Χ

추천 검색어

최근 검색어

NGO에서의 인턴이 끝나고 2학기가 시작되었다. 서울대학교 전략경영학회(MCSA) 공고를 봤다. 인턴을 하면서 경영 컨설팅에 관심이 생겼던 터라 눈길이 갔다. MCSA는 경영 컨설팅과 관련된 역량을 키우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는 학회였다. 특히 실제 기업과 프로젝트를 한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나는 경영을 배우고 싶었다. 하지만 경영학 수업을 듣는 것보다 실제 프로젝트를 해보는 게 경영을 배우는 데 더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경험에 비추어봤을 때 어떤 분야를 알기 위해서는 직접 해보는 게 최고였다.

 

MCSA 활동은 총 3학기로 이루어진다. 첫 번째 학기에서는 내부 세미나(세션이라고 부름)를 통해 ‘문제 해결 방법론’을 익히고 2, 3학기에는 실제 기업과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문제 해결 방법론은 MCSA에서 가장 중요하게 배우는 부분이다. 문제 해결 방법론은 주로 경영 컨설팅 회사들이 경영에 관한 문제들을 과학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정립해놓은 과정이다.

문제 해결은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친다.

 

1) 문제 재정의

단순히 ‘문제’만 가지고는 정확한 상황과 목표를 알 수 없다. 현재 상태와 목표 상태를 구체화한다. 어떤 맥락에서 발생한 것인지, 어떤 제약조건들이 있는지 파악한다.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보는 기준은 무엇인지, 문제의 범위는 어디까지인지 등 다양한 정보들을 수집해야 한다.

 

앞서 말했듯이 ‘두산중공업의 매출이 떨어졌으니 회복시켜달라’라는 의뢰가 들어왔다고 하자. 매출이 떨어졌다는 것은 정확히 몇 퍼센트이며 무엇과 비교한 수치인가? 매출이 어느 정도 되어야 매출이 ‘회복’되었다고 할 수 있는가? 회사 자체 내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인가 아니면 그룹 차원의 해결책이 필요한가? 등등 다양한 질문을 해야 한다. 

 

실제로 문제 해결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태도가 문제보다 해결책에 집중하는 것이다. 문제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 피상적인 해결책밖에 나오지 않는다. 문제를 정확히 정의해야만 올바른 해결책도 나올 수 있다. 

 

2) 문제 구조화

문제를 세부적인 문제들로 쪼개는 과정이다. 로직 트리(Logic tree)를 주로 사용한다. 앞서서 본 문제 재정의 과정을 통해 ‘두산중공업의 매출 부진’ 문제를 ‘영업사원들의 실적 감소’로 재정의했다고 가정하자. 그렇다면 영업사원들의 실적 감소 원인은 무엇인가? 이를 두 개로 쪼개면 ‘영업사원 1인당 매출 감소’와  ‘활동하는 영업사원 수 감소’가 된다. ‘영업사원 1인당 매출 감소’를 다시 쪼개면 영업사원 1인당 고객 수 감소, 고객 1인당 구매 금액 감소가 된다. 이렇게 논리적으로 문제를 쪼개나가면 문제의 핵심 원인을 파악하고 해결책을 찾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좋은 구조화는 흔히 'MECE 하다'라고 말한다. MECE란 서로 배타적이지만 합치면 전체가 된다(Mutually Exclusive Collectively Exhaustive)는 뜻이다. 중복과 누락이 없어야 문제를 제대로 구조화했다고 할 수 있다.

출처: ideanetwork

3) 우선순위화

‘바다를 끓이지 말라’. 우선순위화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 흔히 하는 말이다. 모든 부분이 똑같이 중요하지는 않다. 대부분은 20%의 요소가 80%의 문제를 일으킨다. 구조화한 문제에서 중요하지 않은 부분은 뒤로 미루고 더 깊게 들어가야 할 핵심 이슈를 고른다. 

 

4) 가설 세우기

문제 해결 방법론에서는 ‘가설 기반 사고’를 강조한다. 항상 가설을 세우고 그 가설을 검증하는 방식으로 해결책에 접근해야 한다. 

 

가설 기반 사고의 장점 첫 번째는 아닌 부분을 빠르게 쳐낼 수 있다는 점이다. 1부터 100까지를 시도해보는 것이 아니라 ‘50보다 크다’는 가설에서부터 시작하면 그 가설이 틀렸다는 증거가 나왔을 때 빠르게 배제해서 진실에 접근할 수 있다.

 

두 번째는 ‘가설’이라고 못 박음으로써 편견과 고정관념을 차단할 수 있다. 보통 직관적으로 떠오르는 원인이나 해결책은 고정관념일 경우가 많다. 가설은 ‘진실’이 아니기 때문에 옳다고 믿기 위해 필요한 근거를 댈 수 있어야 한다.

 

5) 리서치와 분석

가설에 기반해서 존재하는 데이터를 모으고 데이터 가운데서 의미 있는 분석 결과를 뽑아낸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점은 단순히 관련 데이터를 수집하는 데 초점을 맞추지 말고, 그 데이터로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가설에 대해 Yes or No를 말할 수 있게 해주는 데이터 분석을 해야 한다. 이 과정을 통해 가설을 검증하고, 문제의 진짜 원인, 혹은 올바른 해결책을 찾아낸다.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면 다시 가설을 추가하거나 수정하기도 한다.

 

문제 해결 방법론을 이론적으로 얘기하자면 사실 끝이 없다. 하지만 MCSA에서는 이론을 가르치기보다 실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제를 준다. 

 

가상의 주제와 의뢰인이 있다고 가정한다. 상황은 가정이지만 기업과 관련 데이터는 모두 진짜다. 예를 들면 '두산중공업이 매출 부진을 겪고 있는데 이를 회복시키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같은 주제가 나온다. 그러면 1주일 동안 각 팀이 열심히 앞서 말한 문제 해결 프로세스를 활용해서 결과물을 만든다. 그리고 실제 그 회사의 경영진 앞이라고 생각하고 프레젠테이션을 한다. PT가 끝나면 질문과 피드백이 이어진다. '정말 그런가?'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다른 이유는 없을까?' 이런 피드백을 귀에 못이 박히게 듣는다. 논리적으로 치밀해지도록 만드는 훈련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과정이 상당히 재미있었다. 교과서에 나오는 문제들은 단순히 연습을 위해 여러 가지 가정을 하고 구조화되어서 있는 반면에 실제 경영 문제(예를 들면 ‘학교 앞 카페의 매출은 왜 줄어들고 있을까?’)들은 그렇지 않았다. 비구조적인 문제를 체계적으로 구조화하고 풀어나가는 방법이 있다는 게 신기했다. 물론 처음에는 어려웠다. 경영학 수업이라곤 ‘경영학개론’ 수업 하나만 딸랑 들어본 나에게 기업, 산업 분석을 하라니? 하지만 헛발질과 멘땅에 헤딩을 반복하면서 하나씩 알아나갔다. 많은 밤을 지새웠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무식한 강도의 훈련이었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그 학기에 학점은 시원하게 말아먹었지만, 논리적 사고에 기반한 문제 해결은 확실히 몸에 배었다. 이는 컨설턴트가 되기 위한 기본 역량이기도 하지만 사실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하든 유용하다. 중요한 기본기를 배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방학 때 진행된 기업 프로젝트도 멋진 경험이었다. 국내 한 보험사와 프로젝트를 했다. IT 기반의 새로운 보험 상품을 출시하고 싶은데 시장분석과 전략이 필요하다는 요청이었다. 보수까지 받는 진짜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본사에 가서 담당자분들과 회의를 했다. 당연히 내부 세미나보다 일처리 방식이나 내용에서 훨씬 요구 수준이 높았다. 갑자기 높아진 기대는 ‘몸빵’으로 메꿨다. 하루 12-14시간 정도를 일했던 것 같다. 육체적으로는 힘들었지만 정신적으로는 보람 있는 시간이었다. 다행히도 프로젝트는 좋은 평가를 받았다.

 

MCSA 활동은 만족스러웠지만, 연구소 인턴을 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여러 의문과 숙제도 남았다. 

 

컨설턴트가 주로 하는 말은 이런 거다.  “현재 시장을 분석해 앞으로 시장 성장률은 이러하하고 경쟁사들은 이러이러하게 하고 있으므로 해외 사례를 봤을 때 이러이러하게 하면 잘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글로벌 기업들도 한 치 앞도 예측하지 못하는 요즘 상황에서. 겨우 몇 주간 인터넷에서 찾은 리서치 자료를 가지고, 정말 5-10년 뒤 시장을 예측하고 올바른 전략적 방향성을 제시해줄 수 있는 걸까?”라는 의문이 항상 들었다. 그렇다고 컨설턴트가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할 수는 없기 때문에 끊임없이 밤을 새 가며 그럴듯한 데이터를 갖다 붙였다. 하지만 그 와중에 내 머릿속에서는 “이게 만약 내 사업이라도 이렇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계속되었다. 

 

하고 싶은 말이 아니라 듣고 싶어하는는 말을 해줘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GO, NO GO는 이미 정해진 상태에서 잘 꾸며진 데이터를 곁들인 장표를 만들어주길 바라는 클라이언트들이 있다. 한 번은 클라이언트에게 시장 크기 예측 모델을 가져다주었는데, 그 클라이언트의 말이 “이거 회장님 설득하기에 너무 약하니까 모델 좀 조정해서 성장률 10%까지 맞춰주세요.”라고 한 적이 있었다. ‘이럴 거면 프로젝트를 왜 맡겼나’라는 회의가 들었다. 실제 컨설팅 펌에서도 컨설팅 프로젝트는 원래 의도와 달리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부분도 없지 않다고 한다. 

 

또 다른 고민은 실무와의 괴리였다. 전략 컨설팅은 높은 단에서의 의사결정만 전문으로 하기 때문에 실행 단계와 상당히 동떨어져 있었다. 현실과 괴리된 장표들을 만들고 있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아무리 컨설팅을 잘 한다 하더라도 실제로 사업을 하는 것, 비즈니스를 실행하는 것과는 천지차이임을 느꼈다. 

 

조금 더 실행에 가까운 일을 해보고 싶었다.

 

 

송범근 작가님의 더 많은 글 '보러가기'



최근 콘텐츠


더보기

기업 탐색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