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에서 외국계 대기업에 다닌 지 1년이 된 시점에서 1년 결산... 은 좀 거창하고 느낀 점을 쓰고 싶었다. 그런데 요즘 일이 넘친다. 안 그래도 회계연도 마감으로 바쁜데 퇴사한 사람들도 있어 그의 일까지 같이 하고 있다. 그래서 글을 잘 못 쓰고 있었다. 그러다 편하게 개인적인 기록처럼 남겨보자는 마음으로 가볍게 써 본다.
1. 취직하고 몇 달 지나 코로나가 빵 터졌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감사한 일이었다. 취직 전 내가 하던 일은 코로나로 타격받을 것이 뻔했는데 회사 덕분에 최소한 수입 걱정은 안 해도 되었다. 게다가 코로나에 타격을 받는 업계도 아니었다. 코로나 19 초반 약간의 흔들림은 있었지만 회사는 건강하고 늘 일이 있다. 이런 회사에 다니는 것도 정말 감사한 일이었다.
2. 회사의 조직도를 보고 아찔했다.
나의 상사 그리고 상사의 상사..... 상사가 도대체 몇 명이야? 상사의 다리를 몇 개 건너면 미국에 도착하고 다시 몇 다리를 지나면 CEO한테 도달한다. 와우! 크다 커. 초반에는 이런 곳에 속해 있다는 게 뿌듯했다. 이런 곳에 속한 것도 처음이어서 아마 더 그럴지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그저 시스템 속 개미 1, 벽돌 1에 불과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대단해 보였던 상사도 더 많은 돈을 받고 더 많은 권한이 있는 벽돌 1, 개미 1일뿐이라는 걸 또 깨닫고 있다.
3. 그래서 생각해 본 시스템이라는 것.
시스템이 규정한 대로 일하면 되고, 사람들의 관계도 시스템에 의해 결정된다. 시스템은 일을 편하게 만들기도 가끔은 많은 절차에 의해 일을 느리게 만들기도 한다. 이런 곳에 인간미가 끼어들 틈은 없다. 사실 필요가 없지 뭐. 그래서 상처 받은 적도 있다. 일일 뿐인데, 인간미 따위 기대하면 안 되는데... 더 큰 조직과 시스템이니 인간미가 없다는 것을, 없어도 된다는 걸 몸으로 배우고 있다.
예전 한국에서 외국계 기업이지만 한국화 된 중소기업에 다니던 시절, 그때 팀장님이 우리에게 했던 말이 있다.
"시스템이 없을 때 일이 돌아가게 하려면 둘 중 하나를 해야 돼. 시스템을 만들던가. 사람들이랑 친해지던가."
시스템이 있으면 좋지만 그렇게 규모가 크지 않은 회사에서는 '굳이 뭘 만들어?'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니면 기존에 하던 대로 서로의 친밀도에 의지해 일하거나. 나는 말단 사원이었고, 우리 팀을 제외하고는 딱히 시스템에 관심 없던 그 회사. 타 팀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내게는 중요한 과제였다.
그 이후 해외취업도 하고 여러 회사를 다니며 이런 일은 많이 줄어들었다. 그리고 이렇게 나름의 시스템이 갖춘 곳에서 일을 한다. 정해진 때에 정해진 시스템에 딱 나를 맞춰 일해주면 된다.
4. 소설 속 빅브라더가 있는 곳
내 모든 행동은 기록으로 남는다. 말을 더욱 조심하게 하도록 만들기도 하지만 너무 답답하다. 코로나 이후 재택근무가 되면서 이런 기록은 더욱 심해졌다. 관리자라는 이름으로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확인까지는 아니라도 주기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나는 가끔 갑갑함을 느낀다..
내가 좀 어렸을 때 이런 곳에 다녔으면 지금보다 덜 답답해했을까?
누가 시키지 않아도 글 쓰고 책 쓴 성질머리를 가진 나란 사람에게는 이런 류의 관리가 안 맞는 게 아닐까?
생각이 많아진다.
5. 다른 팀이라는 것.
내 지식이 다른 팀의 사람에게는 전혀 새로운 것일 수도 있다.(사실 같은 팀이라도 서로 모르는 게 많겠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접점이 있으니 알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때마다 내 기대는 무너졌다. 다른 팀의,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 어떤 문제 때문에 나에게 연락을 해 왔을 때 나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이해시켜야 한다는 것이 처음에는 정말 이상했다.
우리 팀에는 당연한 내용과 지식이 다른 팀에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
반대로 나는 다른 팀이 알고 있는 것에 대해서 얼마나 모르는 게 많을까. 작은 회사였다면 진작 다 알고 있을 정보가 이곳에서는 접근이 불가하거나 혹은 요청해야만 접근할 수 있다. 내가 하는 일은 제한적이다. 큰 조직은 나를 한없이 겸손하게, 가끔은 무기력하게도 만들고 있다.
6. 사내 교육
사내 교육과 주기적인 팀 미팅을 보면서 '아 역시 대기업이구나.'를 느꼈다. 큰 회사에 대해 환상을 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이 바로 교육과 미팅이었다. 교육을 들으면서 괜한 뿌듯함을 느꼈다. 사실 앞서 말한 것은 어느 정도 작은 회사에서도 해당되겠지만 교육 같은 부분은 큰 회사가 아니고서는 미처 신경 쓸 수 없는 부분이다.
'내가 회사에서 교육을 받는구나.'
약간의 감격? 비슷한 걸 느꼈다. 교육이 실질적으로 내 업무와 관련이 있는 가는 두 번째 문제지만.
*코로나라고 감사하게도 코로나 패키지 선물(마스크, 비타민C, 체온계, 손소독제, 카드(집에서 심심할 테니까 ㅋㅋ), 아이패치) 등을 받았다. 이런 건 좋은 듯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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