 있겠지. 느긋하게 걷다 보니 손끝이 차가워진다. 그래도  발걸음은 열걸음을 이어가지 못한다. 낮은 빌딩들 사이로 낮게 들어오는 햇살은 앙상한 가로수에 걸려 그림자를 드리운다. 지금 보는 동네의 골목길이 다시 없을 풍경 같아 멈춰서기를 반복한다. 눈꺼풀을 수없이 깜박이며 머릿속에 꼭 새겨야만 한다.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이라 부르지 못하겠다. 이렇게 아름다운 겨울 오후에는, 세상에 아픈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다. 추운 사람도 없을 것 같다. 매우 추운 날씨였지만 말이다. 

 

보통의 삶을 규정하는 것들에는 무엇이 있을까. 지난 설을 보내며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의 근황을 주고받다 보면 잠시 쉼을 선택한 나는 그동안 살아온 보통의 삶을 약간 벗어난 것만 같다. 쉰 지 한 달 즈음해서 백수인 나와 신랑은 단골 미용실에 가서 유행에서 한참 벗어난 아무나 쉽게 하지 않는 뽀글이 파마를 했다. 부풀어 오른 머리는 헬맷을 써야 간신히 눌러지는데 그래야만 볼만할 정도였다. 그리고 한 달이 더 지난 요즘에는 적당히 컬이 살아 딱 맘에 든다. 부부 동반으로 친구들을 만날 때면 얼굴은 다르지만 비슷한 뽀글거림에 다들 커플 파마라며 웃어댄다. 따라서 활짝 웃는 우리의 얼굴에 불안함이 읽히지 않는다. 편안하고 걱정 없는 얼굴에 다들 부러움을 쏟아낸다. 경력단절이 가져올 다음의 어려움이나 새로운 세계로 가야 하는 두려움은 잊은 건 아니다.  한 순간도 걱정을 내려놓지 못하는 사람이였던 나는 이왕 선택한 지금을 만끽하기로 한다. 잘 해내도, 못해내도 모든 일에는 장단점이 있는 법, 어느 한 면을 잊고 살 수는 없겠지만 굳이 스스로를 괴롭힐 이유도 없다. 

 

통장에 구직급여가 찍혔다. 평소 받던 월급의 반에 한참 못 미치는 금액이다. 내가 처음으로 국가에게 받는 용돈이다. 뿌듯하다. 매번 연말정산을 하면 떼어가는 수많은 세금들과 비교하면 손해 보는 기분이 든다.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사회라고 말은 하지만 내가 번 돈을 세금 내는 데는 인색하다. 못된 마음이다. 혜택을 받느냐 그 제도를 만들기 위해 토대를 세우는데 일조를 하느냐는 반대의 의미가 아닐진대, 때때로 처한 상황에 따라 편을 나뉘게 된다. 받을 땐 적다고 투덜대고 낼 때는 많다고 억울해하고. 그래도 한국에서 지금 같은 취업난을 겪는 친구들보다 한세대 앞서있기에 나의 청년시설엔 스펙 전쟁도 덜했었고 등록금도 오르기 전이였다. 선배들은 후배들을 탓할 때가 많지만 그 이면에는 후배들의 더 나은 면에 느끼는 열등감이 있다. 예전보다 지금이 훨씬 어둡고 힘들다. 선배들은 우리가 일궈놓은 것들이라 떵떵거리지만 이렇게 엉망인 세상에 던져진 후배들에겐 해결책이 없다. 일찍 태어나길 다행이라 속으로 생각하면서도 겉으론 대단한 사람인 양 부족함을 인정하지 않는 꼰대가 되지 않으련다. 선배들이 일궈 놓은 세상은 그지 같다. 그 세상에 일조했던 나도 그지 같다. 후배들과 함께 감당하길 원하는 것은 염치없다. 가끔은  후배이자 가끔은 선배인 나는 그래도 함께 해야만 그나마 나은 세상이 될 거라 믿는다. 

 

매번 오는 쇼핑몰의 홍보 문자를 보고도 쇼핑의 욕구가 샘솟지 않는다. 오늘이 아니면, 이번 세일이 아니면 절대 오지 않을 것 같은 절호의 찬스가 그렇게 흘러간다. 마트에 가면 분명 당장 먹기엔 많아 보이는 양을 사놓곤 했다. 다음의 마트 방문을 기약할 수 없기에 찬장에는 유통기한이 긴 먹을 것들로 가득했다. 찬장을 가득 채운 것들은 한 달 만에 사라졌다. 그리고 이제는 필요한 식자재는 걸어가면 금방인 마을 시장에서 바로 산다. 딱 오늘내일 정도의 먹을 양 정도만. 냉장고를 가득 채울 필요가 없어졌다. 언제든 시간을 내서 시장에 간다. 어두운 저녁에 불빛으로 가득 찬 시장 골목만을 보았던 기억이 아주 오래전처럼 느껴진다. 

 

고작 두 달이다. 향수병이라도 느낄 줄 알았는데 회사 생활에서 그리운 것은 딱 하나 정도이다. 추운 겨울에 발 동동 거리며 먹었던 사람들과의 소주 한잔. 시원하고 매큼한 어묵탕 하나에 줄줄이 서있던 초록 병들이 그립다. 

 

일상이란 이런 것이어야 한다. 아무리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이라도 엄청난 능력으로  세계를 구하는 영웅이라 해도 일상은 이렇게 흘러가야 되는 거다. 9년 동안 잃었던 일상은 나의 선택에 따른 대가이니 후회하지 않는다. 지금이 얼마나 소중한지 느낄 수 있는 것도 지난날의 선택으로 얻은 선물이니.  저녁이 있는 삶이란 슬로건을 사랑했다. 이뤄질 수 없을 꺼라 생각하면서도 그날이 이뤄지길 꿈꾸며 살았다. 노동을 포기하고 잠시 쉼을 선택함으로 얻은 이 일상이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까.  물론 지금 중요한 것은 유지가 아니라 지금을 살아가는 것이다. 

 

몸도 마음도 편안한 어느 겨울날이 오늘일 줄은 몰랐다. 승진을 하거나 큰 집을 사는 행운이 오는 날이라 생각했다.  통장에 찍힌 구직급여가 아직 갈길이 먼 백수임을 기억하게 하지만 이리도 아름다운 겨울 햇살이라니. 오늘이야말로 계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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