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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 코로나 바이러스, 이 시간을 잘 이용해 먹읍시다


약 10년 전 나는 급작스럽게 수술을 하게 되었다. 그 당시 하고 있던 인턴이 잘 돼서 정직원이 되거나 아니면 그걸 토대로 직장을 구하는 시나리오를 갖고 있던 내게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그 덕분에
 인턴 바이 바이, 집콕 생활이 시작됐다. 몸에 보호대를 차고 매일 누워 있는 생활이 좀 비참했다.

  "XX 이 은행에 취직했다고 한 턱 낸대. 나와.”

내가 집에 들어앉자 갑자기 주변 사람들의 취직 소식이 들리기 시작했다. 남들은 취직 썰을 푸는데 나는 집에 매일 누워있는 백수 신세였다.

 “사람이 미래라고? 미래한테 어떻게 그러냐?”

라고 자기가 다니는 회사를 디스 하던 선배의 농담도, 술을 싫어하던 친구가 취직 후에 집에 소주를 사서 돌아간다는 말에도 웃음이 안 나왔다. 그렇게 방구석에서 매일 남과 나를 비교하며 열등감을 차곡차곡 적립했다. 그리고 그 화살은 언제나 엄마에게 향했다. 남들은 다 취직해서 돈 벌고 잘 나가는데 나는 왜 집에서 이러고 있어야 돼?

 

어쨌거나 나이는 깡패였다. 같은 수술을 한 다른 나이대 사람들의 회복 기간에 비해 나의 회복기간은 현저히 빨랐다. 몸이 조금 나아져 집 근처에 나갈 수 있게 되자 나는 그동안 미뤄둔 연애질과 음주를 가장 열심히 하고 다녔다. 내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던 그전에 비하면 느릿느릿 움직일 수 있는 게 어디냐! 물론 병원에서는 당연히 금주를 명했지만 에라 모르겠다!

 "싸돌아 댕기지 말고 집에서 좀 있어라!!!"

내 몸에 찬 보호대는 엄마의 등짝 스매싱에 맞서는 훌륭한 갑옷까지 되어 주었다.

 

그때까지도 나는 현실을 거부하고 있었다.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고 잠시 내 것이라 생각했던 것들을 뺏기고 칭얼대는 어린아이였다. 지금 나는 그저 몸이 아픈 20대 백수인데, 그 사실을 온몸으로 거부하고 있었다.


여행도 못 가니 이 사진으로나마 위안을


언제까지 대상도 없는 것을 원망하며 시간만 보내고 있을 건가. 

그렇게 손톱만큼의 깨달음이 왔을 때쯤 잊고 있던 실업 급여가 생각났다. 드디어 내게도 할 일이 생겼다!

하나의 행동은 또 다른 행동을 불러온다. 아직 움직이는 것도 불편하고, 갈 데도 없으니 공부를 해야겠다 싶어 한동안 끊었던 영어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뭔가에 몰입하는 느낌은 꽤 긍정적이었다. 

실업 급여 덕에 노동청에 몇 번 들락거렸다가 취업 프로그램을 알게 되어 거기도 참가했다. 그 프로그램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사람들을 오랜만에 다시 만나게 되었다. 내가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세계를 다시 보는 것 같아 신선했다.(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에 다닐수록 스스로 노력하지 않는 한 만나는 사람은 한정적이게 된다.)

그리고 두 달 후,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다. 요양의 연장선 상에서 배운 수영이었지만 역시 배운 것은 다 쓸모가 있었다. 사람일 모른다고 싱가포르에서 살면서 수영장에 갈 일도 많이 생겼다.(물론 그때는 싱가포르에 갈 생각이 1도 없었다.) 게다가 평일 오후 3시에 시작하는 수영 수업을 들을 수 있다는 건 자유를 의미했다. (물론 이것도 그땐 몰랐다.)

 

"결국 바이러스에 발목 잡힌 이 시간도 내 인생이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때 그 7개월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데, 그 당시에는 정말 영원 같았다.

 

 ‘후유증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는데 또 아프면 어떡해?’

 ‘이렇게 공백이 생겼는데 일을 찾을 수 있을까?’

 ‘아프고 수술한 적이 있는 사람을 받아줄까?’

집에 하루 종일 누워 있으면 오만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파고든다. 몸이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고, 나 혼자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에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니 생각은 ‘부정적’으로 변한다. 요양을 시작했던 첫 몇 달간 공부를 하거나, 평소 보고 싶었던 책이나 영화를 보거나,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뭔가를 배우거나 하는 일을 좀 더 일찍 시작했다면 내 인생은 어떻게 됐을까? 하다못해 싱가포르에서 영어를 못해서 고생했던 시간을 좀 더 단축시킬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

 

그때 나는 강제로 7개월의 시간을 빼앗겼다. 이 상황이 얼마나 갈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코로나 바이러스에게 일상을 빼앗기고 있다. 전혀 자신의 의지가 아닌 채로 집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집안에서 심심함, 무기력함, 바이러스의 심각한 상황만 알려대는 뉴스에 잠식되어 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이 상황이 먼 훗날 기억했을 때 가벼운 에피소드가 되려면,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이 시간 우리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혹은 언젠가 하려고 미루고 있던 일을 해야 한다.

 

 “2020년 초에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게 전 세계를 휩쓸었거든? 학교, 회사 전부 문 닫고, 경제는 당연히 곤두박질치고. 바이러스 전염될까 봐 밖에 나다니지도 못했어. 티브이에서는 재미있는 것도 안 하고. 할 것도 없고. 아 정말 그때 개 암울했어. 할 게 없었다니까?”

 “2020년 초에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게 전 세계를 휩쓸었거든? 학교, 회사, 가게 전부 문 닫고. 할 게 없었거든. 갈 데도 없고 해서 차라리 잘 됐다 싶어서 XX를 공부했어. 그래서 그걸 조금 마스터하게 됐지.”

 

시간이 지나고 보니 '몸이 아팠다.'는 최고의 핑곗거리였다. 그 누구도 내게 뭐라고 못할 시간이었는데 그때를 좀 더 알차게 보냈다면 어땠을까? 가끔 그때를 떠올리면 아쉬운 적이 많다.(그 이후에 했던 백수생활과 달리 이건 정말 좋은 이유다!^^) 현재 우리에겐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모두가 집콕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시간이 지나서 오늘을 되돌아보며 바이러스 때문에 무얼 못한 사람보다는 바이러스 덕분에(?) 생긴 시간을 잘 활용한 사람이 되고 싶다.

 

이왕 아무 데도 못 가는 거 평소에 배우고 싶었던 것, 읽고 싶었던 것, 보고 싶었던 것을 하는 시간이 되기를. 너무 바쁘게 살아온 내게 잘 쉴 수 있는 기회라도 주기를. 혹은 그동안 소원했던 가족들과 부대끼는 시간을 즐기길. 그래서 다시 마음 놓고 밖에 나가는 날, 내 안에 쌓아놓은 것을 자랑스럽게 펼칠 수 있게 되기를. (세상이 좋아져서 요즘엔 e러닝, 전자책, 유튜브, 넷플릭스가 있다. 홈트레이닝 프로그램도 너무 좋은 게 많다. 아무튼 나는 어제 킹덤 2를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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