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여기서 몇 년 일했어?”
“음.. 얼마지? 한 15년 정도?”
나와 같은 직급의 한 동료는 근속연수가 꽤 높다. 서로의 나이를 묻지 않는 것은 불문율인지라 우리는 서로의 정확한 나이는 모르지만 그녀가 일곱 살 된 딸이 있는 것으로 대략 어림짐작할 뿐이다.
대학교를 막 졸업하고 취직을 하고, 부푼 마음을 안고 싱가포르에서 취직을 하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 삼십 대에 막 들어설 때까지, 나는 그때까지 교육받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했던 대로 승진의 사다리, 연봉의 사다리를 열심히 타고 가는 것이 내가 가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이 나이에는 이 직급을 달고, 이 나이가 되면 연봉은 이 정도가 되고.”
게다가 한국에서 일하고 있었으면서도 굳이 싱가포르에 온 것을 보면, 나도 일 욕심이 없는 사람은 아니었다.
싱가포르에 온 나의 유일한 목적은 새로운 경험을 쌓는 것이었다. 그래서 야근하지 않아도 되는 이곳에서도 기꺼이 야근을 하며 지금 하는 일에 대해 혼자 연구하고, 외근 가기 전에는 미리 답사하기도 했다.
스스로도 일 욕심이 많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한국에서 배운 대로 ‘열심히 일해 승진하기 위한’ 마음도 없지 않았던 듯하다.
팀도 있고 팀장도 있다. 하지만 팀 내에서는 한국에서와 같은 대리, 과장, 주임 같은 직급이 없다. 팀장 아래 모두가 같은 직급이다.
물론 연차나 능력에 따라 보너스를 더 받거나 월급이 다를 수는 있으나, 어쨌든 직급은 똑같고 그래서 서로 동등하게 일한다.
그래서일까, 같은 직급이라도 나이대가 상당히 다양하다. 게다가 승진에 있어서 '나이'는 전혀 고려대상이 아니다.
나보다 어린 팀장과 사수를 불편하게 여기는 사람도 없다. 내가 배운 대로 이 나이에 이 직급에 가야 한다는 암묵적인 룰도 없었다.
승진을 원하지 않으면 굳이 하지 않아도 된다. 나이가 많다고 해서 꼭 승진을 해야 한다는 스트레스도 없고, 스트레스를 주지 않는다.
다 똑같이 회사에 다닌다고 모두가 승진을 원하고 높은 연봉을 원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싱가포르에 와서 깨닫게 됐다.
아까 말했던 동료는 이곳에서 15년도 훌쩍 넘게 일했다. 그 시간만큼 자신보다 늦게 입사한 사람이 팀장을 다는 것을 몇 번이나 지켜봤다.
하지만 그 사실은 그녀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아주 예전 이 사실을 처음 깨달았던 날의 나는 아래와 같은 생각을 한 적도 있다.
'뭐 이런 야망 없는 사람들이 있을까. 그저 하루하루 내 자리에서 조용히 살아가는 게 정말 좋아?'
'아니 일도 잘하는데, 좀 더 욕심부리면 더 높은 자리 갈 수 있겠구먼.'
와우 가끔은 이런 데서 일하면 좋겠다..................... ^^
하지만 회사생활에 대한 만족도가 한국보다 높은 이곳에 살면서 어쩌면 '나이에 따른 승진의 압박'이 없는 것도 누군가에게는 행복한 회사생활을 결정하는 척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저마다 달라서 더 높은 곳에 가고 싶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굳이 쓰고 싶지 않은 감투를 써야 한다며, 이걸 하지 않으면 잘릴 수 있다고 압력을 넣는 게 행복한 일일까?
그렇게 억지로 진급한다고 일을 잘 할까? 스트레스를 받아 일에도 분명 영향을 주지 않을까?(여기까지 쓰고 나니 <무한상사>의 정과장이 떠오름...)
게다가 내 경험상 이렇게 근속연수가 길지만 진급을 원하지 않는 직원들은 자신의 노하우도 잘 공유하는 편이다. 그리고 근속연수가 높은 사람을 보며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안정감을 느낀다.
방향은 바뀌었지만 나는 여전히 일에 대해 욕심이 있다. 하지만 여기서 살며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는 것을, 그들도 충분히 행복하게 존중받으며 일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배우는 중이다.
여기서는 승진도 철저히 개인의 의사에서 출발하는 것을 느낀다.
일에 대한 내 생각도 점점 바뀌어 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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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는 정말 투명한 사회?
“싱가포르에서는 제 일만 잘하면 됐어요. 이곳에서는 정부에 잘 보여야 한다느니, 로비니 신경 쓸 필요가 없이 없이 일만 잘하면 되었습니다. 정말 편했습니다.” (정확하지는 않고 뭐 대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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