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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이 워낙 힘들다 보니 취업만 되면 다 잘할 것 같지만... 진짜 현실은 그 후에 시작된다. 결국 취업도 취업이지만 결국 그것도 생활이고 생존 게임이라는 것을 곧 알게 된다. 

 

 

1. 다시, 영어공부

취직했다고 외국어 공부를 그만 하는 건 해외취업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사람이라고 봐주는 경우도 훨씬 적고, 말을 잘 못 알아들어서 "다시 말해줄래?"라고 말하는 것도 하루 이틀이다. 이게 계속되면 아예 커뮤니케이션이 안 된다고 욕먹기 일쑤다.(다 경험에서 나온 말이다.ㅠ) 어학연수 가 본 사람들은 다 알지 않은가? 외국 간다고 영어실력이 느는 게 아니라는 것을. 회사도 마찬가지다. 아니 회사일수록 오히려 더 영어공부를 해야 한다. 내 생존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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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때문에 X무시당한 순간들

반갑지 않지만 내가 성장하는 계기 | 종종 인생의 중요한 깨달음은 좋은 형태로 찾아오지 않아서, 한 번 크게 당해봐야 깨달을 때가 있다. 물론 현명한 사람들은 그러기 전에 미리 준비하지만, 나 같은 사람은 항상 당해봐야 정신을 차린다. (그렇기에 나 자신을 당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종종 밀어 넣기도 한다.) 내 영어가 가장 빨리 단기간에 늘었던 순간은 영어 때문에 'X무시'당한 순간들이 쌓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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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을 다니며 비즈니스 영어를 따로 공부하는 분들도 많이 봤지만, 나는 그렇게 공부를 따로 하기보단 회사에서 주고받는 이메일, 동료들과의 대화를 교재 삼아 공부했다. 멋있어 보이는 표현을 들으면 <다음에 써먹을 것들> 리스트에 적어 놓고 써먹고는 했다. 이메일에는 업계에서 어떤 용어를 쓰는지, 이러저러한 경우에는 어떤 표현을 쓰는지 다 담겨 있었다. 이메일은 내게 정말 족보와도 같았다. 회사와 업무에 적응하면 할수록 적은 정보에도 그 의미를 파악하는 눈치가 늘어서 이런 과정도 점점 쉬워졌다. 

 

이와 더불어 나는 일상 회화 공부도 다시 시작했다. 회사라고는 하지만 결국 내 대화의 대부분은 때마다 다른 상사의 지시사항 이해하기, 내 업무를 타인과 공유하기, 동료들과의 일상적인 대화와 가벼운 농담이었다. 비즈니스 영어도 영어지만 결국엔 나의 영어실력 자체를 끌어올려야 했다. 결국은 사람과의 커뮤니케이션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외국에 산다고 근사해 보일지 몰라. 하지만 한국에 돌아갈 날에는 현실을 맞닥뜨려야 해. 싱가포르에서 몇 년이나 일 했는데 영어를 잘 못해. 그런 사람을 과연 어떻게 생각할까?” 

 

예전에 이 말을 듣고 머리에 한 대 맞은 듯 강한 충격을 받았다. 미래를 잠깐 생각해 보자. 나는 싱가포르에서 취직한 후에 이곳에 눌러 살 수도, 다른 나라로 갈 수도, 한국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 몇 년 후 내가 어느 곳에 있게 되든 사람들이 날 평가할 기준은 무엇일까? 내가 어디에서 일했다는 것보다도 우선 '싱가포르에서 일했다'는 것만 보고 영어실력에 날카로운 잣대를 들이댈 게 분명했다. 내가 한인 회사에서, 혹은 한국인을 매일 접해야 하는 custmer service 직군에서 일했기 때문에 한국어를 많이 쓰고 살았다는 건 핑계일 뿐이다. 그런 곳에서 일할수록 더더욱 영어공부를 해야 한다. 

 

게다가 승진과 이직을 생각한다면 어디에서 일하든 영어공부는 계속해야 한다. 브로큰 잉글리시를 구사하는 상사에겐 신뢰가 가지 않을 것이고, 영어가 부족하다면 이직의 기회도 많지 않다. 특히 이메일로 커뮤니케이션을 주로 하는 외국회사에서는 그 모든 내용이 기록으로 남기 때문에 영어 이메일과 영작 연습을 많이 하면 좋다. 

 

 

2. 자신감

 “아시아 사람들이 윗사람에게 순종적인 태도를 갖고 있다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나한테 아니 회사에서 그럴 필요는 없어. 그런 건 집에서나 해. 니가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내 생각과 다르더라도 나에게 말해. 그게 서로에게 좋은 거야.” 

유럽에서 온 상사에게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들이 보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나는 ‘꿍꿍이’를 알 수가 없어 그렇게 답답할 수가 없다. 이런 말은 꼭 유럽 사람이 아니라도 서양의 영향을 많이 받은 싱가포르 사람들도 하는 말이다. 

 '아직 내 영어가 많이 부족한데 말실수하면 어떡하지. 내가 아직 어리고 들어온지도 얼마 안 됐는데 이런 말을 해도 될까...'

우리는 스스로 검열하는 데 너무 익숙하다. 하지만 가만히 있으면 정말 '가마니'가 되어버리는 이곳에서는 영어실력에 조금 자신이 없더라도, 사람들에게 내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말할 필요가 있다. 좋은 게 좋은 거라서 넘어간다? 그럴 필요도 없다.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라 역시 별 영양가 없는 말을 그럴듯하게 하는 소위 입만 산 사람들이 있다. 

 '나였다면 저런 말을 할 바에는 그냥 가만히 있을 텐데...' 

이런 생각을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생각도 바뀌었다.

 '저런 영양가 없는 말도 그럴듯하게 하는데 왜 나는 아무 말 못 하고 있는가?

누군가 나를 보며 '왜 모두가 다 아는 말을...' 이란 생각을 가질지 모르더라도 일단 내 생각을 말하고 보는 게 중요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건방져 보일까 봐, 내가 뭐라고 이런 말을….' 등의 사고방식은 여기서는 필요 없다. 회사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이야기라면, 하다 못해 내가 지금 회사와 프로젝트를 많이 생각하고 있다는 코스프레를 위해서라도 말을 하는 건 좋다. 내 말을 들어줄지 말지 걱정된다고? 그건 상대방의 몫이다. 순종적인 사람보다는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더 좋아한다. 

 

3. 직급의 모호함

싱가포르를 비롯한 외국 회사에서는 직급에 대한 개념이 한국보다 모호하다. 회사에 따라 다르겠지만 한국에 있는 사원/주임/대리/과장/차장/팀장/부장... etc (분명히 내가 빠뜨린 어떤 직급이 있을 것 같다.)과 같은 기준이 느슨한 편이다. 물론 당연히 직급이 있고, 보고 체계가 있다. 하지만 사원은 사원들끼리 같은 문화나 사원은 부장님한테 말 거는데 부담을 느끼는 분위기는 상대적으로 덜하다. 한국으로 치면 주니어에 속하는 직급이라 할지라도 시니어 직급과 함께 일해야 할 경우가 꽤 있다.(물론 거래처가 작은 규모의 회사라면 이럴 경우가 이상하지 않겠지만 규모가 꽤 있는 회사라도 이럴 때가 있다.) 

 

 ‘어떻게 나한테 저렇게 큰 회사의 이사한테 연락하는 일을 시킬 수 있지?’ 

라며 그에게 연락하기까지 수화기를 몇 번이나 들었다 놓고, 이메일을 썼다 지운 적이 있다. 에라 모르겠다 하며 연락했을 때, 그는 의외로 굉장히 반가워했다. 이런 경험을 몇 번 하면서 임원 C-Level들과 커뮤니케이션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들에게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배우게 되었다. 

 

오랜만에 한국의 고객사와 연락할 일이 있어 그 회사의 어느 팀 부장님을 찾은 적이 있다. 그새 싱가포르의 문화에 적응해서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연락했던 내게 돌아온 대답은  

 “목소리가 아직 어리신 거 같은데, 직급이 어떻게 되시죠?” 

였다. 마치 카스트 계급의 가장 아래층에 속한 내가 맹랑하게도 하늘높은 브라만 계급에게 말을 걸어버린 느낌이었다. 비단 싱가포르가 아니라 대부분의 다른 나라에서도 이런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어디에서 누구를 만나든지 자신감을 가지고 ‘나도 괜찮다. 내가 낸데.’라는 생각을 항상 가지고 일에 임하면 좋겠다. 그리고 그런 사람을 누구나 좋아하기 마련이다. 

 

 

4. 디테일, 디테일, 디테일. 

절대 좋은 게 좋다고 덮어주지 않는다. 실수를 받아들이는 태도 자체가 다르다. 한국에서는 ‘그럴 수도 있지.’라며 충분히 넘어갈 수 있는 사소한 실수가 여기서는 크게 여겨진다. 예를 들어 서류상에 잘못 기재된 글자를 발견했을 때, 발견한 사람의 선에서 혹은 그 아래선에서 그 서류를 고치지 않는가? 하지만 여기서는 그걸 굳이 보고를 하고 허락을 받아서 다시 고치고 있다. 정말 융통성 없어 보인다. 물론 일의 중요성에 따라 처리 방법과 과정은 달라야 한다. 그렇지만, 중요하지 않은 일도 이런 식으로 처리하며 굳이 일을 만들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정 떨어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 일을 몇 번 보고 나서는 내가 알아서 눈이 빠지도록 서류를 체크하거나 상대방과 두세 번씩 확인하며 일했다. 

한국처럼 '정으로 간다~ 좋은 게 좋으니 넘어가자.'라고 하면 이런 경우가 덜 하려나?

 

 

5. 무관심은 무관심이 아니다.

처음 회사에 들어가 서로 자기소개를 하고 반갑게 인사를 하지만, 나중에 누가 따로 와서 나에게 말 건다거나 그런 일은 많이 없다. 한국에서처럼 인수인계라고 사수라는 사람이 딱 붙어서 대인마크를 해주지도 않는다. 외국에서 일하는 건 당장 일에 투입해서 성과를 낼 사람을 뽑는 일이기에 더 그렇다. 

같은 팀이 아니거나 같은 프로젝트를 하지 않으면 서로에게 관심이 없다. 아니 없어 보인다. 프라이버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생활에 관련된 질문도 하지 않는다. 오지라퍼들이 많은 곳에서 왔다면 오히려 어색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괜히 소외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 말 안 해도 사람들은 나를 보고 있다. 참 희한하지만 서로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상대방이 어떤 일을 얼마큼 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 그리고 시간이 좀 지나면 다들 동료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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