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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문화의 기본은 상호 존중이다.

외국계 회사의 장점 중 하나를 수평적인 조직문화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두 가지 관점에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첫 번째 외국계 회사는 과연 수평적 조직문화를 가지고 있는가?
두 번째는 수평적 조직문화가 장점인가?

이 두 가지 질문에 답하기 전에 수직적 문화를 가지고 있다고 알려진 국내회사의 경우는 어떠할까? 나는 국내의 중소기업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그 회사는 당시매출 600억 정도는 나름 탄탄한 중소기업이었고, 젊은 사장님은 2세 경영인임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노력하시는 스타일이셨다. 나는 몇 번의 면접을 거쳐 딱 1명만 뽑는 병역특례 연구직에 합격을 했다. 나름 자부심을 가지고 첫 출근을 했을 때, 경직된 분위기에 깜짝 놀랐었다. 사람들의 얼굴에는 두려움이 서려 있었고, 말 그대로 책상에 코를 박은 채 주변과는 스스로를 단절시키고 있었다. 공식적인 회사의 출근 시간은 8시 반이었고, 퇴근 시간은 6시반이었으나, 회사 사정이 어려우니 전 직원이 자발적으로 8시에 출근을 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리고 나는 신입사원이기 때문에 7시 반까지 출근을 해야 한다고 했다. 당시 내 사수는 당시 부서장이었던 상무님의 심복과도 같았다. 사수는 상무님에게 책을 잡히지 않으려면 7시 까지는 나오는 게 좋을 거라고 조언을 해 주었다. 퇴근 시간은 항상 9시가 넘었다. 사무실에 있는 동안 딱히 하는 일은 없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다들 그래 보였다. 유일하게 내가 한달 동안 한 일은 그냥 논문을 복사하는 정도였다. 내가 생각하기엔 딱히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파쇄하고 다시 복사하고를 반복하고 있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집에 일찍 갈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 부서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옆에 부서와 위에 부서 모두 상사들의눈치를 보느라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고, 유일하게 허용된 자유 시간은 몰래 건물 뒤 주차장에서 담배를 피는 시간뿐이었다. 회사 옥상에 공식적인 흡연실이 있었지만, 상사들과 마주칠까 아무도 옥상에 올라가고자 하지 않았다. 업무는 당연히 비효율적이었다. 이 많은 사람들이 다 왜 필요한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절반 정도는 앉아서 눈치만 보고 있을 뿐이었고, 단지 매출이 기대치보다 낮기 때문에 회사가 위기상황이라고 경영진에서 선포를 했고, 그저 눈치만 보며 숨을 죽이고 있었을 뿐이다. 솔직히 신생회사도 아니고 설립된 지 3~40년 된 회사가 매년 2~30%씩성장하는 걸 목표로 삼고 있다는 것 자체가 잘 이해가 안 갔다. 매년 이렇게 성장을 했다면 그 어떤 글로벌 회사가 부럽지 않았을 텐데, 목표 조차도 눈치를 보느라 무리하게 설정을 하고, 이 무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또 무리하게 운영을 하고, 결국 직원들은 무리하게 근무를 해야 하는데, 현실적인 목표가 아니다 보니 모두가 길을 잃고 헤매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현실에 대한 직시와 불합리함에 대한 개선을 요구하지 못하도록 강압적으로 수직적인 문화를 강요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아무도 불만이 없다고 생각하고 스스로는 경영을 잘 하고 있고, 좋은 리더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 여기서 수직적인 사내문화의 단점이 극명하게 나타난다. 올바른 방향이 아닌 길로 가고 있을 때, 수직구조의 정점에 있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그 방향을 수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능력이 뛰어난 인재라 할지라도 수직적 구조의 아래쪽에 위치하고 있다면 중간중간 막혀 있는 수직적 장벽에 막혀 그 능력을 적절히 드러내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2세 경영인이셨던 사장님께서 한번은 직원들만 힘든 게 아니라 본인도 힘들다며 이런 이야기를 하셨었다.

 

“ 당신들은 회사가 맘에 안 들면 언제든 떠날 수 있지만, 나는 떠날 수 조차 없이 매여 있는 몸이라 더 힘들다.”     

 처음에는 이 말을 듣고 사장님께서도 힘드신 부분도 있겠구나 라고도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말이 얼마나 자기중심적인 말인지도 알 수 있게 되었다. 언제든 떠날 곳이 있으면 진작에 떠났겠지 남아서 이렇게 고생하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며, 회사의 경영이 어려운 이유는 직원들이 못해서라기 보다는 사장님본인이 잘못된 경영을 해서인 것이고, 그에 대한 책임 역시 본인이 져야 하는 것인데, 마치 누군가에게 그 책임을  전가하려는 태도였을 뿐이다. 회사에서는 직원들에게 회사에 대한 주인의식을 가지라고 주문하고 강요한다. 회사의 주인은 내가 아니고 당신인데, 어떻게 내가 주인의식을 가질 수가 있겠는가? 주인과 같은 월급과 주인과 같은 권한, 혜택을 동일하게 주면서 그러한 변화를 요청해야 하는 법이다. 수직적인 조직 문화가 빛을 발하는 때는 정말 재능 있는 사람이 그 정점에 서 있을 때이다. 뛰어난 통찰력과 혜안 그리고 더불어 반드시 필요한 도덕성을 갖추고 있는 리더가 수직의 정점에서 조직을 이끌어 나간다면 그 조직은 일사 분란하게 목표를 향해 전진해 나갈 것이다. 반대로 우매한 다수를 이끌어나가기 위해서 필요할 수 있는데, 사이비종교가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겠다. 수직적 문화가 빛을 발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경우는 군대나 공무원과 같이 명예와 공익을 위해 희생과 양보가 필요로 되는 조직에서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조직에서 수직적 문화가 회사의 발전에 성공적으로 기여하는 데는 한계가 있음은 분명하다. 다만, 어떤 위기상황을 돌파해 나가야 하는 상황에서 조직원들에게 일정기간 일정부분의 양보와 희생을 요구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이런 수직적 문화가 더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전쟁 이후 계속된 군사정권의 지원 속에서 기업들의 성장이 이루어져 왔기에 이러한 수직적 문화가 깊이 뿌리 박혀 있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할 수도 있으나, 요 근래에는 이러한 수직적 문화를 탈피하여보다 다양한 가능성에 대해 귀를 기울이는 식으로 긍정적인 변화를 진행하고 있는 기업들이 많이 있다.

 

다시 첫 번째 질문으로 돌아가 그렇다면 외국계 회사는 과연 수평적일까?

 

국내 회사에서 근무한지 몇 년의 시간이 흐르자, 회사도 많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가 되었고, 나 역시 이러한 문화에 익숙해져 큰 어려움 없이 회사를 다니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병역특례 소집해제가 되었고, 나는 운이 좋게도 당시에 좋은 사내 문화를 가지고 있다고 알려진 외국계회사로 이직을 할 수가 있었다. 당시에 외국계 회사만 한 10여 곳의 면접을 보았었는데, 그 중 가장 나에게 많은 관심을 보여준 회사였고, 무엇보다 두 차례의 면접을 보는 동안 너무나 분위기가 좋았어서, 더 높은 연봉과 직책을 제시하는 곳을 뿌리치고 이 회사를 선택했었다. 1차면접을 볼 때는 실무진과 부서장의 면접이었는데, 서로가 격의 없이 지내는 듯한 분위기, 부서장이 오히려 팀장의 눈치를 보고 팀장이 부서장에게 잔소리를 하는 분위기가 너무 낯설면서도 부럽게 느껴졌었다. 면접 내내 화기애애한 분위기여서 나 역시 내가 생각하는 부분들에 대해 잘 표현 할 수 있었다. 그런 덕분에 1차 면접을 합격하고 2차 면접인 임원 면접을 볼 수 있었다. 2차 면접에 나오신 전무님께서도 너무나 유쾌한분이셨고, 어찌보면 실무를 하는 나와 부딪힐 일이 없을 텐데도 친절하고 존중하는 자세로 면접을 봐 주셨다. 그리고 실제 입사를 하고 나서는 이러한 면접의 분위기가 업무에도 그대로 묻어 나왔다. 실제 업무량으로 따지면 국내 회사에서 일하는 것에 한 10배는 일을 하는 듯 했지만, 매일 밤 10시가 넘어 퇴근을 하고, 주말에도 나와서 일을 해야 함에도 힘들다는 생각이 하나도 들지 않았다. 오히려 일요일 저녁에 잠자리에 누울 때면 빨리 회사에 출근해서 사람들과 같이 얼굴 보며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예전에 국내 회사에 다닐 때는 일요일 저녁에 하는 공개 개그 프로그램이 방송이 되면, 회사에 다니는 친구들과 서로 연락을 하면서 정말 죽기보다 회사에 가시 싫다고 했던 일들과는 정말 천지개벽 할 정도로 달라진 것이다. 일은 힘들었다. 업무량 자체도 많았지만 계속해서 새로운 일들과 책임이 빠른 속도로 생겨났다. 그럼에도 그 누구도 억지로 일을 하라고 시키지 않았다. 내가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어려운 부분은 상사에게 의견을 전달하고 조언을 구하고, 상사는 조언을 줄 뿐 일을 진행하는 것은 내가 하는 일이었다. 내가 도움을 청하거나 문제가 커지지 않는 이상 상사의 간섭은 없었다. 오히려 나를 조금 봐 주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러한 문화는 우리 부서만의 문화는 아니었다. 사장님께서는 오후에 졸릴 시간쯤 되면, 통이 넓은 청바지에 커피를 한 잔 가득 담은 머그컵을 들고, 사무실 투어를 하셨다. 미소띤 얼굴로 불편하거나 힘든 사항은 없는지 여쭈어 보고 다니셨고, 직원들은 모두 사장님께 웃으며 인사를하거나 농담을 건넬 수 있었다. 내가 이렇게 실무진에서 업무를 볼 때는 어찌보면 이상적일 수도 있을정도의 사내 문화를 경험을 했었다. 이로써 첫 번째 질문의 답은 정해졌다. 외국계 회사의 문화는 수평적이고, 분명히 업무에도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내가 연차가 쌓이고, 회사의 사장님이 바뀌고, 새로운 부서장들이 외부에서 영입되어 오면서 이 문화는 조금씩 바뀌어 갔다. 수직적 문화를 선호하는 부서장들이 영입되기도 했고, 사장님의 성향 역시 수직적인 부분을 때로는 드러내기도 하셨다. 그리고 내가 조금씩 관리자의 입장이 되어가면서 보이지 않던 수직적 문화들도 보이기 시작했다. 한번은 사장님께 마케팅계획을 발표하는 자리였다. 사장님은 뉴질랜드인이셨지만, 호주와 영국에서 오래 근무를 하신 50대 초반의 여성분이셨다. 발표가 진행되던 와중에 사장님께서는 이런저런 업무 사항을 지시하셨고, 나는 당시 다른 부서와의 협의와 확인이 필요했던 내용인지라 다른 부서와 협의 후에 진행하겠다고 답변을 드렸다. 그랬더니 사장님께서 갑자기 정색을 하시면서 “누가 니 보스냐?(Who isyour boss?”) 라고 물으셨고, 나는 당신(you)이라고 대답을 했더니 그럼, 그냥 시키는대로 하면 된다고 하셨다. 나는 깜짝 놀랐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다른 회의에서도 그런 식으로 종종 말씀을 하신다는 것이었다. 나는 외국계회사에서 그것도 외국인 사장님께서 이런 생각을 가지고 계시다는 점에서 놀라웠지만, 업무 외의 부분에서는 정말 다정하고 친절하게 대해 주셨다.

 

그렇다고 외국계 회사에 있는 모든 구성원이 이러한 수평적 문화에 익숙한 것은 아니었다. 다른 회사에서 이직해 온 옆에 팀의 팀장은 나보다 나이가 어린 여성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분은 평소에도 굉장히 수직적인 문화를 강조하는 모습들을 보여주곤 했었다. 자신의 상사에게는 필요 이상으로 몸을 낮추고, 자기보다 직급이 낮은 직원들에게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한번은그 팀장의 팀에서 인턴직원을 새로 뽑은 적이 있었다. 이 직원을 통해 요즘 젊은 친구들의 취업난의 심각함을 많이 전해 듣기도 했었다. 하루는 회사에서 영업직 직원을 신규 채용한다는 공지가 있었고, 이 인턴직원은 이 채용 건에 지원을 하고자 했었다. 그래서 이 팀장에게지원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더니, 그 팀장이 우리 회사는 학벌을 많이 보기 때문에 그 인턴의 학벌로는 어차피 합격이 안될 테니 지원하지 말라고 만류했다고 한다. 나는 당시 우리회사에서 학벌을 본다는 말은처음 들었고, 회사의 그 누구도 학벌로 인해 차별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더구나 그 인턴은 서울에 있는 그럴싸한 4년제 대학을 졸업했고, 나중에 알고보니 그 팀장이 졸업한 대학과 큰 차이가 나는지도 잘 모르겠다고 생각했었다. 한번은 영업부 지점장들과 회의를 한 적이 있었다. 4명의 지점장 모두 나보다 나이도 경력도 많았다. 그래서 업무를 할 때는 서로의 직급을 존중해 주었으나, 사적으로는 형동생 할 정도의 사이로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그 팀장이 영업부 지점장들과 회의를 하면서 의견 차이를 보이더니, 결국에는 지점장들한테 자기 직급이 높으니 자기 말을 따르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당연히 지점장들은 반발을 했고, 자리에 계시던 상무님의 중재로 더 큰 분란은 일어나지 않았었지만, 국내 회사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수직적인 사고 방식을 가진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다.

이렇듯 외국계 회사에서는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서로를 존중하고 의견을 경청하는 문화가 기본적으로 깔려 있는 듯 하다. 수평적문화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상대방의 대한 존중이 기본이 되는 것으로, 내가 수년 간 모시던 전무님께서는 한번도 직원들에게 반말을 하신 적이 없으셨고, 내가 멘토로 삼고 있는 다른 전무님께서도 마찬가지셨다. 그리고 어떤 의견이더라도 언제나 자유롭게 말씀을 드릴 수가 있었다. 사장님께서도항상 방 문이 열려 있으니 자유롭게 들어와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언제는 하라는 식이셨다.

 

하지만 또 모든외국계회사가 이런 수평적 조직문화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압박면접의 최고봉이라 불리는 회사는 미국계회사였고, 업계의 사관학교라 불릴 정도로 수직적 문화를 강하게 품고 있으며, 국내사에서 찾기 힘든 대학 학벌에 따른 진골, 성골을 분류하기도했다. 또 미국계 회사와 유럽계회사의 차이를 들기도 한다. 미국계나유럽계 모두 수평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으나, 미국계 회사의 경우는 조금 더 성과 위주의 운영이 이루어지기때문에 개인적이고, 성과지향적인 경향이 있고, 유럽계 회사는 조금 더 사람에 초점이 맞추어 져 있어 가족적인 분위기가 앞선다는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같은 스위스에 본사를 둔 두 회사도 성향이 많이 다르고, 같은 영국에 본사를 둔 두 회사도 성향이 많이 다른 걸 봐서는꼭 그런 것도 아닌 듯 하다. 그리고, 근래에는 본사의 임원진들이 수시로 교체되고, 교환되고 있다 보니 특정한 회사의 문화를 갖는다기 보다는 기본적으로 서로에 대한 존중은 유지가 되는 동시에, 점점 개인화 되어 가는 식으로 변화되어 가고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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