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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노는" 것을 참 좋아한다. 

스마트폰 게임뿐 아니라 플레이스테이션 게임을 즐겨한다. 마누라에게 등짝 맞아가며 레고와 각종 애니메이션 피규어를 사모은다. 슈퍼히어로물은 사족을 못쓴다. 마블 영화는 무슨 일이 있어도 놓치지 않고 챙겨본다. 책은 경영/경제에 관련된 책들도 보지만 추리/SF/서스펜서라면 밤을 새고 읽어제낀다. 

 

얼마 전에 동료들과 회의를 할 때다. 회의를 리드하다가 자료를 볼 필요가 있어 랩탑을 프로젝터에 연결했다. 마침 스마트폰이 연결되서 그 안에 있는 사진들이 다 보였다. 레고 사진, 슈퍼히어로 사진, 피규어 사진 등. 

"와, 저게 다 뭐에요? 아이들 사주시는 건가요?"

"아니... 다 내껀데?"

"본인을 위해서 사셨다구요? 헐...", "요즘 안 바쁘신가보다" 

......

항상 일 관련된 책만 읽고, 운동은 골프를 하고, 술 마시면서 업무 얘기를 해야 회사 업무에 진지한 사람으로 평가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 

 

어린 왕자 도입부에 나오는 주인공의 그림이다. 어른들은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의 그림을 대부분 모자라고 착각했다. 그리고 이런 쓸데 없는 그림 따위 그만 그리고 지리학이나 역사, 산수, 문법에 관심을 가지라고 충고했다.  책에서는 이렇게 얘기한다.

"어딘가 영리해 보이는 어른을 만나게 되면 나는 항상 지니고 다니던 내 그림 제 1호를 보여주며 슬쩍 떠보곤 했다. 그 사람이 뭔가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알아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 사람은 하나같이 "이거 모자잖아"라고 대답했다. 그럴 때는 보아 구렁이라든가 원시림, 별에 대한 이야기는 아예 꺼내지도 않았다. 그냥 그 사람의 수준에 맞게 브리지 게임이나 골프, 정치와 넥타이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러면 그 어른은 분별있는 사람을 알게 되었다며 아주 좋아했다."

 

Homo Ludens. Playing man. 유희의 인간.

네덜란드의 역사가이자 문화 이론가인 요한 후이징가가 1938년에 펴낸 책이다. 노는 것이 문화의 중요한 요소라고 얘기했다. 

왜 노는 것, 유희가 중요할까? 

요한 후이징가는 유희의 5가지 특징을 얘기했다. 그 중에서 특히 중요한 세 가지 -  무엇보다 유희는 자유로워야 하고, 일상 생활과 달라야 하고, 이익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어야 한다. 이 자유로움이 일하고 돈을 벌어야 하는 족쇄를 풀고 자유로운 생각을 하게 돕는다. 

 

뉴튼은 떨어지는 사과에서 만유인력의 개념을 깨달았다. 아르키메데스는 목욕탕에서 "유레카"하며 덜렁거리며 뛰쳐나왔고. 이를 극적인 스토리를 만들기 위해서 만들어낸 이야기일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하지만 거의 99% 사실일 것이라 믿는다.

아이디어는 생각지 못한 곳에서 온다. 골똘히 고민하다가 잠시 생각을 놓고 다른 일을 하거나 멍하니 있다가 아! 하고 해결책이나 아이디어를 생각한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다. 

 

재미로 하는 유희가 거꾸로 일에 도움을 주는 경우도 많다.

레고를 이용한 비즈니스 설명 장표

몇 년 전에 한 기업 임원들에게 기업 혁신에 대한 발표 자료를 만들었다. 그 중의 한 장이다.

대량 생산을 하는 히트상품의 중요성, 그리고 동시에 각 고객에게 맞춤식 제안을 하는 오퍼링도 필요하다는 얘기를 해야 하는 상황. 고민 끝에 기존의 복잡한 장표 대신에 내가 좋아하는 레고의 예를 들면서 쉽게 설명했다. (쉽게 보이는 한 장의 장표지만, 이 한 장이면 기업에서의 프로세스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는 두 가지 옵션 Make To Order와 Make To Stock 의 자세한 설명까지도 나아갈 수 있다.) 

레고를 잘 모르는 진지한 나이드신 분들이 많아서 기대한 만큼의 효과는 나지 않았다... (긁적)

키덜트족이나 오타쿠가 일상 용어가 되면서 예전보다는 "노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줄어들긴 했다. 그럼에도 아직도 일 이외의 다른 것을 하는 사람은 뭔가 성실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시각도 여전히 우세하다. 

나이가 들을 수록 일과 관련없는 소설을 읽거나 게임을 하고 있으면 왠지 모를 죄책감과 불안감도 든다. 이러고 있어도 되는 걸까?

 

페이스북이나 기타 다른 혁신적인 글로벌 회사들은 업무의 10%는 업무와 상관없는 다른 일을 하라고 한다던가. 책을 읽거나 게임을 하거나 다른 산업을 들여다보거나. 여가와 유희가 결국은 새로운 아이디어와 업무에 도움이 될 거라는 자신감의 발로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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