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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인생에서 알쏭달쏭한 순간이 오면 이분법을 사용한다.  어떤 이유나 변명도 끼어들 틈을 주지 않는 것이다. 복잡한 계산법이 더해지면 결론은 항상 꼬리를 물고 원점으로 돌아가기에 아예 계산법을 빼버린다.

연애 고민이면 헤어지거나, 만나거나이고

진로 고민이면 그만두거나, 계속 다니거나이다.

계속 이대로 살아도 되는 걸까요?라는 질문도 답도 둘 중에 하나이다. 변하거나, 그대로 살거나.

회사를 그만둘 때 삼 주동안 치열하게 고민하고 생각했다. 결론은 단순한데, 갖가지 상황을 그려보며 발주처가 원하지 않는 대안을 10개 만드는 쓸데없는 짓을 했다. 선택은 하나만 할 수 있고 어느 선택을 하든 현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건 나이다. 결국 마지막 하루의 늦은 오후에 훅~ 하고 선택했다. 그리고 쓸데없이 긴 고민이었음을 깨달았다.

 

회사를 벗어나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서 예전과는 다르게 나를 소개한다. 

한 십 년 회사 다니다가 그만뒀어요. 일단 놀려고요. 나라에서 주는 돈도 받아보고, 교육도 받고요. 

여태껏 항상 나를 소개하는 말에는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말이 붙었다. 어느 회사의 누구예요. 타이틀이 사라진다는 것은 그게 자의든 타의든 받아들이는 상대방에게는 같은 의미다. 내가 얼마나 큰 고민을 하고 미래를 위해 무엇을 하려고 어쩌고 저쩌고 굳이 묻지도 않는 구구절절한 나의 사연을 털어놓을 필요가 없다. 아주 짧게 나의 근황과 계획을 한꺼번에 말할 수 있는 짧은 소개말에 대부분 아 ~ 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잠깐 아무 계획 없이 논다는 말에 뭔가 사연이 있을 거라 생각하는지 더 이상 궁금해하지도 않는다. 

 

현실이 바뀌었다. 성인이 되어 스스로를 책임졌던 삶의 무대, 회사가 인생에서 사라졌다. 한동안은 무대가 그립기도, 다시 돌아가지 못할 두려움에 불안하기도 했다. 이분법은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도 쉽게 만들었다. 사라진 무대의 그림자조차도 드리우지 않기로 한다. 여기에 이렇게 있기 때문에 '저기'로 돌아갈 수 없다. 여기에 있으면서 '저기'에서 가졌던 것, 느꼈던 것을 원한다는 건 어리석다.

 

돈을 벌기 시작한 이후로 세금을 내기만 했는데 처음으로 나라에서 직장 구하라고 돈을 준다. 내 월급과 비교하면 1/4 정도다. 일하지 않는 나에게 이 돈은 너무나 충분하다.  하루 세끼 (사실 두 끼다. 아침은 잠과 함께) 집에서 해결하고, 학원비도 나라에서 지원해준다. 교통비는 오토바이를 타니까 이주일에 한번 기름 넣는 걸로 충분하고 요즘은 추워서 동네 주변 말곤 나가지도 않는다. 기분을 내고 싶을 땐 일주일에 한 번쯤 외식을 한다. 그동안 옷장에 쟁여둔 옷 중에 오직 면으로 된 추리링만을 입는다. 옷을 사고 싶은 마음이 사라질 정도로 필요성이 없어졌다. 누군가에게 보일 필요가 없어진 무대에서 주인공도 관람객도 나이다. 내 기분에 따라 아주 편하게 쌩얼로 다닌다. 누가 나를 보고 평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나를 자유롭게 한다. 

 

나는 그동안 사회, 회사, 가족, 친구에게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노력했다. 남들보다 치열하게 살았다고는 말 못 하겠지만 열심히 해왔다. 누리고 싶은 것 중 몇 가지는 포기했고 뒤쳐지는 것에 의연한 척했지만 지는 것을 두려워했다. 장장 9년이다. 그게 당연하다 생각하고 살았던 시간이. 

 

이제는 나만을 위해 모든 것을 맞춰 놓고 살아가도 된다. 9년 동안의 직장생활이 내게 준 선물이다. 선물을 풀어보고 나서야 입사가 결정된 대학교 마지막 학기 이후로 내가 뭘 하며 살아가고 싶은지에 대해  고민해보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입사가 결정되기 전에 어느 직장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지 설레어했다. 그중에서 꼭 가고 싶다고 생각한 회사는 없었다. 적당한 게 좋았다. 남들이 좋아하는 회사면 좋고, 이왕이면 큰 회사면 더 좋고, 뽑아준다고 하면 고민 없이 가려고 했다. 실제로 그렇게 회사에 입사했다. 동기들 중에 가장 생각 없이 들어온 나였지만 가장 생각 없이 회사를 좋아했던 것도 나였다. 직장생활을 아무 기대 없이 시작했지만 가장 많이 실망했던 것도 나였다. 회사가 나를 바꾸지 못할 꺼라 생각했지만 쉽게 평범한 보통 직장인이 돼버렸다. 설마 내가 저렇게 힘없이 퇴근하는 샐러리맨이 될까? 나는 다를 거라 믿었지만 다르지 않았다.

 

직장에 다니는 여자는 화장을 한다. 물론 요즘은 학생들도 하지만. 나도 9년 동안 화장을 했다. 덜하긴 했어도 쌩얼은 왠지 민망해서 비비크림을 바르고 보고가 있는 날이면 풀메이크업을 했다. 립스틱을 칠하고 렌즈를 꼈다. 구두를 신었고 치마 정장을 입었다. 내가 몸담았던 분야는 나름 예술가적인 기질을 뿜어내야 하는 전문업계임에도 여자들은 예의상 화장을 했다. 결코 화장이 나를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었다. 유행을 벗어나 무난하지 않은 화장을 하거나 스스로를 표현하기 위해 개성 있는 옷을 입고 자신을 꾸미는 사람은 회사에 없었다. 모두가 비슷비슷했다.  물론 회사와 함께 예술가가 되고 싶고, 될 수 있다고 믿는 동료도 있다. 아마 세상에서 가장 평범하고 재미없는 예술가일 것이다. 

 

내가 '거기'에 아직 있다면 비슷한 모습의 직장동료들 사이에서 보통의 하루하루를 보냈을 거다. 

나는 '여기'에 이미 있기에 미래의 내가 되기 위해 곰곰이 생각을 하고 있다. 

세상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내가 '거기'에서 '여기'로 건너왔을 뿐. 

나의 모든 게 변했다. 도돌이표를 그렸던 회사생활의 종지부가 찍히자 오히려 세상은 더 넓어졌다. 

물론 세상은 나 하나 달라졌다고 변하지 않는다. 내가 변했다. 

나는 '희망퇴직'을 통해 백수가 되어서야 변할 수 있었다. 길들여지기를 멈추고 다시 되돌아서서 어쩌면 시간과 돈을 낭비하고 있는 것일지도. 그렇지만 언젠가는 변화를 선택하지 않았을까. 나와 다르게 누군가는 '거기'에서도 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분법적인 선택지의 장점은 정답이 없다는 것이다. 어차피 그대로인 세상을 살아가는데 '여기'의 내가 달라질 뿐이다. 

 

늦은 아침을 맞이할 때마다, 일주일의 마지막 일요일을 지날 때마다 사람들이 떠오른다. 어제 보다 더 추운 오늘, 출근과 퇴근을 반복하는 나의 옛 모습들이 사람들과 겹쳐친다. 직장인의 헤어 나올 수 없는 딜레마에 허우적대던 때가 분명 내게도 있었는데 다른 이의 삶처럼 희미하다. 지금 '여기'에서 다른 현실을 살아보니 스스로 열심히 산다고 인정하는 평범한 직장인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알겠다.  내일을 걱정하더라고 오늘을 유지할 수 있는 안정적인 조건만 주어진다면 내일의 선택이 달라질 텐데, 자신을 위해서 고민하고 행동할 수 있을 텐데. 가까스로 겨우 빠져나와 보았자 오늘의 걱정에 매몰될 것임을 알기에 모두가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안다. 나쁜 회사라 욕하면서 나왔지만 '희망퇴직'을 행운이라 여겨야 하는 건지, 아무런 대책도 주지 않고 내쫓기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면 우리나라의 직장인들은 너무나 춥다. 아마도 봄이 와도 여름이 와도 그렇게 여러변의 계절이 지나도 우리에겐 추운 날들이 계속될 거다. 

 

믿고 따르던 선배가 '적어도 나의 아이들만은 이렇게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했던 말이 떠오른다. 

열심히 직장을 다니면 바뀔지도 모른다는 희망으로 그네들이 묵묵히 만들어진 세상이 오히려 고착되어 변화되기 점점 더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어쩌면 '여기'에 와서야 '저기'의 변화는 불가능함을 깨달았을지도.

 

꿈같은 상상을 한다. 모든 직장인들이 사표를 쓰고 기업들이 구걸하며 일해달라고 얘기하는 세상, 일 안 하는 임원 나부랭이들이 감히 사원들에게 명령하지 못하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그런 세상이라면 '여기'든 '저기'든 같은 현실을 살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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