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회사를 선호하는 이유 중 하나는 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워라밸, Work and Life Balance)이 상대적으로 잘 맞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대부분은 유연한 출퇴근 시간제를 운용하고, 직장 상사의 눈치를 그나마 덜 볼 수 있는 부분은 분명히 있다. 하지만, 유연한 출퇴근 시간제를 운용하면서도 실제 잘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또 악용하는 사례도 분명 존재한다. 예를 들어, 일찍 퇴근 하고자 8시 출근으로 변경했지만, 다른 부서와 협업이 많아진다던가 하면 예정된 5시 퇴근은 무리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 부서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서 외국계 회사임에도 상사들의 눈치를 보는 경우도 존재한다. 반대로 어떤 팀장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어느날 팀원들이 8시 출근으로 모두 변경을 한 후 5시만 되면 정시 퇴근을 하곤 했다고 한다. 한번은 아침 일찍 미팅이 있어 그 팀장도 8시에 출근을 했는데, 8시에 출근을 한 팀원이 아무도 없어서 당황한 적이 있었다고도 한다. 상호간에 약속된 시간에 출퇴근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본인이 맡은 업무를 얼마나 책임감있게 수행하느냐이다. 비록 5시에 퇴근을 해야하지만, 급한 일이 있거나 할 경우에는 퇴근이 조금 늦어질 수도 있다. 반대로 8시에 출근을 해야 하지만, 전날 조금 늦게 퇴근을 했던가 아침에 급한 일이 있을 경우에는 조금 늦게 출근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한번의 늦은 출근과 퇴근이 문제가 아니라, 상황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선행되고, 탄력적으로 운용할 수 있다면 보다 건강한 워라밸을 지켜나가는 길이 될 것이다. 우리는 대부분 출퇴근 시간과 업무만이 워라밸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지만 조금 다른 경우들도 많이 존재한다.
함께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직장 동료들은 알게 모르게 유대감을 갖게 된다. 대규모 공채 등을 통해 함께 입사하게 된 경우는 기수를 따지기도 하지만, 외국계 회사에서 공채란 극히 드믄 일이 되어 버려, 실제 동기라는 개념은 많이 사라진 지 오래다. 그 대신 비슷한 시기에 이직을 해 왔거나 비슷한 연령대라면 공통의 관심사를 쉽게 찾아내고 또 친분을 쌓기 수월해 지기도 한다. 그러면서 함께 업무 역량을 쌓아가게 되고, 같은 부서 혹은 다른 부서에서 서로의 업무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긍정적인 서로간의 영향이 어느 순간 균형이 잘 맞지 않게 되는 순간부터 양측의 워라밸이 무너지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러한 사례가 종종 인터넷에는 직장 동료의 이기심을 지적하는 글들로 올라오곤 한다.
A씨와 B씨는 회사에서 만나 절친이 된 경우다. 둘 다 사람들 만나는 것도 좋아하고 성격도 잘 맞아, 퇴근 후에 클럽에서 사무실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함께 풀기도 했다. 그리고, 같은 부서에서 일을 하면서 서로의 상황을 이해해주며, 한 명이 급한 일이 생기면 다른 한 명이 함께 혹은 대신 야근을 해 주기도 하면서 서로의 워라밸을 안정적으로 유지해 왔다. 그러던 중 B가 결혼을 하게 되면서 조금씩 균형이 흐트러지기 시작되었다. B는 예전처럼 A와 함께 클럽에 다니지도 않고, 가급적이면 집에 일찍 들어가고자 야근을 기피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A와 함께 하는 개인적인 시간뿐만 아니라 함께 업무를 진행하는 시간들도 줄어들게 되었다. B에게 아이가 생기자 상황은 더욱 급변했다. B는 가족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점점 더 많이 할애해야만 했고, 상대적으로 A는 여유로워 보였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 B가 갑자기 아이의 발표회에 참석해야 한다며, 급하게 A에게 자기의 업무를 부탁하는 일이 생겼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날은 B와의 관계가 멀어진 후 무료한 날들을 보내던 A가 오랜만에 친구들과 클럽에서 파티를 하기로 몇 달 전부터 준비해 왔던 바로 그 날이었다. A는 B에게 미안하지만 오늘은 약속이 있어서 안되겠다고 정중히 사양했지만, B는 A가 클럽에 가기 위해 자기의 부탁을 거절한 것을 알고는 무척이나 서운해했고, 그 뒤로 둘의 관계는 더욱 서먹해졌다.
상사가 아닌 동료로부터 침해받는 워라밸
직장인의 워라밸을 무너뜨리는 원인은 다양하다. 그 중의 거의 절반 이상은 상사일 것이고, 나머지의 대부분은 고객일 것이다. 그리고 그 틈새에는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부족한 동료가 있을 수도 있다. B의 입장에서는 A는 무척 여유로워 보일 수 있다. B 역시 A 처럼 퇴근 하고 술 한잔 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할 때도 많지만,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 아이와 맞벌이 하는 배우자를 생각하면 술 한잔 하는 것조차 사치스럽게 생각될 때가 많다. B가 보기에는 A는 상대적으로 시간도 여유롭고, 클럽에 가는 일은 일생의 한번뿐인 아이의 발표회에 가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지 않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몇 달을 기다렸던 클럽에 가는 일은 A에게는 B의 아이의 발표회에 못지 않게 큰 비중을 차지하는 중요한 일일 수도 있다. 그리고 B는 A가 누리는 자유를 부러워하기도 하지만, 대신 집에서 아이들과 배우자와 함께 하는 A는 아직 갖지 못한 풍요롭고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이러한 부분에서는 A는 B의 가족을 부러워하고 있을 수도 있다. 종종 나의 워라밸이 다른사람의 워라밸보다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들이 있다. B처럼 내가 책임져야 하는 육아의 짐을 다른 직장동료와 나누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육아의 짐을 지고 있다는 것은 동시에 육아의 행복을 누리고 있다는 것이다. A의 입장에서는 육아의 행복은 누리지 못한 채 육아의 짐만 나누어야 하는 불공평한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다. 나중에 A 역시 결혼을 하고 육아를 하게 되면, B를 이해하게 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A 역시 본인이 책임져야 하는 부분은 다른 동료와 나누는 것에 대해 정당성을 가져갈 수는 없다. 이러한 부분은 직장 내에서 이루어지는 배려인 것이지, 의무가 아니다. 나만의 기준으로 내 눈앞의 상황이 다른 사람의 상황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내 기준의 판단일 뿐인 것이고, 이러한 편향된 기준을 바탕으로 내리는 판단은 치우침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 나의 워라밸이 중요하고 지키고 싶다면, 상대방의 워라밸도 중요하고, 지켜주어야 한다.
일과 삶의 경계에 대한 유연한 생각이 균형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된다.
나 역시 결혼을 하기 전에는 사무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고, 어쩌다 일찍 퇴근하는 날은 어김없이 친구들과 맛있는 곳을 찾아 다니거나 술 한잔 기울이면서 스트레스를 풀곤했다. 반복되는 야근과 막대한 업무량에 지쳐있던 나에게 일주일에 한번 정도 일찍 퇴근해서 술 한잔 하는 것은 커다란 낙이었고, 지치지 않고 내 나름의 워라밸을 유지하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나니 아무래도 집에 가는 시간이 빨라질 수 밖에 없었다. 혹시 내가 늦으면 배우자가 혼자 집에서 쓸쓸하게 있지는 않을까 싶어 정말 특별한 일이 아니라면 가급적 일찍 퇴근을 해서 바로 집으로 갔다. 그러다 보니 절대적으로 일하는 시간이 부족함을 깨닫게 되었다. 사무실에서 아무리 효율적으로 시간을 보낸다 해도, 퇴근 후에 외국에서 오는 메일을 수시로 확인해야 했고, 전화 회의(Tele-Conference)시간은 우리 나라의 근무시간을 딱히 고려해 주지는 않았다. 그래서 예전에는 사무실에서 늦게까지 남아서 처리해야만 했던 일을 집으로 가지고 와야만 했다. 예전에는 일과 삶의 완벽한 분리를 꿈꾸었기에, 사무실을 나가는 순간부터 일에 대한 모든 것을 잊고자 했었고, 그렇기에 사무실에서 가능한 모든 일을 처리하려 했었다. 그런데, 어쩔수 없는 상황에서 워라밸을 유지하면서 일의 성과를 유지하려다 보니, 집에서 이메일을 확인하고, 전화 회의에 참석하는 일이 빈번해졌다. 집에서 저녁을 먹고 나서 TV를 보다가도 무심결에 노트북을 열고 메일을 확인하기도 하고, 요즘은 그나마 스마트폰으로 왠만한 일들을 다 처리할 수 있어서 편해졌지만, 종종 회사 IT 시스템에 직접 연결해야 하는 일들도 종종 발생하기에 항상 노트북을 들고 퇴근하곤 했으며, 잠자리에 들기 전에 전화 회의에 참석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일과 개인적인 삶이 혼재되는 듯 해 정신도 없고, 하루종일 일하는 느낌이 들어 스트레스도 받았지만, 어느 순간 익숙해지기 시작했고, 사무실을 벗어나서 일을 하게 된 순간이 내가 내 스스로 워라밸을 더 균형 있게 맞출 수 있게 되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실제 퇴근 후에 하는 일은 대부분은 간단하게 이메일을 확인하고 답변을 주는 정도이고, 골치 아픈 문서 작성이나 꼭 사무실에서만 해야 하는 일들은 근무시간 중에 조금 더 집중해서 했다. 생각해보니 예전에는 메일 몇 통 확인하고 답변을 주고자 사무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불필요한 시간들도 있었다. 그리고 각종 시스템이 점점 개선되면서 꼭 사무실이 아닌 어느 곳에서도 불편함 없이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에는 집으로 일을 가지고 오는 것이 워라밸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도 들었으나, 결국은 근무시간을 더욱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하면서, 개인 시간의 활용폭을 더 넓혀 주었다.
나의 워라밸만큼 상대방의 워라밸을 존중해야 한다.
워라밸은 상대적인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일주일에 한 두 번 야근을 하더라도 절대 집으로 일을 가지고 오고 싶어하지 않을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을 야근을 피하는 대신, 집에서 조금씩 일을 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나의 스타일을 누군가에게 강요한다던가, 나의 워라밸을 지키기 위해 다른 사람의 워라밸을 훼손하지 않는 것이다. 집에서 일을 하다가 문득 생각이 났다고 다른 사람에게 답장을 재촉하는 메일을 보낸다던가 해서는 안 된다. 프랑스에서는 퇴근 후에 직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업무를 지시하는 것이 금지되었고, 국내에서도 퇴근 후에 카카오톡 단톡방을 통해 끊임없이 업무 지시를 하는 것이 논란이 되었었다. 이러한 모든 것은 당사자가 원치 않는 퇴근 후의 개인적인 삶에 대한 간섭에 제지를 건 것이다. 하지만, 워라밸을 균형 있게 지키는 방법은 단지 상사의 업무 지시만을 차단하는 것만이 아니라, 내 스스로가 직장동료나 후배들의 워라밸을 존중하고 이해해 주는 것도 포함이 된다. 그리고 워라밸은 단지 사무실을 박차고 나오는 순간 맞추어지는 것이 아니라, 보다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음으로써 시작될 수 있다.
P.S 여담으로 집에서 다른 나라와 전화 회의를 할 때 가장 고역스러운 것은 아이들이다. 아주 늦은 시간이거나 아주 이른 시간이면 그나마 나은데, 저녁 9시경이나 아침 7시경에 하는 전화 회의에 참석을 해야 할 때는 아이들이 주변에 오지 못하도록 다른 방에 가서 하던가, 배우자가 아이를 잘 봐주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종종 난입할 때가 있어 난감하기도 하지만, 전화 회의를 하다 보면 꼭 우리만 그런 것은 아니고, 전화기 너머의 누군가도 집에서 아이들과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들을 수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럴 경우 대부분은 서로를 웃으며 이해해주고, 나도 그런 상황이라고 자수를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단순한 정보 공유차원의 회의가 아니라면 가능한 아이들이 난입하지 못하도록 대책을 세우는 것이 당연하다.
긴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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