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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팅 수업을 듣게 되다.

경영학과에 오게 되어 2학년 1학기 때 마케팅원론 수업을 들으면서, 처음으로 '내가 하고 싶었던 공부는 이런 것이었구나.'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마케팅 프레임워크로 '5C-STP-4P'를 배우면서, 각 프레임워크 별로 대표되는 마케팅 케이스들을 배우는데, 내가 그동안 지나치면서 보던 광고, 신제품 등이 이런 '의도'를 가지고 기획된 것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면서 재미를 느꼈다.

 

'난 왜 마케팅을 좋아하게 되었지?'라고 되물어보면, 당장 내 생활과 관련된 실용적이라는 것이었다. A라는 카테고리에서 굉장히 유명한 브랜드가, B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로 진출할 때 브랜드명을 노출하는 것이 좋을지, 아니면 브랜드 이름을 숨기고 Second brand를 만드는 것이 좋을지 논의한다던가, 마케터들이 했던 활동으로 인해 고객의 생각이 바뀌는 것들이 신기했다. 이런 내용을 한눈에 보여주는 케이스는 ‘코카콜라’ 케이스였다. 예전에는 산타라고 하면, 요정을 떠올리기도 하고 사람마다 떠올리는 이미지가 달랐다고 한다. 오늘날 우리가 산타 할아버지라고 생각하는 이미지는 코카콜라의 겨울 매출액 드라이브를 위해 코카콜라가 만들어 낸 이미지다. 여름에는 날씨가 더워 다들 쉽게 코카콜라 같은 탄산음료를 떠올리지만, 겨울에는 떠올리지 못하자 겨울을 대표하는 크리스마스, 그중 산타를 살려 그들이 콜라 먹는 장면을 광고로 만들어 겨울 매출액을 올리고 더 나아가 사람들에게 산타란 저런 이미지라고 학습시킨 것이다. 마케팅이 사람들의 생각까지 바꿀 수 있다는 생각에 매료되어 마케팅을 하고 싶다고 했었다.

 

그냥 지나치는 사람들은 모르는, 비하인드를 읽어낼 수 있는 직업이라는 점에서 흥미를 느꼈다. 그리고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기도 하고, 그리고 다루는 사람에 따라서 몇 만 가지의 정답이 나올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똑같은 정보를 가지고, 똑같은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도 그 접근방식이 어땠는지에 따라 결과물은 전혀 달랐다.

 

마케팅을 배우면서, 내 주변에서 보이던 광고 메시지 등등이 이런 배경 하에 일어난 일이라는 것을 뒤늦게 발견할 때 쾌감이 최고였다. 이제는 기업이 신제품을 런칭해도, 새로운 프로모션을 기획해도, 광고를 만들어도 마케터가 어떤 걸 의도하고 만들었는지 읽어내는 재미가 쏠쏠했다. 모든 것이 내게 새롭게 말을 거는 느낌이었다. 광고들을 보면서 왜 저 광고를 했고, 나였다면 어떻게 하겠다고 생각하는 것, 내 주변 세상이 한순간에 바뀌는 느낌이었다.

 

그때쯤 포스트잇에 내가 업으로 삼고 싶은 직무에 대해서 이렇게 정리해두었다. (이 글을 쓰다 보니, 내가 참 마케터라는 업을 사랑했구나 싶다. 최근에 나는 '매출액 달성'이라는 단기간 목표에 집중하다 보니, 내가 좋아했던 본질에 대해서 많이 잊었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마케팅 전략가가 되자!

 

나라는 사람은,

1) 마케팅을 좋아한다. 상품이나 서비스에 의미를 부여해서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것에 매력을 느낀다.

2) Challenging 한 상황을 즐긴다. '내가 성장할 수 있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새로운 프로젝트에 도전도 많이 했고 배우는 것을 좋아한다. 마케팅 전략을 세우는 것 자체가 항상 도전받는 것인데, 현재 상황을 진단하고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방향을 찾는 것을 좋아한다. 현 상황은 항상 변하고, 목표까지 가는 방법도 다양하고, 완벽한 전략을 짜도 영원하지 않다는 점에서 challenging 한 성향과 마케팅 전략은 잘 맞는다.

3) 사람들과 Interactive 하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사람들과 함께할 때 에너지를 얻는 사람인데, 브랜딩, 마케팅 전략을 세운다는 것이 가장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는 최전선이라고 생각한다. 학교에서 배운 다른 것들 시장조사라던지, NPV를 계산하는 재무라던지 그 회사가 소비자에게 어떻게 보이고 도와줄 수 있는지 고민하는 것은 흥미로웠으나 인터액티브하지 못하는 것은 내가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마케터라는 직무를 찾은 후에도 바로 마케터가 될 수 있었다기보다, 성장하는 과정에서 여러 삽질을 했었는데 그 삽질들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삽질. 프레임워크만 적용했던 공모전

2학년 1학기를 막 마친 여름방학부터 공모전 중에서 마케팅이라는 단어가 붙어있기만 하면 무조건 지원하고 봤던 것 같다. 그리고 모든 공모전에서 시원하게 탈락했다. 그때는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자꾸 떨어지는 상황이 답답하기만 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떨어지는 게 당연했다. 그중 하나의 공모전이 기억에 남는데, 운 좋게 발표 기회까지 얻었지만 결국 탈락했었다. 그때 나는 마케팅을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마케팅이 뭔지 정확하게 알지는 못하지만, 철칙처럼 마케팅 원론 시간에 배운 '5C - STP - 4P'라는 프레임워크를 모든 공모전에 적용했었다. 사실 프레임워크는 하나의 틀일 뿐, 실제로는 그 상황에 대해서 'Why'를 더 깊게 고민해야 했는데, 5C를 채워야 하니 채워 넣고, STP를 채워 넣는 형태로밖에 고민을 하지 못했었다. 이제야 발표를 할 때 내 발표를 따분하게 듣던 심사위원의 표정이 이해가 된다. 이 바쁜 시간에 왜 깊게 고민하지도 못한 친구의 발표를 들어야 하는지 등의 마음이었겠다 싶다.

스스로 한계를 느껴서 2학년 2학기부터는 마케팅 학회에 들어가서, 하버드 비즈니스 케이스들을 접하면서, 수업 때보다 더 다양한 케이스들을 접하게 되면서 프레임워크는 그냥 가장 기본적으로 만들어진 프레임일 뿐, 그 브랜드가 처한 상황, 어려움을 겪는 그 현황의 root  cause를 찾는데 더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프레임워크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내용은 다른 글에서 다루어봐야겠다.

 

두 번째 삽질. 마케터는 하고 싶은데, 마케터 현업에 대한 정보는 도대체 어디에

마케터가 되고 싶다고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컨설턴트로 일하던 선배와 이야기를 나눠보게 되었다. 이 분은 학생이던 나보다 경험도 많고 업에 대한 고민도 충분히 하셨던 터라, "어떤 마케터가 되고 싶어요? 어느 인더스트리에서 일하고 싶어요?"처럼 지금 생각해보면 업을 찾기 위해서 당연하게 파악해야 하는 것들을 물었는데, 그 당시 나는 한 번도 고민해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으며 충격을 받았다. 그때 채 10분도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나는 '마케터에는 종류가 많구나, 대행사 마케터와 인하우스 마케터가 차이가 있구나, 어느 인더스트리에서 일해야 할까?'처럼 그동안 생각조차 못하던 (정보를 접할 수 없어서 알 수 없었던) 내가 알아야 할 리스트들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그 이후, 마케터와 관련된 정보를 얻으려고 도서관도 찾아다니고 사람들에게 물어보면서 정보를 얻으려고 했는데 광고 회사 다니는 분들이 쓴 글은 많은데 (카피라이터가 무슨 일을 하는지, AE가 무슨 일을 하는지 등) 마케터 현업자가 남긴 글은 없었다. 있다 하더라도, 한 회사 내에서 몇십 년씩 마케팅을 해서 마케팅 구루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글밖에 없어서 나는 어떻게 마케터가 될 수 있을지 알 수 없어 갈증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결국에 나는 마케터로 입사를 하고, 이직을 여러 번 하면서 진짜 마케터가 되고 나서야, 자연스레 정보를 얻게 되었다. (내가 필요로 하던 시점에는 안갯속에 쌓여 알 수 없었던 정보들이, 실제 그 시장에 뛰어들고 보니 환하게 보인다. 여전히 학생 입장에서는 이런 정보를 못 얻고 있는 사람들이 많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마케터 현업에 대한 정보를 브런치에 많이 남겨두었다.

마케터 그래서 하는 일이 뭐야
https://brunch.co.kr/@236project/26

마케터의 종류
https://brunch.co.kr/@236project/68

내게 맞는 인더스트리 찾기
https://brunch.co.kr/@236project/64

세 번째 삽질. 근데 마케터는 왜 많이 안 뽑나요?

이런저런 정보들을 얻으면서 마케터가 되고 싶다는 것은 확실한데, 아직 인더스트리에 따라서, Product Life Cycle에 따라서 하는 일이 다르다는 것은 모르던 시절 또한 답답했다. 4학년이 되어 한 학기에도 몇십 개의 자소서를 쓰던 시절이었는데, 삼성부터 시작해서 크기가 큰 순서로 100개가 넘는 기업들에 '마케터'라는 직무가 열렸다고 하면 무조건 자소서를 쓰기 시작했다. 몇 년 전부터 채용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취업 N수생이 나오던 시절이라 내게 맞는 곳은 어디 일지에 대한 고민보다는, 일단 붙고 나서 생각하자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영업 인력은 00명씩 채용하는데, 마케터는 아예 공고가 열리지 않거나 0명만 열리는 것을 보면서 왜 기업들이 마케터를 뽑지 않는지 원망 아닌 원망도 했다. 지금은 명확하게 PLC에 따라서 마케터가 하는 일이 달라져서, 성숙기에 해당하는 기업들은 마케터 채용이 적다는 것을 알지만, 그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

간략하게 정리해보자면, PLC에 따라 to be가 달라지므로 마케터가 하는 일이 달라지는데, 도입기에 해당하는 스타트업 등은 신규 유저 모집과 같은 몸집 키우기가 중요해서 마케터를 많이 채용하고 '신규 유저 모집' 등에 활동이 집중된다면, 성숙기에 해당하는 대기업 등은 마케팅 비용을 써도 이미 고객 확보가 되어 도입기보다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 보니, 따라서 매출액 성장보다는 비용을 줄여 이익 증대가 중요해질 수 있다. 따라서 마케터가 비즈니스를 리드하기보다는 SNS 채널 운영처럼 업무 영역 줄어들 수도 있다.

 

그 외에도 내 삽질은 끝나지 않았는데,

아직 직무를 정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어떻게 하나의 직무 (마케터)에 저런 확신을 가졌는지 신기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 역시도 컨설턴트처럼 남들의 시선에 다른 직업에 기웃거리기도 했다. 예전에 남긴 기록들을 보면 시간이 지나 확고하게 살아온 것 같은 그때의 시간들도, 사실은 이리저리 흔들리면서 내 방향성을 만들어가는 게 보인다. 마케터를 원하면서도 주변 친구들의 영향을 받으면서 '그래도 경영학과를 왔는데 CPA를 쳐야 하는 것 아닌지, 다들 첫 직장은 컨설턴트로 시작하던데 RA 지원해보자!'처럼 흔들리기도 했다.

 

그리고 마케터로 첫 시작을 스타트업에서 하면서 네임밸류 없는 곳에 입사한다는 것이, 남들의 눈에 어떻게 비칠지 고민에 흔들리기도 했다. 스타트업에 입사할 당시의 내 노트를 보면 '내 성격은 참 지랄 맞아서 일도 재밌고 성장도 해야 하는데, 네임밸류까지 있어야 한다. 아니 네임밸류가 가장 큰 것 같다. 대기업 가면 다 똑같은데 나는 왜 못 가서 안달일까?' 등의 기록도 있다. 사실 이렇게 흔들리면서 아닌 길을 걸을 때는 괴로워하기도 하면서, 내 길에 대해서 점점 확신을 만들어가는 거라는 걸 이제는 안다. 좋아하는 일은 한순간에 다가오는 게 아니라, 이 경험 저 경험하면서 만들어가는 것이었다.

 

지나고 보니 이렇게 직무를 찾고서도, 그 직무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도, 모르는 정보도 많았고 삽질도 많이 하면서 마케터라는 직무를 시작하게 되었던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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