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을 읽을 줄 알게 된 (글자를 읽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들여다보게 된) 이후부터 어쩌면 내 삶에서 한 번도 빠지지 않았을 기업. 모든 대기업을 모조리 비교해봐도 어느 분야에서도 우위에 있는 기업. 삼성. 그 삼성의 실 소유주가 구속을 앞두고 서울구치소에 있다. 잠을 자야 하는 이 시간에 그 뉴스를 기다리느라 나는 아직도 깨어있다.
단순히 삼성이라는 로고를 단 파란색 명함에 이름을 박지 않아도 한 번의 입김에 웬만한 중소기업을 좌지우지할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는 삼성의 영향 아래 얼마나 많은 이들이 살고 있는지,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그 주인이 어떤 결정을 내리고 미래를 만들어나가냐에 따라 기업의 흥망이 결정되는, 주인이 모두를 이끌고 책임을 지는 구조는 옛날 옛적 왕 아래 신하가 있고 백성이 있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왕이 멍청한 데다 비열하기까지 해도 신하는 역모를 꾀하지 못하고 백성은 나라가 망할까 무서워 임금을 걱정하고 안타까워하는 일이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나의 옛 회사는 차명회사에서 주인의 이름을 되찾았다. 짧은 역사 속의 권력다툼은 신념으로 포장되고 일개 사원은 가늠하지 못할 감춰진 보상은 아름다운 퇴장으로 그려졌다. 세상은 거짓말투성이지만 나쁜 사람은 없다고 했던가. 돈과 권력, 둘 중 뭐든지 자력으로는 절대 만들 수 없을 정도의 양을 손에 쥐고 나면 나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나쁜 짓을 들키지 않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한다. 생각보다 쉽게 사람들을 속일 수 있는 건 아마도 그 이면을 알아도 믿지 않을 정도의 보통 사람들의 도덕심 때문일 것이다. 내가 돈과 권력을 쥔 사람들에게 바라는 것이 결코 대단한 도덕심이 아닐진대 기본 상식조차 버려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기본 상식을 버린 사람들이 하는 모든 일은 보통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원리로 돌아간다. 내게 회사를 그만두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보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갑과 을의 관계보다 얽히고설킨,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했던 옛 회사가 만난 새로운 주인은 숨겨진 진짜 주인을 위해 모든 것을 거꾸로 돌리고 있었다. 그의 경영승계를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망퇴직을 고민했는지 서울 구치소에 있는 그 사람은 알고나 있을까. 내겐 기회였고 그래서 감사하다. 하지만 모두에게 똑같은 의미였을까? 선택을 스스로 한 것과 강요당한 것의 차이는 내일을 맞이하는 자세에서 드러난다. 긍정적인 마인드만 강조라며 회사에서 나를 버린다고 세상이 나를 버린 건 아니니 다시 힘차게 시작하면 된다고 자기계발서에서 말하지만 그게 쉽다면 그렇게 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치적인 사건이 세상을 뒤엎기 시작했을 때, 나의 지난날들이 그저 스쳐 지나갔던 프로젝트들이 내 머릿속을 뒤엎었다. 사건의 정점에 삼성이 올라서니 결말이 어찌 되든 간에 아무것도 손에 쥐지 못한 평범한 직원들이 많은 희생을 당할지 모른다는 예감이 든다. 항상 다음을 생각하면서 더 나아지겠지, 더 올바른 쪽으로 변할꺼라 기대한다. 그다음을 위해 누군가가 벌을 받고 힘든 시기를 보내야 한다면 당연히 가장 나쁜 사람이어야 할 텐데, 주인의 눈빛 한 번에도 흔들리는 파란 로고의 명함을 가진 사람들과 하청업체, 또 그들의 가족들이 더 큰 희생자가 되는 게 아닐지. 칼날에 스러지는 거인은 자기 밑에 소인들이 깔리든 말든 신경조차 쓰지 않고 어쩌면 이 기회에 맘에 안 드는 마을 쪽으로 쓰러져 버리는 게 아닌지. 걸리버 여행기처럼 소인들이 거인을 쓰러 드리고 손발을 꽁꽁 묶어버리는 일이 현실에서도 일어났으면 좋겠다.
또 한편으론 어차피 벌어질 일은 벌어지게 될테고, 이미 주인의 맘을 떠난 마을은 쑥대밭이 되버렸고, 도적떼가 세상의 주인인지 오래이니 차라리 벌이라도 속 시원하게 받았으면 좋겠다.
아직도 서울 구치소에 똥 씹은 표정을 하고 앉아있는 그 사람이 최소한 기본 상식을 가지고 있었더라면 말이다.
아직도 나는 회사를 다니고 있었을 거다. 그러니까 진심으로 또 빌어본다.
아직도 그 회사를 다니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벌 받고 반성해서 기본 상식을 장착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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