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의 업무와 생활은 사실 설득의 연속입니다.
마케팅이나 영업이라면 자신의 제품과 서비스가 왜 좋고 사야 하는지 고객을 설득하는 것이 일입니다. 상품 기획은 이 기획이 왜 중요한지 회사 내부적으로 설득하는 과정이 중요하겠지요. 업무뿐 아니라 개인적인 성취와 관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내 연봉이 올라야 하는지 바로 위의 보스를 설득해야 하고, 내 팀원 중 일 잘하는 사람을 왜 올해 승진시켜야 하는지 인사팀을 납득시켜야 하지요.
이 과정들이 그 누가 보아도 보편적이고 타당하면 좋겠지만 우리가 사는 실제 세상은 그렇지 않아 보일 때도 많습니다. 누가 봐도 똑똑하고 말도 잘하고 논리적인 사람이 평가를 제대로 못 받는 경우? 흔합니다. 아 저분은 참 어눌해 보이고 행동도 빠르지 않은데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고 신망 있다고 하기도 합니다.
내가 얘기하면 그냥 무심코 지나가고 면박을 주던 사람들이 워딩까지 똑같은 말을 회사의 고위 임원이나 박사가 얘기할 때는 귀를 기울이고 엄청난 인사이트라고 칭찬을 하는 걸 보면 허무할 때도 있지요. :)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날까요.
얼마 전에 돌아온 알쓸신잡 3의 김영하 작가가 특유의 조근조근하고 와 닿는 화법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Rhetoric, 레토릭]에 대해서 설명해주었는데요. 거기에 일정 부분 해답이 들어 있습니다.
수사학(Rhetoric)의 정의는 원래, "논리, 사상, 감정, 문장 등을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짧게 말하면 어떻게 하면 남을 잘 설득할 수 있는지에 대한 방법론이겠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에서는 남을 설득하기 위해 다음의 3가지 요소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로고스(Logos)
로고스는 그리스어로 말(word)이라는 뜻으로 논리적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주장은 명확하고, 생각하는 과정은 논리적이고 뒷받침하는 근거는 있어야 하지요.
파토스(Pathos)
파토스는 감정을 이야기합니다. 듣는 사람들의 감정에 얼마나 호소할 수 있느냐 상대방의 입장에서 감정이입은 얼마나 되어 있는지가 설득의 수준을 결정합니다.
에토스(Ethos)
에토스는 설득하려는 사람, 말하는 사람 캐릭터의 신뢰성입니다. 그 사람 자체가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지, 그 사람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등 신뢰성과 평판, 지위 등 사회적인 위치뿐 아니라 옷차림이나 외모조차도 영향을 미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3가지 요소 중에서 에토스, 즉 말하는 사람의 신뢰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봤습니다. 그리고 성공적인 설득을 위해서는 에토스, 파토스 그리고 로고스의 순서로 접근해야 한다고 합니다.
즉 자신의 신뢰성을 입증하고 난 후, 상대방의 입장과 감정을 헤아리면서, 논리를 가지고 설득하라는 거지요.
많은 경우에 우리는 자신의 가치를 입증하고 상대방을 설득하고자 할 때는 논리적인 부분, 즉 로고스가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고 생각해왔는데 오히려 그건 3가지 중에서 가장 덜 중요한 거라고 얘기하는 게 의외긴 하지만 매우 설득력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논리보다는 감성적이고 충동적인 존재라는 거를 알고 있지요. 옳은 주장을 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경우보다 좋아하는 사람의 주장을 옳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고요. 특히 정치나 종교 영역에서는 그 경향이 극대화되긴 합니다만 직장 생활에서도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논리적으로 완벽하게 업무를 진행하고 말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일지라도 그간 묵묵히 일해온 업무의 세월과 경험을 통해 신뢰를 주위 사람에게 쌓아왔다면 에토스가 극대화되겠지요.
좋은 의미로서만 에토스가 작동하지는 않는 듯합니다. 옷차림이나 외모, 사회적인 지위도 에토스에 큰 위치를 차지하겠지요. 가끔은, 아니 자주 에토스의 외적인 요소가 모든 것을 결정하게 되는 불합리한 상황을 마주합니다. 정말 능력 없는데 아부와 사내정치로만 승진한 임원이 가지는 권위는 짜증 납니다. 무식한데 교수라고 전문적으로 존중받는 사회는 끔찍하지요.
어린 왕자의 터키 천문학자가 기억나시나요? 소혹성 B612 발견을 보고했지만 터키식으로 입었을 때는 무시하다가 양복을 입고 발표하니 그 발견을 인정합니다.
어린 왕자의 터키 천문학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인 자신의 에토스를 구축하는 노력은 필수적일 겁니다. 말과 문서뿐 아니라 일과 실행으로 쌓은 신뢰성을 통한 에토스의 힘은 아주 강력하니까요. 오랜 시간 동안 일을 수행하고 성공과 실패를 통한 경험을 쌓고 몸으로 그걸 보여줘 왔던 리더. 그리고 화려한 말빨과 교과서의 논리만을 앞세우는 리더. 누구를 선택할까요.
이 긍정적인 에토스는 한순간에 형성되지 않고 저금통에 동전을 넣듯이 쌓여간다고 하니 단기간에 될 일은 아니겠습니다.
주장의 논리가 완벽하고 상대방의 입장을 다 헤아렸다고 생각하는데 뭔가 잘 안된다면 자신의 에토스를 돌아볼 필요가 있겠네요. 저도 주말 내내 제 자신의 에토스에 대해 고민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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