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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바야흐로 혁신의 시대.

그 혁신을 이루어낸 위대한 주인공들은 마치 마블에 나오는 히어로와 같이 자신을 찬란히 빛냅니다. 아마존과 페이스북, 테슬라 등은 그야말로 전 세계 기업들의 탑에 서있고 그 수장들인 제프 베조스, 마크 주커버그와 엘론 머스크 같은 CEO들은 성공을 이루어낸 회사 그 자체와 동일시되며 칭송받지요. 지금은 고인이 된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말할 것도 없고요. 찬란한 성공. 위대한 업적.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의 멋진 프레젠테이션. 그 소수의 사람들이 어떻게 성공했는지 비결과 과정을 말해주는 수많은 책들. (그 많은 작가들이 그 비결을 어떻게 알았는지 몹시 궁금하긴 하지만) 그 안에는 기막힌 아이디어를 얻었던, 자금이 떨어지기 일보 직전에 투자를 이끌어냈던 그리고 사람들의 협력을 어렵게 끌어내었던 빛나는 순간들로 가득합니다.

부러움과 경외에 가득 차 책을 읽다 눈을 돌리면 내가 일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웬 오징어가 앉아서 일하고 있네요. 외모의 오징어가 아니라 업무의 오징어. (여기서 외모를 굳이 논할 필요는 없다고 가정하고) 위대한 일은커녕 남의 뒤치다꺼리만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상사가 시킨 회의실 알아보고 예약하고 참석자들에게 메일 보내느라 반나절 보내는 건 일쑤고요.  멋진 마케팅 회의와 투자자들을 설득하는 발표를 해내는 내 모습을 상상했었는데  현실에선 엑셀 백업 자료 만드느라 밤을 지새우고 다크서클이 길게 늘어진 얼굴을 발견하고 합니다.

 

이 간극은 메꿔질 수 있을까요.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려볼까요.  제일 높은 곳에서 세상의 혁신을 이끄는 사람들과 제 자리에서 묵묵히 작은 일들을 수행하는 사람들 사이의 어딘가로.  글로벌 회사의 임원들 - 우리나라로 따지면 이사, 상무, 전무 정도의 - 정도는 어떻게 일하는지.

 

사실 임원/매니저에도 여러 종류와 레벨 차이가 있으니 쉽게 정의하기는 어렵습니다. 조직을 맡지 않고 기술을 전문으로 하는 전문 매니저들도 있고 영업적으로 숫자만 챙기는 임원도 있습니다. 상무급이지만 몇 백 명을 거느리기도 하고 부사장급이라도 소수의 팀으로 비즈니스를 개발하는 사람들도 있지요.

이런 다양한 관리자들이지만 많은 경우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완전히 Top Executive들, 즉 정말 초 단위로 시간을 쪼개서 누군가 관리해야 할 정도로 회사의 탑이 아닌 이상은 많은 일들을 스스로 처리합니다. 자신이 주재하는 회의의 안건과 내용은 스스로 작성합니다. 회의나 직원과의 1:1 미팅을 소집하는 Meeting request도 직접 보낼 때가 많지요. 자신이 발표할 프레젠테이션 자료는 직접 봅니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그러지는 않고 성향과 능력에 따라 다릅니다만, 대체적으로 그런 성향을 띤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럼 이렇게 작은 일들을 스스로 하는 이유는 뭘까요? 일반 직원들에 비해서 연봉도 더 받고 중요한 직책을 맡고 있다면 작은 일들은 다른 직원들에게 맡기고 더 위대한 일에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들은 작은 일들이 모여서 위대한 일을 이룬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순간순간의 차이가 쌓여서 결과를 다르게 만든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생각한 회의의 목적은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으니 회의 소집 메일을 자신이 보내는 것은 당연하며, 발표 때 말할 사람은 나이니 내가 발표 자료를 만듭니다. 내가 생각한 아이디어와 사업 구상에 대한 기본적인 계획을 다른 이에게 작성하라고 시키면 이상합니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너무나 당연한 얘기로 들리지요. (현실과는 다른 경우도 많겠지만 말입니다.) 작은 일들을 충실히 해오지 않았다면 할 수 없는 일들입니다.

 

매니저나 임원이 아닐 때는 더더욱 작은 일들이 많이 생기지요. 그 하나하나의 작은 일들을 무시하고 치부하고 하찮게 여기지 않고 다름을 만들어 갈 때 전체 일의 결과는 달라지고 나 자신에 대한 가치와 영향도 그 궤를 달리합니다.

똑같은 일을 해도 전체 일의 모습을 보면서 일의 역할과 가치를 생각하며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차피 중요하지 않은 일이니 나는 시키는 대로 숙제를 하겠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위에서는 다 보인다 매니저는 다 보고 평가한다는 상투적인 얘기는 않겠습니다. 나는 매니저의 평가 따위에 연연하지 않아!라는 분들도 계실 테니까요. 다만 똑같은 1년을 보냈을 때 숙제를 하면서 보낸 이와 계속 더 나은 방법을 고민하고 실행해온 이는 다른 모습일 겁니다. 똑같은 1년의 시간을 보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지요. 이 1년이 3년이 되고 10년이 되었을 때는 어떨까요.

작은 일을 우습게 보는 사람은 큰 일을 하지 못합니다.

 

물론 누구나 느끼기에 작은 일들만 계속 맡는다면 자존심이 상하고 업무에 대한 동기가 부여되지는 않을 겁니다. 누구나 작은 일에 보람을 느끼지는 못하기에 그 균형을 잡아주는 것이 조직의 리더가 해야 할 중요한 일일 테지요. 그리고 중간 매니저/임원들이 작은 일들의 가치를 알고 실천하도록, 그리고 일반 직원들도 느끼도록 독려하는 것이 최고 관리자, 즉 CxO 레벨이 해야 할 일들일 겁니다.

작은 일을 우습게 보는 사람은 큰 일을 하지 못합니다.

 

마크 주커버그는 직접 코딩을 하며 자비스를 만듭니다. 스티브 잡스는 제품의 디자인 마감까지 직접 챙겼던 걸로 유명하지요. 엘론 머스크는 직접 신제품 발표를 합니다. 제프 베조스는 회사의 작은 일까지 챙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작은 일을 우습게 보는 사람은 큰 일을 하지 못합니다.


얼마 전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한 사진이 화제가 되었지요. 문재인 대통령의 방미를 수행 중인 강경화 장관이 컵라면을 들고 나오다 걸린 것.

보는 사람마다 의미를 다르게 뒀고 다른 시각으로 바라봤습니다. 권위에 기대지 않은 소박함이다, 인간적인 매력이다부터 작은 일로 자신의 이미지를 메이킹하고 있다 등등.

거꾸로 저는 이 사진이 화제가 된다는 사실이 신기했습니다. 사진이 화제가 되었다는 것은 분명히 그 전 사람들은 안 그랬기에 화제가 되었다는 뜻. 자신이 밤에 출출해서 먹으려고 컵라면을 들고 나오는 행동은 극히,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행동임에도 불구하고.

권위주의적이고 조직의 상하구조에 기대는 한국의 문화가 작은 일들의 가치를 희석시켰습니다. 작은 일들은 지위가 낮거나 조직의 끄트머리에 있는 사람들을 위한 일이 아니라 커다란 일들의 일부이며 없어서는 안 될 일들임에도 불구하고.

 

마크 주커버그가 최근 하버드 졸업식 축사에서 유명한 일화를 예로 들었다지요.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NASA 우주센터를 방문했을 때 청소부를 발견하고 다가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묻자 청소부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대통령님, 저는 인류가 달에 가는 것을 돕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무언가를 돕고 있습니다. 그게 인류가 달에 가는 것만큼 가치 있는 건 아닐지라도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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