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한국어 온라인 튜터로 일한 적이 있다. 미국에 있는 그 회사의 채용 공고를 호주에서 우연히 보게 되었다. 사실 그전부터 호주 친구에게 일주일에 한 번씩 한국어를 가르쳐 주고는 있어서 가르치는 일에 관심은 있었다. 지원서를 보내고 지원을 했다는 사실도 까먹은, 6개월이나 지나고 나서 이메일을 받았다. (외국에서는 이런 일이 정말 허다합니다.)
"면접을 볼 수 있을까요?"
우리는 스카이프로 면접을 봤다.(나는 저녁 9시, 그쪽은 아침 8시)
회사에서는 이메일로 계약서를 보냈다.
계약서를 잘 읽고 서명을 한 후 스캔을 해서 다시 이메일을 보냈다.
그리고 일주일 후 스카이프로 약 30분 정도 티칭 트레이닝을 받았다.
그 일을 지원할 때는 백수였는데 이메일을 받았을 때는 이미 나에겐 돈벌이하는 곳이 있었다. 그래도 해 보고 싶었다. 봉사활동이나 우정으로 누군가를 가르치는 게 아닌 가르치는 일로 내가 돈값을 할 수 있는지 궁금했다.
"선생이 뭐 이따구야. 자기 나라 말도 제대로 몰라. 이 사람 별로야. 안 배울래요."
라는 말을 들을 각오로 처음에 시작했는데, 그 일을 몇 년간 지속했다. 처음에는 한 시간 수업을 준비하는 데만 두세 시간이 걸렸다. 한국어 문법과 단어가 이렇게 어려운 거였나. 그렇게 시간이 지나며 나에게서만 배우고 싶어 하는 학생도 하나 둘 생겼다.
나와 세계 곳곳에 있는 학생들은 서로의 시간이 맞을 때 스카이프를 이용해 함께 공부를 했다. 하루에 한 번도 안 할 때도 있었고, 하루에 몇 개의 수업을 한 적도 있다.(한국어를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아서 정말 놀랐다.) 그렇게 나는 회사 직원들, 학생들을 실제로 한 번도 만나지 않고 일을 했다. 아무튼 그 일을 하면서 나는 또 다른 일도 하고, 책도 썼다. 그때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지금 보니 네트워크가 잘 되어 있는 탓에 원격근무와 소위 긱 경제를 경험했던 것이다.(사실 책 쓰는 것 역시 출판사와 직접 만나지 않고도 가능하다.) 또 요즘 유행이라는 N잡도 몇 년 전에 한 셈이었다.
*긱 경제 gig economy: 산업 현장에서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수요자가 필요할 때마다 임시로 계약을 맺고 일을 맡기는 경제 형태(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IT용어사전)
국내든 해외든 취업에 그렇게 집착했던 내가 정규직으로 취직할 생각은 안 하고 갑자기 저런 삶을 살았을까? 싱가포르에서 살면서 가장 크고 절절하게 배운 것이 있다면 바로 아래 문장이다.
'회사는 내 인생에 손톱만큼도 관심이 없다.'
비자 가지고 장난치는 놈들,
한 달이 멀다 하고 퇴직하는 사람들,
졸라 사무적인 사람들과의 관계 (낮은 연대의식, 낮은 소속감)
회사보다 내 삶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들,
같은 일이라도 한국인보다 스트레스를 덜 받는 외국인들(회사는 덜 중요하니까.),
나를 번 아웃시키는 회사
일주일에 2일 출근 / 3일 재택근무하는 동료 (이미 몇 년 전에)
개인 사정으로 몇 달간 재택근무하는 동료 (이미 몇 년 전에)
거기에 언젠가는 떠나야 하는 이 나라.
게다가 주변국을 자주 여행하면서 여행객들과 자주 어울리게 됐는데, 개중에는 한 여행지에 몇 달간 머무르며 일주일에 3,4일은 매일 근처 카페나 Co-working space에 가서 일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런 데이터가 점점 쌓이면서 직장보다는 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관심이 더 커졌다.
'회사 힘을 빌리지 않고 계급장 다 떼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개인이 무언가를 만들고 인터넷에 업로드하고 그것을 소비하는 사람이 있다.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중계하는 사람 없이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연결된다.(플랫폼 수수료는 기존 중계인에게 지급하던 것보다 훨씬 저렴하다.)
풀타임 일처럼 서로에게 종속되는 것이 아니고 필요할 때마다 생산자를 빠르게 찾아서 일할 수 있는 자리.
이런 일은 현장직이 아니고서야 컴퓨터와 인터넷만 있으면 어디서든 할 수 있다. 전 세계 어디를 가든 잘만 터지는 인터넷 덕분에 이런 세상은 몇 년 전에도 이미 우리 앞에 있었다.
유난히 한국에서는 느리게 진행되었던 긱 경제나 재택근무(혹은 원격 근무)는 코로나 19 때문에 가속화되고 있다.
요즘 N잡이 유행하는 이유 역시 전염병이 주는 불안함 때문일 거다. 예전에는 여행이나 한 달 살기에 좀 더 초점이 맞춰져 디지털'노마드'였다면 지금은 '디지털'노마드에 방점이 찍혀 세상이 변하고 있다. 물리적으로 거리는 생겼을지언정 네트워크 덕에 더 연결된 세상으로 점점 이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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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상면접과 셀카의 상관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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