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고 싶은가?
'어디든 적당한 곳에서 저를 받아만 주신다면 열심히 하겠습니다.'
'가면 어디서든 일할 수 있겠지.'
외국에 있으니 도와줄 사람도 없고, 내가 어떻게든 의식주와 비자를 해결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커리어와 상관없이 아니 생각할 겨를 없이 일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오히려 그런 경우가 더 많다. 책과 인터넷에 나오는 멋진 외국인 노동자의 모습은 많이 각색이 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다른 현실들이 참 많았다. 해외에 나간다고 그럴듯한 커리어가 나에게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여기 와서야 알게 됐다.
그래서 꼭 그런 말을 하고 싶었다. 자신이 원하는 직군, 회사 등을 꼭 생각해 보고 왔으면 좋겠다고.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그런 것을 생각하지 않은 채 국내 취업이 어렵다, 한 번 도전하고 싶다는 등의 이유로 이곳에 오고 어정쩡한 경력만 쌓는다. 그리고 커리어의 기초를 쌓거나 탐색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에 그저 직업을 찾아 전전한다. 게다가 자신이 그다지 애착이 없는 곳에 일하면 남의 나라에서는 더 버티기 힘들다. 존재에 대한 회의감도 자주 찾아온다.
한국에서 나는 내가 관심 있는 곳에서 바닥부터 시작할 수 있다. 하지만 외국에서는 어떨까? 내가 좋아하고 관심 있고 심지어 경력이 있다고 해도 나를 뽑는 것에 회사는 많은 고민을 한다. 나와 비슷한 학력과 경력을 가진 사람이 자국민 중에서도 있는데 굳이 나를 찾을까? 회사는 그런 외국인을 고용할 만큼 여유가 없다. 경력도 없다면 더더욱 새로운 곳에 진입하기 힘들다. 내가 그들로부터 ‘간택’ 받기 위해서는 내가 뛰어나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개인적인 프로젝트나 포트폴리오 등을 통해서 -> 결국 경력 혹은 경험) 그래서 사람들은 일보 후퇴해서 한국인을 찾는 곳에 먼저 지원을 하곤 한다.
어쩌면 내가 처음에 못했던 일이라 더 이런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나도 멋들어진 글로벌 기업이나 간지 나는 빌딩 숲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보고 환상에 젖어 왔지만(나는 해외출장에 대한 환상이 있었는데 그것도 몇 번 다니니 힘들어서 못해먹겠다, 싶었다. 나중에는 최대한 빼려고 안간힘을 썼다... ㅋ) 결국 중요한 건 그런 모습이 아닌 내가 매일 하는 일을 기꺼이 할 수 있는가, 이다. 몇 년 동안 동료, 보스의 인정은 물론 없던 보너스까지 만들어 받아내 가며 표면적으로는 정말 일을 잘하고 있었지만 마음은 항상 허전했다. 어떤 일로 나의 경력을 장기적으로 만들고 싶은가에 대한 생각을 한 번도 안 해 본 것, 그것이 내가 느낀 허탈함과 (때로는) 절망감의 이유가 아니었을까. 물론 사람의 생각이라는 것이 늘 바뀌기 마련이지만 그에 대한 고민을 한 것과 하지 않은 것은 정말 큰 차이가 난다. 해외취업에 관심이 있다면 내가 매일 할 일, 내 커리어의 방향에 대한 고민을 꼭 한 번은 하셨으면 좋겠다.
2. 결혼을 할까요?
*비혼/독신주의거나 결혼을 하셨다면 아래 글은 거르셔도 좋습니다.
대게 한국에서 대학교를 졸업하고 해외에 취업하려는 사람의 나이는 빠르면 이십 대 중반, 대부분은 이십 대 후반이다. 그렇게 해외취업의 부푼 꿈을 안고 우여곡절 끝에 취직 후 고군분투하느라 1,2년 정신없이 보낸다. 그러다 보면 나이는 어느새 서른 전후가 된다. 요즘 같은 세상에 서른이란 나이에 결혼을 들먹거리는 간 큰 사람은 없겠지만, 그래도 서른을 넘어가는 사람의 마음 한편에 '결혼'이라는 화두가 없을 리 없다. 사회생활을 하면 할수록 사람 만나는 게 힘든 건 외국도 마찬가지다. 한국보다는 나이에 관대한 분위기에 연애 기회가 더 많을지는 몰라도 썸만 주야장천 타다가 지쳐버리기도 하고 가벼운 만남에 알게 모르게 상처도 받는다. 특히나 외국인들이 많이 있는 곳이라면 내가 외국인이라는 사실, 혹은 상대도 외국인이라는 사실로 인해 만남의 무게가 가벼워지는 경우도 많다.
"네가 뭐 그리 대단한 세상 바꾸는 일을 하고 있다고 거기서 그러고 있냐. 결혼하란 소리 안 할 테니까 그만 와라."
싱가포르에서 취직했을 때의 나는 자랑스러운 딸이었다. 4년째 싱가포르에서 일하고 있는 딸은 남의 나라에서 외롭게 나이만 먹어가는 여자였다. 연애사를 시시콜콜 이야기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엄마를 더 걱정시킨 걸까. (뜬금없지만 멀리 있을수록 부모님과 자주 이야기합시다.ㅎㅎ)
외국에 있으니 결혼의 압박(?)에서 정말 자유롭다. 주위에 싱글들도 많고 결혼하라고 닦달하거나 오지랖 부리는 사람들도 없다. 주변이 그렇다 보니 결혼에 대한 생각은 당연히 적어지기 마련이다. 싱글이다보니 하고 싶은 취미를 하며 자유롭게 산다. 그런 생활을 즐기는 와중에 가끔씩 비보(?)가 들린다.
"슬슬 나이도 차고 여기 더 있어서 뭐 하겠니."
"결혼하고 싶은데 이 나라 사람들(혹은 외국인)은 나랑 안 맞는 것 같아. 한국 갈래."
"이만큼 일도 하고 살아봤으니 돌아갈까? 가면 다시 이력서 쓰고 면접보고 일을 구해야 하는데... 내가 자리를 바로 잡을 수 있을까. 자리를 잡아야 사람을 만나도 만날 텐데..."
돌아가지는 않더라도 걱정하는 친구들도 하나둘 늘어간다. 운 좋게 내가 선택한 나라에서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상관없다. 하지만 몇 년 간 살아온 이 나라가 나에게 맞지 않거나, 혹은 이 나라 사람과 나는 궁합이 별로 맞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면 나이 먹고 일만 하는 사람이 되는 건 시간문제다. 일도 중요하지만 결혼은 더 중요한 문제라서 그것 때문에 고국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실제로 적지 않다. 맨 처음 싱가포르에 왔을 때 알게 된 친구들 중 지금껏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여기서 결혼을 했거나 현재 진지하게 연애하는 중인 경우가 많다.
취업 생각만 하고 외국에 올 당시에는 결혼 생각이 없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그곳에서 몇 년씩 살다 보면 결혼 적령기라는 나이에 이른다. 결혼을 생각하는 나이에 외국에 있다는 건 좀 애매할 수 있다.
커플이 함께 외국으로 가는 경우라면 모를까, 싱글로 외국에 나가 살아볼 예정인 20대 중후반의 사람이라면 결혼이라는 부분에서 내가 놓칠 수도 있는 기회비용이 있을 수도 있다는 걸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다. 특히 'XX살 전에 결혼할 거야.'라든가 인생의 중요한 가치 중 하나에 결혼이 들어있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결혼에 유연한 생각을 갖고 있거나, 조금은 덤덤한 편이거나, 아니면 결혼보다 더 일에 의미를 두신다면 조금 더 해외 생활이 쉽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 본다. (몇 년간 외국에서 솔로로 커플로 지내며 느낀 주관적인 내용이라는 점, 참고 바랍니다.)
*쓰다 보니 각 주제별로 포스팅 한 개 분량이 나와서 줄이느라 식겁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글이 노잼이 되고 문장 사이도 매끄럽지 않은 느낌입니다. 읽으시는 분들의 넓은 이해 부탁드립니다. 분량 조절도 능력인데 아직 저는 갈 길이 머네요.. 시간이 될 때 써 놨던 걸 잘 좀 다듬어서 주제별로 이야기해 볼랍니다. ㅎㅎ
*이 매거진도 다음 주면 마지막 회네요. 올 한 해는 글을 통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알게 된 시간이었습니다. 그와 더불어 글을 납품하는 것이 꽤 빡센 일이란 것도 알게 된 한 해였습니다.(지금 이 글도 금요일 전까지 어떻게든 맞추려고 혼자 랩탑 붙들고 난리입니다..) 무엇보다 브런치를 통해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나서 정말 감사한 1년이었습니다. ^^ 2018년의 묵은 때는 훌훌 털어버리고 내년에는 더욱 건강하시고 즐거우시고 행복하시고 사랑하시고 이것저것 원하시는 것들 다 이루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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