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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회사로 국내회사에 입사를 했을 때는 해외 출장은 전혀 생각도 못 해볼만한 것이었으며, 간혹 해외출장을 갔다 온 선배들의 이야기는 군대에서 축구 했던 이야기보다 더 박진감 있게 들려왔었다. 그러면서 선배들도 다시는 그런 출장 기회는 없을 거라며 아쉬워하곤 했었다. 직장생활 4년차에 접어들었을 무렵, 나에게도 해외 출장의 기회가 찾아왔다. 당시 독일에 있던 주 거래처에 들렀다가 키프로스(Cyprus)라는 지중해의 섬나라에서 열리는 박람회에 참석하는 일정이었다. 팀장님과 함께 가는 출장이었지만, 일종의 인센티브 형식이었기에 일정은 상당히 여유로웠다. 더구나 호탕하셨던 팀장님 덕분에 눈치를 보거나 하는 불편함 없이 굉장히 즐거운 처음이자 마지막 출장길이었다.

 

 

피곤하고 부담되기만 하는 해외출장

 

그뒤로 입사한 외국계 회사에서는 해외 출장이 빈번하곤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이전 회사에서는 부서에서 한두 명이 일년에 한 번 정도 해외 출장을 갈까 말까였다면, 여기서는 모두가 많게는 대여섯 번, 적어도 두세 번은 해외 출장을 가곤 했다. 출장의 목적은 업무와 관련된 것도 있었고, 역량 개발을 위한 교육을 위한 것들도 있었다. 요즘은 많은 교육 컨텐츠들이 웹으로 제공이 되고, 업무를 할 때도 화상회의(VC,Virtual Conference)로 많이 대체가 되었지만, 10여년 전만 해도 대부분 서로 얼굴을 보면서 진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교육이나 업무 목적의 출장들은 대부분 아시아지역이 함께 진행되는 경우가 많아, 필리핀, 태국, 싱가폴, 중국 등의 아시아 국가인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종종 유럽이나 호주, 미국 등으로 장거리 출장을 가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출장 기간은 목적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대부분 1주일 정도인 경우가 많았다.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면서 이동을 하는 것이기에 한번의 출장을 통해 최대한의 효율을 끌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교육이 진행될 때도 보통 월요일 아침에 시작해서 목요일 오후나 금요일 오전까지 평일을 전체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럴 경우에는 보통 주말에 출발을 하기 때문에 개인의 시간을 손해 봐야 하는 경우가 있다. 회사에 따라서는 이러한 이동시간을 업무시간으로 인정하여 일정 금액의 주말근무수당 등으로 보상을 해주는 경우도 있고, 이동시간은 포함이 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개인적 일정을 추가하기 위해 출장 일정의 앞뒤로 하루 이틀씩 붙이는 경우도 종종 있었는데, 요즘은 이런저런 이슈들로 인해 이러한 일정의 연장에 조금 더 엄격하게 관리를 한다.

 

 해외출장은 가는 것에 대한 로망이 식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하루하루 엄청난 업무량에 시달리는 와중에 며칠 동안 자리를 비우는 것은 결국 그대로 부메랑처럼 출장 후에 후폭풍이 밀려오기 때문이다. 한번은 새벽 1시까지 출장과는 상관 없는 자료를 만들다가 집에 잠깐 들러서 짐을 챙긴 후에 부랴부랴 공항으로 이동을 해서 오전 비행기를 타고 런던에 갔던 적이 있었다. 출장지에서 진행해야 할 업무는 당연히 비행기 안에서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고, 도착해서는 주변을 둘러볼 여유도 없이 호텔로 직행하고, 다음날 오전부터 저녁까지 업무에 치이기만 한적도 있다. 그리고는 꼬박 이틀 밤을 보내고는 바로 귀국하는 비행기를 타고 온 적이 있는데, 런던행 비행기에서 마주쳤던 동일한 스튜어디스와 함께 한국으로 돌아온 적도 있었다. 그 스튜어디스께서는 쾡해진 내 얼굴을 보고는 굉장히 빠듯한 일정으로 출장을 다닌다면서 감사하게도 조금 더 이것저것 챙겨주셨었다. 그리고 돌아온 한국에서는그 동안의 업무 공백에 대한 쌓여있는 업무들이 다시금 야근의 늪으로 빠져 들게 만들었다. 때로는 밤새 비행기를 타고 아침에 공항에 도착해서 바로 사무실로 출근해야 하는 경우도 일정에 따라서는 종종 발생하기도 한다. 

 

 또한, 출장지에서의 업무는 최대한 효율적으로 이루어져야 하기에,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반복되는 미팅에 호텔 방에 돌아와서는 다음 날 미팅을 밤새 준비해야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한번은 몇 백명을 대상으로 하는 대규모의 미팅을 준비하면서 전날 저녁조차 제대로 먹지 못한 채로 본사 팀과 미팅을 준비하다가 간신히 샌드위치 하나 들고 호텔 방으로 올라갔는데, 밤 11시가 다 된 시간에 다시금 전체 호출이 되어 내려와서 다시 미팅을 진행했던 적도 있었다. 그리고는 다시 방에 올라와 미팅에서 논의된 내용을 정리하고 다음 날 발표할 자료를 수정하고, 발표 준비를 하느라 밤을 꼬박 새웠던 적도 있었다. 

 

 출장을 가면 겪는 또 다른 어려움은 언어, 즉 영어이다. 당연하겠지만, 해외출장을 가면 대부분은 영어로 모든 업무와 회의를 진행해야 한다. 아시아 지역으로 출장을 가게 되면 거의 대부분의 나라들이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지는 않기 때문에 글로벌 영어를 사용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조금은 문법이 맞지 않고, 조금은 느리거나, 조금은 헤메어도 서로 이해해 주기도 하고 서로 덜 민망해 하기도 한다. 하지만, 영어권 나라에 출장을 가게 되면, 말 그대로, 인정사정 없이 진행되는 경우도 있다. 런던에 갔을 때는 회의가 너무 빨리 진행되는 바람에 따라가기가 힘들어, 미팅 후에는 다른 참석자들에게 내가 듣고 이해한 것이 맞는 것인지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과정들을 거쳐야만 했고, 내 영어실력에 스스로 자괴감이 들어 더 위축되었던적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영어 공부를 조금 더 해야지 하고 생각하지만, 돌아와 업무에 치이다 보면 어느덧 그런 생각들은 쑥 들어가게 되고, 다음 출장 때가 되어서야 그 동안 영어공부를 소홀히 했던 것은 다시금 후회하고는 했다. 

 

 해외출장 시에 느낄 수 있는 소소한 즐거움 중에 하나는 전화와 이메일로만 상대하던 상대방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것과, 회사의 조직도 등에서나 볼 수 있었던 상당히 높은 직급의 사람들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것이다. 얼굴을 보고 친분을 쌓게 되면, 후에 함께 업무를 진행할 때 분명히 수월하고 도움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아주 높은 상사에게 잠시라도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 또한 잡을 수도 있다. 하지만, 출장지에서 불성실하고 준비가 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도 있기에 항상 긴장을 늦추어서는 안된다.

 

비지니스타고 특급호텔에도 묶어보고.

 해외출장이 부담이 되는 것도 분명하지만, 때로는 갑갑하고 빡빡한 업무를 잠시라도 놓을 수 있다는 것 때문에해방감이 들 때도 있다. 그리고 몇 번의 해외 출장 경험이 쌓이다 보면, 자투리 시간들을 활용하거나 출장지에 있는 동료들과 함께 짧은 시간이라도 주변을 둘러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기기도 한다. 모든 일정이 끝난 후에 공항에 가기 한 두 시간 정도를 활용하여 머물던 호텔 주변이라도 둘러보고, 맛집을 찾아가고, 짧은 쇼핑을 즐기는 것도 해외출장을 가는 쏠쏠한 재미 중의 하나이다. 예전에 북경으로 짧은 출장을 갔을 때, 오전 일정을 마친 후 오후 일정은 내 업무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었던 적이 있어, 당시 상사에게 허락을 받고, 자금성과 이화원 등을 여유 있게 돌아본 후 저녁 일정에 다시 참석했던 적도 있었다. 그리고 유럽 등의 항공편이 자주 있지 않는 곳으로 출장을 갈 경우에 업무 일정이 조금 일찍 마무리 되더라도, 돌아오는 항공편까지 시간이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경우도 종종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해외출장을 다니는 가장 큰 이득 중의 하나는 장거리 출장 시에 이용할 수 있는 항공기 비지니스석이다. 회사마다 규정에 조금씩 차이는 있겠지만, 6시간 혹은 8시간 이상의 비행을 해야 하는 경우, 내규에 따라 비지니스석을 이용할 수 있는 경우가 있다. 10여년 전에는 안전과 편의 등을 고려하여 국적기를 우선적으로 이용할 수 있기도 했는데, 나중에는 점점 가장 저렴한 항공사를 이용하도록 바뀌기도 했지만, 그래도 개인적으로 이용하기에는 너무 큰 부담이 되는 비지니스석을 경험해 볼 수 있다는 것은 굉장한 메리트가 아닐 수 없다. 더구나 비지니스석 이용에 대해 적립되는 마일리지와 공항에서의 라운지 이용은 보너스를 받는 듯한 느낌까지 들게 한다. 

 

 또 하나의 장점은 1인 1실로 호텔을 이용하는 것이다. 국내 사의 경우 비용 문제로 2인 1실 혹은 3인 1실까지이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외국계 회사의 경우는 다양한 인종, 문화, 안전 등을 고려하여 출장 시 1인 1실을 이용하는 것을 우선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때로는 출장지에 있는 다양한 특급호텔들을 오롯이 혼자 사용하고, 잘 차려진 아침 뷔페를 이용하는 자그마한 사치를 누릴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출장은 업무의 연장이지 개인 여행이 아니다.

 

 입사한지 얼마되지 않는다면 분명 해외출장이라는 것은 하나의 로망이고 동시에 기회이기도 하다. 앞서 말했듯이 때로는 항공기 비지니스석을 이용하고, 특급호텔에 머무는 부가적인 혜택은 말그대로 부가적인 것이지 그 목적은 아니다. 회사에서 굳이 많은 비용과 시간을 투자하면서까지 해외출장을 보내주는 것은 그 이상의 결과물과 성과를 기대하고 또 얻기 위해서이다. 각 나라에서 전화, 이메일 등을 통해서 업무를 진행하는 것보다 훨씬더 효율적이고 우수한 성과를 기대하고 있기에 그러한 투자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출장의 목적과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개인의 여행처럼 오해해서는 안 된다. 일부 직원들은 출장을 가기 전에 업무 준비보다는 여행 일정을 짜는데 더 집중하기도 하고, 본인의 여행 일정을 맞추기 위해 업무일정을 조정하려 하기도 한다. 그리고 귀국 후의 업무에 복귀해서도 출장에서의 피곤과 여운이 그대로 업무에 지장을 주는 경우도 종종 있어 이러한 부분은 분명히 지양해야 할 것이다. 해외출장을 포함한 모든 출장은 회사의 성과를 위한 업무의 연장이기 결코 개인의 여흥과 만족을 위한 여행은 아니다.

 

 


 

P.S 외국계회사에 대한 이직 등을 고려할 때, 본사(Headquarter)의 위치를 보고, 입사하면 본사에 한번쯤은 가보겠구나 하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거의 대부분은 10년이 넘게 근무를 해도, 업무 연관성이 없다면 본사에 가보는 일은 극히 드문 경우가 많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본사나 본사연구소에 한번쯤 가보고자 하는 소박한 꿈을 가진 직원들도 종종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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