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내 업무영역을 총괄하는 마이크가 지난주 서울을 방문했다. 올해 벌써 2번째 방문. 다른 업무를 하다가 올해 새로 합류 (Join)한 내가 안심이 안 되는 걸까?
보통 글로벌 회사들은 1월 혹은 2월에 킥오프 Kick-off Meeting 라 부르는 연초 행사를 가진다. 하는 업무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영업과 관련된 직군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Kick-off에 참여하는 게 일반적이다. 조금 작은 회사는 본사가 있는 도시에 전 세계가 한꺼번에 모이고 덩치가 커다란 회사들은 지역별로 모인다.
Kick-off가 끝나면 보통 분기에 한 번 정도 지역 혹은 글로벌을 총괄하는 보스가 순회공연을 한다. 맡고 있는 지역을 돌면서 비즈니스 점검을 하고 필요한 지원은 없는지 살핀다.
일이 진행이 잘 안 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사정없이 쪼고 챙기고 강요하기도 한다. 외국계 글로벌 회사라고 해서 한국보다 모든 면에서 논리적이고 어떤 상황에서도 예를 갖출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영어로 1시간 동안 가루가 되도록 까이고 나면 정말 정신이 안드로메다 어딘가를 헤매고 있는 느낌.
지난번에 왔을 때 올 한 해 비즈니스 얘기는 거의 다 했기에 이번에는 그래도 크게 부담되지는 않는다. 마이크가 와서 일할 회의실 하나를 예약하고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의 일정 계획을 챙겼다. 오전에는 내부 회의, 오후에는 고객사 방문 계획을 잡아 놓았다.
음.. 저녁을 어떻게 하나? 지난번에는 하루만 왔어서 점심 한 끼로 때웠는데. 고심 끝에 이번에는 저녁을 대접하기로 했다.
메뉴는 당연히 갈빗집. 대부분의 외국인들은 한국 바비큐에 침을 흘린다.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중국, 일본, 아일랜드 손님 모두 갈비로 실패한 적이 없다. 그뿐 아니라 비빔밥이나 불고기 등 한국의 대표 메뉴들은 대부분 호응이 좋다. 사실 서울은 출장자들에게 매우 좋은 도시다.
비즈니스 리뷰 (Business Review)
마이크와 2시간 동안 비즈니스 리뷰 (Business Review)를 가졌다. 이번 미팅은 지난번 왔을 때 리뷰했던 올해 비즈니스 계획의 업데이트와 진척을 리뷰하는 성격이다. 많은 시간이 지나지 않았고 진척이 크게 없기에 준비에 많은 시간을 쏟지는 않았는데... 이것이 실책이었다.
왜 진척이 많이 되지 않았는지 묻는 질문에 이런저런 것들이 아직 준비가 안 되었다고 얘기했다. 순간 싸늘해진 분위기. 왜 준비가 안 되었지? 어떤 어떤 것들을 준비해야 하지? 그럼 그것을 위해서 누구의 도움을 받아야 하지? 왜 그걸 진작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지? @!$*&^#
...... 붕괴된 메탈로 인해 내 영어는 중학교 실력으로 돌아간다.
적절한 도움 (Support)를 요청하는 것은 글로벌 회사에서 매우 중요하다. 누구나 혼자서 일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내가 이 일을 할 수 없다는 걸 들키기 싫어서 껴안고 있는 건 바보 같은 짓이다.
네트워킹 (Networking)을 통해 적합한 업무 파트너를 찾고 (Right Contact) 상황에 맞는 도움을 (Requesting support) 청해야 한다.
지역 (Regional) 혹은 본사 (HQ)의 매니저가 오면 대부분 업무의 진척상황과 현안을 보고해야 한다. 보고라고 하면 왠지 꼿꼿하게 서서 파워포인트를 앞에 세우고 한치의 오차도 없이 깔끔하게 정리된 내용을 발표하는 모습이 연상된다. 드라마에서는 주인공들은 멋진 보고 하나로 2단계 승진이나 한 지역의 책임자로 발령받는 멋진 모습을 보여주지만...... 뭐,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다만 그런 보고를 할 기회는 거의 없을 뿐.
글로벌 회사마다 다를 순 있지만 대부분 Review 혹은 Sharing current status and discussion이라고 보고를 표현한다.
비즈니스 리뷰를 하기 위한 문서를 만드는 부분에서 한국의 많은 기업과 차이나는 부분이 있다. 보고하기 위한 문서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노력의 방향이다. 아직도 한국 기업들은 보고서를 만드는 데 정해진 템플릿에 신경을 많이 쓴다. 보고서 폰트의 모양과 크기가 중요하고 레이아웃은 균형 잡혀야 하고 심지어 자간 때문에 보고서를 직속 상사에게 퇴짜 맞기도 한다.
물론 외국 글로벌 회사들도 공식적인 문서는 미리 정해진 포맷과 형식을 신경 쓰지만 매일매일 일어나는 업무 (Daily Business라고 표현한다)에 대한 보고를 보기 좋게 꾸미기 위해 많은 시간을 쓰지 않는다. 내용, 콘텐츠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몇 년 전 아시아 태평양 지역 Business Review 발표 때 썼던 장표 중 한 장이다.
한국의 파워포인트의 도사들은 이 장표를 보면 한숨을 쉴 거다. 템플릿, 글꼴, 크기, 색깔 등 모두 엉망이라고.
그런데 발표가 끝나고 난 후 I liked your presentation! It was impressive! Could you share your decks- 이런 피드백들을 들었다. 왜일까? 다른 나라 애들은 엑셀 한 장이 발표의 전부였다.
그렇다고 엑셀로 준비한 나라를 뭐라 하는 사람은 없다. 실제 비즈니스가 중요할 뿐.
물론 외국인 매니저도 제대로 작성된 보고를 받으면 좋아하고 더 좋은 평가를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보기 좋은 보고서를 만들기 위해서 밤을 새우는 것을 경쟁력이라고 평가하진 않는다.
제대로 된 내용이 먼저다. 보고를 위한 보고가 아니라 현실의 비즈니스로 연결될 수 있는 내용들.
물론 제대로 된 콘텐츠에 한국인의 표현력이 가미되면 성의 있고 시각적인 준비로 차별화를 꾀할 수 있으니 시간이 허락하면 한국인의 힘을 보여주는 것도 좋다.
분기별 보고 (QBR, Quarterly Business Review)에 들어가야 할 내용
- 주변 환경 변화 Economical and Business Trend
- 분기 실적 Quartley Business outcome
- 잘한 점과 못한 점 Highlight & Lowlight
- 다음 분기 계획 Next Quarter Plan
- 필요한 지원 Support required
마이크와 양념 갈빗집에서 저녁을 마쳤다. 별로 비싸지는 않은 집이었는데 맛있다고 감탄사를 연발했다.
소맥을 몇 잔 만들어주었더니 맛있다며 겁도 없이 원샷을 남발한다. 잠시 후 어지럽다고 일찍 호텔로 돌아가겠다고 한다. 그래, 이걸 노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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