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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트리흐트에 와서 여태까지 가장 재미있게 들었던 과목이 지속 가능한 발전 (Sustainable development)다. 수업에서 배운 내용과 들었던 생각들을 정리해본다.

 

 

지속 가능한 발전의 등장 배경

 

오늘날 우리는 자본주의 패러다임 안에서 살고 있다. 법률, 교육과 같은 사회 제도는 물론이고 개인의 욕망과 라이프스타일까지도 모두 자본주의의 영향을 받는다. 

 

자본주의가 현재까지의 최종 승자가 된 것은 자본주의가 인류의 '물질적 풍요'를 끌어올리는 가장 성공적인 체제였기 때문이다.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시장과 화폐, 기업의 발달은 기존의 봉건제, 공동체 중심의 경제보다 넓은 범위의 협력이 가능하게 만들었다. 그 때문에 자본주의는 인류 사회를 구성하는 메인 패러다임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인간이 만들어낸 체제이다. 인간의 발명품 중 완벽한 것은 없다. 자본주의도 많은 문제점을 갖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본질적, 구조적인 문제점 2가지가 바로 거대한 불평등, 그리고 전례 없는 환경 파괴 문제다.

 

지속 가능한 발전(Sustaiable development)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한다. 자본주의의 '경제성장 논리'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에 주목하는 것이다.

 

 

지속 가능한 발전의 정의

 

지속 가능한 발전의 정의는 엄청나게 다양하다. 그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정의는 1978년 브룬틀랜드 보고서 (Brundtland Report)의 정의로,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지속 가능한 발전은 미래 세대가 필요를 충족할 능력을 해치지 않는 한에서 현재 세대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이다. 

Sustainable development is the kind of development that meets the needs of the present without compromising the ability of future generations to meet their own needs. 

 

하지만, 이 정의는 애매모호해서 명확하게 이해하기 어렵다. 개인적으로 나는 Jeffery Sahcs의 설명이 더 직관적이라고 생각한다.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means economic development should continue, combined with social inclusion and environmental sustainability. 

‘지속 가능한 발전 목표'란 사회적 통합, 환경적 지속가능성과 함께하는 경제적 발전을 의미한다.

 

지속 가능한 발전의 3가지 축을 경제적, 사회적, 환경적 지속가능성으로 보고 3가지 축을 동시에 추구하는 활동으로 정의했다. 이를 3 pillar approach라고 부른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기존의 인류가 추구해온 발전이 '경제성장'을 목표로 기술, 사회 제도를 최적화시키는 과정이었다면,

지속 가능한 발전은 목표를 경제성장뿐만 아니라 사회적, 환경적 차원까지 확장시킨다. '발전'을 새롭게 정의한 것이다. 

 

즉, 이 3가지 목표 사이의 균형을 달성하려는 모든 노력을 '지속 가능한 발전' 영역으로 통칭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지속 가능한 발전은 굉장히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용어이다.

 

이 본질적인 애매모호함 때문에,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는 말에는 모두가 동의하면서도 실제로 구체화된 단계에서는 사람에 따라 모두 다른 목표를 추구하게 되는 문제가 있다. 그래서 나온 것이 바로 UN이 만든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SDGs)이다. SDG는 지속 가능한 발전의 목표를 더 세분하여 17가지 과제로 구체화시켰다.

 

참고: 슬로워크, 지구의 미래를 위한 17개의 목표, SDGs를 소개합니다. 

 

 

Sustainable development의 스펙트럼

 

지속 가능한 발전이 넓고 모호한 개념인 만큼 그 안에는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경제 성장'만 목표로 하는 학문들도 시장이 중요하다, 정부가 중요하다 등등 엄청나게 많은 의견들이 있는데, 3가지 목표를 추구하는 지속 가능한 발전은 더 다양한 조합들이 있을 수밖에 없다. 

 

Susan Baker는 지속 가능한 발전의 스펙트럼을 4가지로 분류했다. 

 

첫 번째는 Pollution control (오염 방지), 

두 번째는 Weak Sustainbable development (약한 지속가능성), 

세 번째는 Strong Sustainable development (강한 지속가능성), 

네 번째는 Ideal approach(이상적 이론)이다.

 

(다만 이 분류는 경제 성장과 환경적 지속가능성 두 축만을 기준으로 분류하고 있다는 한계점이 있다.)

 

첫 번째인 Pollution control (오염 방지)의 생각은 이렇다. 환경 문제를 고려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성장을 저해하거나 더 높은 우선순위를 가져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특징은 기본적으로 인류가 기술 진보를 통해 환경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음을 전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입장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선진국의 사례로 봤을 때 환경오염이 산업 발전 초기에는 증가했다가 어느 지점에 다다르면 감소한다는 사실을 근거로 내세운다. 이를 이른바 ‘Kuznet Curve’라고 한다. 후기 산업 사회에서는 서비스 중심 경제로 가면서 환경오염이 감소한다는 것이다. 

 

이 ‘Kuzent Curve’ 이론은 아주 큰 약점이 있다. 환경오염이 선진국에서 감소하는 이유는 환경오염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환경오염을 유발하는 산업들을 모두 아웃 소싱하기 때문이다. 일본 같은 나라들은 자국의 자연 자원을 보호하기 위해 다른 나라의 목재를 수입해다 쓴다. 결국 전 지구적 관점에서 봤을 때는 환경오염이 감소하지 않는다.

 

두 번째는 Weak Sustainbable development (약한 지속가능성)이다. 자본주의적 성장을 중심에 두고 환경 문제에 대한 고려를 통합하려는 관점이다. 자연도 하나의 자본이며, 자연 자본(Natural Capital)을 고려한 경제 성장이 필요함을 주장한다. 

 

대표적인 수단이 ‘환경 비용’에 대한 측정 기준을 만든다거나 탄소 배출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다. 자연도 자본이고 비용이므로 이를 자본주의 안에 내 부화시켜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접근법이다. 그리고 현재 대부분의 국제기관들이 정책을 만들 때 추구하는 입장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서는 "여전히 인류 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자연은 단순히 ‘자원’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비판이 존재한다.

 

세 번째는 Strong Sustainable development (강한 지속가능성)이다. 환경 문제가 경제 성장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자연은 단순히 경제성장을 위한 ‘자원’이 아니라 인류가 살아가는 터전이며 기반이기 때문이다. 또한 자연은 단순히 기술 발전으로 대체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우리의 근본적인 의식과 행동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네 번째는 Ideal approach(이상적 이론)이다. 이상적 이론은 인류 사회 전반에 걸친 구조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 입자에 따르면, 'Sustainable development’라는 용어 자체도 모순이다. ‘성장’과 ‘지속가능성’은 양립할 수 없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경제적 성장을 강력하게 제한하고 자연과 공존할 수 있는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인류는 지구에 존재하는 다른 모든 생명체와 동등한 존재이며, 지구 생태계의 하나로써 살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지속 가능한 발전의 넓은 스펙트럼은 간단히 말해 우선순위의 문제를 보여준다. 사회적, 환경적 가치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는 것은 모두 인정하지만, 경제적 발전과 비교해서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한 관점이 다르다. 후자로 갈수록 경제적 성장에 대한 우선순위가 낮아진다. 

 

지속 가능한 발전의 문제점은 3개의 목표를 동시에 추구한다는 취지는 참 좋은데, 현실에서의 의사결정은 한 가지 목표를 추구할 때 다른 한 가지 목표가 상충되는 일이 자주 발생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인도네시아의 경제 성장을 위해선 열대림의 벌목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증가하는 이산화탄소 농도를 생각했을 때는 재앙을 불러올 수 있다. 

 

이에 대해 Pollution control과 Weak SD는 인도네시아의 경제적 성장을 우선순위로 하되 환경적 고려를 하고, Strong SD와 Ideal approach는 환경 문제를 더 우선으로 생각하며 "우리는 꼭 '성장'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을 던진다.

 

 

패러다임의 전환인가, 보조 가설의 변경인가?

지속 가능한 발전에 대한 서로 다른 입장은 상당히 중요한 시사점이 있다. 

추구하는 목표가 바뀌었고 기존의 세계관과는 맞지 않는다면, "우리는 기존 사회 시스템을 수정해야 하는가? 아니면 완전히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다. 

 

나는 자본주의가 인류의 역사 속에 존재해온 하나의 '패러다임'이라고 생각한다. 

토마스 쿤은 과학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패러다임'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쿤은 과학이 정상 과학과 혁명을 거듭하며 발전한다고 주장했다. ‘정상과학’이란 현재 과학자 사회에 의해 가장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는 세계관 아래서 진행되는 과학을 뜻한다. 그리고 세상을 설명하는 이론, 가치, 사상의 집합체를 쿤은 ‘패러다임(paradigm)’이라고 불렀다. 이 패러다임은 사회의 강력한 지지를 받기 때문에 쉽게 깨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 점차 이 패러다임이 설명할 수 없는 ‘변칙 사례’들이 발견되고, 그것들이 쌓이다 보면 결국 패러다임은 위기를 맞게 되고, 새로운 패러다임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과학혁명’이 일어난다고 쿤은 주장했다.

나는 쿤의 패러다임 이론이 인간의 역사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본주의도 하나의 패러다임이다. 우리가 원하는 목표인 '물질적 부'에 관한 문제들을 잘 풀어내 왔고,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는 '정상' 시스템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전의 패러다임은 어떻게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바뀌게 되는가?

 

이에 대해 쿤의 제자인 라카토시는 ‘연구 프로그램(research programme)’이라는 이론을 주장했다. 연구 프로그램 이론은 쿤이 말한 변칙 사례가 쌓여 과학 혁명이 일어나는 과정을 체계화한 것이다. 

 

아주 간단하게 설명해서, 라카토시는 패러다임 (‘그의 용어로는 연구 프로그램’)에 핵심 가설과 보조 가설이 있다고 말했다. 맨 처음 변칙 사례가 발견되면, 과학자 사회는 이를 보조 가설을 변경하는 선에서 해결하려고 한다. 사소한 변칙 사례들은 보조 가설의 변경으로 해결된다. 하지만 보조 가설의 수정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나타났을 때, 이 문제는 핵심 가설과 직접적으로 대립하게 되고, 이때 비로소 과학 혁명이 촉발된다.

 

"위대한 과학적 성취는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느냐 되지 않느냐의 관점에서 평가할 수 있다. 과학혁명이란 하나의 연구 프로그램이 다른 것에 의해서 대체되는 것이다. 이 방법론은 새로운 과학을 합리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이를 지속 가능한 발전에 적용해보면, 변칙 사례란 불평등, 환경 문제 등 자본주의 시스템으로서 풀리지 않는 (또는 가속화되는) 문제를 뜻한다. 우리 사회가 눈앞에서 보고 있는 변칙 사례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존 시스템의 보조 가설을 수정하여 바꾸는 방법과, 아예 핵심 가설(패러다임)을 바꿔야 하는 두 가지 방향으로 나누어진다. 

 

쉽게 말하면, 개선이냐 혁명이냐? 의 질문이다. 

이에 대한 답은 인류가 직면한 문제가 정말 핵심 가설을 바꿔야 할 정도의 문제인가라는 관점 차이에 따라 달라진다. 이것이 바로 약한 지속가능성과 강한 지속가능성을 가르는 경계다.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환경오염에 대해서 비용을 책정하는 탄소 배출 세금이라든지 기업들이 돈을 벌었으면 기부도 하고 환경적 책임도 져야 한다는 CSR은 자본주의의 보조 가설을 수정하는 대표적인 예다. 기존 자본주의 핵심 가설은 유지한 채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핵심 가설을 바꾸는 예로는 세계 곳곳에 존재하는 생태공동체 운동이라던지, 탈성장 이론(uneconomic growth) 등을 예로 들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생각

개인적으로 나의 생각은 약한 지속가능성과 강한 지속가능성의 주장이 모두 틀린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일단은 단단하게 자리 잡고 있는 자본주의의 방향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당장 절벽으로 달려가는 차의 핸들을 30도 꺾어야 하느냐 90도 꺾어야 하느냐를 가지고 논의하는 것보다는 빨리 핸들을 돌리는 게 나을 수 있다. 

 

물론 논의는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는 지속 가능한 발전의 기본 개념인 3 pillar approach조차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지 않고 있다. 2017년 현재도 여전히 전 지구적으로 경제 성장이 최고의 '공동선'이다. (미국 대통령이 기후변화를 경제성장을 해치는 음모론이라고 생각하는 마당이니 말 다했다.) 

 

하지만 지속 가능한 발전은 전 인류적인 협력이 필요한 문제다. 그리고 어떤 방향에 대해서 모두가 입장이 다를 때 정확히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느냐를 결정하는 것은 곧 다른 입장에 서있는 사람들을 배제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현재는 좀 더 포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그래서 SDG도 굉장히 포괄적이고 광범위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현재의 사회 시스템이 절대 진리가 아니라 '패러다임'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더 장기적 관점에서 3차원 목표의 균형을 맞추려는 노력이다.

 


참고문헌

 

Baker, S. (2016). Sustainable development. London: Routledge, Taylor & Francis Group.

 

Robinson, J. (2004). Squaring the circle? Some thoughts on the idea of sustainable development. Ecological Economics, 48(4), 369-384

 

장대익 (2008), 쿤 vs 포퍼 : 과학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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