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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estion

기획팀 신입 사원입니다. 저희 팀장님은 브레인스토밍 회의를 할 때 한 명씩 돌아가면서 발표를 시키세요. 마음에 안 드는 얘기를 하면 한 말씀하시고요. 브레인스토밍 시간만 되면 긴장이 됩니다. 브레인스토밍을 이런 식으로 하면 안 되는 것 아닌가요?

Answer

저는 미국에서 미국 회사도 다녀봤고, 한국에서 미국 회사도 다녀봤고, 국내 회사 중에서도 가장 보수적인 회사도 다녀봤습니다. 자랑할 꺼리는 못 되지만 정말 다양한 회사에서 다양한 경험을 해봤네요.

저도 국내 회사에서 브레인스토밍 회의를 처음 경험했을 때에는 충격을 먹었습니다. '이런 건 브레인스토밍이라고 하면 안 되는데...' 하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져서 '그러려니' 합니다.

제가 경험한 몇 가지 유형을 소개드립니다. 워크숍에서 하는 브레인스토밍 엑서사이즈가 아니라 사무실에서 팀장을 모시고 하는 실제 브레인스토밍 유형 중에서만 말씀드릴게요.

 

워크숍에서는 아이디어를 포스트잇에 써서 칠판에 붙이고 엄청 큰 도화지에 돌아가면서 쓰고 하는 방식을 사용하지만 실제 사무실에서 이런 식으로 브레인스토밍 하는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국내 기업의 브레인스토밍(?) 유형

유형 1. "팀장인 내 아이디어가 짱이야. 빨랑 이해해."

 

아마 가장 일반적인 유형이 아닐까 합니다. 이 유형은 그나마 괜찮은 편에 속하는 것 같습니다.

팀장이 사전에 주제를 주고 회의를 소집해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브레인스토밍을 하자고 합니다. 그런데 팀원들이 얘기를 잘 안 합니다. 서로 눈치만 보고요. 먼저 하면 왠지 안 될 것 같은 분위기.

참다못한 팀장이 "그럼 내가 한 번 멍석을 깔아줄게" 하면서 아이디어를 냅니다. 그러자 그동안 말이 없던 팀원들이 새로운 아이디어는 내지 않고 팀장의 아이디어에 대해서 질문을 합니다.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하고요. 그러면 팀장이 자기가 낸 아이디어에 대해서 보충 설명을 하고 팀원들에게 이해시켜줍니다. 일부 팀원들은 팀장의 아이디어에 살을 덧붙입니다. 그래도 메인 아이디어는 여전히 팀장의 아이디어죠.

어느덧 회의 마감 시간은 임박해오고 팀장이 그동안 나온 아이디어를 정리해서 말해줍니다. 그러고는 막내 팀원에게 한 마디하죠. "자, 오늘 나온 내용을 정리해서 공유해."

한 시간 넘게 브레인스토밍을 했지만 최종 결론은 팀장의 최초 아이디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팀장은 자신의 아이디어를 팀원들에게 이해시킬 수 있어서 뿌듯해합니다. 뭔가 승리한 것 같은 기분. 그리고 팀원들에게 하나를 더 가르쳐줘서 보람도 있었다고 생각하고요. 그리고 또 하나. '난 역시 똑똑해.'

 

유형 2.  "돌아가면서 한 마디씩 해봐. 팀장인 내가 정리해줄게."

 

팀장이 사전에 주제를 주고 회의를 소집해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브레인스토밍을 하자고 합니다. 그런데 팀원들이 얘기를 잘 안 합니다. 서로 눈치만 보고요. 먼저 하면 왠지 안 될 것 같은 분위기. (여기까지는 유형 1과 완전 동일합니다.)

참다못한 팀장이 한 사람씩 말을 시킵니다. 그래도 팀장 딴에는 배려한답시고 가장 막내부터 시킵니다. '선배 주장과 다른 주장을 하기는 힘드니까 가장 막내를 먼저 시켜야지.'

이런 식으로 차례차례 말을 합니다. 어떤 선배는 후배가 한 말에 대해서 문제점을 지적하며 다른 의견을 내놓습니다. "그건 아직 네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라는 표현도 빠뜨리지 않죠. 하지만 후배는 선배의 말에 반박하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입니다. 이렇게 모든 팀원들이 한 마디씩 다 하면 회의는 거의 마무리 단계에 접어듭니다.

팀장은 팀원들의 얘기를 다 듣고 나서 "나름대로 고민 많이 했는데..."라며 잠시 칭찬을 하는 듯하다가 곧바로 무게를 잡고 얘기하죠. "그럼 이제 한 번 내 생각을 얘기해보지."

그럼 여기서 '게임 끝'입니다. 아무도 반박을 안 하죠. 아니, 못 하죠. 대신 다음과 같은 탄식이 터져 나오죠. "아, 맞아. 그게 있었네." "아, 우리가 그걸 놓쳤네." "팀장님 말씀을 듣고 보니 저희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타이밍을 놓쳐 미쳐 할 말을 못 한 어떤 팀원들은 열심히 팀장의 말씀을 받아 적습니다.

 

유형 3. "너 한번 말해봐.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최악의 유형입니다. 브레인스토밍의 목적이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팀장이 팀원들을 깨기 위한 것인지 매우 헷갈리는 경우에 속하죠.

팀장이 사전에 주제를 공지하지 않은 채 갑자기 회의를 소집합니다. 팀원들은 영문도 모른 채 필기구를 들고 회의실에 모이죠. 팀장은 그제야 주제를 공개하고 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얘기합니다. 그런데 이때 팀장의 말투나 어조는 '유형 1'과는 사뭇 다릅니다. '유형 1'에서는 "이런 의견도 있다"는 식으로 다소 제3자의 관점에서 얘기했다면 '유형 3'에서는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면서 자신의 주장을 매우 강하게 강조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주장을 펼치다 말고 갑자기 무작위로 팀원 한 명을 지적해서 이렇게 질문합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해?" 갑작스러운 질문에 놀란 팀원은 애써 당황한 기색을 감추고 "예,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라고 답하죠.

사실 팀장의 질문은 '열린 질문'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단답형' 질문입니다. 만약 어떤 눈치 없는 팀원이 답변을 길게 하면 팀장은 바로 태클에 들어가죠. "그렇게 복잡하게 얘기하지 말고 긴가 민가만 짧게 애기해."

 

팀장의 질문은 '열린 질문'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단답형' 질문이다

 

또 다른 눈치 더럽게 없는 팀원이 팀장의 의견에 반대되는 의견이라도 내어놓을라치면 팀장은 바로 다음 사람에게 질문이 들어갑니다. "너 한번 말해봐.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이런 질문받은 팀원은 '진퇴양난'이죠. 팀장 의견에 동조하자니 앞서 다른 의견을 낸 팀원의 등에 칼을 꽂는 것 같고, 그렇다고 다른 의견을 낸 팀원 의견에 동조하자니 분위기 험학해질 것 같고. 고심 끝에 다음과 위기를 모면하죠. "예, 앞서 오대리 의견도 일리는 있지만 그래도 팀장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어느덧 팀장님의 장황한 연설이 끝나고 모든 팀원들이 이에 동조하는 듯한 신호를 보냅니다. 그러면 팀장의 일갈로 회의는 마무리되죠. "자,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자. 각자 구체적인 실행계획 만들어와."

"너 한번 말해봐.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사진출처: 미드 'The Office']

왜 우리나라 회사에서는 브레인스토밍 회의가 이런 식으로밖에 진행 안 되는 걸까요? 저는 오랫동안 이 질문에 대해서 고민해오다가 최근 국내 교수님들로부터 강의를 듣는 과정에서 어렴풋이나마 힌트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국내 교수님 강의 방식

 

대기업 팀장이나 임원이 되면 국내 유명 강사님들의 소규모 강의를 들을 기회가 많습니다. 저 또한 지난 몇 년 동안 그런 혜택을 누려왔는데 교수님 강의를 여러 차례 들으면서 한 가지 깨달은 것은 모든 강의가 '일방향'이라는 것입니다.

 

다음은 교수님들의 일반적인 2시간짜리 강의 방식입니다.

1시간 45분 동안 일방향으로 자신이 준비해온 생각이나 지식을 전달한다.

강의 흐름을 유지하기 위해 강의 중간에는 가급적 질문을 받지 않는다.

마지막 15분은 Q&A 세션으로 질문받고 답하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아마 이게 대부분의 회사원들이 익숙한 강의 방식일 것입니다.

 

물론 강의 도중에 질문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질문할 경우 강의의 맥을 끊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용기 있게 손 들고 질문을 날릴 수 있는 분은 많지 않습니다. (실제로 모 그룹에서는 부장 한 분이 강의 도중 질문을 하자 듣고 계시던 사장님께서 "웬만하면 질문은 강의 끝나고 하지"라고 짜증을 내셨습니다.)

 

일부 대기업에서는 강의를 듣는 사람들 간 토론을 함께 진행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때에는 강의 시간이 조금 더 늘어나죠.

 

다음은 중간에 토론이 포함된 강의 방식입니다.
마지막 15분은 Q&A 세션으로 질문받고 답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점은 동일한다.
강의 도중 같은 조원들끼리 토론을 하라며 20분 정도 시간을 준다.
20분 후 각 조 별로 한 명씩 나와서 토론한 내용을 발표한다.
이에 대해 교수님은 간단한 코멘트와 함께 박수를 유도한다.

 

토론을 진행할 경우 교수님은 '토론 주제를 주고 토론 시간을 정해주는 것' 외에 특별히 하는 게 없습니다. 20여 년 전 대학시절을 떠올려봐도 당시 교수님들의 강의 방식이 오늘날 기업 간부들을 대상으로 하는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러한 강의 방식은 제가 미국 MBA 시절 경험했던 강의 방식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미국 MBA 교수님 강의 방식

미국 MBA 교수님의 강의 방식 중에서 국내 교수님 강의와 차이나는 부분은 크게 다음 3 가지입니다.

 

(1) 강의 도중 언제든지 질문을 받는다

MBA 교수님들은 강의 도중 언제든지 질문을 받고 이에 대해 성실히 답변합니다. 물론 질문이 너무 많아서 강의 시간에 쫓길 경우에는 양해를 구하지만, 원칙은 '질문은 애니타임'입니다. 학생들도 강의 도중 질문을 하는 학생에 대해서 용인하는 분위기입니다.

 

(2) 모더레이터로서 토론을 유도한다

이 부분이 가장 놀라웠는데요. 교수님들은 스스로의 역할을 '자신이 보유한 지식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라 '학생들이 갖고 있는 다양한 지식과 경험을 다른 학생들과 공유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사람'으로 정의하고 있었습니다.

 

교수님은 가급적 많은 학생들이 의견을 개진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했습니다. 이런 식이죠.

 

어떤 학생이 방향은 좋으나 논리가 조금 빈약한 주장을 할 경우: 살을 붙여서 보다 논리가 탄탄한 주장으로 만들어 준다. "매우 좋은 말씀입니다. 실제 모 회사에서는 이런 사례가 있었죠." 아니면 다른 학생들에게 이어서 의견을 낼 것을 유도한다. "정말 좋은 생각인데요. 누가 여기에 덧붙여서 의견을 내줄 분이 있나요?"

어떤 학생이 너무 강한 주장을 펼쳐 거부감을 주거나 오해를 살 수 있는 경우: 주장을 조금 바꿔서 다시 얘기해준다. "아마 이런 뜻으로 얘기하고자 한 것 같은데..."

어떤 학생이 토론을 너무 주도할 경우: 좋은 말로 경고한다. "지금까지 좋은 의견을 굉장히 많이 내줬는데 이제 다른 분의 의견을 한번 들어볼까요."

어떤 학생이 토론의 주제에서 빗겨난 발언을 하거나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펼칠 경우: 매주 정중하게 부정한다. "처음 듣는 매우 참신한 의견인데요. 그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것 같네요. 참조하도록 할게요."

 

가장 중요한 것은 수업 시간에 채택된 의견들에 대해서, 원래 교수님이 의도했던 것이든 아니든 관계없이 모두 학생들이 제안한 것처럼 포장해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학생들은 수업 시간에 나왔던 좋은 지식들이 대부분 자신들이 낸 것처럼 '착각'하고 이에 대해 오너십을 더 많이 갖게 되죠. 실제로는 교수님이 유도한 건데요. 또한 학생들은 수업시간에 참여하는 것을 즐기고 본인의 아이디어를 더 적극적으로 개진하게 됩니다. 때로는 본인의 주장을 강화하기 위해서. 때로는 동료의 다소 빈약한 주장을 탄탄하게 만들어주기 위해서.

 

수업 시간에 채택된 의견들에 대해서 모두 학생들이 제안한 것처럼 포장해주면 학생들은 오너십을 더 많이 갖는다

 

학생 수가 많든 적든 크게 상관없습니다. 정원이 200명 넘는 강의에서도 이런 식의 토론을 멋지게 진행하시는 교수님들도 많았습니다.

 

(3) 권위적이지 않거나, 권위적이더라도 상대방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해준다

대부분의 교수님은 권위를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나는 이론과 연구의 전문가이지만 여러분들은 직접 현장에서 경험을 쌓으신 분들이기 때문에 이를 존중한다'는 태도를 갖고 계셨습니다.

 

물론 게 중에는 권위적이거나 컨셉상 권위를 내세우는 분들도 계셨지만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는 분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만약 그런 분이 계셨다면 강의 평가에서 최하점을 받아 교수직 유지가 힘들었겠죠.

 (말씀드리다 보니 미국 MBA 예찬론으로 흘렀는데요. 그럴 의도는 전혀 없었습니다.)

 

국내 교수님과 미국 MBA 교수님의 강의 방식의 차이로부터 국내 기업에서의 브레인스토밍이 왜 제대로 진행되고 있지 않은지에 대해서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국내 기업에서 브레인스토밍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이유

이유 1. 제대로 된 브레인스토밍에 대한 경험 부족

 

가장 큰 이유는 제대로 된 브레인스토밍 방식을 경험해 본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대학교 시절 내내 '일방향' 수업 방식에만 익숙하다 보니 이처럼 토론을 적극적으로 유도하는 회의 방식에는 진행하는 분도, 참여하는 분도 어색하겠죠. 아니, 정확히 말씀드리면 '해본 적이 없어서 할 줄 모른다'가 맞는 표현 같습니다. 반면 미국의 경우 학창 시절부터 이런 식의 토론에 익숙하다 보니 직업 현장에서도 브레인스토밍을 잘 활용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이고요.

사실 국내에서도 브레인스토밍을 제대로 하는 사례가 없는 건 아닙니다. 리서치회사에서 진행하는 포커스그룹인터뷰(FGI)의 경우 모더레이터가 앞서 말씀드린 미국 MBA 교수님처럼 진행을 합니다. 게 중에는 진행을 정말 잘하시는 분도 계시더라고요.

그렇다면 기업에서도 FGI를 진행하는 모더레이터처럼 브레인스토밍을 진행하면 되지 않을까요? 제 생각에는 그래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 다음 이유 때문에요.

 

이유 2. 권위적인 조직문화

팀 내 권위적인 조직문화가 존재하는 한 모더레이터가 아무리 진행을 잘 해도 제대로 된 브레인스토밍을 하기는 어렵습니다.

브레인스토밍 시작 전에 보통 이런 원칙을 얘기하죠. "누구든지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할 수 있다. 아무리 바보 같은 아이디어라도 비판하지 않는다. 등. 등. 등." 

중요한 점은 이러한 원칙이 브레인스토밍 할 때에만 잠시 적용되어서는 안 되고 팀 내 항상 적용되어야 한다는 거죠. 안 그러면 '군대 야자 타임' 됩니다.

 

군대 야자 타임: 군대에서 고참이 '야자타임'하자고 해서 정말 '야자' 심하게 까면 끝나고 얼차려 받죠.
평소 권위적인 조직에서 브레인스토밍 할 때에만 권위를 내려놓으면 '군대 야자 타임' 된다

 

군대 야자 타임을 경험해본, 또는 남자친구나 드라마를 통해 이를 접해본 팀원들이라면 팀장이 아무리 브레인스토밍 원칙을 얘기해주면서 자유로운 분위기를 조성해줘도 팀장 눈치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브레인스토밍이 제대로 되려면 팀장과 팀원 모두 브레인스토밍 할 때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다음과 같은 권위주의적인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팀장은 팀원보다 더 많이 알아야 한다.
팀원이 팀장 생각에 반하는 아이디어를 내면 '불경'이다.
팀원이 아이디어 싸움에서 팀장과 다이다이 붙어서 이기면 '역린'이다.

 

이 외에도 권위주의적인 생각은 많겠죠. 이를 두 문장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원래 한 문장으로 하려고 했으나 잘 안돼서...)

 

팀장은 팀장으로서의 권위를 내려놓아야 한다. 
팀원은 팀장의 '권위'가 아닌 '역할'을 인정해야 한다.

 

팀원이 팀장의 '역할'을 인정하게 되면 팀장으로서의 '권위'는 그닥 필요 없는, 오히려 성가신 존재가 됩니다. 제대로 된 글로벌 회사에서 팀장이 팀원보다 나이가 어려도, 팀장이 팀원에게 반말 찍찍하지 않아도, 팀장이 툭하면 언성을 높이고 서류를 집어던지지 않아도 팀이 잘 돌아가는 이유는 팀장의 '역할'을 인정해주기 때문입니다. 팀장의 '권위'를 지켜주기 때문이 아니고요.

 

이유 3. 팀장과 팀원의 준비 부족

 

팀장이 훌륭한 모더레이터 역할을 하고, 팀장으로서의 권위를 내려놓았다고 하더라도 팀장과 팀원들이 브레인스토밍을 위한 사전 준비를 충분히 하지 않으면 그냥 시간 떼우기식 미팅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MBA 수업시간에 브레인스토밍이 잘 되는 이유 중에는 '교수님이 분위기를 잘 조성한다' 말고도 더 있습니다. 

 

1. 학생들이 지식이 풍부하다

MBA 학생들의 연령대는 보통 25세~40세로 다양하고, 게 중에는 기업 임원을 하다가 온 분도 있습니다. 이처럼 학생 중에는 교수님보다 경험과 지식이 풍부한 분들도 있기 때문에 교수님과의 토론에서 쉽게 밀리지 않습니다. 이러한 분들과 브레인스토밍을 하게 되면 정말 다양하고 풍부한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올 수 있죠.

한 번은 경영전략 수업시간에 한 교수님께서 "맥킨지에서는 이렇게 한다"라고 하자 학생 한 분이 손을 들더니 "내가 맥킨지에서 매니저 하다가 왔는데, 맥킨지에서는 더 이상 그런 방식으로 일 안 한다"라고 해서 교수님을 무안하게 한 적도 있었습니다.

 

2. 교수님께서 준비를 많이 해온다

교수님께서도 정말 준비를 많이 해오십니다. 아마 강의를 여러 번 리허설 했을 것으로 의심될 만큼 강의 진행도 매끄럽고 학생들의 까다로운 질문에도 답변을 잘 해주시더라고요.

 

하지만 국내 회사에서는 브레인스토밍을 진행하시는 팀장님도, 그리고 마지못해 참여하는 팀원들도 이만큼 준비해오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보통 팀장님들은 상사의 가이드라인을 그대로 전달하거나 본인의 큰 고민 없는 아이디어를 매우 강하게 얘기하죠. 팀원들은 브레인스토밍의 취지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들어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들로부터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브레인스토밍을 제대로 하려면

 

국내 기업에서 브레인스토밍을 제대로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팀원들이 적극 얘기할 수 있도록 팀장이 분위기를 유도해야 한다

우리 팀장님들도 MBA 교수님들처럼 훌륭한 모더레이터 역할을 해주셔야 합니다. 편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은 물론 때로는 팀원들이 주제에 대해서 한번 고민해볼 수 있게끔 본인의 아이디어로 멍석을 깔아주는 것도 필요합니다. 이때에는 본인의 아이디어가 뒤집힐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겠죠. 아니, 본인의 아이디어가 안 뒤집히고 항상 채택되면 그게 더 큰일입니다. 결국 팀장으로서의 '가오'는 포기하시라는 얘깁니다.

 

2. 팀원들이 준비를 많이 해와야 한다

브레인스토밍을 사전 고민 없이 좋은 아이디어를 즉흥적으로 쏟아내는 회의로 오해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마치 프리스타일 랩 하듯이요. 하지만 '아트 오브 랩'(The Art of Rap, 2012)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보니까 힙합 아티스트들도 프리스타일 랩을 준비하기 위해서 시간 날 때마다 영어사전을 보면서 단어를 외우고 문구를 만들어내는 훈련을 하더군요. 래퍼들이 사전을 보면서 라임에 맞춰 단어를 달달달 외우는 모습이 상상이 가세요?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는 힙합계의 거두인 Ice T(좌)와 Dr. Dre(우) [사진 출처: 'The Art of Rap']

팀원들도 이처럼 많은 준비를 해야 합니다. 카니예 웨스트(Kanye West)나 50센트(50 Cent)도 미리 준비하는데 팀원분들이야 두 말할 나위 없겠죠.  

  

3. 팀장은 가장 많은 준비를 해와야 한다

 

팀원들이 준비해오니까 팀장은 빈 손, 아니 빈 머리로 오면 될까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팀장은 팀원들이 쏟아내는 다양한 의견을 정리할 수 있을 만큼 가장 많은 준비를 해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팀장은 브레인스토밍 시작 전에 이미 답에 대한 가설을 어느 정도 수립해와야 합니다. 

제대로 된 팀장이라면 팀원들 아이디어를 그대로 받으려고만 하지 말고 자신의 가설을 갖고 있어야죠. 그래야지 자신의 아이디어에 팀원의 아이디어를 더해서 더 훌륭한 결론을 도출할 수 있습니다. 안 그러면 그냥 서기에 불과하겠죠. 나이 많은 서기. 월급 제일 많이 받는 서기.

팀장은 브레인스토밍 시작 전에 이미 답에 대한 가설을 갖고 있어야 함

 

0. 권위적인 조직문화 타파

 

하지만 가장 큰 전제 조건은 권위적인 조직문화의 타파입니다. 브레인스토밍 할 때뿐만이 아니라 평상시에도요. 안 그러면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군대 야자 타임'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갑자기 답답해지셨나요? 어쩌면 국내 기업에서 제대로 된 브레인스토밍은 요원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바람직한 브레인스토밍에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도록 우리 모두 바람직한 팀 문화 조성에 힘써야겠습니다.

 

by 찰리브라운 (charliebrownkorea@gmail.com)

Key Takeaways

 

1. 국내 기업에서 브레인스토밍이 잘 되지 않는 이유는 제대로 된 브레인스토밍에 대한 경험이 부족하고, 팀장과 팀원의 준비가 부족하고, 조직문화가 권위적이기 때문이다.

2. 따라서 브레인스토밍을 제대로 하려면 팀장은 팀원들이 적극 얘기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유도하는 한편 팀장과 팀원들 모두 사전 준비를 많이 해와야 한다.

3. 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권위적인 조직문화를 타파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브레인스토밍 시간은 '군대 야자 타임' 된다.

           

추신

 

얼마 전 사내 강사로부터' 브레인스토밍을 잘 하기 위한 방법'에 대한 강의를 들었습니다. 이 분이 연령대도 좀 있고 직급도 높은 분이다 보니 경청할 수밖에 없는, 아니 경청하는 척할 수밖에 없는 강의였습니다.
강의 실력이 워낙 출중한 분이다 보니 딱딱한 내용도 아주 재미있게 잘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래서인지 강의 초반에는 많은 분들이 추임새와 코멘트를 해주셨죠. 
그런데 강의 중간에 어느 분이 강의 내용에 반하는 반론을 펼치자 강사님께서 조금 방어적인 자세를 보이셨습니다. '당신의 주장은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른다'는 식의 뉘앙스를 풍기는 발언도 하셨고요. 그러자 그다음부터 청중들의 강의 참여도가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성공적인 브레인스토밍을 위해서는 회의 호스트가 권위를 내려놓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는 정도가 아니라 '내 생각보다 더 좋은 아이디어가 나올 가능성이 매우 매우 높다'라는 겸손한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해줘야 다른 분들도 회의에 활발히 참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탈권위적인 자세는 브레인스토밍 회의 때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견지하는 게 중요합니다. 평소에는 권위적인 자세를 보이다가 브레인스토밍을 할 때에만 "자, 이제부터 계급장 떼고 자유롭게 얘기해 봐!"라고 '지시'하면 그 회의는 '군대 야자 타임'이 되겠지요.
자유로운 토론 문화는 리더의 '탈 권위'에서 비롯된다고 감히 주장합니다. 

물론 제 주장이 틀릴 가능성은 매우 매우 높습니다.

 

부족한 글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공감하시면 다른 분들도 공감하실 수 있도록 공유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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