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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옮길 때의 스트레스는 이혼의 그것과 버금간다고 하던가.
나는 도합 4번의 이혼을 경험한 셈이다. 직장 생활을 시작하고 나서 지금 5번째 회사를 다니고 있다.


첫 번째 이직은 거의 반강제적 이직이었다. 한 그룹 내에서 다른 계열사로 옮겨야 하는 상황. 같은 그룹 내라 이질감이 크지는 않았지만 산업이 전혀 달랐기에 적응에는 고통이 따랐다.


순전히 자발적으로 이루어진 두 번째 이직. 사실상 벽을 깨는 첫 번째 이직이었다.
현 직장에서는 더 이상 발전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고민하던 중이었다. 프로젝트에서 같이 일했던 외국계 회사의 한 분이 연락을 해왔다. 본인도 이직을 했는데 그 회사에서 사람이 필요하다고. 작지 않은 회사였고 네임 밸류도 있었다. 결혼을 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라 아내의 우려도 컸지만 고민 끝에 이직을 결심했다.


자발적 이직의 대가는 가혹했다. 나를 그 회사로 데려간 그분은 회사 조직의 변화로 내 상사가 될 수 없었다. 대신 새로 온 상사는 최악이었다. 본인의 실적을 위해서는 그 어떤 것도 가혹히 대할 수 있는 사람, 거기다 다른 업계에서 와서 업무 내용은 알지 못했다. 능력 없이 부지런하기만 한 상사가 최악이라고 하는 말은 이 사람을 보고 만들었나 싶었다.
힘들었다. 아침마다 눈을 뜨는 것이 고통스러울 정도로. 상사와 회사에 대한 불만보다 내가 내렸던 이직의 결정에 대한 후회가 나를 더 힘들게 했다. 자발적으로 한 결정이기에 누구에게도 하소연하기도 쉽지 않았다.
아무에게도 얘기 못하는 마음 한 구석 혼잣말, "아, 괜히 옮겼나 봐..."
이 후회는 그 후에 회사를 2번 더 옮길 때도 항상 나에게 찾아왔다. 형태와 크기를 바꿔서.


4개월 만에 다행히 또 다른 지인으로부터 Job Offer가 왔다.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쉽다고 하던가. 물론 이번에는 좀 더 쉽게 이직 결정을 했다.

그렇게 4번의 서로 다른 국내/외국계를 넘나드는 이직을 하는 과정에서 공통적인 것들이 있었다. 나름의 원칙 , 현상 혹은 더 나아가 교훈이라 부를 만한 것들?


아무리 힘들어도 쉽게 결정을 내리지 말 것.
힘들어야 청춘이다, 참고 견뎌내라 밖은 더 힘들다 따위의 얘기는 아니다.

인간의 고통은 기체와도 같다. 기체를 빈 방에 넣으면 그 방이 아무리 큰 방이라도 기체는 고르게 방 전체를 가득 채운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고통도 그 고통이 크든 작든 상관없이 인간의 영혼과 의식을 가득 채운다. 고통의 '크기'는 완전히 상대적이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 나오는 글귀이다. 남이 얼마나 힘들지 우리는 짐작조차 할 수 없다. 내 고통도 마찬가지이다. 남들이 봤을 때 '더 힘든 사람들도 있는데...'라는 얘기를 해도 본인의 고통은 그를 가득 채운다. 내가 이직 후 느꼈던 고통은 그 누구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다만 남아있는 조금의 여지를 살려서 이성적으로 봐야 할 필요가 있다. 옮긴 회사가 거기서 거기일 수도, 혹은 더 최악의 회사일 가능성은 항상 있다. 쓰레기차 피하려다가 똥차에 치일 수는 없다. 잠시 힘든 나를 내려놓고 조금 위에서 상황을 내려다볼 필요가 있다.


특히 하지 말아야 할 것은, 다음 나의 이동 Move 가 결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회사를 그만두는 것이다. 회사에 고용 상태와 비고용 상태는 이직 시에 많은 차이를 가져온다. 채용하려고 하는 지원자가 현재 회사를 다니고 있지 않다고 하면 뭔가 안 좋은 게 있나 하는 의심을 불러일으킨다.


이직에는 운이 따른다.
모든 인생과 마찬가지로 이직에는 운이 따른다.
이직 자체가 그렇다. 나는 이직한 건 4번이지만 그동안 보았던 인터뷰나 진행했던 이직 프로세스는 그보다 훨씬 많다. 그 회사에서 원했지만 내가 준비가 안되었던 경우, 내가 옮기고 싶었지만 그 회사에서 내 영역과 경력을 필요로 하지 않았던 경우, 회사와 나 서로 맞았지만 회사가 정책상 채용 자체를 동결 Freezing 하는 경우 등 다양한 이유로 무산되었다. 나를 필요로 하는 회사가 자리를 가지고 있는 때에 내가 옮길 수 있어야만 이직을 할 수 있었다.
최대한 많은 조사와 주위 사람들의 조언을 구하지만 그래도 이직할 회사의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다. 내가 2번째 이직했을 때, 주위에서는 좋은 선택이라며 부러워했다. 결과는 앞서 얘기했듯이 참혹했다.
나의 선택이 가져올 결과를 다 알 수는 없으니 그냥 운에 맡기면 물론 안된다. 운명을 내 쪽으로 바꾸기 위해서 최대한 여러 가지로 검토하고 행동하는 것이 필요하다. 어쨌든 운명은 수많은 자유의지들의 조합이니까.
때로는 최선을 다했으니 어쩔 수 없지 하고 달관해야 하는 순간이 있다.


연봉이 다는 아니다.
돈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돈을 벌기 위해서 회사에 다니고 일을 하니까. 당연히 기회가 된다면 충분한 보상을 요구하고 협상을 잘 해야 한다.
자발적인 이직의 경우, 지금 받는 연봉에서 +30%는 되어야 한다는 얘기들을 한다. 변화로 인한 스트레스, 옮겼을 때의 불확실성 등 여러 가지 리스크를 감안할 때 그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쉽지 않은 얘기지만 스카우트의 형태로 채용이 일어날 때는 드물지 않게 일어나는 연봉 인상이기도 하다.


친한 동료가 얼마 전에 이직했다. 업무 강도 세고 기업 문화 가혹하기로 유명한 회사였다. 이유는 단 하나, 연봉 인상이었다. 최근에 만나보니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고 있는 눈치였다. 가족과의 삶을 중시하는 친구였는데 저녁이 없어졌다 했다.
비단 Work Life Balance  뿐 아니라  회사를 보는 가치도 연봉 외에도 많다. 회사의 안정성, 스트레스 안 받는 문화, 향후 성장성 등등. 정답은 없다. 자신의 선택이다.


나는 이직할 때 한 가지 원칙이 있었다. 옮기려고 하는 회사가 내 경력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것,  다시 말해 또 회사를 옮기는 상황이 왔을 때 내가 성장해 있을 것.  


세상에는 자기를 완성시켜 가는 인간과 자기를 파괴시켜가는 인간, 이렇게 두 부류가 있을 뿐입니다.  - 나, 황진이 (김탁환) 中

회사도 나를 성장시켜주는 회사와 소모시키는 회사 두 부류가 있다.


회사를 옮기면 처음에는 다 힘들다
아무리 좋은 회사를 가더라도 변화에 적응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4번의 이직 동안 단 한 번도 안 힘든 적은 없었다. 사람도 다르고 분위기는 생소하고 프로세스는 독특하다. '이 회사는 뭐 이래... 이렇게 안 했었는데' 이런 생각이 자꾸 스친다.
특히 국내 대기업을 다니던 사람들은 조금 작은 외국계 회사에 왔을 때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다. 챙겨주는 사람은 없고 개인주의적이고 모든 일을 자신이 다 알아서 해야 한다. 이른바 갑의 위치에서 누릴 수 있는 특권은 없어진다.


이직하는 여러 경로가 있지만 지인의 추천으로 들어가는 경우가 가장 부드럽게 안착하는 경우가 많다. 평소에 네트워킹이 중요한 이유다. 평소 업무에 성실하고 능력 있게 보이면 좋은 기회가 생긴다. 업무상 갑을을 떠나서 인간적으로 성실히 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회사가 갑이지 내가 갑이 아니다.


이직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한 회사에서 오래 경력을 쌓아가면서 회사와 같이 성장해가는 것은 너무나 큰 기회이자 혜택이다. 하지만 그 기회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다른 경험이 필요한 순간이 온다.


아직도 나 자신에게 이 질문을 던진다. - "난 커서 뭐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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