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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에도 봄이 왔다. 변덕스러운 날씨는 여전하지만 훨씬 따뜻하고 맑은 날이 많아졌다. 사람들은 날씨만 좋아졌다 하면 다 나와서 햇살을 즐기거나 산책을 하거나 운동을 한다. 나는 계절을 예민하게 느끼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햇볕 좋은 날에는 굳이 책과 노트북을 들고 카페에 간다. 카페 앞에는 강이 흐르고, 옆에는 작은 연못과 공원이 있다. 날씨를 즐기기에는 최고의 장소다.

 

 

 

문득 내 삶의 태도가 달라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베짱이와 개미’ 우화로 비유해보면 나는 항상 ‘개미’ 타입의 인간이었다. 다음 해야 할 일은 뭔지 어떻게 효율적, 생산적으로 일을 할지를 늘 고민한다. 항상 무언가를 성취하고 싶어 하고, 계획을 실천하는 데 많은 신경을 쏟는다. 대학교에 들어와서도 항상 쉬지 않고 무언가를 했다.  

개미의 방식이 꼭 옳은 걸까?

 

하긴 굳이 ‘개미’ 성격을 타고난 사람이 아니어도 한국의 대학생이 ‘베짱이’로 산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뉴스에서는 ‘청년실업’이란 말이 빠지는 날이 없고, 모두가 각자의 길을 만들어보려고 치열하게 살아가니까. 

 

단적인 예로 교환학생 와서 한국 친구들하고 대화할 때는 주제가 저절로 미래에 대한 걱정, 고민으로 흘러간다. 유럽 친구들은 별로 그런 얘기를 꺼내지 않는다. 그만큼 자연스럽게 ‘개미’ 마인드가 강하다는 것 아닐까?

 

간혹 베짱이처럼 사는 방법에 대한 글을 보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행복해야 한다.’ 같은 말은 머리로는 이해가 갔지만, 여전히 마음에 와 닿지 않았다. 눈 앞에 해야 할 일이 이렇게 많은데 ‘카르페 디엠’을 실천할 여유가 어디 있단 말인가.

 

그런데 네덜란드에 와서 확실히 마인드가 바뀌었다. 

교환학생은 시간이 많다. 처음에는 이 여유가 오히려 불안했다. ‘이렇게 놀아도 되나?’ ‘뭐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었다.

 

그러나 유럽 사람들이 여유, 사소한 행복(요즘 유행하는 말로 ‘휘게’)를 즐기면서 사는 걸 보면서, 나는 미래를 위해 지금의 행복에 너무 관심이 없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미래를 위해 어떻게 저축할까를 생각하다가, 막상 내 일상의 행복들은 다 놓치고 사는 게 아닐까?

 

다니엘 길버트가 쓴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라는 유명한 책이 있다. 행복에 관한 중요한 통찰들이 많이 담겨있는데, 핵심 내용은 인간은 ‘미래의 행복과 불행’을 잘 예측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을 가지는 꿈을 꾸던 사람이 갖은 노력을 통해 그것을 이루었다고 해도, 그 후에 생각한 것만큼 그렇게 행복하지 않다.  '행복의 조건’에 대해서 잘 모르면서, 우리는 삶의 대부분을 그 조건들을 성취하기 위해 산다.

 

그러므로 미래를 위해 현재의 시간을 쓸 때는 반드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걸 이루면 정말로 내 삶이 행복해질까? 

 

물론 그렇다고 알렉산더 대왕이 찾아와도 햇빛이나 가리지 말라고 말했던 디오니 게네스처럼 살기는 어렵다. 현재의 행복만 추구하다가 노숙자가 될 수는 없으니까. 우리가 원하는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는 당연히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현재의 행복과 바람직한 미래의 균형이 필요하다. 누구나 동의하는 말이다. 

정말 중요한 건 어떻게 그 균형을 맞출 수 있는지다.

 

이에 대해서 Raj Raghunathan은 정답은 없지만 도움이 될만한 방법은 있다고 말한다. 

그는 인간의 활동을 네 가지로 나누었다. X축에는 현재의 행복, Y축에는 바람직한 미래가 있다. 

 

1 사분면은 중요하지 않다. 현재 즐겁지도 않고 미래에도 도움이 안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경우에 우리는 2 사분면과 4 사분면 사이에서 고민하게 된다. 

하지만 그가 강조하는 점은 분명히 3 사분면에 속하는 활동도 있다는 사실이다. 여러 사회과학자들이 연구한 바에 따르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친구/가족과 시간을 보내거나, 취미, 스포츠 등은 3 사분면 활동으로 나타난다. 사람이나 상황에 따라서 다를 수도 있다. 

 

생각보다 사람들은 이 3 사분면의 활동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는 2,4분면 사이의 고민에서 벗어나서 3 사분면 활동들에 시간을 더 쓰라고 조언한다. 현재 행복을 주면서도 미래의 행복을 가져다줄 가능성이 가장 높은 활동을 찾아서 삶의 비중을 높인다면 우리의 삶은 훨씬 행복해질 수 있다는 논리다.

 

이 조언은 상당히 유용하다. 사실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 요소에 대해서는 여러 과학적으로 연구된 바가 많다. 맛있는 음식, 좋은 인간관계, 운동/취미 생활 등은 굉장히 높은 확률로 행복을 끌어올린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항상 친구/가족하고 놀고, 취미 생활만 하면서 살 수는 없다. 시간도 많고 돈도 많으면 당연히 그렇겠지만, 평범한 인간은 노동도 해야 하고 공부도 해야 한다. 시간은 한정되어있으니 여전히 현재냐 미래냐의 선택은 피해갈 수 없는 셈이다.

 

이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쯤, 흥미로운 영상을 하나 봤다. Theory of awesomeness라는 제목의 강연이다. 영상에서 Vishen은 미래의 성취나 현재의 행복을 둘 다 이룰 수 없다는 편견을 깬다. 지금의 행복과 미래의 목표를 분리시켜야 한다. 미래의 성공을 추구하는 동시에 그 결과와 상관없이 현재에서는 행복하면 된다.  

 

지금의 행복과 미래의 성취를 분리시키는 방법으로 그는 명상, 감사일기, 시각화 등을 제안한다. (모두 과학적으로 증명된 방법이라고 한다.) 하루 몇 분 명상을 하거나, 매일 감사한 일을 적고, 행복한 미래를 구체적으로 머릿속에 그려보면 많은 시간과 노력 없이도 행복이 굉장히 높아진다.

 

잘 뜯어보면 이러한 주장은 불교적 가치관에 바탕을 둔다. 

집착이 번뇌를 부른다. 즉, 사람을 행복/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외부의 조건이 아니라 마음이므로, 마음을 다루는 법을 알면 조건과 상관없이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가장 수준 높은 해결책이다.

 

여러 사람들의 말을 들어볼수록, 행복은 정답이 없는 가치관의 문제라는 생각이 강해진다. 그래서 ‘개미’와 ‘베짱이’ 사이 어딘가에서 균형을 맞추는 일은 평생의 고민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행복해지기 위해 산다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행복에 대해서 잘 모른다는 사실이다. 사회가 행복의 조건이라고 말하는 것들을 잠시 잊고, 행복, 혹은 좋은 삶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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