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물어보시기도 하고, 개인적으로도 정리해 보고 싶어 한 번 써 봅니다.
토익 855점 / 토스 6등급
영어시험 성적은 실제 영어성적과 관련 없다고 생각하지만, 읽으시는 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 가까스로 기억해낸 2010년이 마지막이었던 공인 영어시험 최고 성적을 공개해 봤다. 내가 제대로 된 영어공부를 시작한 건 대학교 졸업 이후였다.(어학연수를 가 본 적도 없다.) 토익 공부하는 건 정말 싫어했지만 회화만큼은 잘 하고 싶었다. 어학연수 없이도 한국에서 충분히 영어 실력을 향상할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싱가포르에 취업하기 전
1) 나도 랩몬스터처럼_ 프렌즈. :)
나의 첫 영어 선생님은 많은 이들에게도 그렇듯 조이와 피비, 로스 등 여섯 친구들이었다. 다른 것보다 발음 공부할 때 참 유용했다. 얼마 전 엘렌 쇼에서 방탄소년단의 랩몬스터가 프렌즈를 보며 영어 공부했다는 장면을 보고 어찌나 반가웠던지... :) 내가 생각하는 프렌즈가 좋은 이유는 다음과 같다.
https://www.youtube.com/watch?v=IOuFE-6Awos
1) 친구라곤 이 여섯 명이 전부인 이들이 노는 곳은 주로 실내이다. 집 아니면 카페. 다른 소음이 섞이는 일이 거의 없어 발음이 깨끗하게 잘 들린다.
2) 친구, 연인, 부모님, 직장생활 등 정말 일상적인 주제를 다루기에 외운 문장을 실생활에서 바로 써먹을 수 있다. 시즌이 10까지 있다 보니 살면서 겪을 수 있는 거의 모든 상황이 다 있다.
3) 그리고 재미있다. 언어를 배울 때 가장 중요한 건 반복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반복을 위해서는 내가 보거나 읽고 있는 것이 재미있고 지겹지 않아야 한다. 아무튼 프렌즈가 너무 재미있어서 한 에피소드를 몇십 번씩 보기도 했다. 시즌1의 첫 번째 에피소드는 웨딩드레스 입은 제니퍼 애니스턴이 정말 예뻐서 100번은 본 것 같다.
싱가포르에 도착하고 난 뒤
1) Roald Dahl의 소설와 짧은 영어책 몇 권
한국인을 많이 가르쳐 본 적이 있는 스웨덴인 선생님을 안 적이 있다. 그분은 한국인이 영어 못하는 패턴을 굉장히 잘 파악하고 계셨다. 그리고는 영어 공부하는 나에게 Roald Dahl이란 동화작가의 소설을 읽어보라 했다. 쉬운 것부터 읽어본답시고 어린이용 동화를 읽으면 쓸데없는 의성어나 배운다고 했다. 그에 반해 Roald Dahl의 책은 너무 쉽지도 않고 내용도 적당히 길고 재미있어서 영어실력이 높지 않은 사람들도 잘 읽을 수 있다는 게 그 선생님의 의견이었다. 그분의 추천으로 내가 고른 책은 Matilda였다. 잊을만하면 그림이 삽입되어 있어서 읽는데 부담이 없었고, 이 천재 소녀의 이야기가 재미있었다. 그땐 몰랐는데 영화와 뮤지컬로도 나온 굉장히 유명한 책이었다. 한 세 번은 읽은 것 같다.
<Who moved my cheese?>, <Peak and valleys>, <Happiness now>
<Who moved my cheese?>는 아는 분들이 많을 테니 부연설명은 필요 없을 것 같다. <Peak and valleys> 역시 같은 작가의 책인데 '치즈'책보다는 길다. 뭐 뻔한 내용이다, 라고 할 수 있지만 면접에서 떨어지고 비자는 만료되어 가고.. 하던 그때 나의 정신을 붙들어 주던 책들이었다. 무엇보다 아무것도 되는 일 없던 내게
"내가 영어 책을 다 읽었어!"
라는 성취감을 마구 심어주던 책들이었다. 공부나 삶에서 작은 성취감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책은 얇지만 삶에 분명 도움되는 내용이 들어있다. 특히 <Happiness now>와 <Peak and valleys>는 열 번은 봤다.
2) 언어 교환
K-Pop, K-drama 덕에 싱가포르에는 한국 문화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많다. 자연스럽게 한국어에 관심 있고 배우는 사람들도 많았다. 내 첫 번째 싱가포리안 친구도 이 언어 교환에서 만난 사람이었다. 이 모임의 장점은 내가 영어실력이 부족하여 더듬거려도 인내심을 가지고 내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데 있다. 그래서 아직 그 나라 언어를 잘 구사하지 못한다면 한국어를 배우고 싶은 사람들이 있는 모임에 가는 걸 추천한다. 한국에 호의 있는 사람들과 있으면서 마음 편하게 언어를 늘리고 그 나라에 더 빨리 적응할 수 있다.
3) 싱가포르 신문 읽기
싱가포르의 대표 신문인 The Strait Times를 읽었다........ 기 보다는 헤드라인 정도를 쭉 훑고 관심 가는 기사만 읽었다. 지루해서 끝까지 못 읽는 나 자신을 매번 타박하다가 한국 신문도 1면부터 끝까지 다 읽지 않는데 뭐.... 싶었다. 헤드라인을 보는 것만으로도 싱가포르 소식도 파악하고, 자주 보이는 단어를 공부하는 등 괜찮았다.
싱가포르에 취업하고 나서는........
1) 영화를 통째로 외우기
예상 답변을 달달 외워서 면접관을 속이고 취직은 했지만, 언어의 벽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비즈니스 이메일이야 이전 회사에서 쓰기도 했고, 사람들의 이메일과 영어사전 같은 족보가 있었다. 하지만 동료들과의 일상 대화는 정말 답이 없었다. 내가 꿈꾸던 것처럼 한 사무실에 7개국에서 온 다른 사람들이 있었지만, 말을 알아듣지 못하니 회사에 가는 매일매일 괴로웠다. 사람들이 내게 가볍게 던지는 농담을 못 알아들어서 갑분싸하게 만든 적이 여러 번, 나는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서 영어 듣기, 회화를 다시 공부해야 했다.
다시 '귀를 뚫기' (이 표현 안 쓴 지 오래돼서 꼭 써보고 싶었다.) 위해서는 하나를 골라서 무식하게 파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영화 하나를 골라 몇 번 본 후에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눠서 따로 녹음을 했다.
-그 파일을 하나만 넣고 아침저녁 출퇴근하면서 듣고 따라 한다. 네 개를 한꺼번에 넣으면 스토리를 듣는 맛에 공부를 하지 않기 때문에 딱 하나만 넣었다.
-안 들리는 발음은 무조건 반복해서 들었다. 이미 어떤 대화가 나올지 알고 있기 때문에 나는 그들의 발음, 억양에 주의를 기울일 수 있었고, 오며 가며 미친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역시 공부는 이렇게 무식하게 해야 하는지 귀가 뚫리는 느낌이 들었다.
이때 내가 선택한 영화는 <Sex and the city 2>였다. 이 영화를 좋아해서라기 보다는 그 당시 내가 소장하고 있던 영화가 친구에게 받았던 이 영화와 <Inception> 둘 뿐이었고, 그중에 만만한 게 <Sex and the city2>였다. 지겨움 없이 계속 공부하려면 둘 중에서 더 좋아하는 영화인 <Inception>을 들어야 했다. 하지만 내게 필요한 건 아침저녁으로 들어도 부담 없는 일상적인 대화였지 거대한 음모, 납치와 살인은 아니었다. 그리고 인셉션에서는 급박한 상황이 많다 보니 가끔씩 애들이 말을 너무 빨리 했다. 당시 내겐 좀 부담스러웠다. 개인적으로 영어공부를 위해서 영화를 고를 때는 일상적인 대화가 많이 들어 있는 로맨틱 코미디나 드라마 같은 장르부터 시작하는 게 낫지 않나 싶다.
* 언어를 공부할 때는 그 나라의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좋은데 싱가포르가 아무래도 이 분야가 약하다 보니 볼 게 많지 않다. 싱가포리안들도 자기네 나라 프로그램은 재미없다며 거의 안 본다.(하지만 한 번 도전해 봐야겠다고 늘 생각은 하고 있다...) 미국과 영국은 재미있고 볼만한 드라마/영화가 많기에 각자의 취향대로 쉽게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혹시나 호주 영어와 친해지고 싶은 분들이 계시다면 <The time of our lives>라는 시리즈를 추천하고 싶다. 적응하기 힘든 호주 영어의 억양과 발음은 물론, 호주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알 수 있는 괜찮은 시리즈다. 다만 시리즈가 끝나갈수록 뿌려놓은 떡밥을 수거하느라 지들끼리 바쁘지만, 그래도 볼 만하다. ^^
2) 네트워킹 모임
외국에는 이런 모임이 참 많다. 수요일이나 금요일(혹은 둘 다)에는 칵테일파티 같은 모임이 자주 열린다. 알코올 한 잔을 들고 그곳에 온 사람들과 계속 이야기하는 모임이다. 여기서 부동산 에이전트, 보험회사 영업사원도 많이 봤다. 워낙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싱가포르다 보니 이런 모임 역시 인터내셔널 모임이고, 그들의 다양한 영어 억양에 적응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모르는 사람과 영어로 말하면서 영어울렁증을 정말 많이 없앨 수 있었다. 한때 이 모임에 열심히 나갔는데 왠지 내가 죽순이가 되는 느낌에다 대화가 다 거기서 거기라(처음 만나서 하는 말이란 게 '무슨 일해요? 어디 살아요?'.. 다 보니) 언제부턴가 발길을 끊게 됐다. meetup.com 사이트를 통해 이런 모임을 찾아볼 수 있다.
3) 또 영어 스터디
그렇게 한동안 혼자 공부를 했고, 회사 이메일과 자료 등을 영어공부용으로 계속 봤다. 요즘에도 느끼지만 언어 공부란 측면에서 봤을 땐 해외유학(언어연수가 아닌)과 해외취업 중에서 해외유학이 더 좋은 것 같다. 우선 책을 많이 보기 때문에 다양한 표현과 단어를 볼 일이 많고, 실수해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다. 하지만 회사에서는 내가 새로 배운 단어를 써먹기보다는 남들이, 업계에서 이미 쓰고 있는 단어를 사용하는 게 안전하다. 새로 배운 단어의 뉘앙스까지는 아직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괜히 상대방을 헷갈리게 하거나 실수할까 봐 걱정되어서 안 쓴 적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내가 보고 듣는 것이 한정적이다는 느낌을 받았고, 나는 영어 스터디를 (싱가포르에서도ㅠㅠ) 하기로 했다. 매번 다른 영문 기사를 읽고 그 기사를 가지고 토론하는 스터디였다. 결국 영어는 커뮤니케이션이었고, 커뮤니케이션의 목적은 내 생각을 상대방에게 잘 전달하고 남의 말을 잘 알아듣는 것이었다. 언제 어디서 누군가와 함께 하든 다양한 주제에 나를 노출시킬 필요가 있었다. 한 번 생각해 본, 한 번 이야기해 본 주제는 다른 곳에 가서도 다시 이야기할 수 있으니까. 아무튼 나는 다양한 주제를 영어로 말하는 연습을 하기 위해 스터디에 들어갔고 2년 가까이 활동했다.
예전 어느 술자리에서 (지금도 이해할 수 없지만) 인도 경제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인도 경제라고는 손톱만큼 아는 것도, 관심도 없던 나는 '인도 경제, 나아갈 방향은?'이란 토론회의 방청객이 되고 말았다. 그때 내가 깨달은 건 인도 경제의 특징이 아니라 '내가 지금 한 마디도 못하는 건 영어를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주제에 대해서 모르기 때문'이라는 점이었다. 이 예가 와닿지 않는다면 드라마를 생각해 보면 된다. 내가 a란 드라마를 보지 않으면 a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친구들의 대화에 끼지 못한다.
5) 원서를 소리 내어 혹은 그냥 읽기
많은 분들이 알고 또 하는 방법이니 다른 말은 안 하겠다. 한 때 <로빈슨 크루소>나 <눈의 여왕>을 영어로 읽어보겠다고 설쳤는데 고어가 너무 많아서인지 집중이 되지 않아 결국 포기했다. 영어를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자기계발 서적이 낫지 싶다.
+책 추천
제가 읽은 몇 안 되는 영어 원서 중에 영어 공부하는 구직자나 직장인에게 좋을 것 같은 책입니다.
① Don't sweat the small stuff and it's all small stuff
책 전체가 한두 페이지의 짧은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이런 책의 좋은 점은 더럽게 책 읽기 싫은 날에도 '딱 한 페이지만 읽자.' 신공을 쓸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마음을 안고 시작하면 대부분 '한쪽을 읽었으니 한쪽을 더 보지!'라는 마음을 갖게 된다. 그러고 나면 아무리 기분이 좋지 않은 날에도 '오늘 영어 책 한 장을 읽었어.'라는 뿌듯함을 준다. 한국어판으로 <우리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로 번역되어 있다.
② Lean In
예전 글에서 한 번 언급한 적이 있는 페이스북의 COO, 셰릴 샌드버그의 책. 승진과 이직, 경력 관리, 비즈니스에서 여성의 지위, 결혼, 육아 등에 대한 그녀의 생각과 통찰력을 엿볼 수 있는 책이다. 여성뿐만이 아니라 그 여성과 함께 살아가는 남성들에게도 충분히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③ What color is your parashute? 2018
1970년대부터 출간된 구직과 취업에 대한 책이다. 이력서, 커버레터, 네트워킹 등 구직자를 위한 다양한 조언이 담겨 있다. 2018이란 말이 보여주듯이 매년 갱신된다. 이 책의 2,000년대 버전을 보면 '그 지역의 전화번호부를 구해서 그 회사로 직접 전화해 보라'는 류의 조언이 나온다. 시간이, 그리고 세상이 얼마나 변했는지 새삼 느껴진다.
④ One Thing
많은 것을 하지 말고 자신에게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단 한 가지에 집중하라.(80:20 파레토 법칙의 응용)
도미노처럼 자연적으로 다른 일에 영향을 미치거나 원동력을 줄 수 있을 만한 일을 찾아라.
그리고 그 일에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써라는 게 책의 주제이다. 시간 관리와 우선순위를 찾는 걸 도와주는 괜찮은 책이었다.
모국어가 아닌 이상 그 나라에 있는다고 해서 언어는 절대 늘지 않는다. 공부하기에 유리한 환경인 건 맞지만 스스로 하지 않는 이상 절대 늘지 않았다. 내가 했던 것이 특별하게 어려운 방법도 아니고, 요즘엔 외국인과 대화하는 모임도 많으니 한국에서도 충분히 시작할 수 있지 않나 싶다.
사라 작가님의 더 많은 글 '보러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