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가장 핫한 기술 트렌드 중 하나인 블록체인. 관심을 갖고 블록체인 관련 글들을 읽어보기 시작한 지는 꽤 됐다. 그런데 블록체인을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수준의 컴퓨터 공학, 암호학 지식이 필요하다.
비전공자인 나는 읽어도 무슨 소린지 잘 이해가 안 갔다. 고생 끝에 대략적인 원리는 이해했지만 아직도 설명하라고 하면 자신 없다.
하지만 블록체인에 대해서 진짜 알아야 할 건 PoW, 해쉬 함수, 논스값 같은 기술적 내용이 아니다. 개발자가 아닌 이상 블록체인 기술에 대해 알 필요는 없다. 인터넷 프로토콜이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 아는가? 몰라도 인터넷 잘 쓴다.
하지만 블록체인이 어떻게 우리 삶을 바꿀 것인가는 반드시 알아둬야 한다. 왜냐하면 블록체인은 인터넷의 등장만큼이나 큰 변화를 만들어낼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블록체인의 역사나 원리보다, 실제 활용 사례와 블록체인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 정리해본다.
어떻게 이 정보를 믿을 것인가?
현대 사회를 표현하는 말이 “정보화 사회” 일만큼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이다. 정보가 많아져서 좋은 점도 있지만, 정보가 많은 만큼 더 심각하고 중요해지는 문제도 있다.
‘이 정보는 믿을만한가?’
당신은 인터넷 쇼핑몰에서 주문을 할 때 이 상품이 정말로 게시된 것과 같은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누군가와 채팅을 하고 있을 때 그 사람이 내가 생각하는 그 사람인지 어떻게 확신하는가? 계약서를 메일로 받았을 때 이게 정말 위조되지 않은 원본임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우리 생활에서 필요한 거의 모든 정보가 인터넷으로 오가는 요즘, 정보의 신뢰성은 거의 모든 영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인터넷에서 서로 모르는 사람끼리 협력하고 정보를 주고받기 위해서는 디지털 정보가 신뢰할만한지 확인할 수 있는 수단이 필요하다.
이 신뢰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는 다양한 방법을 고안해 왔다. 법적으로 마련된 제도, 혹은 크고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기관의 보증, 아니면 다른 네티즌들의 리뷰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방법들은 시간이나 비용이 많이 들거나, 해킹에 취약하다거나, 100% 정확성을 담보하지 못하거나, 투명성이 부족하다거나 하는 문제점들을 가지고 있다. 블록체인은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이다.
블록체인은 디지털 데이터를 신뢰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기술이다.
블록체인은 데이터를 모든 사람에게 뿌려서 이 문제를 해결한다. 모든 사람이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는 데이터베이스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어떤 데이터를 블록체인에 업데이트하게 되면 각 참가자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데이터베이스에 그 데이터가 저장된다. 따라서 한번 블록체인에 올라간 데이터는 위조한다 하더라도 다수의 네트워크들이 가지고 있는 결과와 다를 경우 거부된다.
따라서 위조가 불가능하다. 엄밀히 말해 전체의 51% 이상 데이터베이스를 해킹해서 변경한다면 가능하겠지만, 네트워크 참가자의 수가 충분히 많다면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예를 들면 내가 사탕 상자를 가지고 있는데, 그냥 개방된 공간에 두면 누가 사탕을 훔쳐갈 위험이 있다. 이 경우 사탕 상자를 안 보이는 곳에 꼭꼭 숨겨놓거나, 나만 열수 있는 키로 잠가놓을 수 있다. 그런데 이 방법은 불편하고 돈과 시간이 들뿐만 아니라, 여전히 누가 찾아내서 훔쳐갈 가능성이 있다.
블록체인은 사탕 상자를 사람들이 가득한 시장 한복판에 갖다 놓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사탕 상자가 내 것이라고 알린다. 그러면 모든 사람이 일종의 감시자가 된다. 따라서 훨씬 안전하게 사탕 상자를 보호할 수 있는 것이다. 이 기술을 통해서 블록체인은 블록체인에 담긴 데이터의 신뢰성을 보증한다.
화폐는 ‘신뢰’다
블록체인을 세상에 알린 첫 번째 애플리케이션이 디지털 화폐 ‘비트코인’인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바로 현대의 화폐가 ‘신뢰’에 기반한 교환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TED에서 Neha Narulas는 이를 보여주는 재밌는 사례를 소개한다. 태평양에 위치한 Yap이라는 작은 섬이 있다. 이 섬이 특이한 이유는 Rai stone이라는 커다란 디스크 모양의 돌을 화폐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돌이 너무 크고 무겁기 때문에 사람들이 거래를 할 때 실제로 돌을 주고받지는 않는다. 대신 Yap 사람들은 돌이 누구의 것인지 계속 기록을 해둔다. 내가 돈을 지불할 일이 있다면 그 기록에 ‘이 돌의 주인은 이제 누구임’이라고 적어놓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어느 날 Yap 선원들이 돌을 옮기다가 문제가 생겨 돌이 바다에 빠지고 말았다. 그리고 섬에 돌아와서 돌을 잃어버렸다고 사람들에게 말하자 사람들은 어차피 그게 그게 당신들 거라는 걸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면, 육지에 있든 바다에 있는 무슨 상관이야?라고 말하며 계속해서 그 가치를 인정해주었다고 한다.
오늘날 우리가 쓰는 돈도 이 Rai stone과 다를 바 없다. 생각해보자. 1만 원짜리 지폐는 왜 가치가 있는가? 그 종이에 그만한 가치가 있어서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그 종이에 1만 원의 가치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왜 멕시코 페소는 한국에서 가치가 없는가? 페소 동전 자체는 한국에서도 바뀌지 않지만, 하지만 한국에서는 아무도 그 가치를 인정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통장 잔고란에 찍힌 숫자가 가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만큼 은행에서 내가 가진 돈을 인정해주기 때문이다. 거기다 내가 숫자를 고쳐 쓴다고 해서 가진 돈이 바뀌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은행과 국가 제도가 그것이 위조인 것을 알아내고 인정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즉, 돈은 돈 그 자체로써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속한 공동체가 그것이 가치가 있다고 ‘신뢰’하고 ‘보증’해주기 때문에 가치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블록체인은 이 시스템을 그대로 가져올 수 있다. 블록체인에 ‘A는 10만큼의 돈을 가지고 있다.' 'A는 B에게 5를 주었고 A는 5가 남았다'라는 데이터를 기록한다. 블록체인 상에 데이터가 올라가면 이 데이터가 진짜고 조작되지 않았음을 누구나 믿을 수 있다. 그 결과 실제로 현물이 오가지 않아도, 화폐를 발행하고 인정해주는 은행 같은 중개기관이 없어도, 사람들이 '가치'를 교환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최근 승승장구하고 있는 비트코인의 본질이다.
비트코인은 시작에 불과하다
비트코인은 블록체인을 세상에 알렸고, 많은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블록체인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 '화폐'뿐만은 아니다. (비트코인에 대해 더 궁금하신 분은 이미 많은 콘텐츠들이 있기 때문에 검색해보시기를) 블록체인은 ‘신뢰’가 필요한 모든 분야에 쓰일 수 있다. 여기서는 블록체인이 어떻게 다양한 분야에 활용될 수 있는지에 포커스를 맞추려고 한다. 이를 위해 먼저 ‘스마트 컨트랙트’가 무엇인지 알아보자.
블록체인에 걸고 약속하자
비트코인이 성공하자, 몇몇 사람들은 ‘왜 화폐만 블록체인에 올리지? 다른 것도 올릴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해서 다양한 응용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중 한 명이었던 비탈릭 부테린이라는 개발자가 ‘스마트 컨트랙트’를 구현할 수 있는 이더리움이라는 플랫폼을 만들어냄으로써 블록체인의 가능성이 크게 확장되었다.
스마트 컨트랙트란 블록체인 위에 ‘계약’을 올려놓는 것이다. 블록체인 위에서 제삼자의 개입 없이 계약이 이행된다. 정확히 말하면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때 이것을 이행하라는 코드를 블록체인에 올린 것이다.
혹시 IFTTT를 안다면 IFTTT가 블록체인 위에 올라갔다고 생각하면 쉽다. IFTTT란 If This Then That의 줄인 말이다. ‘내일 기온이 20도 이상이면 에어컨을 틀어라’, ‘내가 좋아요를 누르면 글 사본을 메일로 보내라’ 같은 명령이 예다.
이러한 ‘약속’이 블록체인 네트워크에 올라가 있다면 약속 내용을 위조할 수 없고, 프로그램에 의해 자동으로 이행되기 때문에 그 약속을 완전히 신뢰할 수 있다.
스마트 컨트랙트의 활용
스마트 컨트랙트를 활용하면 ‘거래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자판기가 있다고 해보자. 자판기는 ‘돈을 넣으면, 과자가 나온다’라는 간단한 약속에 기반한 시스템이다. 그런데 문제는 내 돈을 넣을 때 그게 반드시 나온다는 걸 어떻게 확신하냐는 것이다. 돈을 넣었는 데 나올지 안 나올지 불확실하다면 아무도 쓰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경우 그 자판기를 책임지고 관리하는 사람이 있다. 만약 자판기가 돈을 먹더라도, 그 사람이 와서 상황을 확인하고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다. 자판기와의 약속이 제대로 이행되게 하는 제삼자가 있음으로 해서 우리는 신뢰하고 자판기에 돈을 넣을 수 있다.
그러나 자판기의 기능이 블록체인에 올라가 있다면, 제삼자의 관리가 필요 없다. 프로그램이 알아서 돈을 넣었을 때 과자가 나오도록 만든다. 그 프로그램의 내용을 위조할 수 없기 때문에 제삼자 없이도 자판기를 신뢰할 수 있다.
한 가지 예를 더 들어보자. 부동산 거래를 한다고 하자. 부동산을 거래할 때 사는 사람은 그 부동산이 실제 그 사람이 소유인지 확인하고, 파는 사람은 살 사람이 실제 그만큼의 돈이 있는지 확인하고, 이 사람이 이 사람에게 집을 넘겼다는 확실한 증거를 남긴다. 여러 가지 문서와 행정 절차가 동원된다. 이 과정을 통해서 정부 기관이 가지고 있는 데이터 베이스에 기록을 남기기 때문에 양쪽 모두 사기를 당할 걱정 없이 거래를 한다.
이렇듯 부동산 거래에는 단순히 ‘돈을 넣으면 과자를 준다’는 자판기 기능보다는 훨씬 복잡한 보증과 신뢰의 메커니즘이 깔려있다. 그런데 이런 프로세스는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 수밖에 없다. 중개인, 보증기관 등 제삼자들이 개입하면 할수록 안전성은 올라가지만 시간과 돈도 많이 들어간다.
하지만 이 부동산의 정보와 거래 정보가 모두 블록체인에 올라가 있다면? 계약 내용이 스마트 컨트랙트화되어 블록체인에 올라가 있다면? 제삼자의 보증 없이 온라인에서 실물자산을 거래할 수 있다. 계약의 진위 여부나 이행하는 데도 시간이나 비용이 훨씬 줄어든다. 온라인에서 돈을 지불하고 이 부동산의 주인은 누구다라는 사실을 모든 분산 데이터베이스에 업데이트하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자동적으로 집의 계약과 관련된 스마트 컨트랙트가 자동으로 활성화되어 계약 이행을 처리하게 될 것이다.
블록체인이 바꿀 산업들
스마트 컨트랙트를 지원하는 블록체인을 통해 이제 단순 기록뿐만 아니라 약속을 블록체인에 올릴 수 있게 되었다. 이는 블록체인 상에서 작동하는 수많은 애플리케이션의 기초가 된다.
비트코인을 넘어서, 블록체인의 3가지 장점인 보안, 비용, 투명성을 필요로 하는 분야들은 아주 많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전 세계가 블록체인에 열광하고 있는 이유이다. 블록체인은 또 다른 거대 트렌드인 ‘사물인터넷’과도 연결되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른 글에서 자세히 다뤄보도록 하겠다.
이 글에서는 근미래에 블록체인과의 결합이 실현될 수 있는 사례들을 소개한다.
음악 산업
음악 산업은 블록체인이 활약할 여지가 많은 산업이다.
첫 번째는 오랫동안 음악 산업의 골칫거리였던 음악 저작권 문제다. 연주자, 작곡가, 제작자, 유통업자가 어떤 식으로 곡에 대해 소유권을 가지는지 명확하게 정의하고 관리하는 데 상당한 노력이 들어간다. 하지만 블록체인에 음악의 소유권과 메타 데이터가 저장되고 법적 효력이 생긴다면, 저작권 관리는 매우 쉬워질 수 있다. 또 블록체인이 가진 투명성 때문에 아티스트는 자신의 음악에 대한 소유권을 보호받을 수 있고, 소비자 또한 정당한 절차로 음악을 구입했음을 쉽게 증명할 수 있다.
두 번째는 과금 (Monetization)이다. 스마트 컨트랙트를 이용하면 거래비용이 아주 낮아진다. 따라서 음악을 들을 때마다 자동적으로 몇 원이 차감되게 하는 식의 과금이 가능하다. 제삼자가 받는 수수료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음악에 ‘좋아요’를 누르거나 ‘감상평’을 남기면 가격을 할인해준다든지 하는 식으로 다양한 응용이 가능하다.
세 번째는 음원 유통 구조의 문제다. 그동안 유통회사와 아티스트의 불공정한 수익 분배에 대한 비판이 많았다. 테일러 스위프트가 애플 뮤직에 자신의 음원을 유통하는 것을 거부한 사례(링크)는 유명하다. 국내도 몇몇 유통회사들이 독점력을 기반으로 높은 수익을 가져가고 있다. 게다가 자본력을 갖춘 유통회사들이 채널을 점유하고 있어 아마추어 제작자들이 시장에 진입하기 힘든 문제도 있다.
블록체인을 매개로 P2P 음악 시장을 만들면, 아티스트와 음원 소비자들의 직접적인 연결이 가능하다. 이제 중간 유통회사를 거치지 않거나, 훨씬 적은 개입만으로 음원을 전달할 수 있다.
현재 많은 스타트업이 블록체인 기반 음악 플랫폼에 뛰어들고 있다. PledgeMusic이라는 회사는 블록체인 기반 Fair Trade Music Database라는 플랫폼을 출시했다. 아티스트가 자신의 음악과 메타 데이터를 업로드하면 소비자들이 직접 들을 음악을 고르고 스마트 컨트랙트를 통해 자동적으로 결제가 진행되는 시스템이다.
PeerTrack이라는 회사도 있다. 일종의 아티스트 저작권 관리 시스템이다. 아티스트들이 훨씬 적은 돈으로 로열티와 음원 수입을 쉽게 관리할 수 있도록 해준다. 제작자나 유통사를 낄 수 없는 소규모 아티스트들이 주요 타깃이다. PeerTrack에 따르면 기존 수익 구조에서 아티스트들은 10% - 20% 내외의 수익을 가져가지만, PeerTrack에서는 수익의 90%를 가져갈 수 있다고 한다.
공증
공증이란 말 그대로 사실관계, 법률관계를 ‘공적으로 증명’하는 일이다. 공인인증서, 등기부등본, 계약서 등이 다 공증의 일부다. 내가 나임을 증명하거나, 이것이 내 소유임을 증명하거나, 아니면 내가 이 문서에 동의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다. 하지만 일반 문서는 위조의 가능성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공증인이나 공증 기관을 통해서 모든 사람이 그 문서의 진위여부를 신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공증의 역할이다. 현대 사회의 제도들은 엄청나게 많은 종류의 공증에 의해서 돌아가고 있다.
지금 공증 시스템은 정부, 금융결제원 같은 공인인증기관이 운영하거나, 전문자격을 갖춘 공증인에게 일정한 절차를 거쳐 비용을 지불해야만 받을 수 있다. 상당한 비용과 시간이 들어가는 일이다.
블록체인은 공증을 대체할 절묘한 솔루션이다. 다시 한번 말하자면 블록체인은 ‘디지털 데이터를 신뢰할 수 있게 만드는 기술’이다. 공증의 대상인 문서는 얼마든지 디지털화될 수 있고, 그 데이터를 블록체인에 올리면 위조가 불가능해진다. 문서의 합법적인 변경 내역도 지속적으로 추적 가능하다. 게다가 중개자가 없으므로 문서의 민감한 내용을 남에게 보여줄 일도 없다. 비용, 시간 모두 획기적으로 줄어든다.
이런 서비스는 국내에도 이미 출시되어있다. 블록체인 애플리케이션 개발사인 블로코가 2015년에 클라우드 스탬프를 출시한 바 있다. 전자 문서를 블록체인에 올리면 그 문서의 진위 여부를 인증하는 스탬프를 찍어주는 서비스다. 실제 법적 효력이 발생하는지까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앞으로 국가에서 블록체인 기술의 안정성을 인정하게 된다면, 공증은 블록체인으로 가장 먼저 대체될 기능이다.
보험
가장 거대한 산업 중 하나인 보험 또한 블록체인이 크게 바꿔놓을 산업이다.
스마트 컨트랙트를 사용하면 보험 업무를 디지털화할 수 있다. 보험이란 기본적으로 ‘너한테 이런 일이 일어나면 이만큼 보상해줄게’이기 때문이다. 보험사가 이를 이행하기 위해서는 복잡한 과정을 거친다. 실제로 그 사건이 일어났는지 (보험 사기 방지를 위해), 보험의 보상 범위와 현재 조건이 맞는지 등등 다양한 부분을 확인한다. 그래서 보험사에는 클레임(보상처리)을 관리하는 부서가 따로 있고, 상당히 많은 인력과 비용을 투입한다.
만약 이 계약을 블록체인에 올려놓는다면, 보상 처리 업무를 대체할 수 있다. 굳이 누가 개입하지 않아도 스마트 컨트랙트가 알아서 사고처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다이아몬드 생산 과정을 블록체인에 올려 다이아몬드의 진위 여부를 파악하게 해주는 Everledger라는 회사가 있다. 다이아몬드 생산, 유통과정에서 누구에게 갔는지 얼마나 생산되었는지에 대한 정보가 ‘위조 불가능한’ 네트워크에 올라온다.
만약 이 데이터를 손해보험에 활용한다면 어떨까? 다이아몬드는 고가의 물품이므로 손해보험을 드는 경우가 많다. 도난이 발생했을 경우 원래라면 보험사 직원이 가서 각종 데이터와 장부를 확인하고 진위여부를 가려야 한다. 그러고 나서 최종 확정을 거쳐 보험금을 정산한다. 하지만 이 보험을 스마트 컨트랙트화한다면, 이미 블록체인에 올라온 인증된 정보를 가지고 훨씬 적은 비용과 시간으로 보험금이 정산된다.
앞으로 더 많은 종류의 데이터가 블록체인에 올라오면 이런 보험은 더욱 다양한 분야로 확장할 수 있다. 고객의 의료 데이터나 금융 거래 데이터가 블록체인에 올라온다면? 이 데이터를 보고 스마트 컨트랙트가 곧바로 보험 처리를 해준다면? 비용과 시간 절감뿐 아니라 개인 정보를 알고리즘이 자동적으로 처리하기 때문에 프라이버시도 보호된다. 보험사 입장에서는 골칫거리인 보험 사기도 막을 수 있다.
디지털화된 보험의 이런 다양한 장점은 현재의 아날로그 보험 산업을 완전히 변화시킬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한 단계 더 나아가서 보험사 없이 개인 간에 보험 계약을 맺는 P2P 보험까지 가능해진다. P2P보험이라고 하면 생소하지만 쉽게 생각해서 ‘계’를 떠올리면 된다. 계모임이야 말로 P2P보험의 원조다. 참가자들이 돈을 모아서 목돈을 만들고 누군가에게 ‘필요한 일’이 생기면 준다. 보험과 본질이 같다. 다만 보험은 보험사가 관리해 신뢰를 얻는 반면, 계모임은 인간관계를 바탕으로 신뢰를 얻는다. 그런데 인간관 계고 뭐고 하도 곗돈 들고 튀는 일이 많다 보니 계모임이 계모임은 점점 사라지고 믿을만한 회사가 운영하는 보험이 그 자리를 대체하게 된 것이다.
스마트 컨트랙트를 활용하면 모르는 사람들끼리 보험을 만들 수 있다. 누군가가 ‘나 이런 조건의 보험을 만들고 싶은데 할 사람 있어?’라고 올린다. 이에 동의하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보험을 만든다. 그리고 규칙에 따라서 보상해야 할 상황이 생기면 관리자 대신 스마트 컨트랙트가 알아서 보상을 처리해준다. 모르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계약이 블록체인에 올라가 있으므로 블록체인을 믿고 보험에 가입할 수 있다. 장점은? 중개자가 없으므로 당연히 수수료가 훨씬 싸다.
블록체인이 갖는 의미
그렇다면 블록체인 기술의 발전이 우리 사회에 뜻하는 바는 무엇일까? 블록체인은 미래 사회에 어떤 기여를 하고 인류의 사회, 경제 활동을 어떤 모습으로 변화시킬까? 전문가들의 의견과 내 나름의 생각을 조합해보면 크게 두 가지 의미가 있을 것 같다.
Digital transformation: 디지털 사회로의 전환
블록체인이 가져올 변화는 흔히 인터넷과 많이 비교된다. 인터넷이 디지털라이제이션 1.0이었다면 블록체인은 2.0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컴퓨터와 인터넷의 발명 이후로 인간 사회는 빠르게 디지털화되어왔다. 블록체인은 디지털 데이터에 '신뢰성'을 부여해서 디지털 전환을 가속화한다. 기존 인터넷 기반으로 완전히 디지털화되지 못했던 인간 사회의 더 많은 부분들이 디지털화된다.
화폐, 보험, 증권, 개인의 아이덴티티, 법과 제도, 투표, 자율주행차 등 신뢰가 반드시 담보되어야 하는 중요한 것들이 더 빠르게 디지털 네트워크 안으로 들어올 것이다. 즉 IT기술이 우리 삶 속의 더 민감한 부분까지도 파고들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블록체인은 사물인터넷, 인공지능과 같은 다른 기술들과 맞물려 일명 '4차 산업혁명'이라고 불리는 거대한 전환을 만들어낼 핵심 기술이다. 특히 사물인터넷(IoT)과 블록체인의 조합되면 영향력은 엄청나다. 현재는 인터넷에 연결되어있지 않은 수많은 것들이 사물인터넷으로 연결되면 블록체인의 활용범위는 무궁무진해진다. 더 많은 데이터들이 사물인터넷에 연결되고, 더 많은 종류의 데이터들이 블록체인 위에서 디지털화될 수 있다. 그리고 그 데이터들은 소프트웨어(인공지능)에 의해 관리될 것이다.
Decentralization: 분권화
인터넷과 블록체인이 이끄는 Digitalization의 중요한 특성은 바로 분권화(Decentralization)다. 디지털 기술의 등장 이전에는 사회의 많은 부분들을 중앙 집권화된 기관들이 관리했다. 예를 들어 인터넷 이전의 미디어는 거의 대형 언론사들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소비자들은 언론사들이 만들어낸 신문과 뉴스를 읽는 소비자일 뿐이었다.
그러나 인터넷의 등장 이후 미디어는 완전히 달라졌다. 이제 사람들은 단순히 뉴스를 소비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다양한 뉴스를 취사선택하며, 정보의 진위를 검증하고, 직접 소셜 미디어의 자신의 의견을 표출할 수 있다.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생산하고 유통하는 것이 쉬워지면서 거대 기관들의 힘이 약해지고 개인들의 힘이 강해졌다.
블록체인도 마찬가지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개인들이 제삼자의 개입 없이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통해 정보와 가치를 교환할 수 있다는 것은, 앞으로 훨씬 더 많은 분야들에서 개인들의 힘이 강해진다는 것이다.
앞서 얘기한 P2P 보험이 대표적인 예다. 굳이 보험사를 거치지 않고도 개인들이 직접 보험을 만들 수 있다. 물론 보험사들이 완전히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P2P 보험이 활성화되면 산업의 주도권이 일정 부분 개인들에게 넘어갈 것이다.
정보 유통과 경제 활동이 분권화(Decentralize)되면 자연스럽게 사회 구조도 이에 맞게 바뀔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2011년 아랍의 재스민 혁명을 통해 인터넷이 사회 변화를 촉진시키는 것을 이미 봤다. 재스민 혁명이 가능했던 이유는 정보가 민주화되고, 풀뿌리 운동가들이 소셜 미디어를 통해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정부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 인터넷에서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개인들이 조직화할 수 있었다.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디지털 기술로 개인의 힘이 강해지고, 많은 경제 영역이 중앙 집권화된 네트워크에서 분권화된 네트워크 구조로 바뀌리라고 본다. 국가나 기업과 같은 거대 조직들은 점점 더 작아지고 다른 형태로 변화해나갈 것이다.
미완의 기술인 블록체인
물론 블록체인은 아직 초기 단계다. 아직 기술적 안정성이 완벽하게 담보되지 않았다. '위조 불가능'하다는 것은 이론상으로 그런 것일 뿐 실제에서는 갈길이 멀다고 한다. 블록체인 기술의 선두주자인 비트코인이 선전하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투기성이 강하고 실제 경제에 제대로 활용되지는 못하고 있다.
블록체인 기반의 서비스에서 해킹 사례도 자주 나타나고 있다. 블록체인은 해킹의 대상이 아니지만 블록체인 위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애플리케이션들은 해킹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글로벌 표준도 아직 명확하게 정립되지 않았다. 현재는 다양한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검증을 거치는 상황이다. 이런 기술적 과제들을 해결해나가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지금 인터넷에서 블록체인을 검색하면 세상을 다 바꿀 것처럼 모든 사람들이 얘기하고 있지만 블록체인이 언제쯤 우리 삶에서 가깝게 스며들어올 수 있을지 전문가들 사이에도 의견이 다 다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블록체인이 사회 전반에서 활용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기업이 의사결정으로 바꿀 수 있는 분야라면, 예를 들어 생산 라인을 블록체인화한다던지 하는 결정이라면 빠른 시일 내에 이루어질 수도 있지만, 블록체인이 가장 큰 임팩트를 가지는 분야는 대부분 법과 규제들에 의해 관리되고 있는 분야들이다. 따라서 정치적 요소가 개입될 수밖에 없고, 제도의 근간을 바꿔놓는 기술이니만큼 이에 맞춰 사회적 합의나 제도 마련이 되려면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사람들이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을 신뢰하게 되는데도 시간이 걸린다. 블록체인에 집중 투자하고 있는 유명 벤처캐피털리스트 Marc Andreessen은 한 팟캐스트에서 기술이 변화해도 사람의 인식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며 지폐의 얘기를 꺼냈다. 처음 지폐가 나왔을 때 당시 사람들의 반응은 매우 부정적이었다고 한다. 이런 종이 쪼가리로 어떻게 가치를 담보할 수 있느냐, 훼손되면 어떡하느냐 등등의 걱정 때문에 처음 지폐가 도입되고 나서도 한동안은 사람들이 지폐를 쓰지 않고 여전히 금과 은을 선호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기술적 발전이 이루어져도 여전히 사람들이 이를 신뢰하고 블록체인 기반 서비스를 선택하는 데에는 일정기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록체인이 가져올 영향력에 대해서는 아무도 부인하지 않는다. 앞으로 몇 년 안에 에어비앤비나 우버와 맞먹는 블록체인 스타트업이 등장하지 않을까 싶다. 블록체인이 앞으로 어떤 식으로 혁명을 일으킬지 기대가 된다.
참고자료
돈 탭스콧(Don Tapscott): 블록체인이 돈과 경제를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가
베티나 워버그(Bettina Warburg): 블록체인이 경제 활동을 획기적으로 바꾸는 방법
한승환님 블로그 http://www.seunghwanhan.com/
Freakonomics, why everybody who doesn't hate bitcoin loves it
http://www.zdnet.co.kr/news/news_view.asp?artice_id=20151116185432
지디넷코리아, 각종 전자문서, '블록체인'으로 공증한다
Techcrunch, How blockchain can change the music industry
Techcrunch, Blockchain is empowering the future of insur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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